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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송희 안무, 〈뿌리집〉: 일상의 어떤 감각-이미지들
    REVIEW/Dance 2022. 11. 15. 23:49

    송송희 안무/연출, 〈뿌리집〉ⓒ박수환(이하 상동).

    〈뿌리집〉(송송희 안무/연출)에서 몸은 비교적 명확한 재현의 양태를 띤다. 움직임은 몸을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데 가깝다. 도시의 어떤 부분들 안에 있는 몸, 또는 일상 안에 있는 몸은 그 바깥의 배경과의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음을 반증한다. 가령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다랗게 선 몸들은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있고, 상대방에 의해 밀려 상반신은 좌우로 오간다. 이는 어떤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보통의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심미적인 차원은 그것이 어떤 형태적인 차원에서의 구불거림이나 시간적인 차원에서의 지체됨 없이 점·선·면의 기본적인 차원으로 수렴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순간의 파동과 함께 직선을 축적하여 입체적인 면으로 확장되며 반복의 프로세스를 만든다는 것일 것이다. 

    〈뿌리집〉은 문화비축기지 T4라는 원형 공간을 오피스 공간, 비계 구조물과 간격과 간격을 잇는 높은 원통형 구조물로 나눈다. 이는 장소의 이동을 삽입하지만, 일상이라는 시간 안에서 이음매 없이 통합되는데, 이는 퍼포머들이 순전히 움직임을 즉물적으로 구성하는 퍼포머와 서사의 개연성을 세밀하게 구성하는 캐릭터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과 연관된다. 어느 정도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이거나 독특한 설정, 곧 캐릭터 자체의 특성이 강조되지 않는 부분은, 어떤 시간들 안에 신체가 담기는 현상 자체를 〈뿌리집〉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뿌리집〉이 조금 더 특정 시‘공’간과 맞물리며 그 움직임이 발현되고 있음에 주목할 수 있다. 
    〈뿌리집〉은 우리가 소파를 봤을 때 움직임의 굴곡 또는 행동의 반경이 소파의 모양대로 곧장 우묵해지는 것처럼 어포던스(affordance) 차원의 움직임들을 시현한다. 배경과 피규어는 하나의 차원으로 맞물리며 움직임은 그러한 배경을 함입한다. 우리는 퍼포머들이 그 환경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무정형의 공간 안에 순전한 움직임을 조직하는 것이 아님을 본다. 가령 공간의 틈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존재를 구현하는 퍼포머 간의 서 있음에서 밀침과 기울어짐으로 가는 앞선 과정은, 그러한 배경과 인물의 밀접한 관계 양상을 도출해 낸다. 그 움직임이 그의 밖의 더 큰 공간과 관계 맺고 있음에 대한 인지는 그가 그 공간 안의 좁은 틈에 겨우 운신하면서 그 공간을 역으로 만들어내고 있음에 대한 인지와 맞물린다.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건 음악인데, 옴브레의 음악은 공간 전면을 감싸고 있다. 이는 퍼포머와 관객 모두를 하나의 공간 안에 둔다는 것인데, 언뜻 장소 특정적인 차원의 공연이 떠오르는 건 프로시니엄 아치의 객석과 무대가 구분된 형태가 아닌 점도 있지만, 동시에 실내이지만 바깥과 접변하고 있는 건물 특성의 차원도 있지만, 이 공간이 앞선 일상의 무목적적인 시간과 기억에 지배당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 음악의 전개가 이 공간과 시간을 완전히 장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의 매체 안에 장소 시퀀스의 분절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는 듯 보인다. 동시에 또 다른 장소로의 이동은 빈 하나의 공간과 그 속에 파편들이라는 ‘흐릿한’ 분절에 따라 공간을 장소와 무대로 구분하며, 행위와 움직임으로 분리한다. 곧 관객은 공간 전반을 볼 수 없으며, 동시에 무대는 공간 전체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두 번째 무대인 마치 침대를 형상화한 비계 구조물에서 퍼포머들은 위아래로 분포한다. 위에서는 누워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면, 아래는 이 신체가 위치한 단면을 건드리는 식으로, 그러나 그 위에 사람들은 여전히 잠결에 있는 모습으로 무의식을 표상한다. 그 아래의 몸짓은 존재와 연결되지 않고 현실로 표상되지 않는, 비의지적인 존재의 정형화되지 않은 몸짓이다. ‘침대’에 닫기 전에 우선하는, 살랑거리는 스텝은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 비정형의 바람과 같은 형상을 의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간 중앙의 바닥이 무대가 되는 첫 번째 무대에서 마주 보고 모인 존재들은 동등한 존재의 성질을 띤다면, 세 번째 무대인 오피스 공간에서 결집된 구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송송희가 한 명의 존재가 된다. 바깥은 그 배경으로 송송희를 감싼다. 홀로 기어서 구조물의 통로를 지나치는 모습에서 캐릭터의 내면이 짐작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는 공간의 허전함이 주는 정동 차원에 묶인다. 여기서 존재는 이질감을 준다. 그는 현실에 묶여 있되 그 현실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시간이 미끄러진다. 마치 그 시간 바깥에 존재하듯 송송희는 관객을 빠져나간다. 최종적으로 이격된 존재로서 송송희는 공간 바깥에서 모래 더미를 만진다, 사라지고 흩어지는 시간이 물질적인 감각으로 영속한다는 듯이.

    공간을 울리는 기타와 간간이 섞여드는 보컬은 〈뿌리집〉에서 가장 강력한 매질이다. 이는 장소와 무대를 유영하는 퍼포머들, 반복되는 움직임의 변주를 통한 일상의 기억 혹은 감각의 어떤 복원을 바라보게끔 하는 배경이 된다. 장소의 분산과 단순하고도 정확한 몸짓들, 무표정한 표정과 쓸쓸함의 정동이 뒤섞이는 가운데 〈뿌리집〉은 현실과의 거리를 통해 형성되는, 또한 현실을 뚫고 나오는 어떤 장면 혹은 이미지를 도출해 낸다. 그것이 “바깥 거주자”이건 “집”에 대한 경험이건 〈뿌리집〉은 일상의 시간에 초점을 맞추며 그것이 환기되는 시간을 움직임을 통해 촉발하고자 한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시: 2022.11.5(토)-11.6(일), 저녁 7시
    장소: 문화비축기지 T4

    〈만드는 사람들〉
    안무/연출: 송송희
    움직임: 공동창작 
    출연: 박정휘, 이다애, 한승민, 송송희
    드라마트루기: 조형빈
    프로듀서: 신재윤
    공간: 정이삭
    빛: 김재억
    소리: 옴브레 
    공간 매니지먼트: 최상지
    의상: 김은경
    그래픽 디자인: 한승민
    사진/영상 기록: 박수환
    주최/주관: 소나무계집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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