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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활극과 정치적 주체의 변경 사이에서
    REVIEW/Theater 2022. 3. 24. 00:43

    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사진 제공=극단 돌파구](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희주 역(윤미경 배우), 준호 역(오해영 배우), 민지 역(조어진 배우), 영길 역(안병식 배우).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제목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소유한 각각의 주요한 오브제다.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사물에 대한 지시처럼, 작품은 현실에 기반을 두며, 역할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동시대와 공명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역할이 갖는 보편적 특정성은 시대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주체들로서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역할을 입는 것임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는 이 연극의 유일한 메타-연극의 연출 지점이라는 데[각주:1]서 특기할 만한데, 통상 전제된 희곡에서 연극으로의 번역을 지시함으로써 이를 한 번 더 꼰 또는 내파하는 시점을 제시한다. 곧 연극을 희곡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데, 오로지 수행적으로만 이것들이 앞으로 놓일 수 있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자기소개, 메타-역할에서 역할로 나아가기 직전을 수행하기의 전략은, 역할이 선택된 것이며 인공적인 것임을 언급하면서, 어떤 현실 층위를 재현하는 드라마가 허구이면서 현실에 대한 반영의 산물임을 그 사이에서 어떤 다른 선택과 결정이 수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시작은 이 공연이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전환의 양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양상은 단지 그 시작 지점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의 개성이 모두 분명하면서도 각각의 정치적 의제를 띤다는 점에서, 이러한 의제가 어떤 하나의 캐릭터로 수렴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각 캐릭터의 생명력으로 분산된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 역시도 겹쳐 볼 수 있다. 곧 드라마적 상승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준호 역(오해영 배우).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하 〈레오타드〉)은 ‘레오타드’를 착용하는 준호를 주인공으로 하며, 희주는 그와 관계 맺는 주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는 극 대부분이 희주에 의해 처음으로 탄로 난, 자신의 집에서 레오타드를 입고 찍은 사진이 그 자신의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준호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희주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그의 심리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희주는 그러한 사실에 놀라움은 있지만, 크게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 개의치 않음은 이 소문의 선정성과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명예의 실추와는 커다란 온도 차가 있다. 이 온도 안에 기식하면서 〈레오타드〉는 서사를 준호의 입장으로 잔뜩 구부린다.

     

    그럼에도 그가 처음 희주가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레오타드 올린 사진을 올렸음을 알았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그것이 탄로 날 수 있음에 대해 가진 우려는, 진정 심각하기보다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비치는데, 어쩌면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중 강력하게 생각나는 건 레오타드뿐이라는 점에서, 〈레오타드〉의 정치적 배분의 과제는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는 준호의 속마음, 곧 사람들의 인식 역시 남성 레오타드 착장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스스로 당당하게 입고 싶다는 것, 나아가 그러지 못할 바에야 레오타드 관련해 커밍아웃이 되고 차라리 편하게 입자는 것, 그러나 그의 사회적 정체성, 곧 남성적인 일진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 사이의 괴리는, 그의 붉으락푸르락 한 심리에서만 주로 진동한다. 이는 일종의 소요극이나 활극처럼 위기의 장면을 향해, 곧 비밀이 탄로 날 지점을 위해 달려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영길 역(안병식 배우), 태우 역(김민하 배우), 준호 역(오해영 배우), 희주 역(윤미경 배우), 민지 역(조어진 배우), 희관 역(이규현 배우).

    성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에 대한 질문은 사회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각주:2] 이는 졸업을 하고 나서의 청소년기의 추억 정도로 봉합된다. 준호의 레오타드 착장은 체육 수행평가에서 보여주는 희주와 짝지은 댄스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 준호의 급작스러운 선택은 그가 애초에 ‘레오타드 입는 모습이 차라리 공개되고 말지.’라는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 그의 레오타드를 입는 것의 안락함과 쾌락 따위의 감정은 레오타드 입는 걸 감추는 것의 억압에 맞서며, 그의 선택은 그런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알려지지 않은 그만의 감성의 분출로 바라볼 수 있다. 그때 그는 모든 억압으로부터도 사회에 대한 의식도 갖지 않은 듯 보인다. 곧 사회적 대화가 아닌 개인의 극복으로 문제는 급작스럽게 봉합된다. 이 봉합은 그 문제를 떠안은 개인의 해방으로만 가능해진다.

     

    희주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준호와 왜 댄스 수행 평가를 하고자 했을까. 그가 준호에 대한 호감이 있었다면, 레오타드를 입는 준호의 실상을 알았을 때 그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관계의 불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 등은 왕따여서 받은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우묵한 그의 자세에서 그의 말을 잘 듣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심리는 준호의 일방향적인 욕망과 금기로부터의 제어라는 단순한 동역학과는 다르다는 걸 생각해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의 심리는 조금 더 입체적이고 따라서 희주는 대단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사진 왼쪽부터) 준호 역(오해영 배우), 희주 역(윤미경 배우).

    〈레오타드〉는 밝은 조명과 열어젖힌 무대에서 인물들이 생동감 있게 무대를 누빈다는 점에서, 또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의 시간에 가깝다. 현실은 명확하고, 캐릭터는 준호를 비롯해 특정 의제와 특정 표현 양상으로 대부분 수렴한다. 반면 희주는 심리적 진단을 조금 더 요청한다―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레오타드〉는 명랑하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청소년 주체를 통해 시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해부하는 극이기도 하다. 소재로부터 출발해 인물로 연장되는 설정은 레오타드와 준호의 긴밀한 연결 외에는 다른 인물들에게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지만, 각 인물이 해당 의제들로 분쇄될 수 있음 역시 분명하다. 따라서 그 의제가 조금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착종되는 부분이 순간에 그친다는 건 〈레오타드〉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 중심 서사의 즐거움이 대부분 유지된다는 점에서.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작품명: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배리어프리

    공연 일시: 2022.3.10(목) ~ 3.20(일) 평일 19:30 / 주말 19:00 (※ 월 공연 없음)

    공연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단체명: 극단 돌파구

    연출자: 전인철

    출연: 안병식, 오해영, 윤미경, 김민하, 이규현, 조어진

    작가: 박찬규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 시간: 80분

    1. 1. 물론 이 부분도 대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본문으로]
    2. 2. 그가 단순 레오타드 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는 의도적으로 명확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곧 후자에 대한 인식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덮여 있음을 따라서 위험한 것임을 드러내는 데 그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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