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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타자에 대한 어떤 교육
    REVIEW/Theater 2022. 5. 22. 11:45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 공연 사진[ⓒ이미지 작업장 박태양[사진 제공=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김보은, 김민주 배우.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는 세월호 참사를 원점에서 복기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동1번지가 꾸준히 기획해 온 세월호 시리즈의 하나로서, 메타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연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가의 의미를 검토하고, 새롭게 국가의 모습을 재요청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몫에 관객의 자리를 대입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를 상정한 교육의 형식은 관객의 계몽을 구성하기보다는 계몽된 관객의 시점에서 교육이라는 형식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복기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곧 〈세월호 학교〉는 교육의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은 무엇을 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복기는 역설적으로 일회적인 현존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 자체에 대한 보존, 곧 무언가를 익히고 기억하는 차원에서의 교육이라는 의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세월호 학교〉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갈 유가족, 세월호 참사 이후에 태어난 어린아이들, 더 정확히는 사건을 직접 보고나 듣지 못했으며 나아가 미디어에서도 그 비중이 옅어져 가고 있는 시대만을 살아갈 어린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넘어 그들에 대한 교육의 역할을 세월호 참사의 시대를 직접 살아간 이들에게 위임하는 연극이며, 또한 연극 본연의 일회적 현존을 관객의 유예된 수행의 몫으로 온전히 돌림으로써 기능적 역할로 머무르고자 하는 연극이며, 나아가 기억에 대한 영구한 매개자로서 관객에게 짐을 지우려는 연극이다. 

    어린아이에게 교육한다는 차원에서 밝고 친절한 외양을 띤 두 배우가 말을 서로 잇고 때때로 주고받는 〈세월호 학교〉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시대로부터 가라앉지 않기 위한 외침이며 구원에 대한 요청이다. 이러한 공연의 무의식은 “연대”를 전제로 한다. 동시에 통약 불가능한 타자의 존재를 바깥으로 상정한다. 나와 이웃을 가장 최선에 두는, 그 밖에 사회나 국가로 상정될 무엇도 우선으로 두지 않아야 하는 어떤 태도, 국가라는 것이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고 마비된 어떤 극단적 시점에 대한 전제는, ‘혜화동1번지’라는 공간 자체가 시작 지점에 안전 교육과 비상구의 위치, 비상사태 발생 시 대피 요령 나아가 태도를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과 맞물린다.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하며, 가만히 있었던 것 역시 아니다. 무언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고 의심해야 하며, 나와 너의 생명을 위해 국가라는 경계를 고정, 고착시키지 않아야 한다. 매우 ‘투명’하고 ‘사실’로 쌓아 올린 것 같은 〈세월호 학교〉에 이러한 물음을 역으로 돌린다면, 우리라는 연대에 대한 강건함, 그 순수함에 대한 의문이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 발화를 요구했다면, 〈세월호 학교〉는 그로부터 피로를 느끼거나 이를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 방어하거나 교육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곧 이를 적대해도 되지만 그에게 적당한 교육을 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애매하지만 〈세월호 학교〉는 이를 정도의 차이에 따른 선택의 여지로 남겨둔다. 

    〈세월호 학교〉는 과거를 복기하며 과거의 시점 자체를 고수한다. 거의 바뀐 것이 없으며 거의 밝혀진 것 역시 없다. 이러한 사실을 또한 복기하며 국가에 대한 우리의 요청과 소통 불가능할 것 같은 이들에 대한 적대의 태도를 애도의 이름을 앞세우기 이전에 반복해야 함을 요청한다. 우리의 지난한 삶은 ‘어떤’ 국가에 대한 적대와 함께 재생산될 것이고, 미래는 그것을 보존하고 또한 반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학교〉는 현재를 암울하게 복기하는 작업이며 그러한 기억을 영구 보존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 공연이, 나아가 혜화동1번지의 세월호 관련 기획이, 관객의 당위가 존재함을 알린다. 이에 대한 동의가 ‘어떤’ 연대를 구성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제동을 걸 수는 없다. 이것은 교육으로 명명된 연극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약에 따르기 때문에 또한 정해진 러닝타임에 따른 효율적인 교육의 형태를 띨 수도 있는 일반적인 연극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시간을 유예하며 관객에게 역할을 이양할 때 연대의 추상적인 몫은 이 공연 바깥을 상정한다. 이 공연이 아닌 바깥으로 나아갔을 때 겪을 어떤 사회에 대한 차원에서 교육의 내용이 기능할 수 있을지 또는 그 내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가 관객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연대는 머무르지 않고 갱신될 수밖에 없다. 어떤 세월호에 탑승한 ‘우리’에는 앞선 타자 역시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이 교육의 내용에 항의나 제동을 걸 수 없던 관객이 이를 온전히 용인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이, 교육의 외양은 일방향적이고 순탄하며 매끈한 반면, 교육이 가닿는 대상은 균일하거나 수용적이거나 불확실한 것일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학교〉는 기꺼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자로서 연대의 몫을 가정하면서 그 바깥의 질서를 무질서한 것으로 또는 위험한 것으로 놓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사회에 관객을 던져놓는 것으로써 희망도 확신도 주지 않은 채 교육을 마친다. 

