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공동의 이야기로 외전을 이룩하기
    REVIEW/Theater 2021. 10. 25. 12:04

    편지는 늘 미래를 향한다

     

    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 이미지 작업장_박태양 [사진 제공=극단 Y](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현(강다현 배우), 리아(강서희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자기계발의 일종으로서 인간관계의 요령 같은 걸 알려주거나 그래서 성공한 삶의 욕망을 추동하는 그런 유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제목만으로 그러한 시시콜콜한 관계 맺기의 기술을 보고 들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34살의 리아(강서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현(강다현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가 17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거절하는 법〉이 출발하며, 거절하는 것에 대한 변명의 궁핍함, 상대방에게 상처를 또는 실망을 안기지 않을까에 대한 죄책감 또는 불안감 등 온갖 걱정이 따라붙었던 존재라면, 곧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를 쌓아 나가던 그리고 질풍노도의 성장기에 있던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그제야 제목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스스로가 존재의 소외를 겪게 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타자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기대는 시기에 있던 이들은, 의기투합해 그들 스스로 ‘거절’에 관한 제1강으로, “거절하는 법”을 명명하고, 이를 수업으로 또 그 수업을 구성하기 위한 검색으로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간다.

    사진 왼쪽부터 미소(배선희 배우)와 리아(강서희 배우).

    이들이 그러한 함께함의 지나간 시간을 소환하는 건 과거에 대한 추억이나 아름다운 포장을 위함이 아닌, 현재에 이르기까지 입었던 수 없는 상처, 생채기의 기억 같은 것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번민하고 갈등했던 이전의 나를 현재의 나로 품는 과정이다. 이 시간에서는 “거절”이 세속에서 닳고 닳은 인사치레의 말이 되기 전의 무게를 새삼 회복할 수 있다. 동시에 그 시간이 불가능함을 인지하면서, 그 스스로의 순수성이 이전의 것임을 자각하면서.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이미 있었던 시간을 재현하면서 수없이 펼쳐질 이후의 시간을 타락하지 않을 존재로 겪어낼 희망을 준다. 여기서 삶은 새삼 어떤 질적 가치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긍정하는 건 어떤 행위와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를 하기까지 따르는 무게, 그리고 그것을 견뎌냄, 그리고 수없이 후회하고 아파한 이후의 시간들이다. 

    미소(배선희 배우)의 현(강다현 배우).

    복잡미묘한 감정의 타래를 다루는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과거를 현재성으로 재현하면서 이를 다시 이후의 시간성 속에서 지시하며 부정하는 대신 끌어안음의 태도를 견지한다. 여기서 넷의 관계는 개별자의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저마다의 모나드에서 착상될 뿐 실은 현재 이 넷이 공통의 기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사는 먼 미래에서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것이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의 시간관이며, 그러한 과거는 공통의 시간으로 우연히 맺힌 것에 가깝다. 
    그렇지만 마지막 대사가 무대 앞으로 나와 선 네 명의 배우가 돌아가며 서로의 몫을 서로에게 배분할 때, 각자의 말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거나 매만질 때, 소위 눈물의 메소드 연기를 준비하거나 폭발시킬 때, 곧 그 말들의 나눔을 체현하는 수평적 간격의 동일성, 자아와 타자가 구분되지 않도록 말들이 섞임으로써 결국 하나의 말을 향해 갈 때, 보편성의 진리는 개별적인 자아의 구체성 속에서 체현된다, 그 몸들이 뒤섞이는 가운데. 이러한 인상적 결‘론’은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이 네 배우를 균등하게 각자의 매력을 존속시키며 그 과정을 만들어왔음에도 역시 상응한다. 

    달리는 존재들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제1강 “거절하는 방법”에서, 제2강 “거절을 거절당하다”, 제3강 “거절을 받아들이는 방법”, 제4강 “모두가 거절당한 운동장”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거절의 함의를 다루는 한편, 넷의 소소하고 세세하게 요동치는 관계의 진폭을 재현한다. 1장이 “거절”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한다면, 그리고 2장의 ‘거절을 거절당함’은 수평적 관계를 넘어서며 위계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거절을 수용하지 않는 폭력적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면, 3장은 거절 자체를 수용할 수 있는 전환의 관점과 성숙에 대한 과정과 연관된다. 4장은 이 넷의 관계가 처음에 미소와 현, 리아와 선주가 둘씩 오붓하게 관계를 맺던 것에서, 리아가 현을 좋아하게 되면서, 이어 ‘거절’에 대해 저마다 각자의 관심을 가진 채 본격적인 의제로 부상해 이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곧 둘의 관계가 넷의 관계로 확장된 이후, 원래 친했던 둘의 관계도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한 상황을 일컫는다. 이 균열은 봉합되기보다 이후 열린 미래의 시간에서 추억으로 응결되고 닫힌다. 그리고 그 닫힘과 함께 미래의 새로운 시간이 예비된다.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의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면, 그 공간은 끊임없이 자전하는 존재들로 채워진다. 수업 시간표가 쓰인 칠판 하나가 무대 정면에 부착된 채 그 앞으로 계단이 있고, 그 옆으로 댄 합판 옆 아래로 두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을 정도의 움푹 패는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이 주로 선주의 방에 대응된다면, 나머지 무대 공간은 운동장으로 기능한다. 이 운동장을 현이 계속 뛰는 것으로, 그리고 거절을 잘 못 하는 그를 대리해주는 미소가 그를 따라 뛰는 것으로, 또 현을 좋아하는 리아가 현과 만나기 위해 틈을 보던 곳으로, 이 넷이 연대하며 같이 뛰는 것으로, 시종일관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달리는 배우들의 모습을 무대로 내세운다. 가령 소극장이 아닌 원형극장의 위치에서 배우들이 정면성의 단면들을 사방으로 분배하고, 공간의 확장을 통해서 달리기에 매끈함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달리기의 함의는 젊음에 대한 상징이나 또 막막한 미래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몸짓 같은 것이 아니라, 현의 달리기를 함께하거나 마주하는 존재들의 시도로 그러한 몸짓이 옮겨간다는 데서 파악할 수 있다. 달리기는 곧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하기 위한 몸짓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바깥의 서사를 쌓기

