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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지영,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극장을 구성하는 바깥에 대한 알레고리들
    REVIEW/Theater 2022. 5. 22. 12:00

    원지영,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포스터[이미지 제공=신촌극장]

     

    원지영의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알레고리로 극장을 구축하려 한다. 김보경 배우는 처음에 플래시를 들고 바닥을 비추며 길을 낸다. 플래시 색에 따른 갈색을 띤 그의 맨발이 밟히는 바닥은 마치 모래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사실 뒤에 등장하는 “바다”라는 기호가 결부되며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를 바다로 직접 지칭하는 건 아닌데, 실재하는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판타지로 뒤덮는 대신 오히려 가상의 이미지를 경유해 현재의 이미지로 도달하는 프로세스가 그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미지화된다. 이러한 가상의 이미지는 ‘어떤’ 서사의 조각들이고 온전한 서사의 한 ‘조각’으로만 머문다. 온전한 서사는 구성될 수 없고, 다만 떠도는 기억의 잔상으로 맺힌다는 인상을 준다. 

    김보경은 처음 극장에 여러 상자가 끊임없이 도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뒤에 나오는 상자에는 김보경이 머무르며 이야기하는 발화 장소가 된다. 사실상 상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보다는 무엇을 담을 수 있을지를 상상하게 하는 데 상자라는 존재가 동원되는 형국이다. 상자는 어떤 하나의 극장이다. 그것은 조명과 같은 하나의 오브제가 채워져 있는 것으로 족하며, 분명한 언어와 물질이 구체적인 상상력과 사실의 나열을 제시하지 않는 빈 공간이다. 문제는 이 택배를 누가 보냈냐는 것인데,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그 발신 주체를 명확히 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바깥의 장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미지의 바깥을 향한 여정이 요청되어야 할 것임을 차라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어떤 서사가 갖는 무의식적 힘이다. 어떤 이야기들이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익숙하고도 낯선 무엇으로 듣고자 한다. 곧 이야기는 언캐니한 것 자체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의 원형적인 집의 공간의 연장이면서 그 공간 안에서 기식할 수 없는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극장은 긴급대피소이기도 하다. 가상의 관객이 보내준 것들은 일종의 “구호물품”들이다. 지난 연극에 쓰인 소품들은 이곳을 감출 위장술의 일부가 된다―이런 재앙과 위기의 인류에 대한 서사에는 어떤 현실과 현재가 뒤섞여 있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컨텍스트보다는 ‘그럼에도 극장’이라는 ‘그 이후의 극장’을 쓰고자 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소가 되는 “남쪽의 바다 마을”에 있는 “빨간 지붕의 극장”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을 만든다. 그리고 상자들이 또한 도착한다. 아주 많은 방을 상자들처럼 가지고 있었다는 김보경은 상자 안에서 수많은 상자가 자신을 향해 들어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온전한 자리로 돌아갔으면 그리하여 투명해졌으면 하는 식의 어떤 바람을 이야기한다―여기서 상정한 관객은 어린아이들이다. 이를 물리적인 나이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순수한 기억, 강렬한 장기기억의 절대적 매체로서 어린아이라는 존재를 상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물론 완전한 자신의 망각에 대한 전제이다. 반면 투명한 극장으로서 김보경이 치환되고 있는 것 아닐까. 따라서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이 이야기하는 건 바로 관객의 자리가 아닐까.
    이름 없는 타지에서 온 수많은 사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사람들은 하나의 의미 계열체로 수렴되지 않을 무수한 의미의 난반사로 또는 의미의 파편들로 사라질 것들이다. 반면 이를 은유로써 이야기하는 것은 메타 공연의 외양을 유지하는 것이 된다. 마치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신비하거나 기이한 하나의 도시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결국, 예측할 수 없는 관객의 특성과 같이 관객은 온전하게 공연에서 이야기될 수 없으며, 관객이 온전하게 이야기될 수 없는 존재임을 표상하는 것만이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모두 다른 장소와 시간을 사는 존재임을 그러한 유일한 차이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지시하는 것만이 관객을 그러한 하나의 일반론적인 주어로 표상하는 것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관객을 각각의 상자로 치환하되 그 상자들을 알 수 없는 출처로, 미지의 시간으로 상정하며 이를 각자의 몫으로 수렴시킨다. 

    후반 그림자극의 개와 튤립꽃과 여자의 연대에서는 비인간종과 인간종의 차이 없는 연대의 의미 역시 중요하지만, 그 셋을 모두 하나의 평면이라는 표현 양식 자체로 구성하는 역량,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기호를 만드는 장르의 특성 자체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를 품은 여자는 아이에게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들에 대해 묻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미래를 기약하는, 도착하지 않은 시간으로 극장을 구성하고 있음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까 극장은 어떤 가설되는 중이다. 빨간 극장은 이야기되지만 김보경의 마지막 단언처럼 끝내 실제로 도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김보경의 맨발은 이 현재의 세계가 끊임없이 지정할 수 없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억되는 이미지임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관객이 ‘있다면’, 관객은 자신의 미래의 시간이 피드백되고 있음을, 나아가 자신의 과거의 시간이 파편으로 뒹굴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관객은 유예되지만, 끊임없이 이곳에 이끌리고 있다. 다만 이곳을 하나의 좌표로 지정할 수 없을 뿐. 김보경이 든 랜턴의 빛에 비치는 맨발과 바닥이 밀착되며 길을 내고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신촌극장 2022 라인업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 원지영]
    공연 일시: 2022년 5월 19일(목) - 5월 21일(토) 목/금 20:00. 토 16:00, 20:00(총 4회 / 약 60분)
    공연 장소: 서대문구 연세로13길 17 4층 옥탑 신촌극장
    배우: 김보경 
    작, 연출부: 윤소희 
    작, 연출: 원지영 
    조명: 권서령 
    사진/영상기록: 김동환 
    제작: 원의안과밖 

    〈공연 소개〉
    너는 어느 마을로 향하는 길,
    태어나지 않은-않을 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여정과 함께 우리들은
    이 극장에 모여앉아
    그 극장에서 
    저 극장까지
    걷고 또 걷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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