    〈세월호 학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상상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부차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 엘리펀트룸은 학교를 세우고자 했다. 〈세월호 학교〉가 말하듯 사회를 우리는 믿지 말아야 할까. 국가를 재질문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의 대타자를 잃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옮겨 갔을까. 우리는 망각하는 삶으로 돌아간 많은 이들과 어떻게 불화할 수 있을까. 또는 그러한 나 자신의 망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월호 학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반면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적대하면서 그것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것은 충분히 도덕적이다. 그것은 물론 올바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윤리에 대해 재질문하고 있는가. 교육은 항상 올바른가. 교육이 갖는 일방향성, 한정된 전파력, 왜곡될 수 있는 편집력 등에 대한 차원을 교정할 수 있는 장치로서 재교육이 도입되어야 하지는 않은가. 

    〈세월호 학교〉는 우리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그 지점에서 정확히 멈춘다. 그것은 혜화동1번지의 물러설 수 없는 타협의 지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를 대표, 재현할 것이다. 〈세월호 학교〉는 미세한 인간 감정의 진폭에 귀를 기울인다. 김보은 배우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간 경험에 동창들과 사고 현장을 찾았던 기억을 꺼냄으로써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애도 불가능성으로 연장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개인이 속한 사회를 국가로 연장하는 것이라면, 앞선 연대의 바깥에 있는 소통이 되지 않는 이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으로 자신의 말에 담긴 의미가 그제야 전달될 수 있다는 것에서 내면이 표면으로 바로 매개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연대보다 더 큰 생명 간의 인지 구조의 공통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대-적대를 넘어서 그러한 인간의 최소한의 소통 가능성은 국가로도 연장될 수 있는 사회를 가정하고 동시에 연대와 적대의 분리선을 여전히 구성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연대는 세월호 유가족과 이를 종래에는 애도하고자 하는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기억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후자에게 전자를 곧 가까운 사람들로 치환할 수 있는 정서적 유대가 전제되어 있는 것 아닐까. 
    〈세월호 학교〉는 그 사이를 명백하게 가르며 연대와 적대를 나눈다. 하지만 그 바깥의 모든 이들과의 연대(?)가 더욱 필요한 것 아닐까. 이것이 더더욱 모든 이의 문제가 아니라면, 사회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연대와 적대를 떠나 그 모두가 어떤 세월호의 희생자와 유대를 또는 그 안에 있을 수 있음을 상정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조건은 계급적일까 또는 지역적일까. 만약 그랬다면 구조하지 않은 정부의 행위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비합리적 추론의 회로마저 돌리고 있는 현재 시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누구는 그 죽음으로부터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러니까 다시 한번 연대의 조건은 그것의 당연함이 아니라 그것의 예외성을 점검하는 것에서 역설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2022∞세월호’,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공연 일시: 2022.05.05. ~ 05.15. 평일 7:30pm, 어린이날 및 토•일 3pm, 월 쉼
    공연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출연진
    김민주, 김보은

    🎗제작진
    작/연출: 김기일
    기획: 김민솔
    조연출: 정인혁
    조명디자인: 이세영
    그래픽디자인: 정호연
    무대감독: 박세련
    자문: 김은빈, 오유주

    🎗[2022∞세월호]
    기획: 김진이, 한민주,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그래픽디자인: 김유나
    일러스트: 박지윤
    티켓매니저: 고은지
    티켓: 공연관리솔루션 공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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