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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버 미술가의 미술가 게임
    Column 2019. 9. 18. 19:28


    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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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in Culture』 8월 호에 한편의 픽션 에세이가 실렸다. 제목은 「존버의 일주일 -2019년 한국 젊은 미술가의 창작 분투기」. 말 그대로 존버세대 작가의 일상을 1인칭 시점의 픽션으로 쓴 글인데 작가로서의 입지를 찾기도, 안정적인 생계를 맛보기도 어려운 요즘 청년의 우울한 상황과 자조 섞인 한탄을 묘사했다.[각주:1] “세상엔 작업 잘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라는 문장에서, 어쩐지 포화상태로 분출구 없이 노오력하는 이 세대의 비극이 묻어난다. 그러나 ‘세대’라고 하는, 전 인류에 적용 가능한 생물학적 연령 개념을 들어 이들을 보편의 상에 묶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작품만 보면서 한마디씩 해 주는 일이 없거든.”이라는 화자의 외로운 푸념에서 드러나는 애태움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젊은 미술가’는 왜 세대라는 다수 안에서도 고립과 절망을 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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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 전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신규사업으로 경기도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을 시작했다.[각주:2] 도내 창작 및 자립을 준비하는 만 19~35세 예술인에게 자립준비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 시각분야 심의총평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이 사업의 성격은 청년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과 가장 유사하다고 들었다. (중략) 청년예술인을 사실상 차상위계층으로 분류하고 적극적인 행정 조치를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예술계 내 청년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예나 지금이나 지원 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비율이란 훨씬 더 증가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각지대에 몰린 중장년 예술가다. 만약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 청년 모두를 사업의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고, 경기도 내 청년 모두를 포함시킬 수 없고 예술계 구성원 모두를 포함시킬 수 없다면, ‘현실적인’ 면에서 가장 지원이 시급한 계층이 누구일지 사업을 만드는 주체가 숙고했으면 좋겠다. 미술사에서 청년은 역-권력으로, 언제나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각주:3]

    심의총평 말미에 위원장의 개인적 소견임을 밝히고 쓰여진 문단이지만, 사업에 지원하고 탈락되거나 선정된 청년예술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편하게 읽을 수 없는 심의평일 것이다.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두고 첫째, ‘현실적인’ 면에서, 둘째, ‘지원이 시급한’ 당사자로서 정당성 있는 자기 방어 논리를 표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대개 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방어의 성공 유무를 떠나 이같은 입장에 스스로를 혼자 내놓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유쾌하지 않은 상황의 빈번한 발생은, 이와 같은 사업에 ‘현실적’이고 ‘시급한’ 대상을 입증하고 선별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치하더라도 그 대상에 대해서는 저마다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그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1인당 최저생계비를 전 국민에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진짜 논리는 아직은 우리에게 복지사회의 먼 이상향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상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어야 하는 불쾌함은, ‘진짜’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이 개념이 가미된 ‘보조금’ 사업에 지원하는 참여자가 가구원의 소득과 실업·실직 유무를 증빙하고, 서류와 면접심의장에 들어서 경쟁자와 함께 자격의 우위를 두고 경쟁하고, 활동보고서나 정산서로 수급의 정당함과 타당함을 기관에 입증하는 일의 매순간에 태동하는 감정이 된다. 주로 한국사회 청년세대, 청년예술가가 이 감정을 부쩍 느끼고 있다면, 이들이 누리는 것은 사전상의 ‘권력’과 동의어로 쓸 수 있는 것인가?

    ***

    종로구 윤보선길에 있는, 인스턴트루프―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생공간―에서는 지금, 《더 화이트 큐브: 한국 미술계에서 당신의 운을 시험해 보세요》 전시가 열리고 있다.(2019.08.29-09.23) 관람객은 정해진 시간에 이곳에 방문해 김정모 작가가 만든 보드게임 ‘더 화이트 큐브’에 팀으로 참여할 수 있다. 게임 사회자와 게이머로 분한 지킴이와 관람객이 직접 작업을 연출하고 수행하는 퍼포머가 되어 게임을 즐기는 수행적 퍼포먼스. 이 작업에서 발산되는 메시지는 인스턴트루프의 위치나 비좁은 화이트 큐브 공간과도 의미적으로 잘 어울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1wLle0QLeqI

    <더 화이트 큐브>에서 여러분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술 작가로서 보다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점수는 인맥과 경력으로 구분되며 전시와 기타 활동을 통해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작가”라고 합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작가는 각자의 프로필 파일을 작성해야 하며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중 하나의 매체를 골라 게임을 진행합니다. 정해진 숫자의 전시장 카드가 모두 소진되면 그 라운드는 종료되며, 게임은 총 3개의 라운드와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보너스 라운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각주:4]

    게임은 부루마블 진행 방법과 유사한데, 미술계 관행과 사회문제가 심심치 않게 풍자된 것이 흥미롭다. 가령, 게임 참여자로 작가가 된 관람객이 흙수저, 금수저, 다이아수저로 표현된 재력을 주사위 굴리기로 선택하고, 금수저, 다이아수저는 흙수저보다 코인을 많이 받고 시작하는 것. 재력과 인맥, 경력을 남보다 더 얻기 위해 분투하고 행운을 요하게 되는 것. 승자가 되기 위해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과 유망예술지원사업,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사업, 로또 당첨 같은 펀딩 카드를 노리는 것. 미술학원과 예고 출강, 아르바이트 카드로 재력을 보충하는 것 등.

    ‘현실적인’ 상황이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재연된 이 유쾌하고 불쾌한 퍼포먼스는, 입지 기반을 쌓아나가는 신진예술가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본화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실제 예술기관명, 사업명이 게임카드에 사용되는 등 미술계 내부를 드러내는 직설적인 표본이 많아 대중에게는 오히려 낯선 기호가 될 수도 있겠다. 

    작업에 관한 비평은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다. 다만 여기서, ‘한국의 젊은 미술가’가 세대라는 다수 안에서도 고립과 절망을 표하는 이유, 또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상품 판매’와 등가하게 되는 어떠한 상황들, 그리고 예술가 지원사업이 역설적으로 조장한 경쟁구도를 더듬고, ‘현실적인’ 면에서 ‘시급한’ 다음 게임판을 그리는 계기를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존버가 잃었던 미각과 미감을 찾고 주체성 한 스푼을 맛볼 수 있도록. 

    1. 1. 「존버의 일주일 -2019년 한국 젊은 미술가의 창작 분투기」, 『Art in Culture』 8월호, pp.130-137. http://www.artinculture.kr/magazine/261 [본문으로]
    2. 2. 2019 경기도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 5월 24일 모집공고, 7월 8일 서류심의 결과발표 후, 7월 15일 200건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http://www.ggcf.kr/ [본문으로]
    3. 3. 「2019 경기도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 심의총평 (시각분야)」, 2019.07.15 https://www.ggcf.kr/archives/104789 [본문으로]
    4. Related to. https://www.vitrine.k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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