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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서울변방연극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김원영 x 0set프로젝트): 미학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
    REVIEW/Theater 2019. 8. 4. 21:07

    김원영 x 0set프로젝트)<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

    제목에서 드러나듯, 퍼포머 김원영은 장애를 가진 스스로의 신체가 타인의 시선을 방어하기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 보지 말 것을 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법의 항목들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리스트를 이룬다. 그리하여 인격에 대한 보존의 욕망과 존중의 회피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직접적인 시선이 해체되는 합의가 형성된다. 하지만 관객은 중대한 기로에 놓인다. 이는 김원영이 한 개인이면서 퍼포머-주체이기 때문인데, 실은 이미 그러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를 예시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기억의 증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순간에 이를 피해야 한다. 이런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회피 전략은 단지 도시를 사는 현대인의 덕목에 가까워 보인다.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흘깃 볼 것과 같은.

    그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일반과 비일반의 신체를 양분하는 하나의 신체로 수렴되는 우리의 시선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김원영은 의도적으로 그 편협한 시선의 관객을 향해 자신의 신체를 발설한다. 그러니 우리는 불편하게 그를 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보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강제가 발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의 유일한 퍼포머로서 지켜봐야 한다물론 그를 건너 스크린을 볼 수도 있다. 사실상 그는 자신의 사회에서의 몸이 극장이라는 관문을 가로질러 해방되고 나아가 독특한 몸으로 재인식되는 지점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전동 휠체어에서 내려와 무대를 뒹굴고 휘젓는 장면은 그만의 독특한 춤을 구성한다. 한편으로 이는 어떤 체계를 갖추거나 심미적 도상을 상정하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 자체가 사회에서 극장으로 분화하는 인식의 재고점을 만드는 과정에 있는 가운데, 장애라는 비일반적이고 반심미적이라는 어떤 고정관념에 대항해 탈전형화를 통한 해방의 의미를 띤다.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시선을 전유함을 강요/강조하는 게 아니라 시선의 위계 자체를 내파하려는 근본적인 도약의 전선에 있다. 그렇다면 그가 건 법으로서 시선의 회피라는 금기는 공연 이후 유효한 것일까.

    그의 말은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타이핑되는데, 이는 싱크를 맞추는 자막이 아니라 지연과 간극이 있는 그야말로 타이핑이다. 이는 의도치 않은 오류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의 말의 속도를 다 따라가지 못한다거나 잘못된 언어로 옮기는 경우가 생겨난다. 가령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실정법실전법으로 계속 잘못 타이핑된다. 이는 실정법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한 가운데 들리는 대로 이를 가시화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문자로서의 시각적 번역은 왜 선택되었어야 했을까.

    김원영의 말은 발성의 측면이나 등등을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매우 명확하게 잘 전달된다. 그의 장애는 실제 시각적인 것으로 수렴되고, 마치 그처럼 그의 말은 역시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문자로 정렬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번역은 그의 장애를 보족하는 매개 장치로 기능하기보다는, 나아가 그와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것이 되기보다는 그의 말이 보조되어야 한다는 어떤 이상한 도움에 대한 강박 또는 그로 인한 과잉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러한 실시간 번역은 멈추거나 다시 치는 것과 같이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헤집는 또 다른 수행의 과정으로 체현된다. 그것은 말과 글의 일치라는 강박적 이상을 전제로 한다.


    결과적으로, 김원영은 보편적인 법의 특질을 전유해 특수한 또는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한 항목을 자율적으로 곧 누구와의 합의도 없이 법제화하는데, 이는 예술 바깥으로는 인권 변호사로서 기존의 법이 가시화하지 못한 부분들을 가시화하는 법 조항을 만듦으로써 개개인의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음에 대한 의지와 지향과 맞닿아 있다고도 분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여기에는 이상적 현실을 넘어 법 자체에 대한 판타지(‘이상적 법들이 가리키는 이상적 사회’)가 전제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연은 한 발 더 나아가고, 김원영은 그 법 바깥, 곧 예술이라는 형식에서 우리가 평등한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자막이 번역되고 가시화될 수 있음을 전제로 했다면, 김원영의 움직임은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또 다른 언어이다. 시종일관 차별과 차이에 대한 질문으로써 결국 스스로가 법적 장치와 합의된 시민 정신으로써 차별받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차이가 사랑받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그의 장애가 가리키는 본질적 중핵으로 드러난다. 그의 차이는 무대라는 아우라를 창출하는 공간에서 비로소 차이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용인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는 현실에서 연장될 수 있는 부분일까.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그 자체의 차이(고유성)를 가진다. 그렇다면 장애는 김원영이 묻듯 일반적인 기준에서 수용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거리)일까.

    여기서 김원영의 질문은 도덕()적 차원이 아닌 미학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심미적이지 않은 것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 (차별이 아닌) 차이를 넘어서는 것이 (사회적으로가 아닌) 개인적으로 가능하냐는 것. 그것은 김원영의 신체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무와 당위의 측면에서 질문되는 것이 물론 아니다. 그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추는 제어되지 않는움직임이 심미적인 것이 될 때, 우리는 장애에 대한 존중으로서 시선에 대한 은폐 전략, 그것이 내재한 도덕적 강제의 성격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원역 역시 스스로에 대한 방어 전략을 고려하지 않은 열린 상태이다. 이를 미학적이윤리적인 감각의 해방으로 볼 수 있을까. 결국 이것은 극장이 성취하는 관객의 해방일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거리를 해소하는.

    마치 휠체어 위에 앉아 있던 김원영이 관객에게 직접 말을 함에도 그 스스로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감각되었던 것은, 그가 일반적인 관객의 자리를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곧 그는 배우로서의 지위를 뒤늦게 선취함을, 곧 유예하고 있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던 휠체어를 일종의 객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의 직접적 말하기가 실은 일종의 (법에서의) 가설인 동시에 (선택으로서의) 질문이라는 점에서 확정적 말이 아닌 유동적인 말이라는 것으로부터 그의 말은 진리의 말이 아닌 진리 자체를 타진하는 어떤 말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그의 말은 철학적이고 미학적이다. 우리는 진리를 전달받는 게 아니라 진리를 탐색해야만 한다. 그가 휠체어에 내려와 배우의 지위를 얻을 때 우리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질문을 가로지르는 어떤 상태에 직면한다. 이 움직임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닌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음의 층위에서만 읽힐 수 있다. 다름 아닌 배우의 견지에서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다.

    p.s. 결국 극장은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수용하는 공간일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그의 춤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업이 택한 시각적 번역의 방식은 어떻게 춤을 듣게 할 것인가의 질문을 남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공연일시: 2019/07/11~2019/07/13, 평일 20, 토요일 15/19

    공연장소: 삼일로창고극장

    러닝타임: 60

    공연등급: 중학생 이상

     

    <참여 아티스트>

     

    /출연: 김원영

    연출: 신재

    기획: 정소은

    무대감독: 임성현

    기술감독: 김석기

    조명디자인: 고귀경

    사운드디자인: 정의석

    그래픽디자인: 김은정

    안무: 어드바이저: 정아영

    문자통역: AUD사회적협동조합

    수어통역: 장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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