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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산수유 〈공포가 시작된다〉: 연대의 몫을 구성하는 ‘진실성’의 무대
    REVIEW/Theater 2022. 5. 22. 12:19

    극단 산수유 〈공포가 시작된다〉 공연 사진[사진 제공=극단 산수유](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키타하라 타케루 역의 김용준 배우, 키타하라 무쓰미 역의 우미화 배우.


    〈공포가 시작된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대한 컨텍스트를 배경으로 쓰인 일본 희곡을 국내 무대로 옮긴 것이다. 한국적 맥락을 결합하거나 차용하는 대신, 본래 희곡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가려 했다고 보인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과는 일본의 배경이 상대적으로 일본에서는 쉽게 상기되고 이해될 수 있을 반면, 한국에서는 그러한 맥락이 공연으로부터 이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대로의 번역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인 번역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공연 브로셔에는 공연에서 메타적으로 지시할 수 없는 일본 목욕 문화나 토로로 소바같이 일본적 컨텍스트에 대한 소개를 실어놓았다. 이를 한국적 컨텍스트와 결부 짓는다면 어떤 것들이 들어올 수 있을까. 이는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리얼리티와 특수성에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그에 대한 소개에 비중을 실어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개작이 요구될 것이며, 따라서 어려워 보인다. 이는 또한 매개자로서 위치하는 작가의 역량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공포가 시작된다〉는 일본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으며, 사건 이후에 인물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좇아가는 동안,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공포가 시작된다〉의 구체성은 그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는 현실의 부조리를 맞는 개인의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무기력함과 미세하게 일렁이는 어떤 감정이 침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사진 왼쪽부터) 쿠시마 히사코 역의 김선미 배우, 쿠시마 카쓰히로 역의 신용진 배우.

    〈공포가 시작된다〉의 무대는 중앙에 높은 단을 구성해 주로 현재의 인물들이 머무는 방을 가설하고 방의 장판과 오브제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가운데 시종일관 방에서 이뤄지는 장면이 나올 때 밝은 조명을 유지하며 생생하게 일상 자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그 둘레를 싸고 있는 암벽을 배경으로 좁은 무대 가는 어둡고 탁한 현실 공간의 과거가 된다. 곧 핵발전소 부근에서 복구 작업을 하는 남편―키타하라 타케루(김용준 배우), 쿠시마 카쓰히로(신용진 배우)―을 둔 아내―각각 키타하라 무쓰미(우미화 배우), 쿠시마 히사코(김선미 배우)―의 서사가 현재라면, 방호복을 입고 남편을 포함한 몇 명의 동료―이오카 타쿠미, 히오키 류세이―들이 일하던 현장은 현재 바깥에 삽입되는 과거이다. 
    숫자를 세는 사람들은 실재의 현장을 지시하기보다 방사능 수치가 몸에 기입되고 있는 알레고리로서의 몸을 드러낸다. 이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 진행되며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20의 한계치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한층 그 위험이 가속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과거 노동 현장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는 듯하지만,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정의하며 그 정의를 위한 수행으로서 운동적인 성격을 띠는 듯 보인다. 죽음이 현재화되는 순간에서, 그것을 수용하는 몸들은 역설적으로 그 죽음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와 죽음을 맞서는 최후의 생명력이 뒤섞인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걸려 죽은 키타하라의 49재 전 날 키타하라의 동료였던 카쓰히로―그 역시 쓰러져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다.―의 아내 히사코가 찾아오는데, 이들의 관계는 사건을 겪는 가족이라는 당사자성의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특수하지만, 유대의 정서가 전제된다고 할 수 있다. 키타하라는 하청을 받는 입장에서 회사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려 하며, 산재를 들려는 아내의 행위를 저지해왔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드러내는 등에 멍이 점점 커지지만 이를 파스 정도로 적당히 넘기고자 했다. 산재로 죽음 혹은 피해로 인정되는 것을 향해 몸은 방사능 수치와의 연관성을 증명하려 하거나 무위로 돌리려는 치열한 경계선상의 영토에 속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겪는 피해자 가족이 직접 상대하는 몸과 이격된 보이지 않는 다른 몸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는 보험의 영역이기도 하고, 계산과 수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가 시작된다〉는 마지막에 다다라서 방호복의 노동자들은 20을 넘어서는 숫자 세기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류에 대한 경고일 수 있는 이런 장면은 단순히 피해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을 인간의 보편적 현실에 대한 차원임을 주지시키려는 의미를 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전회로 반복되는 장면은 일상의 지난한 재현 바깥 공포의 세계로 비약하며 그 두 세계의 대비를 극대화하며 메시지를 제시한다. 하지만 조금 더 인상적인 건 반복되는 경고음, 경계음 같은 신호의 배경음이 암전이 되는 극에 깔리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제시되는 이와 같은 장면보다는 타자로서의 피해 당사자 가족들의 우묵한 표정을 띤 얼굴에 가까울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쿠시마 카쓰히로 역의 신용진 배우, 히오키 류세이 역의 김신영 배우, 키타하라 타케루 역의 김용준 배우, 이오카 타쿠미 역의 반인환 배우.

    인류의 위험과 피해 당사자성을 띤 개인의 어려움의 두 층위는 〈공포가 시작된다〉에서 다소 분절되어 있다. 전자가 주는 공포와는 다른 지난한 일상의 현실은 극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의 삶과 어떻게 이를 결부지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안기는데, 일본의 배경적 맥락을 우리의 것과 직접 연결짓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공포가 시작된다〉는 인물에 대한 공감을 현재 우리의 현실로 어떻게 연장해야 할지 질문을 안긴다. 일본이 우리와 가까운 곳이라는 배경의 사실에 입각해 국제적인 연대의 차원과 그 메시지로 갈음하는 것 역시 적절한 해석의 영역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는 반대로 장소적 근접성에 따라 우리가 갖는 위험성에 입각해 이념이 아니라 안위를 좇는 결과에만 단지 그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시작된다〉는 계속 진행 중인 현재이며 어떤 결론을 지을 수 없이 계속 쌓여가는 피로와 우울 같은 정동의 영역을 피해자 가족을 통해 제시한다. 또는 그 현재와 결부된 그 밖의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린다. 그 자체가 사실은 어떤 연대의 몫을 극장에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49재 전의 현재와 살아있는 과거들이 현재처럼 각인되는, 곧 시간의 넘나듦과 혼합으로 진행하는 연출의 방식―특히 조명의 방식―은 죽음을 멈추게 하기보다는 죽음에 직면하는 사람들의 어떤 미래를 예시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공포가 시작된다>
    공연 일시: 2022.05.13(금) ~ 05.22(일) 평일 19:30분 / 토, 일 15시 *월요일 공연없음
    공연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서울 종로구 대학로10길 17)
    주최: 서울연극협회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제작: 극단 산수유
    관람연령: 14세 이상
    러닝타임: 110분
    작가: 토시노부 코죠우 
    연출: 류주연
    출연: 김용준, 류주연, 우미화, 신용진, 김선미, 박시유, 반인환, 강선영, 홍성호, 김신영, 서유덕, 윤수현, 손필재, 황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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