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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제 ‘꼬부랑게하’(강영민), 인제를 구성하는 시공간
    REVIEW/Performance 2021. 8. 10. 00:48

     

    금성여인숙의 중앙 계단, 오른쪽이 ‘꼬부랑게하’를 고안한 강영민 작가.©홍유진(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이하 상동)

    꼬부랑은 할머니의 세월이 각인된 특유의 몸짓이자 인제천리길의 구불구불한 길을 의미한다. ‘게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줄임말로, ‘꼬부랑게하는 강원도 인제의 천리길로 뻗어나가기 위해 임시로 점유한, 세 곳의 숙소를 의미하며 동시에 세 곳의 숙소 역시 천리길의 일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꼬부랑게하는 작가들이 모여 창작의 모티브를 얻고 이를 자신의 창작으로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지시하려는 강영민 작가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지어져 간 일종의 개념적이며 퍼포먼스적인 시공간이라 하겠다.

     

    소양강변을 옆에 낀 인제천리길 2-1 코스 초입에 쌓인 아기자기한 돌탑들. 

    강영민 작가가 고안하고 제안한, 여러 인제의 트래킹코스는 인제천리길의 다양함에서 연원하는 한편 꼬부랑게하와 인제를 이으며 풍부한 인제에 대한 심상 지리를 구성하게 했다. 여기에 접경지역이자 (주로 군인들의) 관광 소비 도시의 특수한 지리적 경계의 특성을 반영한 인제읍 안의 음식점과 상가 등이 운동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트래킹의 수행적 퍼포먼스의 사이에 조합되었고, 이를 통해 인제 사람들의 특별한 인상 역시 체험할 수 있었다. 꼬부랑게하는 그 자체로 결괏값을 예정하기보다는 하나의 아이디어이자 미지의 시공간에 대한 연출에 가까웠기에 플레이어들, 곧 꼬부랑게하에 참여한 여러 작가의 시각과 경험이 인제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각자의 다양한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꼬부랑게하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금성여인숙을 오르는 강영민 작가.

    강영민 작가가 만든 포스터 속의 지팡이를 든 꼬부랑할머니의 걸음이라는 도상으로부터 출발하면, 서울에서 강원도 홍천을 지나 맞는, 드넓은 그리고 (사람이) 드문 인제의 땅은 꼬부랑게하의 시간을 통해 구불구불 천리길로 전유되는 셈이다. 천리길은 이 길을 시작한 김호진 회장의 발자국이 마치 인장으로 감각되는 곳이었다. 곧 이 길은 아직 닳지 않은 어떤 길이고 미래의 누군가가 닿아 갈 여정을 기대하게 하는 곳이다. 외지 사람으로 홀로 길 위의 자연을 맞는 과정은 도시 바깥이 아니라 도시인의 복잡다단한 내면의 지형을 확인하는 길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운동 차원의 트래킹이든 빈 시간을 채우는 휴가이든 인제가 제공하는 것은 도시인을 증명하며 도시인의 삶을 영속시키는 것뿐이다. 이러한 착취의 부정성으로 점철된 허무함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도로가 나지 않은 자연의 구불구불한 비효율의 길은 어찌 됐건 도시의 효율성이 주는 정돈된 세련됨과 정확한 기계적 이성에 대한 대안의 상징이 될 수 있는가.

     

    인제천리길 2-1 코스 초입에 발견된 철문.

    아마 그런 자연이 단순히 얼마나 좋다라는 것은 조금 우습고 또 천박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그 드문드문 사람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곧 천리길 시작 전의 생활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꼬부랑게하’, 곧 시간의 지침을 변경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숙박의 장소는 지역의 시간이, 어찌 보면 그 시간의 리듬이 다른 질서와 분위기로 내 몸을 한층 더 옥죄여 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성을 내포한다.

     

      ‘금성여인숙’ 강복섭 사장님.

    그중에서도 3주에 걸쳐 묵은, 읍내에 위치한 금성여인숙이라는 곳은 중앙에 계단을 두어 사면이 숙소가 되는 그런 곳으로, 공간 자체가 입체적이며 꼬부랑적이었으며, 그 주인장의 기계적인 또는 규칙적인 인자함이 지피는 온기가 뭔가 중앙통로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뭔가 그 기괴한 존재가 주는 압도적인 힘에 의해, 물론 숙소에 머문 시간은 야외에 머문 시간에 비해 길지 않았지만, 인제가 규정되는 바 있었다.

