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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오아시스〉: ‘혁명적으로 연극 하기’
    REVIEW/Theater 2022. 6. 16. 19:47

    서울시극단 시극단의 시선1 - 연극 〈오아시스〉(작/연출: 설유진) 드레스 리허설 컷[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배선희, 곽지숙, 박미르, 김보경, 하영미, 황선화, 황순미, 김주빈, 최정현, 유다온 배우.

    〈오아시스〉는 끝없는 언어 유희를 통해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가설하기를 반복한다. 사막 한가운데 생긴 호텔 오아시스에 숨겨진 오아시스선을 타고 소행성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원이동선인 오아시스선을 또 옮겨타야 한다. 이 오아시스는 오아시스 밴드가 좋아하는 모종의 술과 같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전자가 현실 세계의 구조적 서사라면, 후자는 이에 대한 자유로운 배우들의 사유 영역에서 나온 것이다. 〈오아시스〉는 어쨌거나 하나의 언어에 올라타고, 그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치시키고, 이를 반복한다. 
    연속되는 언어 유희를 통한 문법의 생성은 어떤 시대와 어떤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는(재현하지 않는) 연극을, 동시에 그러한 시대와 시간을 지시할 수 있는(참조하는) 연극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각하”라는 호명은 유령처럼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발화 속에 남아 무대를 떠돈다. 아마도 그건 가장 강력한 유령과 다름없다. 초반에 그 사전적 의미를 열거하고 배경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도, ‘각하→내가→제가’의 과정 아래, 낡은 질서의 산물로서 스스로 부정되며 변증법적으로 갱신된다. 그 흔적은 더욱 강화되며, 그 자체가 증상의 원환을 구성한다. 반면, 이러한 언어 유희에 따른 반복은 초자아에 대한 고착을 벗어나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그 팔루스 자체를 흐물거리는 덩어리로 무화시키는 과정이다. 

    독재정권에 대한 은유로서 왕의 자리와 그 권력,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과 죽음은, 무대의 원-체험으로 제시된다. 이는 유일하게 이후의 메타-연극이 되기 이전에 ‘순수한’ 연극의 장면이다. 이 역시 20○○의 시대에 포로나(코로나에 대한 언어 유희임을 드러내는 작명) 시국에 디지털 콘텐츠 연극을 만들기 위한 재현의 일부임이 드러난다. 작품을 끌고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주체가 없이, 캐릭터뿐만 아니라 스태프 안의 모든 역할이 흩어지고 재배열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배우들은 1/N의 몫을 가지고 공연을 진행하고자 한다. 

    일자와 소수 권력에 집중된 정보의 집중에 대한 비판적 견제이자 대안을 제시하는 건, 기후위기를 맞은 인류가 소수의 특권층만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한다는 서사의 〈돈 룩 업〉이라는 영화를 경유하며 이를 다시 써서, 모든 관객―인류의 한 상징적 개체이자 인류의 대표성을 띤 재현으로서의 관객―을 포함한 인류 전체가 일차적으로 오아시스선에 탑승한다는 결말을 제시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한 명씩 마이크를 전달받아 10부터 카운트다운을 세며 1열부터 2층 마지막 열까지 관객을 아우른다. 
    배우 스스로가 주체가 되며 관객을 무대로 호명하며 무대를 연장하는 수행적 발화는, 인류 전체에 대한 구원, 인류의 평등함이 거세된 ‘지난날의’ 서사에 대한 궁핍함을 판타지적인 증여의 서사로 상쇄하는 것이기도 하다―내용적 사실임 직함을 형식적 사실임 직하지 않음으로 바꾼다. 이는 아직 끝난 게 아니고, 극장 모두가 안전한 이동을 위해 간격을 두고 이동할 것을 요청하는 연극 이후의 멘트가 주는 메시지와 맞물린다. 이는 기후위기와 인류 절멸에 대한 대처―대처라면, 허황한/불가능한 대처일 것이다.―라기보다는 세월호 이후, 극장의 안전 문법이 강조되는 ‘극장이 삶의 경계에 있다’라는 진리에 대한 재확인에 가깝다고 보인다. 다른 한편, 앞선 원-장면에서, 각하의 방공호로서의 오아시스라는 상징은 그 ‘좁은 문’을 벗어나서 인류 전체가 탑승할 수 있는 평평하고 거대한 공간이 된다. 여기서 ‘각하’라는 유머의 대상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져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통상 연극은 시작과 끝에 각각 ‘이것이 연극’임을 한 번은 감추고 한 번은 드러낸다. 시작은 암전이라면, 끝은 커튼콜이다. 반면 〈오아시스〉는 시작에 배우 한 명 한 명을 노출하고 마지막에도 한 명 한 명이 호명의 주체로서 각자를 드러내며, 배우는 관객에게 한 번은 박수를 받으며 다른 한 번은 관객과의 마주침으로 각각 시작과 끝에 자신을 현상한다. 일종의 퍼포머로서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의 위계 없이 하나의 연체동물의 다리들처럼 움직이는데, 화려한 색채의 각기 다른 옷들은 하나의 이종 생명체들의 군락을 이루고 각자의 촉수를 뻗으며 서로의 말을 받아 거대한 화음을 내는 유동하는 구조물을 만든다. 

