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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집단 키타카,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두 다른 SF는 어떻게 현실을 재현하는가.
    REVIEW/Theater 2022. 11. 16. 01:54

    창작집단 키타카,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사진 제공=포토비 스튜디오](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은하 역 배우 임지우, 도희 역 배우 최엄지.

    창작집단 키타카는 서울미래연극제에서 올린 ‘일단 SF’는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와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 두 작업을 묶은 제목으로, 공연 시작에서 이 둘을 묶어 연극으로 가는 입구를 노정하는 차원으로서의 소개 멘트를 덧붙였다. 이 둘을 “일단” SF라고 지칭한다면,’ 두 공연을 뒷받침하는 어떤 토대를 찾는 건 또는 그러한 토대의 차이를 구성하는 건 키타카의 세계관에서 정의하는 SF가 될 것이다. 

    창작집단 키타카,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사진 제공=포토비 스튜디오](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은하 역 배우 임지우, 서진 역 배우 이우성.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황나영 작, 이하 〈프리미엄〉)는 기후 위기로 인해 벌이 멸종한 이후, 드론 벌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 벌이 돼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서진과수원”에 취직한 흙수저 은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은하는 과수원 사장인 도희의 아들 서진과 연애를 하게 되는데, 서진은 은하에 비해 과수원의 일에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신기술을 적용한 드론 벌을 통해 인간 노동―수분(受粉)―이 투여된 생산물의 맛을 재현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기술적 사실에 매료된 상태가 된다. 이는 가업을 포기하는 것으로까지 연결되는데, 이 부분에서 어머니 도희의 갈등은 뚜렷하지 않으며, 도희와 서진과의 갈등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드론 벌이 닿지 않은 유일한 나무를 보존하는 역할은 새로 들어온 민지와 은하의 몫이 되며, 그에 따라 이 나무는 인류 최후의 비의적 존재가 된다. 민지의 바람이 자신의 애인인 예리에게 주고자 하는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에 대한 자본주의적 열망―거기에 사랑이 결합한 형태―이라면, 도희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지―그것은 외부의 척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이며, 그것은 사라지는 것 자체의 보존을 염원하는 어떤 근원적인 차원의 인간이 지닌 아카이브적 열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 왼쪽부터) 은하 역 배우 임지우, 민지 역 배우 김도이.

    무엇보다 서진과수원의 복숭아가 프리미엄인 건 “최후의” 유기농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일하다는 것 때문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결코 그 맛 때문에 인정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한 맛은 그것이 프리미엄이기 때문이다. 곧 ‘프리미엄은 어떤 명명에 의한 산물이다. 사실 이런 패러독스를 〈프리미엄〉은 이미 언급하고 있는데, 인간이든 벌이든 어떤 것이 낫다는 것을 판별할 기준을 따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드론 간의 움직임이 연계된다―곧 드론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을까?―는 어떤 두루뭉술한 언술 속에서 그 차이가 없어질 것임이 암시되지만, 무엇보다 실제 그 둘이 인간이든 인간을 앞서 나가는 인공 벌이든 간에 ‘본래의’ 벌의 수분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그로부터 연유하는 맛 자체가 사라진 시대 혹은 기억으로만 이전될 수 있는 시대에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공 수분 동작 역시 산업화 시대의 포드 시스템처럼 인간의 비효율적 움직임을 제어하며 최대한 로봇과 같이 여분의 몸짓과 낭비되는 시간을 제한 ‘합리적’인 몸짓을 구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역시 아이러니하다. 

    (사진 왼쪽부터) 은하 역 배우 임지우, 서진 역 배우 이우성, 도희 역 배우 최엄지, 민지 역 배우 김도이.

    벌을 대체하는 인간 벌이라는 아날로그적 상상력은 결국 로봇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에 사라진 그 노동 자체에 투사하는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그러한 문학적 인공물로서 인간 벌에는 대단한 학력도 눈에 띄는 경력도 없는 은하나 그의 또 다른 캐릭터 버전이라 할 수 있을 민지―그 둘은 우정을 쌓는다.―가 대입되는데, 은하나 민지는 드론 벌과 이를 운영하는 거대 기업이 시장을 그리고 땅에서 나는 갖가지 과실을 비롯한 인간의 먹거리와 연관된 생태계를 지배하게 되는 부정적인 미래의 끝을 상상하거나 그러한 구조 자체를 통찰하기보다는 그러한 현실에서 우선 은신해야 한다. 민지는 드론 벌에 대한 불쾌감을 표출하지만, 이는 다분히 일차원적인 감정에 머물며, 은하의 자신의 환경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 둘은 자신들만의 선택을 한다, 마지막 인공 수분의 가능성.

