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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란 안무, 〈버자이너의 죽음: 신화 짓기〉: ‘이 시대의 신화가 발화하는 법’
    REVIEW/Dance 2022. 12. 26. 14:13

    서영란 안무, 〈버자이너의 죽음: 신화 짓기〉ⓒSwan Studio[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염정연, 정이수, 정언진, 곽유하 무용수.

    여성의 어떤 특별한 감각이라는 것을 지칭할 수 있을까. 서영란 안무가의 〈버자이너의 죽음: 신화 짓기〉(이하 〈신화 짓기〉)는 그러한 감각을 고대의 배제되었다고 하는 여신 신화와의 너른 연결을 통해 확장하려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신체에 남아 있던 어떤 감각 또는 꿈에 나온 신체의 다른 표현형과 같은 것이 어떻게 기존 신체와 연결되는지를 서술하고자 하는데, 이는 일종의 전의식적 발화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누군가의 말은 다른 누군가의 신체가 닿는 보족 또는 지지 행위를 통해 몸의 경로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내용적인 차원과 맞물리지 않으면서, 비가시적인 차원에서 몸의 연대, 여성 간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다른 메타포를 낳는데, 이는 그 여분의 존재들이 특정 존재가 아닌 불특정한 존재들임에도 어떤 의식적인 차원의 교류나 대화 없이 교집합적인 차원에서 서로가 맞물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두 신체의 접합을 특별한 언어로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신비화된다.

    곧 옆에서 또 뒤에서 등등 나타나는 여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의식을 가진 존재로 상정된다. 그는 현실의 존재가 무의식이나 비의식의 차원으로 들어갔을 때의 또 다른 차원을 지배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의 나타남은 그 이전의 존재들을 일종의 그림자로 만드는데, 신체가 닿는 부분으로부터 탐미적으로 신체가 확장됨이 느껴진다. 멈춘 부위들은 정적이 된 채 닿는 부위의 감각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이전의 존재는 그것에 특별히 감응, 의식화되지 않음으로써 이는 미지의 작용, 다른 차원에서의 접속으로 처리된다.

     

    〈신화 짓기〉는 여성 신화의 전사와 현재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떤 기준이나 체계 없이 뒤섞고 ‘병렬’시키는 데 가까운데, 그럼에도 기준이 있다면 후자의 것이 선행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전자가 출현한다는 것 정도로, 〈신화 짓기〉는 그 둘의 편집 강도를 다르게 처리한다. 가령 후자가 어떤 한 명의 경험처럼 갈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띤다면, 전자는 파편적인 문장의 단위로 해체되어 더 불분명한 것들로 따라서 이전과 이후의 문장과 결합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는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윤상은, 정이수, 염정연, 곽유하 무용수.

    〈버자이너의 죽음〉(2015)은 퍼포머들의 무작위적 양립의 차원이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어떤 공연의 프로세스 차원에서의 가감을 제한다면, 이러한 차이는 결정적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버자이너의 죽음〉은 무대 위에 그러한 ‘발화’ 자체를 조건 반사적인 신체들을 통해 병렬시킴으로써 그 발화가 무차별적이고 대등한 차원에서 각자의 다른 신체 양상으로부터 유래함을 전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신화 짓기〉는 그 신체와 말이 엄밀하게 온전히 합성되지 않는 차원으로 발화를 전개함으로써 이 주체의 진실성 자체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가져간다. 곧 신체는 어떤 예시들을 재현하는 신체이며, 신체와 다른 신체의 합성 가운데 신체는 특별한 기술을 한다. 그것은 퍼포머의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 여성의 것도 아니고 차라리 어떤 불특정한 비가시적 연합의 일부에 가깝다.

     

    비의적인 말의 단편을 바깥에서 불러주고 이를 기계적으로 되뇌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둘의 교류가 발생하는 것 역시 아니다. 이는 마치 즉흥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방식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그 말의 의미가 해독될 수 없음을 떠나 그 말의 주권은 누가 갖는 것인가. 누군가의 말이 체외적으로 합성되는 장면에서, 말은 순전히 재료로서의 의미, 움직임과 말을 매체로 합성하는 차원으로서의 의미가 된다.

     

    (사진 왼쪽부터) 염정연, 정이수, 윤상은, 곽유하 무용수.

    〈신화 짓기〉는 누군가의 경험 이후 무대 가로 돌아가서 다시 무대로 들어서는 재귀적인 구조를 가져간다. 이는 마치 웜업처럼 가볍게 몸을 풀고 현재에 결합하는 즉흥적인 무대의 일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화 짓기〉는 고대 이후 신성으로서의 “버자이너의 죽음” 이후(에도) “신화 짓기”(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져가는 것일까. 그러한 신화 짓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버자이너의 죽음과 신화의 죽음을 동렬로 놓는 것일까. 곧 버자이너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신화가 불가능한 시대에 그 신화의 잔재를 갖고 이전의 신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 같은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신경증적으로 그것을 반복하는 제스처일까.

     

    〈신화 짓기〉는 누워 있음 자체의 신체, 전반적으로 재잘거리는 말들과 예리한 접촉 외에 무너뜨림을 반복하는 포즈들(윤상은), 반복 강박을 보여주듯 정체된 자리에서의 영속할 것 같은 한 동작(정언진), 심층을 부정하며 어떤 에너지 자체의 집적됨을 보여주는 표면으로서의 신체(염정연) 등 다층적 레이어를 통해 전수되며 산포되는 비언어의 언어적 형상을 그리고 신비한 얽힘과 공생의 느슨한 네트워크에 다가선다. 신화‘로부터’(의 듣기)와 ‘또 다른’ 신화의 (말하기의) 간극 속에서 또는 이미 실패한 신화와 그럼에도 실패하는 신화 사이에서 〈신화 짓기〉는 어떤 주저함도 없는 듯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STEP UP 스텝업

    일시: 2022-11-25 ~ 2022-11-27 금 7:30PM 토 3PM 7:30PM 일 3PM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관람등급: 8세 이상 관람

    문의: 02-3472-1420

     

    공연명: 버자이나의 죽음: 신화 짓기

     

    안무: 서영란

    공동창작 및 출연: 곽유하, 염정연, 윤상은, 정언진, 정이수

    사운드 디자인: 강안나

    사운드 테크니션: 홍초선

    의상: 김은경

    영상자막 디자인: 김보라

    무브먼트 리서처: 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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