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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Y, 〈탈피〉: ‘바깥의 언어’
    REVIEW/Theater 2022. 2. 6. 21:34

    인간의 부정성

    극단 Y, 연극 〈탈피〉 @유경오[사진 제공=극단 Y](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하영미, 강서희 배우.

    연극 〈탈피〉는 사회의 부정과 억압의 피해 당사자 간의 유폐된 언어를 맞물리는 접점을 구성한다. 자신에게 성폭력 가해를 저지른 남성 교수가 있는 학교에서 동물의 열악한 환경과 조처를 방관하는 동물원으로 탈주한 소진(강서희 배우)은, 탈피하는 중에 멈춘 뱀(알비노 비단 버마 구렁이, 이하 뱀)에게 온 신경을 쏟는 존재로 출현한다. 멈춘 뱀의 움직임을 언어로 소생시킬 방법은 처음 출현한 동물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인 수의사(정대용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지식이 없는 그에게도 없다. 다만 이 뱀의 닫힌 시간을 자신의 폐쇄된 시간으로 번역할 수는 있다. 이것은 뱀의 언어를 매개할 수 있음―거꾸로 뱀의 언어가 매개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조건을 뱀으로부터 전면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러한 공통의 조건을 구성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도륙 난 삶 전체의 복권과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추구한다. 

    〈탈피〉에는 소리의 근거를 존재와 바로 근거 지을 수 없는 세 가지 소리―음향 효과―가 존재한다. 뱀이 움직일 때 나는 소리, 배관으로 흐르는 물소리, 뱀이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그것이다. 이 소리는 각기 다른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우선 두 소리는 미스터리한 존재와 연관된다. 중앙에 자리한 뱀은 하영미라는 무용가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데, 그는 마지막에 인간의 언어를 딱 두 마디 구사한다. 이러한 말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픽션이 가능한지의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픽션이 가능할 수 없는지의 질문에 대답할 때 가능하다. 거기에는 어떻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지의 질문―‘여자’(백혜경 배우)의 질문―이 선행한다. 인간과 얽힘 이전에 그는 자기의 닫힌 시간을 지속했다. 이는 뱀이 바깥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보다 바깥의 언어가 ‘인간적’이지 않을 때를 증명한다. 그로 인해 어떤 번역의 조각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 공통의 언어가 존립할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함을 의미한다. 

    〈탈피〉의 인물들은 소진을 비롯해 각자의 세계 속에 닫혀 있다. 소진의 상처는 바깥과 교통할 수 없는 차원―‘그는 그 상처 안에 닫혀 있다.―을 구성한다면, 다른 이들의 말은 그를 떠나 어떤 의미의 읽기를 추동하지 않는데, 그것은 대체로 너무 오염되어 있을 뿐이거나 너무 오염되어 있지 않다면 소통의 의지 없는 독백에 그친다―〈탈피〉는 (K-)현대인의 우울함에 대한 징후적인 작품일까. 〈탈피〉의 소진 바깥은 소진의 닫힘, 동시에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음, 무저갱 같은 내면을 튕겨 나오는 어색하고 비심미적인 표층으로 또한 닫힌다. 동물원에 구경 온 사람들은 동물원의 동물처럼 마치 사람들은 자신만의 닫힌 유리관 안에서 나오는 게 불가능한 존재로 자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는 소진이 그것에 절대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것에 따른다. 곧 소진의 얼굴로 〈탈피〉는 닫힌다. 구원은 단지 부정성을 인지하고 탈피하려는 자에게만 있다. ‘탈피’는 소진을 통해, 소진에게 도착한다.

    두 존재는 예외적이며, 차이를 생성한다. 그렇지만 〈탈피〉의 탈피와는 거리가 있다. 동물을 빼돌리는 지선(강다현 배우)은 일을 하면서 비건을 하게 되었고, 동물을 한 마리씩 지속해서 빼돌리며 이를 방생하는 무모한 행위를 시전한다. 그는 동물원을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 속물적인 사장(이산 배우)의 대척점을 이루지만, 이 이야기 역시 소진과 접점을 이루지는 않으면서 공중 분해된다. 소진의 상처와 고통과는 거리가 있다. 동물을 싫어하는 남편을 출산 후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동물로 소통의 관계로 구성하는 여자의 갑작스러운 분노―남편의 혐오 정서를 다시 남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는, 소진의 분노 표현 자체를 해명한다. 분노의 이유보다는 분노의 형태가 이전된다. 이는 여자의 정당성에 대한 동조나 정서의 공감보다는 일종의 소진의 분노를 선취하는 합성의 성분으로 놓인다. 

