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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웰킨〉: 얼굴과 잡음의 몽타주
    REVIEW/Theater 2022. 6. 20. 02:09

    연극 〈웰킨〉[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연극 〈웰킨〉은 아동 살해죄로 교수형을 받은 피고 샐리 포피와 그의 처형 보류 혹은 감형 여부를 결정하는 임신 여부 판정을 위해, 배심원으로 임명된 열두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일정 정도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로서 공유되는 컨텍스트가 끼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은 각자의 입장과 견지에서 임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전원 합치된 의견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따라 의견은 하나로 모여야 하며, 따라서 이들은 마치 직접 민주주의의 주체로 부상한다. 
    그것은 대부분 적당히 무심하고 또 상대방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하층계급의 언어적 전략이라는 표면 아래 극은 오히려 민주주의에서 우민의 통치라는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연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도 같다―이 극이 현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과거를 빌려온, 현대에 쓰인 극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헬렌 러드로 역의 이하영 배우, 엘리자베스 루크 역의 하지은 배우.

    그럼에도 엘리자베스 루크의 행동은 그들과 다른, 주체의 모습을 띤다. 후반의 서사는 샐리와 직접 연관되어 있던 엘리자베스, 두 사람의 관계가 ‘종내’ 밝혀짐에 따라 드라마를 ‘장악’하게 되는 두 사람 사이의 서사가 되며, 따라서 이는 엘리자베스의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정치, 가령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그의 노력과 의지, 곧 피고에 대한 ‘순수한’ 연민의 정신과 법정의 정의를 그야말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배심원 대부분과 다른, 예외적 주체로서의 ‘내적 동기’를 지닌 존재로서 그에 대한 믿음―‘유일하게 숭고한 믿음으로부터 정치적인 주체를 구현하는 존재’―으로부터 연장되는 서사를 급작스럽게 붕괴시키(지 않)는가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는 주체들은 대부분 자기 경험에 기반한 말하기, 자신의 감정과 현실적 입장에 충실한, 사회적 가치와 기준에 적당히 세뇌되어 앵무새처럼 이를 반복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들 중 샐리의 행위는 숭고하고 정의로워 보인다. 단지 어렸을 적 피치 못해 버렸던 딸이 엘리자베스라는 것, 따라서 죄책감과 연민 등이 뒤섞인 감정이 그의 모성애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복합적이고 미묘하며 여성과 여성 간의 연대에 대한 서사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 물론이다. 

    〈웰킨〉에서 등장하는 식별할 수 있는 총 네 명의 남성은 판사, 의사 미스터 윌리스, 샐리의 남편 프레데릭 포피, 법정 일을 돕는 미스터 쿰스이며, 그 외에 죄수의 목이 매달리는 광경을 보고자 하는 흥분한 목소리의 군중에 섞여 있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 전자의 네 명은 판사나 의사와 같이 직업에 따라 권위를 가지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프레데릭처럼 여성의 순결을 죄악시하고 추궁하며 다분히 거칠고 나아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쿰스처럼 여성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응석받이같이 독립적이지 못한 주체의 위상을 띤다. 전자는 딱딱한 모습과 언어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만을 사용하며, 배심원들과 언어적 간격을 벌린다. 

    배심원으로서 한 명 한 명 법정의 증인선서대에 섰을 때 판사의 말이 각자의 처지와 상관없이 일정한 매뉴얼을 실천한다면, 그의 말은 그가 호명한 각각의 배심원에 의해 일일이 겹치는 구간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 장면은 꽤 길게 진행되는 가운데, 판사를 제외한 배심원 모두를 무대에 고스란히 정면성을 띤 채 소환한다. 판사는 등장하지 않고 외화면 목소리로만 그 매뉴얼을 반복하는데, 자연 배심원들은 이 보이지 않는 자를 향하거나 또는 그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게 된다. 
    격식 있는 말과 사적이며 사안과 별 상관없는 것 같은 말들은 대비를 이루는데, 이 대비 속에 하층계급의 언어가 남성적인 위계를 가진 외화면의 목소리를 뚫고 간다는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 여기서 하층민 여성의 목소리는 거꾸로 법정의 신성한 언어에 대한 잡음이면서 나아가 그 언어를 내파하면서 판사의 언어를 잡음으로 만든다. 이 중첩되고 경합하며 역전되는 언어의 경계는 〈웰킨〉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구간을 이룬다. 

    (사진 하단 왼쪽부터) 엠마 젠킨스 역의 송인성, 페그 카터 역의 송영주, 앤 라벤더 역의 이세영, 매리 미들턴 역의 라소영, 한나 러스테드 역의 부진서, 키티 기븐스 역의 고윤희, 사라 홀리스 역의 김정아, 샐리 포피 역의 김별, 헬렌 러드로 역의 이하영, 샬롯 캐리 역의 안민영 배우.

