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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기운, 〈콜타임〉: 균열의 시점, 공고한 일상과 혁명의 틈
    REVIEW/Theater 2022. 2. 28. 23:50

    호랑이기운, 〈콜타임〉 ⓒ유경오[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은호 역의 장호인 배우, 범순 역의 이주영 배우.

    호랑이기운의 〈콜타임〉은 공연 전 무대 위에 펼쳐지는 상황을 노출한다. 조연출 은호와 배우 범순 두 여성 간 발생하는 이야기는 현장의 급박함 속에 페미니즘, 퀴어, 예술의 동시대성, 남성 중심의 정전 등 다양한 화두를 담아낸다. “공연에 참가하는 출연진과 스태프가 공연 전 극장에 모이기로 정해놓은 시각”을 가리키는 연극 용어인 “콜타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급격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꽤 여러 번의 끈적한 키스 이후에는 급격한 논쟁으로 나아간다. 페미니즘에서, 결혼으로, 예술, 삶에 대해. 

    은호의 시선에 의해 이항 대립적으로 그 개념들은 분화된다는 점에서, 〈콜타임〉의 대화는 구체적인 차원보다는 이념적인 차원이 크다. 은호의 말 부분 부분은 퀴어에 대한 기초적인 그리고 이론적인 학습의 경로를 제공한다. 40살이 지난 여배우와 21살의 조연출의 대화는 사실 대립하지만 논쟁적이지는 않은데, 은호의 시선에서 그 차이가 분별되고, 빠르게 정리되며, 범순은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대신 부인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세대 간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수렴하는 대신에 그 차이의 어떤 간극과 분열이 그어질 수 있는 담론장으로 통합된다. 여기서 극단적인 세대의 간극은 이전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공존하는 현재의 ‘대학로’ 상황을 의미한다―이러한 시대의 중첩이야말로 모순을 안고 있는 ‘동시대성’을 뜻한다. 어떤 시대의 변화를 애초에 받아들이기 힘든 중년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젊은 세대의 인지적 격차는, 범순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이즘'이 아니라 구체적인 물적 토대와 관계된다. 곧 11년 된 극단의 고루함이 익숙한 연기와 삶의 밑천으로 연장되는 범순과 자신이 좋아하던 배우인 범순을 좇아 그가 속한 극단에 ‘한번’ 들어와 본 은호의 삶의 격차는 가장 실제적인 사실을 반영한다.

    사진 왼쪽은 연출 역의 마두영 배우.

    따라서 자기가 하는 연극이 시대착오적이며 그것은 그 주변의 변하지 않는 인식에서 온다는, 그것이 때때로 발생했으리라는 점에서 범순의 각성은 비범하기보다 다분히 ‘평범한’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 은호의 말 이전에 출현한다는 점에서, 연극의 제도 비평적인 시선은 이 안에서, 적어도 여성에 의해서는 현재 전제되고 동의되고 있다고 전제된다. 범순은 따라서 무지하지 않으며, 미투 이후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개념이 연극의 기준으로 설정되고 있다―미투 이후와 동기화되어 있다. 
    반면, 은호에 의해 탄로되는 범순의 앞선 혼잣말은 연출에게 각성과 다른 실천의 계기로 나아가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는 그냥 극 바깥에서 우스갯거리로 그치는 듯 보이지만, 민감하거나 예민하지 않은 감각을 지닌, 지난 시대의 물적 토대를 구성할 뿐인, 그래서 의미화되지 않는 것으로써 의미를 돕는 부차적 존재로 ‘기꺼이’ 전락한다는 데 자신의 역할이 있다. 그는 구닥다리 연극임을 딱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많은 이가 연루된 연극이 지속되어야 함은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권위는 이미 붕괴하여 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연극을 관성적으로 하는 건 무지가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인 것은 아닐까. 

    〈콜타임〉은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차이가 아니라, 페미니즘의 연대를 믿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자와 페미니즘이 모두의 의제나 동의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이의 차이를 드러낸다. 후자는 페미니즘을 부정하지 않고 부인한다. 이러한 부인의 기제는 범순을 향해 그가 퀴어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묻는 은호의 질문과 중첩되는데, 〈콜타임〉은 이를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의 과정에서 동성 간의 애정이 자연스레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정의되며 축출됨으로써 자신 역시 동성애의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음을 이야기하는 범순의 말을 내세움으로써 그것이 부인인지 부인이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대신, 이성애가 자연 질서적 성격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명제 아래 부차적인 차원으로 정의하는 것으로 환원된다. 

    이러한 퀴어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곧 들뢰즈에게서 비롯됐을, 단순히 신화적 차원이 아닌, 개체의 다양한 성의 내포 가능성과 이의 다양한 분화 가능성을 지시하는 철학적 이념은, 이후 범순이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거나 자신이 퀴어임을 주창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앞선 철학을 진리로 재확인하려는 절차 대신에 〈콜타임〉은 범순의 현실에 수그리는 듯한 태도에서 일단락된다. 그가 기억해낸 말은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라는 점에서 인공적이며, 또한 극 안에서 논쟁이나 검증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 

     

