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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인형이 거기 있다!’
    REVIEW/Theater 2022. 12. 26. 14:26

    ‘기존의 인형들’은 2018년 에르베, 여신동, 적극이 참여하며 처음 시작된 이후, 2021년 이경성, 여신동, 김보라가 참여한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rty》[참조: https://www.artscene.co.kr/1794]에 이어 세 번째 공연에는 남긍호, 양종욱, 입과손스튜디오가 참여했다. 인형 제작자 이지형은 각각 이 세 창작자/팀에게 “인형의 조건”으로 조종자(관절), 등장인물(언어, 배우), 소리(감탄사)를 제시했고, 동시에 창작자/팀은 인형 1, 2, 3이 관절을 갖게 된 시점 이후 이를 변형 가능한 상태의 조건에서 전달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양종욱, 〈몸에 대한 말들〉[사진 제공=조음기관](이하 상동).

    양종욱의 〈몸에 대한 말들〉은 인형의 관절들을 테이블에 늘어뜨려 놓은 채 그것들을 향해, 그리고 이후 얼굴과 함께 발화한다. 그 말들은 철저히 분절―분리-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리듬을 형성한다. “너의~”로 시작하는 신체 각 부위에 대한 지시는 크게 두 개의 단위로 분절되며, 앞에 강세가 각각 부여된다. 이러한 작위적인 발성과 발화는 폐쇄적이고 닫힌 대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인형이라는 죽은 존재와 배우로서의 현존 사이에서의 간극을 한층 더 강조하고 부각하는 듯하다. 반면 일정한 알고리듬에 따른 연기술의 일종은 그 스스로를 자동인형의 무한한 반복쯤으로 여겨지게 하는데, 여기서 그의 행위는 인형과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그 차이를 불분명하게 하는 데 가깝다.

     

    양종욱이 인형의 마스크를 잡을 때 〈몸에 대한 말들〉은 변화되는데, 이제 그는 인형을 조종하는 자로서, 이전의 인형에게 말을 지시함으로써 인형을 교육하는 (인형이 되는) 게 아니라 인형에게 말을 부여하는 존재로 변형된다. 인형을 자신의 어깨 위로 올릴 때 인형의 얼굴을 입게 된다. “몸에 대한 말들”은 인간의 인형의 분절된 신체를 경유한 재분절화를 유도한다. 구체 관절 인형처럼, 나열된 인형 조각들처럼 우리의 신체는 언어를 따라 해체된다. 가장 단순하고 투명한 신체로 변화하기. 〈몸에 대한 말들〉은 말들로 채워진다. 그 말은 ‘말’로서 분명한 자리를 남기고자 한다. 또한 ‘말’ 그 자체로서 사라지고자 한다. 따라서 남는 건 결국 배우이다. 배우의 현존술. 인형에 철저히 기대고 있지만, 인형을 가리키며 양종욱은 인형과 분명하게 멀어진다. 인형을 철저하게 분리하지만 분명하게 인형을 안고 있다.

     

    남긍호, 〈검지손가락이 입술에 닿을 때〉.

    남긍호의 〈검지손가락이 입술에 닿을 때〉는 마임의 일반적 양식에 인형을 캐릭터적으로 대입한다. 인형과의 숨바꼭질, 곧 천장으로 올라가는 인형에 닿으려는 계속되는 시도의 실패와 같이 〈검지손가락이 입술에 닿을 때〉는 무대의 장소 특정적인 ‘간격’을 제목으로 은유한다. 또한 이 제목은 인형의 실물에 닿기 전 인형의 살아 있는 듯함의 느낌과 죽어 있음의 명확한 인식 사이의 어떤 부유하는 감각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소극으로 풀어나간 공연은 처음에 인형의 분절을 살아 있는 신체로 연장해보려는 시도와 멈춤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이후 긴 시간의 인형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소기의 내러티브를 생각한다면, 인형과의 거리를 징후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입과손스튜디오, 〈사이에서〉.

