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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천에는 똥이 많다>: 뛰어난 공간(에의) 감각, 문학적 소실점, 그리고 현재에 안착하기
    REVIEW/Theater 2019.06.20 21:27


    공간, 형태, 세계관의 연장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드레스 리허설 장면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구성하는 공간은 블랙박스의 형태를 비껴나서 작품의 세계의 면모를 구성한다. 또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공간에의 경험이 말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있지 않도록 무대는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캐릭터와 말을 포함한 소리가 그 공간을 더듬어 나가는 것이 이 작업의 과정이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화자)의 “거대한 오욕의 세계”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문학적 서술 방식을 띤 탓에, 그리고 중간 중간 구체적으로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가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는 탓에 현실은 그 바깥이 되고 내면은 파악되어야 할 중핵이 되는데(현실에 위치한 인물들은 바깥으로 전도된다), 이를 현실은 어지러운 표면으로 흘러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도는 공간은 카오스를 상기시킨다(존재들은 공간과 유영한다). 이것이 이후 보충되는, 직접적인 형상으로 제시되는 ‘수족관’이라는 알레고리는, 가정이라는 집이 지닌 물리적 장소성과 당대 가족의 세계가 구성하는 시대성으로 구성되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하나의 관점으로 압축한다. 곧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비루하게 살아가는 화자 홍준식의 ‘거대한 오욕의 세계’는, 수족관 안의 물고기로 비유되는 그의 현실 세계와 이러한 답답한 세계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물고기 ‘주인’의 시점이 중첩된 자조적 자기 서술의 언어인 것이다. 마치 여기서 화자의 세계관을 주인이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자신에 비유하고 거기에 감정 이입을 함으로써 그 자신이 수족관의 세계로 수렴되는 한편, 동시에 그 자신의 닫힌 바깥 세계를 깨닫는 것으로 나아감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수족관의 유리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 수족관의 세계에 대한 또 다른 대조적인 반응은 수족관으로부터 바깥을 향하는 시선에서 가능해지는데, 이는 준식과 대립하며 준식의 열등의식을 끌어올리는, 그와 같이 수족관(집)에서 살아가는 그의 아내 정미숙의 시선이다. 미숙의 걸레질은 제목처럼 똥 위에 사는 이들의 삶을 가리키는데, 이는 수족관 바깥에 대한 인식, 곧 불가능한 세계와의 접면을 응시함에 다름 아니다. 준식의 기제가 수족관의 삶 자체의 부인이라면, 미숙의 기제는 수족관 삶 자체에 대한 비판을 향한다. 그리고 이는 준식의 이복 동생 강민우의 등장 이후 강렬해진다. ‘똥구덩이 위에서 본 별’과 같이 닫힌 세계에 대한 인식은, 수족관 바깥의 세계를 깨닫고 더 나은 초월적인 세계로 가려는 의지로도 연결되지만, 그 반대로도 수렴 가능하다. 별 아래로 보는 건 다시 똥인 것이다. 녹천의 똥은 물리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준식과 미숙을 상대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미숙의 걸레질은 똥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준식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

    도식적 이념과 연장되지 않는 현재

    이 둘의 관계에 민우의 출현 이후, 미숙은 생기를 얻고 준식은 모종의 열등감이 발생한다. 운동권 학생으로 경찰에 쫓기는 처지인 민우는 정의 구현에 자신의 삶을 건다. 수족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족관이라는 부조리와 싸운다. 마지막 천장에서 떨어지는 흙은, 수족관에 새로운 물을 넣는 알레고리를 띠는(‘그 세계는 단단하게 지속된다.’) 이따금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달리 준식이 속한 세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린다. 민우와 준식의 대립적 가치 지향과 삶의 태도는 너무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데, 동시에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그로써 당대의 세계 이념을 구성하고자 한다. 그 두 태도 사이에는, 또한 그 태도들과 현재와는 물론 간극이 있다.

    결과적으로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학생 운동의 시절과 현재의 시기와의 인식-감각적 간극을 추상적으로 설정한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은 이창동 작가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문학과지성사, 1992)를 원작으로 하는데, 그를 통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가 사는 이 땅(도시)은 똥을 딛고 서 있음을 유념하라는 것? (그렇다면 너무 단순하다.) 또는 준식의 삶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라는 것?

    준식과 민우의 대비는 너무 확연해 비현실적인데. 신장의 차이 역시 무대에서는 절대적인 체감의 기준이 되며, 나아가 준식에 비해 민우의 내면은 규명되지 않는다―주인공은 코러스들로 산포돼 그를 대리하거나 준식의 내면이 화자의 독백으로 치환되는 가운데 준식은, 어정쩡한 주인공이자 주체의 역량을 갖지 못한 잉여가 된다. 여기서 관객은 특정 주체에의 몰입에 실패하는 동시에 그것과의 거리를 두는 것 역시 어려운 사태를 맞는다. 준식의 삶은 우리에게 조금 더 요원해진다. 마치 최종적인 독백은 준식의 무의식으로, 우리의 망각으로 직접 연결되는 듯이 사라져간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서 공간의 장치적 구성, 코러스의 몸과 소리가 주는 감각을 통한 공간에의 유영은, 수족관과 그 속의 물고기의 움직임에 연접되지만, 준식이 지향하고 지양하는 각각의 이념이 가리키는 두 가지 세계관의 대비가 현재에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그것은 나름 과거의 나날 역시 재현하거나 드러내지 못한다. 감각적인 유려함은 수족관이라는 알레고리로서의 세계 구현으로 수렴되고, 과거도 현재도 규명하지 못한 채 진공적인 상태에 머문다. 형식은 따라서 주제에 다다르는 표현 양식이 되지 못한다. 곧 주체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 수족관으로의 이상한 최면을 거는 것으로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아파트 공화국의 현재로 안착된다고 할까.

    [공연 개요]

    공연 일시: 2019년 5월 14일(화)~6월 8일(토) 화수목금 8시 / 토일 3시 / 월 쉼 *5.29(수) 4시, 8시(2회 공연)
    기획 제작/장소:두산아트센터
    원작: 「鹿川에는 똥이 많다」,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문학과지성사, 1992)
    각색: 윤성호
    연출: 신유청
    출연: 조형래(홍준식 역), 김신록(정미숙 역), 송희정·박희은·이지혜·우범진·하준호(소리들 역), 김우진(강민우 역)

    무대디자인: 박상봉
    조명디자인: 강지혜
    음악/음향디자인: 지미 세르(Sert Jymmy)
    영상디자인: 박보라
    의상디자인: 홍문기
    분장/소품 디자인: 장경숙
    움직임: 이소영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러닝타임: 100분

    문의: 두산아트센터 02) 708-5001 doosanartcenter.com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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