     

    ‘투빅’의 김봉자 사장님.

    카페 투빅이라는 곳 역시 항상 있던 강단진 또는 어떤 기개가 느껴지는 사장님의 모습에서 이 아이러니한 무인카페로부터 내가 감시당하고 있다기보다 응시의 눈빛에 스스로가 감응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타자화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의 환대)는 어찌 됐건 우리를 비추기보다 매우 맑게 튕겨 나오며 구체화되었다.

     

    ‘님에향기’의 장순영 사장님.

    마지막으로 투빅 맞은편에 있던 님에향기라는 곳은 님의 향기(침묵)’가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감탄하곤 하는 작명의 술집이었는데, 문학적이면서 그것을 이탈하며 곧 구어적이며 의 소유가 아니라 님에 흡착하는 향기라는 직접적인 촉각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강영민 작가의 설명을 참조하면, 이곳은 늘 안주가 달라지며 그 안주의 조합이 변주되는 곳인데(실제 두 번 갔을 때 그러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즉흥적 아상블라주 형식의 안주 구성과 함께 싼 술값, 그리고 중앙의 드넓은 홀로부터 출현하는 벽면의 신기한 인테리어 풍경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주었으며, 무엇보다 이 재단되지 않는 사장님의 씩씩한 사교성이 뭔가 유쾌하며 호쾌한 기상을 손님에게 전달해 주었다.

     

    1954년 6.25 전쟁 당시 수천 명의 군인 앞에서 위문공연을 펼치던 마릴린 먼로의 뒷모습(중앙), 출처=https://rarehistoricalphotos.com/marylin-monroe-korea-1954/

    이 세 곳 외에도 아메리칸 스타일의 푸드 스타일링이 가미된 족발 요리집 인제한방 삼계탕 & 족발의 미국 교포 사장님의 미국식 친절함이 한국식으로 번역될 때 오는 어떤 어색함, 곧 사실상 한국에서 보기 힘든 어떤 기품, 동시에 우아한 겸손함으로 설명될 법한 가수 패티김을 얼핏 떠올리게 하는 그의 언어는, 음식 이후에 오는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어쩌면 깊기보다는 산뜻하고 상큼한 맛의 향연은 전형적으로 한국식으로 불리는 음식이 어떻게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장님의 언어는 사실 그 음식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고도 하겠다.

    사실 꼬부랑게하 코스에도 있었듯 리빙스턴교나 마릴린 먼로 동상은 6.25전쟁 당시 인제에서의 미국의 자취를 증명한다. 먼저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미군 리빙스턴 소위가 거센 물결 아래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큰 군사적 피해와 함께 그 역시 중상을 당하는데, 고국의 부인에게 이곳에 없던 다리를 만들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그 부인이 이를 실행해 만들어진 다리가 리빙스턴교라면, 한국 전쟁 당시 위문공연으로 인제를 찾고 크게 즐거워했다는 마릴린 먼로를 기념해 만들어진 게 마릴린 먼로 동상이다.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 존재인 조 디마지오와의 두 번째 결혼 이후 일본으로 신혼여행 중이었던 먼로를 한국에 불러들인 건 미정부의 요청이었다고 하는데, 먼로는 인제와 포항에서 4일간 머물며 한국 부대의 대대적인 응원과 함께 신혼여행의 환희를 매우 특수한 상황 속에서 감각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의 세 곳의 사장님 모두 공교롭게 여성분들이었는데, 그 개성이 모두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강영민 작가의 매개를 통해 이런 감각들이 직접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게하를 일시 전유해 아티스트들의 숙소로 만들며 앞선 감각들을 미리 만나고 전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천리길과 인제의 여러 곳을 조합해, 경성콤과 연계해서는 크게 세 차례 세 번의 팀에 따라 달리 그 코스를 제시하고 이끌어 갔다는 점에서 꼬부랑게하는 강영민 작가의 작품이었으며, 그 규모면에서도 그리고 그 시간의 밀도 차원에서도 촘촘하고 다양한 감각의 세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앞선 부정성은 그런 다른 시간 속에서 인지의 한 조각으로 흡수되었다.

