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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정호,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사회 현상을 비추는 외양들
    REVIEW/Dance 2021. 10. 25. 12:26

    남정호(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안무,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고흥균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유희와 그것이 부정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초록색 무대에서 열두 명의 무용수는 한 명씩 탈락하고, 탈락의 순간마다 그 초상이 스크린에 뜬다. 그리고 그 가의 색과 같이 검은색 천이 하나씩 깔린다. 검은색의 바깥 영역에 있는 죽음의 사도가 그 역할을 하는데, 탈락한 이들도 그에 합류한다. 하나의 무대는 하나의 음악이 사용되는 독립적 장으로 연출되므로, 각기 다른 무대는 공연의 개별적인 고유의 부분으로 분절되는 한편, 살아남음과 탈락이라는 하나의 서사에 종속된다. 이러한 지점은 서사를 강화하지만, 움직임은 그 서사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곧 열두 개의 무대는 각기 다른 음악과 함께 때로는 왈츠와 같은 장르적 움직임을 택하기도 하는데, 각 무대는 탈락될 각 무용수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며 그 개성을 돋우지만, 움직임 차원에서 각 다른 장들과의 관련을 맺지 못하므로, 단편적으로 무대는 마감되고 소진된다. 

    무대는 어느새 탈락 전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는 쇼에, 전체적인 구성은 스펙터클에 가까워진다. 결과적으로 남정호 안무가가 참조한 영화 ‘배틀로얄’에서처럼 닫힌 곳 안에 죽음을 담보로 한 치열한 경쟁 속의 인간 군상이라는 어떤 잔혹 서사의 계보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디어상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이라는 기현상과 더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제목처럼 이것은 유희가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충분히 유희로 오인될 수 있다. 검은 바깥의 영역 역시 초록색 영역과 대비되는 중요도를 가지는 대신에 마치 크로마키처럼 지워진 세상으로 오인될 수 있다. “열두 명의 무용수로부터 한 명이 될 때까지 기교의 노예가 되지 말자. … 현대예술은 고통을 잠시 잊는 마취제가 아니다.”라는 공연 팸플릿에 실린 남정호의 말을 따르면, 움직임은 그 자체로 심미적인 차원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이거나 작위적인 몸짓에 가까운 것으로 전달되며 그 자체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각 장을 하나의 서사 아래 균등하게 분배함으로써 각 장이 그 자체로 고유성을 갖고 사라지는 방식은, 기존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들이 보여준 안무 방식과는 그 결이 다른데, 대부분 대극장을 채우는 대규모 무용수가 동원되는 무대에서 스펙터클한 흐름을 갖는 동시에 일정한 안무의 스타일이 도드라지거나 안무가의 인장이 찍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무의 양식을 확립하려 하는 시도가 엿보이게 되는데, 각각 1, 2대 예술감독이었던 홍승엽, 안성수 안무가의 방식이 그러했다면, 그다음의 안애순 예술감독의 안무는 안무가 출현하는 동기와 모티브가 무대에 함께 놓이는, 따라서 무용수들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움직임이 유래하는 안무적 착상이 무대를 지배하며 안무가 탄생되는 걸 생생하게 목격하는 데 가깝다고 보였다. 반면 남정호의 안무는 철학적 사유를 무대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보인다. 일종의 가면을 쓴 존재들의 몸짓들이 연극적인 상황에서 펼쳐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 춤의 스타일을 보거나 그 춤이 출발하는 동기를 확인하기보다 그 춤의 외양 뒤의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이 안에서 다양한 몸짓들과 존재들이 탄생하지만, 고정된 서사와 예측된 결말은 현실에 대한 비극적 단면을 확인시키며 몸짓과 존재 들을 상쇄한다. 

    김지형 무용수는 탈락과 함께 검은 사자들에 끼인 채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마이크에 대고 비건을 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속죄한다. 유일하게 무대에 등장하는 이 말은 경쟁 사회의 일면과는 일견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생태를 파괴하며 이룩한 인간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서 기능하며 초록과 검정을 자연과 문명의 상징으로 재코드화하며 주제의식으로 확장된다. 곧 경쟁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사유하지 않는 현대인의 실존으로 나아간 반성적 진술은, 마리오네트 같이 움직여야 하는 공연의 궤도를 벗어나 오히려 무용수 자신의 본래적이고 실존적인 찰라의 고백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일부 자연과 인간의 분리된 세계의 균열이 인간의 무의식에 다시 스며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말이 없는 무대에 출현하며 극적인 이화 효과를 가져오는 이러한 말의 구간은 안무가가 의도적으로 다른 무용수들의 말을 모두 빼고 넣은 것인지, 곧 하나를 선택한 것인지 또는 애초에 하나의 순간을 한 명으로 수렴하는 걸 기획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히려 현대 사회의 복잡한 일면 속에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는 현대인을 특정함으로써 서사의 저변을 확장하고, 구체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주제를 조금 더 특정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공고한 서사의 틀 안에 용광로처럼 존재들은 다양한 형태들로 녹아 들어간다. 그야말로 모두가 죽음의 세계로 향해 나아가는 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건 무대 중앙에 검은 끈적거리는 유체를 휘저어 자신만의 영토를 처절하게 만드는 무용수의 모습이다. 이미 죽음은 무대에 산포되어 있고, 존재는 죽음에 덮여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태다. 초록색이 점점 검은색 매트로 지워져 가는 게 이 공연의 막을 구분하며 시간의 경과에 따른 무대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형식적 전제가 되는 가운데, 초록색과 검은색의 대립이 삶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일러주는 공연에서, 검은색으로 뒤덮인 무대와 그 속의 존재는 그와 같은 차이가 이미 죽음의 세계 하나로 기울었음을 지시한다. 또는 환경에 대한 메타포를 적용한다면, 폐기물로 덮인 환경에 놓인 미디어상의 동물에 대한 재현에 인간 역시 포함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앞선 스펙터클과 대비되는 검은색 사물 풍경의 네거티브 이미지는, 오히려 앞선 것들을 소음으로 만들며 입이 닫힌 자의 초상을 끄집어낸다. 곧 그 스스로 만든 검은 울타리의 경계가 분명해지며 무용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그 제의적인 측면을 동양과 서양 어느 문화의 클리셰로 환원시키거나 이를 차용하지도 않는다. 그 자체가 남정호의 관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차원을 성스럽거나 영적인 것으로 분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삶이 벗겨지는 지점을 마지막 장면으로 그리고 그 전에는 삶이 제의를 향해 가는 지점―무용수들이 풀을 들고 하늘을 보며 이를 바치는 듯한 몸짓과 같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안무가의 시점은 현재와 동시대와 밀착해 있다. 이후, 남정호 안무가가 어떻게 세상을 읽고 무용의 언어로 이를 반영하거나 지시하며 성찰의 언어를 이어 나갈지를 지켜보는 일이 남은 것 같다.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시: 2021.10.22.()-10.24.() 7:30PM 3PM·7:30PM 3PM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남정호

    조안무: 안영준

    출연움직임연구: 김건중, 김승해, 김지형, 김효신, 남정호, 송윤주,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 와타나베 에리, 윤혁중, 정다래, 조준홍, 하지혜, 홍지현

    언더스터디: 강은나

     

    작곡음악감독: 유태선

    *왈츠 변주곡: 윤하얀×이주연

    무대디자인: 이태섭

    무대디자인 어시스턴트: 박은혜

    조명디자인: 벤야민 셸리케

    의상디자인: 권자영

    영상디자인: 김장연

    아웃사이드 아이: 김희옥, 장수미

    제작무대감독: 이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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