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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판야무, 〈WORK〉: 극장으로 돌아가는 몸들
    REVIEW/Dance 2023. 1. 2. 19:47

    춤판야무, 〈WORK〉ⓒadela.[사진 제공=춤판야무](이하 상동). 〈추락〉의 한 장면. (사진 왼쪽부터) 정한별, 금배섭.

    춤판야무의 〈WORK〉는 무대 위에 몸을 두고자 한다. 이 몸들은 우화적이거나 우스꽝스럽고도 진지하게 작동하지만, 이들은 뭔가 신성한 무대를 향해 간다. 수행적인 몸은 표현 양식의 심미적인 차원만을 추출할 수 없음을 가리키기보다는 몸이 작동하고 있음 자체를 확인하게 한다. 관객이 이 몸이 어떻게 기어이 그 과제를 수행하는지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몸이 얼마나 더디고 떨리며, 따라서 진동과 호흡의 신체로 육박하는지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몸은 인식 주관을 따라올 수 없고, 예기치 못하게 미끄러진다. 옴브레의 음악은 몸과 몸,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 적절하게 ‘간격’을 삽입한다―그것은 전개되기보다 진행된다. 무대 안쪽에는 각재를 활용해 임시로 짠 프로젝터가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가 있는데, 최종 화면이 나오는 곳에 씌운 천으로 인해, 관객은 영상의 정면이 아니라 뒤집힌 면을 보게 된다. 

    〈꿈〉, 〈추락〉, 〈대화〉,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 〈햄릿 4막 7장〉까지 다섯 장으로 나뉘는 〈WORK〉는 다른 장을 형식적이고 메타적으로 포괄한다. 작업‘들’은 개별적인 작업(work)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동시에 하나의 빈 공간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네 명의 퍼포머들에 의해 펼쳐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연결성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추락〉에서 사용한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다섯 개 놓였던 긴 막대는, 무대에 재등장하며 무대를 재점유한다. 

    〈꿈〉은 암전 속에서 약간의 기울기를 준, 교차시켜 든 얇은 천 위에 몇 개의 손전등을 얹어 천천히 내려뜨리는 작업으로, 희끄무레한 빛으로만 퍼포머의 몸짓과 극장이 분별된다. 물리적으로 더딘 이러한 빛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하나의 과제이며, 퍼포먼스는 그러한 더딘 시간을 향한다. 따라서 극장은 하나의 과제에 대한 염원과 그것의 예기치 않은 변화를 숨죽여 보게 되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숨죽임의 시간이 신성함을 만든다. 
    〈추락〉은 긴 막대에 밥그릇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행위들을 부각한다, 또는 추락의 어쩔 수 없는 광경을 기어이 목격하려는 작업이다. 그 막대를 머리에 이고 앞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권정훈의 움직임 이후, 그리고 금배섭과 김석주가 무대 좌우로 등장해 과잉된 군인의 제식 행위를 취한 뒤 비비탄총을 들고 밥그릇에 총알을 맞히는 장면들 이후, 그럼에도 ‘추락’하지 않은 밥그릇들이 실린 막대를 금배섭과 정한별이 이어받아 움직임을 취한다. 이런 제약된 구조 속에 움직임은 어느 정도 한계를 부착한다.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이며 퍼포머는 움직임을 소화해야 한다. 그 제약됨을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취해야 한다. 

    금배섭의 무미건조한 표정이 그 어려움을 어떤 한계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면, 정한별의 묘한 미소는 정수리를 막대와 결착시킨 채 움직임으로 인한 그 반동이 다시 신체에 미치는 효과를 긍정하는 스펀지와도 같았다. 곧 머리의 유지 자체는 몸을 곧추세우는 춤의 일부가 되었고 거기서 움직임을 만드는 건 훈련과 기지를 요청했다. 정한별이 빠지면서 금배섭의 중심은 묘연해졌고, 의도적으로 구조물과 결합된 신체의 중심을 잃는 동작이 부각되었다고도 보인다. 결국 밥그릇은 ‘추락’한다. 

    〈대화〉. 김석주.

