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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처 오브 포겟팅〉: 표현으로서의 재현
    REVIEW/Theater 2022. 5. 22. 11:36

    〈네이처 오브 포겟팅〉 공연 장면[사진 제공=연극열전](이하 상동).

    음악의 전개와 움직임의 긴밀한 협응으로 진행되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미지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것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충만한 무대로의 입력은 최소한의 대사를 ‘나지막한’ 또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치환한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로 명명되는 작업으로,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음악의 거센 파고에 몸을 싣는다―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퍼커션, 루프 스테이션 등의 2인조 밴드―김치영, 조한샘―가 악기를 다룬다. 참고로 영국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기욤 피지 연출과 알렉스 저드 작곡가 등이 만든 오리지널 공연이 2019년 외국 배우들의 출연으로 같은 장소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오른 바 있으며, 이번에는 한국 프로덕션의 협업으로 최초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55세 생일 파티에 맞춰 옷을 골라주러 온 딸 소피를 이사벨라로 부르는 톰(김지철 배우)의 얼굴은 생기가 없고 움직임이 거의 없으며 감정의 진폭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무력한 상태로,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거나 언어적인 소통이 어려운 인지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반응은 현재는 더 이상 그에게 어떤 감흥과 인식이 닿지 않는 시간의 차원을 의미한다. 이후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부상하는 가운데, 그의 수면 아래의 인식은 이사벨라의 존재를 향한다. 기억들이 흐르고 다시 돌아온 짧은 현재의 순간은 곧 걷히는데, 여기에는 이사벨라와의 사랑이 주요하게 자리한다. 학창시절부터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장면, 연애와 결혼식에는 항상 밝은 모습의 이사벨라가 있다. 소피와 이사벨라 모두 김주연 배우가 연기한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주인공의 상실되어 가는 기억이 전제되지만, 뚜렷하게 남는 사랑과 일련의 추억에 대한 환상적 재현, 이를 뒷받침하는 주인공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기억의 재생 작용만으로는 볼 수 없는데, 그러한 기억 역시 소멸되어 가는 차원에서, 의지는 주인공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남은 생의 지속에 대한 의지이다. 가령 결혼식에서 톰이 건배사를 할 때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 톰의 행동은 유리되는 기억의 장면들을 재생시키려는 몸짓이다. 어머니 엠마와 이사벨라, 마이클이 차례차례 술잔을 든 손을 축 늘어뜨릴 때 탐은 이를 추어올리려고 동분서주 갖은 애를 쓴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에서 움직임과 협응하는 음악은 이럴 때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멈춤을 가져가는데, 사운드는 일반적인 배경음악의 존재가 아니라 무대를 채우는 입체적 매질과 효과가 되며, 움직임에 도달하는 규칙이 되는 원리로 작용한다.

    처음 재킷과 빨간 넥타이를 챙겨 입으라는 딸의 말을 듣고 탐이 교복을 입는 순간, 드럼에 달린 심벌즈가 쫘르륵 울린다. 여기서 사운드는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함께 기억의 뒷공간, 곧 실제 무대 위의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지는 기제로 작용하며, 물리적으로 또한 감각적으로 더 깊숙하게 잠겨 들어가는 효과를 수행한다. 현재와 달리 과거는 이렇게 무대 위의 정방형 단상 안에서 펼쳐진다는 차이를 갖는다. 옷은 그 경계에서 과거로 들어가는 매개체가 된다. 이 옷들을 과거의 등장인물들이 다 천장으로 집어 던지며 톰은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딸 소피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톰의 모습은 기억 여행에서 현실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는 힌트를 준다. 이는 기억의 조각을 완성할 수 없음을 체념했다기보다 그 기억을 재생시키려는 필사의 의지 이후에 종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수용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기억을 온전한 하나의 서사로 구성하려는 노력의 끄트머리에는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의 경계선상에 있는 그의 위치를 전제하며, 망각된다는 점에서 없어지지만, 과거 속에서 현실과의 희미한 연결 고리를 인식하는 것으로써 그것들 모두 여전히 현존했던 것임을 증명하며 현실의 의미 역시 되새겨 준다는 점에서 과거로의 실패한 여행과 현실과의 유효한 접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도 볼 것이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음악에 따른 몸의 수행을 가시화하는 전략의 차원에서, 과거의 기억을 단순히 재현한다기보다는 무대를 ‘소리 없이’ 채우는 신체극의 요소를 띤다. 이는 기억 투쟁의 의지 작용과 결부되며 망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또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사투라는 의미로 읽힌다는 점에서 그 표현의 한계, 곧 동시에 편재할 수 없는 몸과 장소의 물리적 한계를 최대치의 몸의 활용으로 구성한다는 지점이 (실제 말이 없으며 모든 몸짓을 언어로 직접 변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식의 닿지 않는 몸의 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를 다시 어떤 감동으로 전환하는 차원이 있다고 보인다. 아마도 이는 관객 대다수에게 주효한 타격 지점이었을 것이다. 

    p.s.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홍보 이미지는 퍼즐에 적힌 흩어져 있는 단어들로 된 포스터나 밝은 배경의 인물들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전자가 흐릿한 기억의 이미지를 상정한다면, 후자는 배우 중심으로 된 일반적인 연극이나 뮤지컬의 홍보 방식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작업의 작동방식 자체가 특이점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연극이나 뮤지컬의 현실 재현의 코드를 띤 작업들과는 변별되는 작업으로, 사실상 배우보다는 작품의 특성 자체로 초점을 맞춰 이미지 구성을 하는 방식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관습적으로 대중에 소구하는 이미지 전략이 탈코드적인 작업에 대한 매개가 되(었)는지 또는 그러한 작업에 대한 사전 이해를 방해하며 적절하지 않은 홍보 전략이 되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The Nature of Forgetting)〉
    공연 일시: 2022년 4월 14일(목) ~ 2022년 4월 30일(토) 월, 수, 목, 금 8시 / 토, 일 6시 (화 쉼)
    공연 장소: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러닝타임: 7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주최: 우란문화재단
    제작: 우란문화재단, 연극열전
    연출: 기욤 피지(Guillaume Pigé)
    협력연출: 심새인
    작곡: 알렉스 저드(Alex Judd)
    출연: 김지철, 김주연, 마현진, 강은나
    연주: 김치영, 조한샘
    조명 디자이너: 캐서린 그레이엄(Katherine Graham)
    조명 슈퍼바이저: 임재덕 
    무대/소품 디자이너: 최영은
    음향 디자이너: 권지휘/지승준
    의상 디자이너: 도연 
    무대감독: 구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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