    공통의 기호

    소진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 발화하거나 진술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난 이후 새로운 터전은 그러한 상처를 덮어둘 수 있는 곳이 된다. 반면 뱀의 무의지의 의지는 그를 지켜보게 한다. 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뱀은 고정된 자세에서 자신의 자리를 바꾸고, 조금씩 꿈틀거리다 마침내 일어선다. 소진은 뱀을 거울처럼 마주한다. 소진과 뱀은 직접 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거울상으로 자리한다. 서로는 서로에 의해 서로에게 번역된다―그러니까 그 둘의 언어를 바깥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언어는 서로에게로 회귀한다. 이러한 맞물림은 픽션이다. 하지만 그런 픽션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건 다른 차원이다. 이는 뱀의 소리가 들을 수 없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누군가는 듣는다는 것―과 같은 문제다. 두 개의 존재가 서로를 마주할 때 사실상 소통은 그 이후의 문제가 된다. 그것은 교통 불가능성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조건을 보여주는 픽션이다. 

    〈탈피〉는 두 다른 존재로부터 공통의 조건을 합성해 삶의 운동성을 모색한다. 미투 이후 삶의 복원을 위한 어떤 대안은 페미니즘적 전술의 일환이면서 일견 동물권의 문제를 트리거로 사용한다. 이는 자신의 타자성을 동물의 그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전사가 주는 역설적으로 획득된 인간적인 무엇으로부터 전개되는 것이지만, 뱀에게는 비인간적인 무엇과 다른, 존재와 유대관계를 맺음으로써 탈피를 재개하는 운동성을 발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인간화된 사회 내에 부속되는 동물의 삶 역시 복원하려는 여분의 운동성 역시 생겨난다. 〈탈피〉는 페미니즘과 동물권이 제기하는 문제가 같은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타자로서 소진은 타자로서 뱀을 마주하며 바깥으로의 운동성을 획득한다. 이때 소진의 탈피는 뱀과는 달리 이중의 부정성을 취하며 새로운 의지로의 갱신에 힘입은 결단이다.―, 그 문제들이 결국 인간의 피폐함의 부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걸 전제하고 있다. 

    〈탈피〉에서 그 두 부정성의 여파는 동물화된 소진에게서 포착된다. 동물원의 생존에 부적절한 환경은 소진의 피부를 만지고 약간의 호흡 곤란과 같은 온몸을 통한 불편한 기색으로 이어진다. 황폐하고 답답한 공간을 소진의 얼굴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는 표현되지 않는, 또는 감각하기 힘든 표현을 소진이 대신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비인간 존재인 뱀을 재현하는 대신, 재현한다고 말하는 대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인간의 것일 수 있으며, 그렇게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탈피〉는 두 존재의 중첩된 층위―뱀과 소진, 뱀과 소진을 통한 관객―를 강조한다. 이것이 앞선 픽션이 가능할 것임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할 것임을 어느 정도 예고한다고 보인다. 

    기다림의 윤리

    동물원의 폐수를 흘려보내는 소리는 뒤늦게 기원을 알 수 없는 물 흐르는 소리였음이 확인된다. 사장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오욕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뒤늦게 도착했다는 사실 때문에 생경함을 준다. 또는 극의 흐름은 거기에 분노할 힘을 잃게 만든다. 무엇보다 뒤늦은 문제의 포착이다. 〈탈피〉는 소진의 부정성의 운동성을 더디게 기다릴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뱀의 멈춘 탈피라는 가정과 일치시킴으로써. 뱀의 탈피를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인간과 뱀의 그것은 물론 같지 않다. 반면 그것은 자기로부터의 탈피라는 공통의 개념을 추출한다. 

    뱀의 탈피는 소진의 탈피와 달리 언어의 분기를 인지하기 힘들다. 뱀은 탈피되었을 뿐이다. 또는 뱀은 탈피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통해 뱀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어떤 희망의 요소를 조금이나마 말하는 것인지. 물론 여기에는 소진이라는 존재로부터의 구원이 있다. 뱀의 허물 벗는 행위를 돕는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은 그보다는 뱀과 소진의 교차와 유착의 섹스 형상으로 보인다. 유대는 인간과 비인간에게서 언어가 아닌 피부와 피부의 접착, 몸과 몸의 교신의 언어로 나타난다. 그 구원의 과정에서 소진은 바깥으로의 동기를 추출한다.