    〈대화〉는 이 둘이 다시 김석주와 권정훈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바통은 그 전에 종이를 말아서 입구를 좁게 만든 고깔 모양의 구조물이다. 이를 착용한 채 둘은 대화를 하는데, 이는 깔때기를 앞으로 향함으로써 서로를 향하기보다는 특정 주변에만 증폭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옮겨 가며, 오히려 서로를 보지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가운데 소통의 한계를 겪는 몸짓들을 보인다. 여기서 발생하는 언어, 발화는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에 이르면, 중간에 나오는 노래와 말 들로 한층 고차원적이 된다. 별다른 음악적 증폭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바닥에 깔린 간격이 있는 매트를 딛고 발화하는 몸짓들은 일종의 연출된 b급 뮤지컬을 보는 것도 같다. 

    김석주가 와인잔에 든 쌀알을 바닥에 뿌린다면 정한별은 오체투지를 하며 와인의 표면을 불어 방울들을 튀기다가 입에 잔을 물고 계속 이동하는데, 무대의 물리적인 거리와 공간감을 몸으로 수놓으며 확인시키던 ‘더딘’ 시간을 지나면, 이후 등장하는 김석주의, 사물과의 결착과 다음의 움직임 다음의 노래는 노래가 춤과 버무려져 있다기보다는 그 발생 구조 자체를 새롭게 재편하며 기원을 다시 쓰는 움직임이다. 여기에 뒤쪽에서 금배섭과 권정훈의 움직임과 노래, 발화가 코러스로 침입하며, 권정훈은 제목을 상기시키는 쌀로 신수를 보는 무당의 모습을 중간중간 재현한다. “Domaine Prieure Roch vosne-Romanee Premier Cru Les Suchots 2011(도멘 프리에르 로크 본 로마네 프리미어 크뤼 레 슈쇼 2011)”이라는 도멘 프리에르 로크 양조장의 긴 와인명을 가져온 노래 제목이 독특한데, 가사는 반복에 반복을 더해도 반복이라는 기이한 화법이 적용되었다고 하겠다. 하나씩 장면을 쌓는 노래는 굉장히 힘이 있다. 점증되며 거세져 극장을 압박한다.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 김석주.

    〈햄릿 4막 7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거투르드가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인 ‘4막 7장’을 정한별이 수행하는데, 카메라가 담긴 수조에 얼굴을 담가 숨을 참다 나오는 동작을 반복한다. 여기에 다른 셋은 뭉쳐서 이를 지켜보며 굼실거리는 포즈들을 취하는데, 뒤쪽의 프로젝터-구조물을 빼서 무대 왼쪽에 두고 난 이후, 그 안에 들어간 거트루드-정한별의 움직임이 강조된다. 프로젝터에 비친 다리 쪽이 커다랗게 된 그림자로 등장하는 가운데, 상체 쪽의 움직임은 마치 그것과 결합‘하려 하며’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끙끙거리는 것처럼 비친다. 곧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처음의 직접적인 신체 수행은 엄밀히 자신의 신체에서 확장된 미디어 이미지이지만 결과적으로 신체를 지배하며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와 조응하기 위해 애쓰는 행위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에 빠지는 광경을 연출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체는 더 큰 그림자로 변화하는 동시에 그 그림자로, 곧 자신을 집어삼키는 곳으로 투신하는 것과 같다. 

    〈WORK〉는 무용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몸들이 현전하는 곳으로서 극장을 만들며, 말이 움직임의 일부가 되며 발화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WORK〉는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되묻는다. 무대 위에 몸이 쌓이고 장면은 명확해진다. 아니 장면은 몸의 확장이다. 그 몸들은 “허상”을 바라보고자 했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까. 허상으로서의 실재가 곧 무대의 본질(에 대한 주장)이라면, 〈WORK〉는 그것을 향해 한 걸음씩 달려 나간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Work
    일시: 2022년 12월 29일(목)-30일(금) 오후 8시, 12월 31일(토) 오후 4시 30분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길이: 80분
    주최·주관: 춤판야무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내디내만, 가인기획획 
    예매처: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02-3668-0007 | theater.arko.or.kr / 인터파크티켓 ticket.interpark.com
    문 의: 프로듀서 신재윤 adela.jys@gmail.com

    〈크레디트〉 
    안무: 금배섭
    영상, 사진: 박태준, 박효진 
    의상: 김지연
    작사: 김풍년 
    음악: 옴브레 
    조명: 정유석 
    음향: 남영모 
    진행: 김계남 
    무대: 오진경 
    포스터: 주용빈 
    무대감독: 이수연 
    기획: 신재윤
    출연: 김석주, 권정훈, 정한별, 금배섭 
    제작: 춤판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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