    몇몇 사운드를 주의 깊게 사용한 구간이 더 있는데, 가령 외부에서의 군중의 함성에 대해 폐쇄된 내부의 사건―인터미션 전 1부 마지막에 법원의 임시 대기실에서의 화재―과 관련한 혼란과 갈등이 그 소리와 함께 증폭되는 부분, 또한 처음 엘리자베스가 그에게 구애하는 쿰스와 대화하며 시종일관 절구를 찍을 때 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기이하게 역시 증폭되며 다음 장면을 향하는 부분 등이 그러하다. 
    잡음이 결국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상정한다면, 곧 중심의 불순물로서 주변에서 솟아오르는 성격으로서 잡음이 있다면, 〈웰킨〉은 이 잡음이 뒤덮는 세계를 그린다. 이는 다분히 연극적인 세계와 외화면 소리의 인공적인, 곧 비연극적인 세계의 경계 역시 지정하는데, 이는 결국 연극의 바깥으로 확장된다. 감옥 바깥의 세계 속 군중의 광기 어린 성난 소리는 법정 안의 세밀한 언어의 공정과 대립하며 따라서 야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에 대비되는 인간의 언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웰킨〉은 하층계급의 언어의 다양성과 배면의 욕망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대화와 갈등으로 구성되어 가는 새로운 법의 영토를 ‘창조’해낸다. 

    (사진 왼쪽부터) 페그 카터 역의 송영주, 한나 러스테드 역의 부진서, 키티 기븐스 역의 고윤희, 엠마 젠킨스 역의 송인성, 샬롯 캐리 역의 안민영 배우.

    〈웰킨〉의 앞선 무대의 외부가 가리키는 세계의 외부, 곧 세계의 확장성은 군중 대 법정의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격차―소리는 공간의 격차를, 무대의 안팎을 종합한다.―에서 75.3년 주기로 되돌아오는 헬리혜성이 다시 목격되던 시기인 현재로 ‘도약’하며 시간의 격차를 지운다. 〈웰킨〉의 첫 인트로 장면에서 하층계급으로서의 지위, 곧 지난한 여성의 반복되는 가사노동은 마지막 장면에서 단지 의상의 차이를 더해 한 번 더 드러남으로써 수미쌍관의 구조 속에 고착화된 여성 지위의 통시성을 지시한다. 
    〈웰킨〉의 시작은 다른 존재들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음에 기초한다. 이는 그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언어와 메시지 층위로 수렴하지 않을 것임에 상응하기도 하지만, 무대가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선분을 확실히 나누지 않음을, 또는 나눌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웰킨〉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그러한 배우들의 지나친(?) 현존에 있다. 곧 좁은 무대에 비해 꽉 들어차는 과다 인원의 투입에 있다. 아니 〈웰킨〉이 희곡 이후의 무대로의 구현임을 상기한다면, 이는 정해진 인원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무대를 선택한/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제 조건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좁디좁은 여성의 삶의 영역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무대 위의 배우 간의 위계 역시 지우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몇 명의 배우의 무심한 얼굴은 발화와는 상관없이 주어진다. 뒤섞인 몸들의 ‘향연’은 더러움과 육체라는 중세의 어떤 아이콘 계열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웰킨〉은 어쩌면 잘 알지 못했던 여성 배우들을 조명하며 무대의 주체로 세운다. 이 육박하는 신체들이 존재의 잡음으로써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인트로와 마지막 장면은, 흡사 디오라마의 인물들과 같이 멈춰 있는 존재의 단면을 가정에 귀속되는 여성 지위라는 역사의 단면으로 종합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메시지에 상응한다. 
    결과적으로 〈웰킨〉의 법정의 흥미로운 언어들의 경합은 하나로 분쇄할 수 없는 정동들의 정치였다면, 곧 그 같은 언어들이 합산되며 신성한 남성적 영역의 법정에 출구를 내고 있다면, 〈웰킨〉이 전제하는 법정의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시간은 결국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예외적 지위를 복권하는 예외적 장으로 기능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웰킨〉의 ‘좁은 무대’는 배우라는 존재의 현존을 가시화한다, 별다른 조명의 효과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두산인문극장 2022: 공정 Fairness 연극 〈웰킨〉 

    공연 일시: 2022년 6월 7일(화) ~ 6월 25일(토) 화수목금 7시30분/ 토일 3시
    월 쉼 (총 17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루시 커크우드(Lucy Kirkwood) 
    번역: 김수아
    연출: 진해정
    출연: 고윤희, 김별, 김정아, 라소영, 민대식, 백종승, 부진서, 송영주, 송인성, 안민영, 이선주, 이세영, 이정미, 이하영, 하지은
    무대: 심채선
    조명: 신동선
    음악·음향: 지미 세르
    의상: 오수현
    분장·소품: 장경숙
    무대감독: 이지혜 
    러닝타임: 180분(인터미션 15분 포함)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문의: 두산아트센터 02)708-5001 doosanart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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