    〈오아시스〉에 쓰인 여러 기성 곡들은 끊김 없이 펼쳐지며 풍성하게 무대를 채우는데, 이 음악의 과잉이 가리키는 건 다름 아닌 객석이다. 음악에 맞춰 립싱크와 유난스러운 몸짓을 펼치는 한 명의 퍼포머는 그 자체로 온전히 집중되기보다 그 연결된 신체들의 무늬와 꿈틀거림, 그리고 그것을 바라다보는 객석의 들썩거림으로 연장되는데, 이는 그 음악이 순전히 과잉되며 소진되어 가는 배경음악임을, 맨 처음 한 명 한 명의 등장에 이은 일종의 쇼의 반복임을, 쇼에 대한 연출임을, 그 음악의 대사들이 대부분 그 자체의 음악을 벗어나 새로운 기호로 무대에 절합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탓에 그것들 모두 수행되고 있음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 캐릭터의 특별한 주문과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어떤 캐릭터의 역량이 그 음악을 매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는 데 가깝다. 
     
    사실 〈오아시스〉에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연극은 완성보다는 그 연극을 다루는 과정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 따라서 극은 처음도 그렇지만 일종의 극 중 극 형태가 된다. 그 극은 완성도가 중요하기보다 나아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극의 본질을 찾는 것보다 극에 다가가며 질문을 하는 배우들, 또 다른 맥락이 더해지는, 자율적인 해석과 현재의 의견 제시가 중요해진다. 서사의 대부분은 발화 주체의 말 자체로서 성립하며 말보다 움직임에 초점이 맞춰진다. 배우는 내용 전달의 매개체보다는, 말과 움직임의 통합된 연기 대신에 말을 하는 ‘주체’이거나 움직임의 권능을 마음껏 시연하는 퍼포머에 가까운데, 스크린의 영상 자막을 통해 서사는 빠르게 전달되며, 프로시니엄 아치의 개구부에서 무대를 향한 채 마이크를 들고 내레이션을 하는 것을 통해, 서사는 빠르게 압축되고 정리되며 배우 대부분은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는 말의 지연으로 또한 움직임의 과잉으로 나타나는데, 각자의 움직임이 자율적이라면, 따라서 하나의 초점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곧 넓은 무대의 사방으로 분산된다면, 말은 그 일렬로 벌려 자리한 배우들의 틈에서 튀어나온다. 한 사람의 몸을 비집고 한 사람의 말에 더해진다. 이 더딘 말의 릴레이 발화 방식은 내용을 쌓아 올리기보다 말 자체를 해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마지막에 스르륵 상대 배우 뒤에서 마이크를 전달받아 자신의 발화를 시작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처럼, 〈오아시스〉는 누구도 더 드러나지 않는, 모두가 어떤 깊은 연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물론 작품의 언어 형식에서 유래하는 것이면서 그를 뚫고 나오는 연극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태도의 재정립으로 보인다―이쯤에서 〈오아시스〉의 열한 명의 배우가 모두 여성 배우 캐스팅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온당한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건 충분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 연극은 마지막에 스스로 반복하는 것처럼 “혁명”에 대한 연극이고, 그것은 직접적으로 “사랑”으로부터 온다. 곧 말의 쌓아 올림에서 나아가 서로에 대한 마주침과 잠깐의 응시의 허용은 이 작업 과정을 드러내며, 메타적으로 연극을 지시하는 연극의 또 다른 과정에서부터 아마 유래했을 이들 안의 특별한 정동으로 감각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서울시극단 시극단의 시선1 - 연극 〈오아시스〉
    공연 일시: 2022.6.3.-6.12. 수-금 7시 30분 / 토 3시, 6시 30분 / 일,공휴일 3시 / 6/7 공연 없음 (총 11회)
    공연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제작진
    작/연출: 설유진
    출연진: 곽지숙, 김보경, 김주빈, 박미르, 배선희, 유다온, 주은주, 최정현, 하영미, 황선화, 황순미
    연령: 만 13세 이상(중학생 이상)
    러닝타임: 100분(예정)
    문의: 세종문화티켓(02-399-1000), 서울시극단(02-399-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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