    하영미는 “남자”(이강호)와 나중에 춤을 추며 그를 비틀어 죽이게 만든다. 이는 소진의 남자에 대한 회유와 뱀의 일련의 제어―뱀을 풀어놓고 제지하지 않으며 나아가 추동하는 인상을 준다.―에 따른다. 이러한 장면은 소진의 비이성적인 판단이나 분노의 해소보다는 마치 픽션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그 이후에 현실은 봉합될 수 없는 차원으로 어질러질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이해를 추동하기보다 이해할 수 없는 파국의 임계점을 선사하려는 또 다른 분노의 전이로 보인다. 인간 언어(로)의 불가능성을 말하려는 것일까. 소진의 바깥이 인간 사회에서의 구원과 맞닿지 않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탈피〉는 결국 인간 언어로의 구출에서 실패한다. 그것을 이상으로 삼으려는 것일까. 

    〈탈피〉는 미투 이후의 말할 수 없는 언어를 말하는 대신 표현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분노도 물론 있지만, 그 전에 비인간의 언어로의 전회가 있다. 소진의 전 남자 친구인 진우(변승록 배우)는 지질한 남자로 이러한 캐릭터를 마치 코스프레처럼 활용해 소진을 탈취하려 한다. 이러한 비인간적 캐릭터를 상대하는 건 결과적으로 극한의 염증을 초래한다. 곧 차라리 말 못 하는 동물이 낫다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조금 다른 언어로 변화하며 나아갈 수 있다. 다른 개념과 만나며 어떤 대안의 출구를 찾을 수도 있다. 〈탈피〉에서는 그것이 타자와의 유대와 이후 과거의 갱신을 통한 바깥으로의 탈피로 나타난다. 이는 아마도 연극 안의 페미니즘 서사 작업의 새로운 분기일 것이다. 

    에필로그: 한 번 더 반복한다면

    사진 왼쪽부터 변승록, 강서희, 하영미 배우.

    소진은 아무도 없는 다른 사회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자기와 특별한 관련이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무인도와 같다. 이러한 변경의 부조리함은 그의 성폭력 및 2차 가해의 환경으로 그치지 않고 소진에게도 일부 해당한다. 그는 어떤 자신으로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에서 무기력한 역량을 가시화할 직업을 선택하는가. 동물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거나 다룰 수 없을 때 그 선택은 윤리적인 것인가. 동물의 언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외부의 수의사 정도이다―이를 외부에서 자기 돈으로 부르는 것의 윤리에 대응해 처음부터 이 직장을 선택한 것의 윤리 역시 크게 보면 문제가 된다. 동물(원)이 하나의 은유이자 당위라는 점과 별개로, 그곳이 동물원이라는 조건의 현실 층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또는 그것을 비판하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내 동물원의 특정한 조건에 대한 매개 외에도 동물(원)에 대한 언어, 곧 동물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어야 하지 않을까. 반면 〈탈피〉는 조금 다른 언어들의 층위를 가정하는 듯 보인다. 

    〈탈피〉는 인간의 언어로 매개된 뱀의 언어, 곧 비인간의 언어를 신비화한다. 그것은 또 다른 타자성을 보여준다. 하영미의 움직임은 흥미롭다. 뱀의 세계는 어떤 지식의 차원으로 매개되지 않으며 어떤 맹목적 유대에 의해 오히려 열리게 돤다. 이는 뱀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로 매개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차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성립하는 동시에 그것이 인간 바깥의 무엇임을 또한 의미한다. 〈탈피〉는 피해 당사자의 언어를 현시하고,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렇다면 우묵한 피해자 바깥으로, 그가 말하지 못하는 동시에 그가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탈피〉를 희미하게 붙들고 있는 어떤 현실들에 대한 정교한 세공의 절차를 요청한다. 그럼에도 소진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의 극명한 대립에 관한 초점〈탈피〉의 중요한 미학적 특징이자 성취라 할 것이다. 곧 타인들의 사라지는 현실, 또는 휘발되는 현실, 동시에 비심미적인 현실은 비언어적인 표현의 타자성으로부터 거꾸로 정립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일시: 2022.1.28(금) ~ 2.13(일) 평일 19:30 / 주말 15:00 ※ 월, 설 연휴 기간(1.31~2.2) 공연 없음 
    공연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단체명: 극단 Y 
    작: 신효진
    연출: 강윤지
    조연출: 이수림
    PD: 최샘이
    무대감독: 박진아
    무대: 장호
    조명: 홍유진
    음향: 목소
    의상: 김미나
    분장: 장경숙
    사진/그래픽: 박태양
    움직임: 하영미
    출연: 강다현, 강서희, 백혜경, 변승록, 이강호, 이산, 정대용, 하영미
    관람등급: 만 14세 이상 
    관람 시간: 7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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