     

    천장에 사는 박쥐의 똥이 바닥에 수북했던 꼬부랑게하의 숙소 중 한 곳이었던 냇강체험관.

    물론 이 시간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형식의 결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이고 사실 공백에 가까웠는데, (공간의) 전유와 (다른 시간으로의) 접속과 (타자와의) 만남은 어떤 결과보다 어떤 전환 자체의 가능성 같은 것을 보게 했다. 이 보게 함의 인지적 경험이 곧 예술의 일단이겠다. 그러니까 앞선 부정성을 현실의 부정성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다른 감각 그 자체에 대한 긍정성으로 일단 수용하며 논의를 메타적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곧 인식과 감각이 모두 발동했고 그것이 혼재되어 갔다.

     

    마지막 날, 인제산촌민속박물관에서 인제의 역사와 이전 생활의 모습을 살피며 인제의 공백의 역사를 생각했으며, 지워지고 망각된 도시가 가진 공백의 역사를 같이 생각했다. 접경지역이자 농촌과 자연, 이런 특수한 또는 비도시의 삶은 근대의 시간 지층과 맞물려 역사의 시간으로 부상한다. 또는 리서치를 요청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예술의 중요한 재료가 되어야 한다는 또는 세련된 형식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어떤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그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마저 타자화를 쉬이 거치거나 일종의 예술가의 착취 자원에 그치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 안에서 어떤 변화의 지점들이 발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강영민 작가의 꼬부랑게하라는 예술 작품그것이 예술로 읽히지 않는 것이 현재 도시 예술계이지만은 결과가 어떤 시각적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효율적(=꼬부랑)이지만 분명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다면, 보름달 뜬 소양강변(인제천리길 2코스, 원통 가는 길) 위의 저녁 돗자리 캠핑, 곱은골계곡(인제천리길 2-1 코스, 읍내 가는 길)에 몸을 담갔을 때 냉기, 그리고 간단한 캠핑 요리, 외떨어져 서 있던 소양강 관대리의 한 나무 곁(인제천리길 1-1 코스, 소양강 38선길)에서 서로의 등을 마주하며 본 풍경 이런 것들이 매우 뚜렷하게 기억난다. 자연은 분명 다른 감각을 열어젖히게 하는 게 분명한데, 그런 시간을 단순히 낭만화하기보다 예술이 탄생하거나 예술이 품는 어떤 지점에서 잃어버리거나 간과되는 어떤 감각의 지점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어떤 관계의 시간이 선명하게 인제를 어떻게든 미래의 시간으로 구성하고 잇고 있었다.

     

    님에향기에서 강영민 작가.

    꼬부랑게하는 전시장이나 극장에서 관람 가능한 작품들과는 다른 환경임에도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부터 전유된 인제의 특수한 시공간무한정한 열린 인제나 한정된 관광 코스로서 인제와는 차별화된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업이자 비평 가능한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지점에서 이 시공간을 다른 예술 작업들과 동등선상에서 다룰 수 있는지의 질문 또는 그와 차별화되는 지점을 기존의 미학적 지평으로 다룰 수 있느냐의 질문, 곧 특수한 시공간을 기존 예술의 연장과 동시에 예술 바깥으로의 도약으로 재현하는 것은 시험이기도 하고 실험이기도 하며 어떤 난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도적 양식의 차원에서 교환되는 작품과 비평의 관계를 벗어나, 제도적 양식이 아닌 차원에서 이를 담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기도 하다.

     

    단절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의 활동 차원에서 조금 더 넓은 예술의 범위를,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예술의 범주를, 기존의 예술 비평이나 매체가 담아내지 못하는 예술의 역능을 비평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그것이다. 강영민 작가의 본연의 팝아트의 작품 생산과 다른 그의 어떤 활동 양상들, 가령 팝아트투어나 경성콤 세미나 활동 등은 기존 예술의 언어로 지시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사료된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지와 체험의 무르고 성긴 결속이 구성하는 예술 작업으로서 꼬부랑게하 역시 위치하고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강영민 작가가 만든 ‘꼬부랑게하’ 포스터.

    김민관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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