    여기서 이러한 논쟁의 출발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콜타임〉은 논쟁의 결말을 내려는 것도 아니며, 범순의 사랑이 모순된 것인지 진정한 것인지를 가리기보다 그런 갈등과 분열의 상태를 정초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타임〉의 어떤 이념은 다음과 같다. 곧 ‘세대의 차이로 분별되는 두 존재는 어떻게 하나의 선분을 그릴 수 있는 것인가’가 그것이다. 바깥의 주어진 환경과 삶의 관성이라는 물적 토대로 인해 개방적이거나 폐쇄적인 두 존재는 대화 이전에, 불꽃 튀는 눈빛 교환과 이내 키스라는 폭발적인 사랑의 힘에 의해 연결된다. 〈콜타임〉은 세대와 이성애를 넘어서는 예외적인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사랑의 예외적 힘으로써 물적 토대로 환원되는 세대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이념으로서의 퀴어성을 이야기한다. 사실 그가 퀴어라는 것이 모호한 것은 그것이 매우 급작스럽게 발견된 것이고, 그가 아마도 한 번도 그런 사실을 의심한 적 없다는 것이다. 범순의 철학적 개념의 이식된 말은 퀴어를 이성애와 대립하는 것으로 두는 대신, 오히려 이성애를 퀴어의 부인으로 두는 걸 전제하는 것 아닐까. 이와 같은 차원에서 〈콜타임〉의 ‘퀴어’는 이념적인데, 반면 그 사랑은 이성애를 다루는 어떤 무대 못지않게 격렬하다. 

    여기서 사랑은 모든 걸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의 선상에 올려놓게 하는 촉매이다. 사랑은 이러한 대화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그러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역량을 지닌 반면, 찰나적인 사랑은 어떤 결실도 유예한 채 현실의 두 다른 존재의 조건을 구분하는 것으로 연장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신분과 일상을 유지하는 일은 사회적 인습과 기준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일이다. 관성적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무의식적 잠금으로 대처하는, 앞선 연출의 행위는, 범순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의 퀴어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을 향해서 갈지 그리고 페미니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연극을 할지는 그의 기존 삶을 전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택지에서 비켜난다. 

    자신의 욕망뿐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주장을 발언하는 일에도 자유롭고 능동적인, 은호라는 매력적인 존재로부터 범순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러한 매혹으로부터 다시 일상에 안착하려 한다는 점에서 〈콜타임〉은, 혁명의 극적 순간의 짜릿함은 현실과 먼 이상의 것이라고 체념하는 것일까. 범순의 시점에서 〈콜타임〉은 전개되지만, 그 바깥에서 은호는 넘실대는 생명력으로 새로운 세계와 그 안의 주체를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콜타임〉은 전환기의 지난 세대와 도래할 세대의 충돌이 아닌, 지난 세대의 분열 상태를 보여 주는 것 아닐까. 그러한 실패의 주체는 안쓰럽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무력함을 안고 있다. 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바뀔 수 있을까. 〈콜타임〉은 두 시대를 ‘하나의 신체’로 흐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가정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한 번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정법의 퍼포먼스일 것이다. 

    〈콜타임〉은 공연이 이뤄지기 전의 무대 밖을 공연으로 재현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공연을 중의적으로 호명한다. 그 공연은 실패한 공연의 재현이거나 재현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연일 것이다. 곧 성공과 실패는 서로 뒤집힌 모습이 될 것이다. 〈콜타임〉은 후자를 요청한다. 범순의 분열이 강화될 것을, 지난 시대의 연극이 철회될 것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당장 가능하지 않은 것임을 드러낸다. 나아가 오히려 그를 대변하는 범순을 주인공의 시점에 둠으로써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열은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콜타임과 공연 사이의 짧은 시간 간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철회될 수 없음의 현실과 해프닝에는 모두 긴급한 과제가 부여된다. 그럼에도 우발적인 사건은 일상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무언가 발생한 것처럼 그렇게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붕 위에 올라가 폭죽을 터뜨리자 이 예스럽고 촌스러운 세트가 일순간 디스코텍의 분위기처럼 변화할 수 있는 것같이. 〈콜타임〉은 어쩌면 변화보다는 변화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변화를 유혹적으로 포착한다. 마지막에 초가집 세트의 문을 열자 쏟아지는 무게가 거의 없는 색색의 플라스틱 공들은 언어가 아닌 실재의 파도 혹은 키스이다.

     

    [공연 개요]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호랑이기운 콜타임

     

    * 공연 일시: 2022년 2월 18일(금) ~ 2월 27일(일) 평일 8시 / 주말 3시 / 월 쉼

    *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관람시간: 80분

    * 관람연령: 14세 이상

    * 작/연출: 이오진

    * 출연: 이주영, 장호인, 마두영

    * 줄거리: 극단 생활 12년 차 여자배우 범순, 이제 연극을 시작한 페미니스트 조연출 은호. 둘은 한국근대희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재 극작가 이진오의 〈단이는 왜 20세기에 몸을 던졌나〉를 공연 중이다. 범순이 대사를 틀려 공연을 말아먹은 다음 날, 둘은 콜타임보다 1시간 일찍 극장에 도착하고, 둘 사이에 우당탕 천둥과 벼락이 친다. 그리고 이제 더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작/연출: 이오진

    출연: 이주영, 장호인, 마두영

    조연출: 심지후

    드라마터그: 장지영

    무대디자인: 장호(크루_김예찬, 봉혁근, 최건희)

    조명디자인: 신동선(크루_김소현, 김남수, 유보민, 윤혜린, 이상혁, 정우원, 정하영, 최인수)

    의상디자인: EK

    사운드/영상디자인: 목소(크루_박진아, 이효진)

    무대감독: 마두영

    액팅코칭: 장재키

    움직임: 손지민

    접근성 매니징: 이래은

    수어통역: 공인수어통번역 잘함(수어번역/연출: 김홍남, 범순역: 안강숙, 은호역: 성지윤, 연출역: 문지혁)

    한글자막: 김태령

    음성소개 감수: 서수연

    수어영상편집: 임창연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홍보사진: 이지수

    공연사진: 유경오

    기획: 나희경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호랑이기운

    협력: 페미씨어터&플레이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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