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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아 하사비, 〈투게더〉: ‘곁’이라는 지지체
    REVIEW/Dance 2022. 11. 15. 23:30

    © courtesy of Thomas Poravas(http://obscenefestival.com/festival/programs/together).

    두 퍼포머―마리아 하사비(Maria Hassabi), 오이신 모나간(Oisín Monaghan)―는 약간의 간격만을 두고 밀접하게 동선을 같이 한다. 이러한 수행은 일정하고 지속적으로 더디다. 두 퍼포머 사이에 간격은 결코 완전히 줄어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포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게더〉는 합치에 대한 불가능성을 시험하고 그 자체로 수용하는 것과 같다. 둘은 서로를 향하면서 각자의 범주 안에 온전히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시선에 대한 것으로, 몸의 지향은 서로를 완전히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지만, 시선은 완전히 서로를 향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시선이 서로를 마주한다는 짧은 순간은 끊임없는 더딘 움직임의 이행을 통해 비켜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몸과 시선의 엇갈림은 바닥에 놓인 사각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에도 수직적 축의 양상으로는 지정할 수 없이 입체적인 단면들과 동시에 서로 다른 중심의 빛을 순간적으로 구축하며, 이는 마치 공중에서 유영하는 두 다른 행성의 공전과도 같은 궤도를 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퍼포머는 서로에게 몸을 향하지만 서로를 보지 않는데, 이는 미묘하게 서로의 움직임 반경과 몸 자체를 반향하기 위해 무엇보다 상대방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기’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긴장과 함께 더딘 움직임 과정을 만든다. 

    마리아 하사비의 〈투게더〉는 멈춘 하나의 포즈‘들’로 수렴할 수 없는 장기 지속의 시간을 띠며, 그 변환의 순간을 전유하는 노이즈 사운드는 예기치 않게 간혹 그 몸과 몸을 스쳐 간다. 이는 현실 재현의 물리적인 사운드로서 물질적인 차원으로 몸과 맞닿는다. 이는 몸 자체를 하나의 배경 이미지처럼 곧 배경이 없이 모든 것이 하나의 변화하며 ‘꿈틀거리는’ 어떤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 그 몸에 대한 시각을 파열하는, 몸과 시각 사이에 생기는 생채기이다. 
    반면 드라마적인 사운드, 서서히 고양되는 사운드가 나올 때 장면 역시 그와 함께 충분히 증폭한다. 음악은 서로 반대편의, 어긋나는 시선과 몸들이 하반신을 어느 정도 묶어 놓은 상태에서 상체와 얼굴을 서로를 향해 오는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고양된다. 두 눈이 맞닿는 순간은 어떤 해명도 이유도 없는 이 강박적인 종속의 규칙이 드디어 정서적인 교류를 통한 관계의 다른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이겠지만, 결국 실현되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만약 그 둘이 서로를 마주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발설되지 않는 비밀이자 원칙이라면 그 둘의 시선이 닿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알고도 알지 못한 ‘척’하는 두 존재의 마주침이 갖는 ‘본래적인’ 반응은 어떻게 또 무마되고 거부될 수 있는 것인가. 또는 급진적인 변화나 기척을 이전의 원칙을 깨뜨리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둘이 맞닿는 시선은 분명 어떤 하나의 순간이다. 그것은 마치 지나간 것처럼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간다. 어떤 사건은 그저 발생한 것이었거나 발생했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이 끝맺었다. 마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러한 순간은 일상의 관성 속에 기각되기 때문이다. 

    생체적인 반응,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 공간을 창출하고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기각되는 순간, 곧 각자의 영역을 서로를 곁으로 두는 것으로 유지하는 방식이 어긋날 때, 또는 서로에게 완전히 잠식될 때 이를 모르는 것처럼 뒤바꿀 수 있을까. 곧 서로를 곁으로 두며 서로로부터 자신을 지지하기라는 원칙은 서로를 마주하여 완전한 외부를 형성하기라는 원칙을 배제하며 이뤄진다. 서로는 자신의 외부이면서 그로부터 자신의 내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둘은 완전한 속박과 함께 자유롭다. 반면, 마주침에는 각기 다른 외부와 내부의 맞물림을 벗어나 하나의 얽힘, 하나의 연결된 시선 아래의 분배만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연한 궤도의 맞물림을 가장한 채 이뤄지지만, 그 순간은 어떤 폭발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발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 두 신체의 원칙을 따라 다시금 소멸된다. 

    〈투게더〉는 결정 불가능한 두 존재의 위치가 서로에게 연유하면서 그 관계를 결코 하나의 원칙이나 경로로 정의할 수 없는 과정에 둔다는 차원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반면에, 서로에게 포획될 수 없는 불가능성의 공존 속에서 유연하고도 분명한 경로를 보존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의 불분명한 종속과 분명한 이행의 성격은 사실상 우리가 늘 겪고 있는 관계의 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투게더〉는 미결정적인 관계의 속성과 그럼에도 강력한 연관관계 속에 있는 타자와의 관계를 재현한다. 서로를 보는 것은 서로를 보지 않는 원칙과 붙어 있다. 동시에 서로를 보는 것은 서로를 보지 않는 것 너머의 어떤 것이 아니다. 마주치지만 스쳐 가는 두 시선이 이를 반증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퍼포먼스 개요]

    일시: 2022.11.5.토 16:00 / 19:00, 2022.11.6.일 17:00
    장소: 일민미술관

    작가: 마리아 하사비
    작품명: 투게더
    러닝타임: 53분
    공동 기획: 옵/신 페스티벌, 일민미술관
    *퓰리처재단미술관 의뢰(2019)로, 로어 맨해튼 예술 위원회 프로그램 ‘확장된 삶(Extended Life)’ 지원, 뉴욕의 FLOOR를 통해 개발.

    2000년대 초부터 마리아 하사비는 살아있는 몸이 정지된 이미지 및 조각적 사물과 맺는 관계에 기반한 그만의 실천을 선보여 왔다. 정지됨과 느린 속도에 초점을 맞춘 그의 작품은 시간과 인간 형체라는 주제를 다룬다. 듀엣 퍼포먼스 〈투게더〉는 하사비와 댄서 오이신 모나간의 밀착된, 그러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이뤄진 함께함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두 신체와 공간이 맞닿고, 포개지며 함께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강력한 명상적 안무가 만들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다른 사람과 함께 또 옆에 사는 법에 대함이다.

    “〈투게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묻는다. 두 몸의 끊임없는 접촉에서 작은 불씨가 피어난다. 볼과 볼, 머리와 머리, 이마와 이마, 코와 코, 입과 입이 마주하며 고립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움은 아포칼립스의 전조에 놓인 우리의 혼돈을 잠재운다.”

    퍼포머: 마리아 하사비, 오이신 모나간
    사운드 디자인: 스타브로스 가스파라토스, 마리아 하사비
    의상: 빅토리아 바틀렛(Victoria Bartl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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