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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피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문명 이후에 대한 어떤 태도
    REVIEW/Theater 2022. 4. 5. 22:55

    그린피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2012), 윤영선연극제. [사진 제공=그린피그](이하 상동)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윤영선의 7쪽짜리 초고로 된 동명의 원작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2012년 윤영선 연극제에서 초연된 작업이다. 당시 공동 창작 과정과 전성현 작가의 참여로 단편들이 더해지며, 원작이 새롭게 재구성, 연장되었고, 이번 공연은 현재의 시점에서 일부 갱신되었다. 2012년 작이지만, 현재 시점에 조금 더 부합하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이 단편들은 물리적으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총 4개의 에피소드 각각은 “신발”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하며, 마지막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편에서 원숭이탈을 쓴 배우가 탈을 벗고 대사를 하면서 원전의 시점으로 돌아감―초고 일부와 초고가 쓰인 시점을 명시한다!―으로써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은 언어적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봉제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천을 모아 놓은 무대 바닥은 양말의 의미로 연장된다. 한 편의 자본주의적인 우화인 ‘원숭이 꽃신’ 편은 정휘창 작가의 동명의 동화를 토대로 한다. 원숭이에게 꽃신을 ‘대가 없이’ 제공한 오소리는 원숭이가 그에 익숙해진 이후에, 꽃신 값을 비싸게 청구하고, 원숭이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문명에 길든 원숭이가 공장과 기계가 없이 자력으로 생산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됨은, 상품과 재화로써 번역되는 자연이라는 재구조화된 세계의 법칙을 지시한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원숭이가 원래부터 밟고 지나가는 자연은 문명의 쓰레기이기도 한데, 익숙해진 신발이 없자 자연이 원숭이에게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한 광경은, 이후 ‘태아잡담’ 편과 ‘계약’ 편에서 인류가 산소마스크를 끼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환경으로서 발을 디딜 수 없는 땅에 놓인,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태아가 마주하는 환경에 대한 비판적 인지의 토대로 옮겨 간다. 원숭이에게 문명의 유혹과 함께 풍성한 자연이 예측 불가능한 평면으로 전환됐다면, 인간에게 손댈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땅의 오염은 예측 불가능한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또는 상상은 존재에게 정확한 대가, 체불된 임금을 요구한다. ‘원숭이 꽃신’에서처럼 ‘계약’ 편에서 태아는 안전한 조건의 계약을 까다롭고 줄기차게 요구하며 그 조건의 불성립에 대해 자신의 태어남을 거부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태어남의 파업 또는 태어남이라는 계약 자체의 철회는 세계에 대한 부정과 불신의 태도가 깊게 깔려 있다. ‘계약’ 이전에 ‘태아잡담’에서 주로 언급되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이야기처럼 미래의 인류는 태어나기 전부터 불운의 숙명을 갖고 있다. 심드렁한 태도로 연이어 “인간”을 발음하는 한 태아의 말로 끝나는 이들 대화는, 프로이디안 슬립처럼 이상한 연결로 이어진다. 

    인간계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태아의 세계를 잠식한다. 원숭이가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데 실패하며 겪는 좌절, 그리고 태아를 설득하는 엄마의 모습에는 삶에 대한 긍정과 애착이 있다면, 태아는 이 조건 자체를 절대적인 망한 삶으로 수용한다. ‘피시함’은 삶의 지속을 부정한다. 어떤 ‘신발가게’를 가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신발도 신을 수 없는 시대의 터전을 가리킨다. 원자력 발전 관련 찬반 논쟁은 개발의 논리로 흘러간다. 이는 2012년 이전 공연 버전에서 이미 원자력 발전의 바람을 불러온 원숭이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것으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처럼 하지만, 이는 재버전임을 메타적으로 지시하는 것에서 그치고, 결국 인간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대규모로 짓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땅은 밟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땅으로부터 연장된 나무의 삶과 신발을 신고 걷는 인간의 삶을 자연과 문명의 이분법적 구도로 구성하면서,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신발가게를 가지 않으려는, 신발 자체를 신고 육지에 연착륙하지 않으려는 태아의 삶으로 그 구도를 역으로 뒤집는다―애초에 피폐한 문명을 택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에 있는 존재는 불신과 분노의 태도가 있으며, 이는 이전 삶 자체에 대한 혐오와 비판으로 침투한다. 공연은 윤영선의 희곡 쓰인 처음의 시점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출구가 아닌 입구로 도피하지만, 물론 이를 통해 시대에 담긴 불운함의 정동과 불쾌함의 감각을 해결할 수는 없다.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발에 닿고 채는 무더기 ‘양말’ 같은 영역 안에, 동물의 탈을 쓴 존재들을 몰아넣고, 그 바깥에서 두 해설자가 이들의 행동을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 존재들은 이 말에 싱크를 맞춰야 한다. 따라서 행위를 언어에 대한 수행으로 구성하는 재현의 기술로서 성립하지만, 이는 인간과 동물로서의 인간을 나누며 이 장이 가상의 기술이며 현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우리에게 허용한다는 차원에서, 우리가 전자의 입장이라는 하나의 위치를 더 가져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 재현의 몸짓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리얼리즘이 아닌 편집술로서 시간을 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연은 이전의 공연, 곧 이전의 시간을, 그리고 그린피그라는 연극 단체에 대한 지시, 원전 희곡에 대한 지시 등을 통해 공연을 통시적 차원에서 그리고 예술 제도 차원에서 공연을 역사와 현실의 계열체로 만든다. 여기서 재연의 맥락은 곧 갱신에 대한 지시적 차원이며, 10년 전의 달라지지 않은 유효한 연극의 지점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에서 태아의 태도는 현재의 삶과 타협하지 않는 전위적인 지향을 설정한다. 동시에 현재에 대한 냉소와 혐오의 태도 역시 확립한다. 이것은 따라서 동시대―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대한 비판―에 대한 것보다는 동시대인에 대한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포스터. [이미지 제공=그린피그]

    공연명: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공연 일시: 2022326()~43() ~금 오후 730, ~일 오후 3(*월 공연 없음)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진: 김원태, 박수빈, 박유진, 이동영, 이주형, 이지원, 이승훈, 정대용, 정양아, 정연종, 황미영

     

    스태프

    원작: 윤영선

    글쓰기: 전성현

    연출: 윤한솔

    조연출: 주은길

    음향: 전민배

    조명: 최보윤

    음악: 옴브레

    의상: 온달

    오퍼레이터: 박현지

    기획·무대감독: 스탭서울컴퍼니

    그래픽디자인: 워크룸

    제작: 그린피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관람 연령: 13세 이상 관람

    소요 시간: 80(인터미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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