    사진 왼쪽부터 현(강다현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리아(강서희 배우).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의 서사는 결국 개별자의 내재적 차원으로, 그리고 동시에 공동의 기억으로, 다시 미래의 관객 자신에게로 향한다. 이 서사는 그 바깥의 서사를 끌어당기며 교정하기도 한다. “걸레”라 불리던 익숙한 어떤 학창시절의 이름을 호출한다. 가해자의 2차 가해와 주변 대중의 무지한(?) 폭력 같은 것이 피해자를 지우고 불편한 타자로 자리매김한 폭력이 리아를 휘감았고, 부조리한 역사와 그로 인한 한 개인의 상처도 흩어진 역사와 그 자신의 성숙으로 연장되었다. 또한 풍문으로 떠돌던 퀴어 서사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보통의 규준은 이러한 서사를 당사자 스스로에게도 억제하고 발설하기 힘들게 만드는데, 리아의 현에 대한 고백이 두 사람의 연애로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 건 동성애로 인한 낙인이 찍힐 것에 대한 현의 머뭇거림 때문이다. 현의 퀴어로서 발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는 아마 여전히 유효하다. 

    잘못된 낙인찍기에 대한 특정할 수 없는 목소리로부터 ‘거절’하지 못함의 정서는 그가 사랑의 감정을 인지하는 데에 잡음으로 끼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현의 감정은 전반적으로 모호한데, 리아가 현에게 보내는 쪽지를 미소에게 대신 보내달라고 해서 이를 수용했을 때(‘거절’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미소 역시 현을 좋아하므로 이를 자신이 대신 전달할 그 스스로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러한 감정을 직접 전달하거나 드러낼 자신은 없으므로, 이를 전달하지 못할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이 이를 전달하게 된 결과로 연장된다.), 여러 번 적극적으로 그에게 데이트를 제안했을 때 역시 이를 수용했음에도, 미소가 현이 거절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을 때 리아를 비롯해 관객 역시 그의 감정에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 역시 그의 모호한 입장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쌓이는 현 역시 마지막 모두의 말들의 더미에서는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갖고, 거기서 자위를 하는 경험을 통해, 온전히 자기만의 방과 내밀한 영역 자체에서의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기쁨을 체험하는 존재로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급격한 시간의 변경과 현재에서 열린 미래의 영역에서 네 명의 존재들은 각자의 미시사의 영역들을 쌓아 올리며 역사의 경계를, 일반적인 서사의 바깥을 현재로부터 지속시킨다. 그렇게 닫힌 역사, 비밀의 역사, 정전 이외의 역사가 풀려나온다. 

    극의 어떤 활기에 대해

    사진 왼쪽부터 선주(백혜경 배우), 리아(강서희 배우).

    마지막으로, 〈제1강: 거절하는 방법〉에서 이야기는 네 역할의 자연스러운 일상에 주로 맞춰져 있다면, 그 배우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한편 독특한 반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연기와 관객의 공명이 일어난다. 웃거나 자지러지거나 하는 반응들이 발생한다. ‘자연스럽다’라는 건 무엇일까. 그 명명 자체가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 이러한 명명이 부상하는 건 보통의 연극이 이념이 아니라 일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독특한 앙상블을 이룬다. 

    강서희는 마치 록 버전의 성나거나 흥분한 어조를 유지한다면, 배선희는 나사가 풀린 듯하면서도 호들갑스러움의 제스처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며 멈춘다. 강다현이 묵묵한 말투와 머뭇거림의 언어가 되지 못한 말들을 구사한다면, 백혜경은 또렷한 말투를 유지하면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은근슬쩍 뒤로 빼는 제스처로 넘기는 재치를 종종 구사한다. 전체적으로 진행 톤을 유지하며 분위기를 은근슬쩍 매개하는 존재도 백혜경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개성이 있고 그 개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려 그 자신인 듯 드러낸다. 이것을 자연스러움이라 명명해 본다면, 극단 Y의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뭔가 그들이 써야 할 것들을 쓰고 그것들이 자신으로부터 나오도록 연기를 연장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배우들은 그 역할의 압력을 지지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그 역할 안에서 살아 있다. 아마도 이것이 그 자연스러움의 직접적 이유일 것이다. 

     

    김민관 mikwa@naver.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