    입과손스튜디오의 〈사이에서〉는 테레민 악기가 결합된 악기-인형을 무대 중앙에 둔 채 심청전을 페미니즘적 시선을 경유해 재질문하며 다시 쓴다. 어린 여성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긍정하는 원작을 점검하고 비판하는 이러한 시선은, 전통과 현재의 간극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형과 공연의 사이, 곧 인형과의 물리적 거리를 그 제목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전자의 시의적절한 가치보다 후자의 인형에 대한 새로운 역량 창출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부분일 것인데―이 공연은 ‘기존의 인형들’이라는 물리적 조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일종의 ‘미션 클리어’식 공연이다.―, 사실상 이승희가 인형 아래 처음 등장했다 이후 덩그러니 그 인형이 남겨져 있는 것처럼 인형은 공연으로 온전히 융합되었다기보다 인형이라는 잔여물 또는 불순물의 곤란함, 그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감에 방점이 찍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양종욱, 〈몸에 대한 말들〉.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은 한 달 정도 인형을 받고 작업 기간을 가졌다고 하는 것―12월 2일 공연 후 작가와의 대화―처럼 비교적 매우 짧은 시간 작업자들의 작업이 이뤄졌고,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었다고 할 것이다―양종욱은 배우라는 매체 자체를 인형을 매개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세 작업 중 상대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인형과의 거리를 지시하는 세 공연의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물론 확실하지 않지만, 그동안 ‘기존의 인형들’의 작업들이 대부분 인형의 모호한 생명력을 가시화했다면, 곧 인형의 잠재성을 드러내는 역량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은 인형과의 거리 자체로부터 출발해 그 인형과의 거리를 완전히 좁히거나 파훼하지는 못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형은 사물화되거나 비가시화되기보다 여전히 어떤 모호한 신비에 싸여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이후 ‘기존의 인형들’이 가져가야 할 단초가 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2022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2022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포스터

    기간: 2022.12.01.(목) ~ 12.03.(토) 평일 19:30, 주말 15:00

    장소: 플랫폼L, B2 플랫폼라이브

    관람연령: 8세 이상

    러닝타임: 90분

    예매: 네이버 예약 ‘2022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현장 예매

    문의: Instagram @articulator_seoul

     

    〈창작진〉

    컨셉/구성: 이지형

    연출1: 남긍호

    연출2: 양종욱

    연출3(공동창작): 이승희, 이향하, 유현진 (입과손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추수연

    프로덕션 조연출: 곽예진

    영상감독: 정마농

    영상디자인: 정민진

    조명디자인: 윤혜린

    무대감독: 김상엽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홍보: 이현정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단막극1.

     

    〈검지손가락이 입술에 닿을 때〉, 남긍호

     

    말의 언어를 박탈당한 침묵 안에서 마임과 인형의 만남에 대한 작업이 저에게 오랜만에 공연할 때의 설레임을 가져다 주네요. 공연 연습 과정에서 인형의 존재와 베케트적 상황 속 인물의 동질성을 몸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통해 발견합니다. 둘을 서로 대입시켜 그 화학작용을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시도해보면서 관객에게 다양하고 열려있는 의미가 전달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구성, 연출: 남긍호

    출연: 남긍호

    조연출: 박민호

    음악작곡: 조용경

    무대소품: 이예원

    무대진행: 진완시

    음향오퍼: 이송아

     

    #단막극2.

     

    〈몸에 대한 말들〉, 양종욱

    양종욱은 인형의 몸으로부터 수집한 말들을 발화한다. 양종욱은 그 말들을 통해 가닿을 수 있는 체감에 주목한다.

     

    구성, 실연: 양종욱

     

     

    #단막극3.

     

    〈사이에서〉, 이승희‧이향하‧유현진(입과손스튜디오)

     

    무대 위 소리꾼에게 주어지는 ‘소리’는 장단이자, 호흡이며 그 자체로 존재가 된다.

    소리를 내는 인형이 ‘판’ 위에 등장하면서 소리꾼과 고수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리듬으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인형과의 짧지만 의미 있는 만남을 기대하며 많은 이야기들 중 전통판소리 심청가를 들췄다.

    눈 먼 아비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빠진 소녀 청. 그의 생 마지막 30분.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인형이 함께하는 판 위에 우리는 원안에 없는 이야기를 조그맣게 펼쳐보고자 한다.

    새로운 ‘존재(인형)’의 등장은 오랜시간 다져온 소리판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 놓게 될까?

     

    소리꾼: 이승희

    고수: 이향하

    공동창작: 이향하, 이승희, 유현진

    음향감독: 장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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