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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혜진, 〈흐르는.〉: 언어와 몸을 재접재시키기
    REVIEW/Dance 2021. 11. 8. 18:05

    장혜진, 〈흐르는.〉 공연 사진. ⓒSang Hoon Ok [사진 제공=SIDance2021](이하 상동)

    〈흐르는.〉은 소극장 규모의 신촌문화발전소 극장을 기존의 무대와 객석의 낙차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관객석을 둥근 울타리 안에 배치한다. 결과적으로 극장 안의 비선형적인 분포는 극장을 해체하며 재편하는데, 장혜진 안무가는 그 안을 배회하며 퍼포머가 관객과 접면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중앙 천장에 달려 내려온 마이크는 퍼포머에서 역동적으로 반대편 객석으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객석 중간, 벽에 붙인 의자에 앉아 있던 장혜진은 한 손을 얼굴 가로 올린 뒤 움직임을 연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사운드가 군데군데 묻어 나오며 의식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사운드 역시 같이 시작된다. 

    장혜진의 움직임은 중심을 신체 전체로 퍼뜨리고 미세하게 옮기며 소위 흐늘거리고 바들거리는 신체 양상을 만든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인간을 벗어난 비인간의 형상에 가깝다. 또한 주체의 의지에서 발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신체의 증상이 발현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얼굴과 평행하게 올라간 한쪽 손은 온몸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독단적으로 어떤 신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전체의 신체가 하나의 부분 신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상태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극장은 구멍들을 통해 제2의 공간으로 연장되는 동굴 같이 돌기와 요철이 있는 공간으로 상정된다. 자궁 속 태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초음파 영상을 담은 아이패드, 검은 털 뭉치 등 퍼포먼스에 사용되는 각종 오브제를 퍼포머는 극장의 벽돌 틈이나 분장실 틈에서 꺼낸다. 그것을 꺼내는 과정에서 몸이 변형을 겪거나 속도의 차이, 장면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위한 의도가 움직임으로 구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간이 하나의 전체로 분류되고, 시간은 오로지 몸에 의해 측정되며, 대기의 진동과 숨의 관계까지 연결된 어떤 진공의 세계 속에 퍼포머가 위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몸은 어떤 상징을 표현하기보다 어떤 상징도 거부하며, 해체된 형태의 액체적 흐름에 가까운데, 퍼포머의 숨 역시 실존적 양상이나 몸의 체현을 증명하기보다 눈에 띄지 않는 그 대기 자체의 흐름에서 용해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퍼포머에게서 감지할 수 있는 건 움직임이나 의미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하거나 그것에 휩쓸려 가는 흐름이다. 공연 이후 로비에서 제시된 QR 코드를 따라간 안무가의 글에서, 안무가는 안무의 주요한 개념어로 “충격”을 이야기하는데, 중력을 포함해 삼투압 현상,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 역시 충격을 수용하고 겪는 것으로 의미화한다. 또한 뇌척수액과 양수가 뇌와 뱃속 아기에게 충격이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 완충 자격을 함을 예로 들고, 충격을 흡수하는 몸의 기제를 “애도”로 옮기고, 거꾸로 충격의 무늬를 몸에서 찾을 수 있음을 가정한다. 

    일종의 도약 나아가 비약의 사고 실험에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외부의 힘을 처리하는 몸의 방식들을 단순히 인식하는 것에서 그것과 함께 움직이고 그것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으로 나아감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흐르는.〉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거나 시현하는 퍼포먼스일 것이다. 내적인 자장에서부터 외부로 확장하기는 외부와 내부가 이미 연결되어 있음 자체에서 시작한다. 외부의 압력을 내부의 압력이 상쇄하므로, 나아가 내부와 외부는 공진할 것이므로 장혜진은 몸의 일정한 압력과 평형 상태를 가정하는 듯하다. 따라서 움직임을 확정하거나 하나로 수렴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임은, 의도적이기보다는 외부의 압력이 내부의 압력으로 전이되는 시차에 의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움직임은 어떠한 형태나 형식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의 메커니즘 자체를 규명하려는 시도 아닐까. 

    태아의 영상 이미지 이후 태아의 박동 소리가 극장 전체를 잠식하게 된다. 극장 전체를 태아가 있는 뱃속으로 본다면, 세계는 내재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또한 앞서 무대와 객석이 접한 공간 구성에 상응한다. 그리고 종이봉투 몇 개에 퍼포머는 숨을 불어넣는다. 또는 숨을 그 안에서 쉰다. 봉투는 사물보다는 신체의 덩어리로 느껴지는데, 극장의 모든 움직임은 압력을 어떤 대기의 흐름을 깨지 않는 접촉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쪼그라든 봉투는 수많은 구겨짐을 몸의 무늬처럼 입고 있다. 그리고 탯줄에 상응하는 마이크에 한마디 또는 한숨을 넣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다. 

    장혜진, 〈흐르는.〉 공연 사진. 사진 제공=신촌문화발전소]

    바닥에 접지하는 오브제들과 달리 마이크는 허공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이 공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허공을 누빈다. 퍼포머가 이를 자신의 반대편으로 보낼 때 이는 관객석과의 거리를 사전에 철저히 계산해 닿지 않는 범위에 위치한다. 따라서 그것은 입체적 기울기의 극장에서 중앙에 위치한다. 그리고 위협적인 속도의 산출 역시 가능해진다. 마이크를 보내고 다시 낚아챈 퍼포머는 “~은(/는) ~에 기대”어 있음을 나열한다. 모든 것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는 비단 접촉해 있는 신체 부위만이 아니라 정치, 세계, 우주로 확장되며 상호적 관계를 설파한다. 그것은 이로 인해 저것이 규정되거나 의미를 갖게 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단지 어떤 것은 다른 것과 연관을 맺고 있음을 말할 뿐이다. 이로 인해 미세한 것들과 거대한 것들은 공명하고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은 서로 연장될 수 있다. 

    장혜진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결국 몸의 표현 자체에서 나아가 언어적인 확장으로 보인다. 그것은 몸은 투명한 매개체로서 주의, 주장을 하며, 일부 태아(의 숨), 숨, 덩어리 등의 상징물로 그 세계의 형태와 구체적 감각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국 후반에서 지속되는 개념들, 문장들의 발화에 의해 가능해진다. 여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자장자장 우리 아기”로 시작하는 자장가가 배음으로 깔리며 다시 태아의 이미지로 공연은 회귀한다. ‘기대어 있음’은 누군가가 무언가에, 또는 무엇이 누구에게 접해 있어 서로 압력을 주고받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장혜진이 그동안 진행한 워크숍들에서 중요한 개념어로 내세운 “연약함”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장혜진, 〈흐르는.〉 공연 사진. ⓒSang Hoon Ok [사진 제공=SIDance2021]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계의 공존재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최소한의 폭력을 미치고 있는 존재이거나, 다른 것의 부재를 체현하는 존재―따라서 애도가 가능한 존재―이거나, 서로를 접하고 마주하거나 등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것이 각각 정치적이거나 은유적이거나 물리적일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안무 작업을 통해 장혜진 안무가는 하나의 개념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하고 확장하고, 또한 몸의 언어로 대응시키고 다시 몸의 언어를 재구축하는 식으로 안무의 과정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보인다.  

    김민관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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