    자신의 일에 대한 은하의 자긍심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일까. 그러한 생각이 반동적으로 나타나는 건 10년이 넘게 일해온 자신의 직장과 그 일이 유명무실해지는 것 때문인지 로봇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류 마지막 나무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는 모호하다. 그의 복합적인 심경은 그 둘을 모두 포함하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행위에 관한 동기가 모호한 것은 〈프리미엄〉이 은하를 경유해 그리려는 세계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간의 노동을 갈아 넣는 방식의 서진과수원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세계가 비판적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이지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때 완벽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날 것이라는 환상 역시 경계해야 함은 명확하며, 〈프리미엄〉 역시 이러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은하와 민지의 ‘순수한’ 나무에 대한 보존이 인류를 사유하는 숭고함을 동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떤 다른 미래를 가져올지도 명확하지 않다―그리고 그것은 실패로 장식된다. 여기서 〈프리미엄〉은 미래가 막막한 현세대의 정서에 공감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한, 그들이 투여할 수 있는 어떤 환상을 제조하고 있는 것에 머무는 것 아닐까. 

    (사진 왼쪽부터) 도희 역 배우 최엄지, 은하 역 배우 임지우.

    결과적으로 〈프리미엄〉에서 주목할 만한 유일한 주체는 은하인데, 이는 서진과수원의 의미에 대해 사고하면서 동시에 행동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진과수원의 운영자이면서 그 유일한 자리의 포기를 너무 쉽게 합리화하는 도희나 이미 물려받은 것들의 자장 아래 있으며 그것을 지겨워할 뿐인 그의 아들 서진, 즉각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반응하지만 구체적인 고민이나 갈등이 없는 민지와 달리, 은하는 자신의 현재를 가늠하고 나아가 책임지려고 한다. 
    결국 한 그루 남은 인류 최후의 프리미엄이 붙는 유기농 복숭아가 생산됨에도 그것은 인류가 갖는 마지막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은하나 민지에게 특별한 프리미엄을 남기는 것도 아닌 채 맥없이 인류에게서 사라져 간다. 은하는 다시 구직난으로 떠도는 초라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프리미엄〉은 처음 부분에서 신선들이 먹었다는 복숭아의 우화를 들며 무릉도원을 암시한다. 인간의 노동은 로봇에 비해 합리적일 수 없으며 그러한 가치 산정도 자본주의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과연 그러한 것일까. 

    인간 노동 가치의 산출은 은하라는 예외를 통해 질문되지만 동시에 기각당한다. 거대 기업의 자본력은 모든 걸 집어삼킨다. 그에 관한 비판과 최후의 노동을 하는 인간 존재의 가치는 〈프리미엄〉에서 양립한다. 그것은 무력한 한 개인, 아니 한 개인에게 무력하게 맡겨진다. 곧 이러한 양립을 비집고 가로지르는 어떤 또 다른 이념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프리미엄〉의 앞선 모호함은 바로 세대적인 번민을 그 자체로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 외에 그들에게 있어 다른 선택지를 제거하여 그 희망 역시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방식에 직결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일까, 아님 그 현실 자체에 대한 자조 섞인 재현일까. 

    창작집단 키타카,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사진 제공=포토비 스튜디오](이하 상동). 오늘 역 배우 김섬.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성재현 작, 이하 〈라이카〉)에는 안드로이드 로봇 이디엑스 ‘오늘’과 그의 주인 ‘찬연’과 함께, 찬연의 옛 연인 ‘희수’가 이따금 기억으로 등장한다.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가 인류의 마지막 몸부림에 의해 겨우 보존되듯 그것이 어떤 아련한 기억과 그에 관한 신뢰에 기반해 있다면, 마찬가지로 〈라이카〉는 인류의 기억 저장에 대한 강력한 집착을 전제한다. 여기서 기억은 “데이터칩”과 같은 저장 매체를 통해 인간의 손을 떠나 저장 가능하며, 로봇은 그러한 이전 기억이 담긴 칩을 자신의 신체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역할로서 이를 합성하는 게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인간적이라는 데서 이는 로봇의 혼란이 극으로 연장된다. 

    (사진 왼쪽부터) 찬연 역 배우 조민경, 오늘 역 배우 김섬.

    〈라이카〉에는 인간과 로봇의 사고를 비교하는 몇 가지 세세한 지점들이 나오지만, 그것은 로봇의 타자로서의 분리를 이야기하기보다 그러한 경계를 이해하며 통합하려는 어떤 소통의 시험 차원에서 제시된다. 오늘이 찬연을 주인의 말로서 따르는 것과 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공감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럼에도 공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찬연의 오늘을 살피려는 노력은 그 두 존재 사이에 희수가 있었다는 기억을 되새기는 것으로 연결된다―찬연은 찬연의 희수에 관한 기억을 복제해서 자신의 신체에서 읽어 내기에 이른다. 

    여기서 재밌는 건 찬연이 지난날의 감정이 적재된 상태에서 오늘로 인해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데 반해, 오늘은 그런 과정에서 찬연을 확인하고 판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찬연은 오늘이라는 퍼포머에 반응하는 일종의 관객과도 같다는 점에서, 둘의 위치는 기존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구조를 벗어나 있으며, 오늘만이 기억을 통해 진실을 마주하고자 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희수의 기억을 담지한 오늘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찬연의 모습은 기억을 삼킨 오늘이 인간의 모습, 희수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로봇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기억이 인격을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매질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사진 왼쪽부터) 찬연 역 배우 조민경, 오늘 역 배우 김섬.

    〈라이카〉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통해 인간을 성찰한다. 기억을 이전함으로써 로봇에게 어떤 인간다움이 생겨난다. 기실 로봇에 대한 상상력은 인간에게 기억이 갖는 의미, 기억이 삶과 맺는 관계성 따위를 살펴보기 위한 ‘기억이 없는 인간’이라는 조작변인을 거꾸로 재구성하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서 내재적 성숙으로 나아간다면, 동시에 기억 자체가 그러한 현재와의 간극을 풀기 위한 트리거가 된다면, 이러한 미션이 삶의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제고한다면.’ 결과적으로 이러한 가정들이 오늘을 통해 구현된다. 기억은 잘라낼 수 없는 것이며, 삶의 한 축을 이룬다, 그래야만 한다. 〈라이카〉는 기억의 이전 장치로서의 안드로이드의 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갖는 기억의 의미를 증명해 내고자 한다. 

    오늘 역 배우 김섬.

    〈프리미엄〉과 〈라이카〉에서 창작집단 키타카는 SF가 가진 상상력을 통해 기술 문명의 미래가 현재를 어떻게 추동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는 미래 사회가 착취와 계급 사회의 분별이 여전히 남아 있고 따라서 ‘여전히’ 희망이 없을 것을 주지한다거나 인간의 외부로의 이전을 통해 인간의 분절이 발생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더욱 첨예하게 되는 상황을 통해 현재의 다른 위치를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각각 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인 차원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가운데 현재에는 조금의 틈이 생겨난다. 

    창작집단 키타카,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사진 제공=포토비 스튜디오]. (사진 왼쪽부터) 서진 역 배우 이우성, 도희 역 배우 최엄지, 은하 역 배우 임지우.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는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 이전되는 시대에서 조금 더 현실과 가까운 건 〈프리미엄〉으로 보인다. 과잉된 디지털 환경과 휴대전화로 통합되는 세계, 이미지적 재현의 용이함 등에 의해 이미 인간의 기억은 다른 식으로 변환되고 있지 않은가. 로봇의 노동이 일반화된 세계에서 인간의 상징적 노동이 필요한 것과 로봇이 인간의 형태와 특성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는 두 다른 시대에서 〈프리미엄〉의 계급에 대한 질문이 〈라이카〉에서는 빠져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출구 없음의 현재에서 〈프리미엄〉은 더 나은 시간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주체의 고민일 것이다. 그것이 〈프리미엄〉에서는 등장인물들에게 불가능한 시대인 것으로 판명이 난다면, 〈라이카〉에서는 대부분 로봇으로 옮겨간다. 

     

    창작집단 키타카,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사진 제공=포토비 스튜디오]. 오늘 역 배우 김섬.

    〈라이카〉에서 너무나도 로봇 같은 배우 김섬의 연기는 로봇을 타자화된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괴하고 또 적잖이 우스꽝스럽다. 희수의 기억이 뒤섞이며 더욱 혼란스러운 몸으로 곧 역동적인 차원으로 변화하는데, 그렇게 기억이 물질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안무적 차원의 몸과 기억이라는 매체와의 관련성 속에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미엄〉과 〈라이카〉는 두 다른 주제와 관점, 정서 등의 차이와 함께 언어, 움직임 양식 등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그 후자의 차이에서 〈라이카〉가 가진 작품의 새로운 양태가 구현된다고 보인다. 결국 두 희곡은 상이하며 두 주제와 결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두 희곡에 대한 ‘선택’이 유효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이러한 두 희곡을 ‘구현’하는 차원에서, 창작집단 키타카는 여러 매체 간의 종합―두 공연 모두 스크린 활용도가 높은데, 〈프리미엄〉의 스크린이 아케이드 게임의 화면처럼 세계의 짜인 구조 그리고 정보값으로서의 세계를 재현한다면, 〈라이카〉의 스크린은 오히려 무한한 기억 연결망의 복잡다단함과 모호함 그리고 기억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과 함께 다른 방식의 양식을 잘 활용한다고 할 것이다. 

    [공연 개요]

    작품명: 일단 SF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
    작가: 황나영
    배우: 김도이, 최엄지, 이우성, 임지우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작가: 성재현
    배우: 김섬, 조민경

    일시: 10.27(목)-30(일) 평일 19시 30분, 주말 16시
    장소: 씨어터 쿰

    연출: 이정연 
    무대: 고태민
    조명: 강상민
    영상: 송수현
    미술 분장: 이윤아
    움직임 안무: 김예은
    작곡: 우경아, 이철우
    조연출: 박소희
    영상기록: 김병렬
    그래픽: 김도이
    사진: 이찬영
    도움: 이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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