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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비밀기지,〈라이더〉: 두꺼운 미시사의 표면들
    REVIEW/Theater 2023. 1. 24. 22:52

    연극 〈라이더〉(작가 고정민 / 연출 신진호)ⓒ이지수(이하 상동). (사진 왼쪽부터) 밀리 역 조혜안, 호영 역 이재혁, 선생 역 하지은, 호영 아빠 역 최태용, 세훈 역 최호영.

    아마 현실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극은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메타-현실의 관점을 창안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인 형식이 되지는 않더라도/않겠지만 일부분 그러한 지점에서 ‘현실’을 반향하는 바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라이더〉의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자신의 장면이 끝나고서도 그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배우들에 있다.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의도치 않은 개입에 적잖이 당혹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 연극과도 같은 현실에 부가적으로 동기화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주로 무용 공연의 일종의 워크숍적 순환의 차원으로 종종 등장하는 이러한 구도가 〈라이더〉에서는 조금 더 지나친데, 이들의 존재가 무대로 함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발화(의 장면)에서 구성되는 ‘내면’이 발화 없이 태도와 감정 등을 종합한 입체적인 입장의 차원으로 비쳐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과제임이 틀림없다. 

    (사진 왼쪽부터) 세훈 역 최호영, 밀리 역 조혜안.

    ‘미등록 이주민’ 모녀 관계인 밀리네, 밀리(조혜안 배우)와 엄마(이은정 배우), 이들을 식당 직원으로 채용한 호영(이재혁 배우)의 아빠(최태용 배우)와 호영, 부자 관계, 이 두 가정의 네 인물이 하나의 중심 무대로서 식당을 공유한다면, 그 사이에는 이를 불법으로 고용했던 전 사장(강세웅 배우)가 있다. 
    밀리의 요구에 따라 호영의 아빠가 이들과의 계약서를 마련하려는 노력은 전 사장의 눈에는 고깝지 않게 보인다. 반면 이러한 그의 노력은 밀리네에게 온정을 베푸려는 태도와 함께 입체적으로 연장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지위를 어떻게 개선하는지는 미지수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 노력의 가치마저 다소 모호해 보이는 결과를 낳는데, 현재의 식당이 실패하며 전 사장과의 관계 역시 최악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인권은 다분히 부차적인 부분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승리’는 전 사장의 냉소를 향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라이더〉는 현실의 관습적인 자본주의적 논리가 굳건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립하는 건 사실 연대의 역량과 미시 정치의 실패라기보다는 ‘타자’에 대한 태도 그 자체가 아닐까. 곧 미등록 이주민이 한국 사람과 같지 않다는 현실. 
    여기서 호영의 아빠는 왜 현실을 억센 태도로 이어 나가려는 의지가 없을까―그의 아들이 현실적으로 명석하게 가게를 이끌어 가는 듯 보인다. 그 반대편에서 그가 계약서 관련해서 법을 공부하고 언어를 세공하는 과정이 그가 올바른 노동에 대한 이념을 수호하려는 뜬금없거나 고귀한 행위―곧 모호한―라는 양가적인 해석으로 이어지는 건 그의 공허한 얼굴 자체가 어떤 것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진 왼쪽부터) 밀리 엄마 역 이은정, 선생 역 하지은.

    타자에 대한 태도라는 건 곧 미등록된 존재, 곧 온전한 존재로 식별되지 않는 존재의 입장 너머에 있(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아니 그 존재 너머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라이더〉는 미식별된 잠재적인 존재인 엄마를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려는 밀리의 행동을 통해 내파한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이 무대 공간의 주인 또는 당사자가 아닌, 이 공간을 손님으로 등록하는, 이곳의 라이더 세훈(최호영 배우)의 10년 전 고등학교 담임 선생(하지은 배우)이다. 그의 갈등은 가정 파탄에서 시작하지만, 그 시작에는 세훈이 있고, 정작 세훈과의 가치관의 차이가 갈등의 축을 만든다. 
    ‘꿈’과 ‘의미’와 같은 낱말들, 빛과 어둠의 메타포 등은 삶에 대한 관점을 추상적이고 강력하게 응축한다. 이러한 언어 사용을 기점으로 인물들은 새롭게 분별된다. 현재를 즐겨라라는 의사-카르페디엠적 가치를 내세우는 세훈과 이미 많이 심드렁해진 담임의 언어는 상당 부분 다르다. 전자의 사고관이 라이더라는 임시적인 속성의 일과 맞물리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다분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두 가지의 ‘냉소’의 태도, 곧 절차의 이념을 존재의 이념처럼 신뢰하는 것―법의 토대가 형상화하는 인간의 실존을 향해―과 끝없는 현재만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척되는 태도―‘영원한 낙관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는 힘을 얻고 승리한다. 따라서 〈라이더〉는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더〉의 시선들이 투영되는 하나의 시공간의 설계는 비루한 현실의 무게를 지지하는 것으로 기운다. 고통과 어려움의 반복된 일상을 눈앞에 두고 어떤 개입도 가능하지 않다. 이는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삶이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 사회적인 것에서 대안을 구축할 힘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을 극단적으로 변전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대로 유지하는 건 막이 전환될 때 일사불란하게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행위들이다. 사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들은 무대의 소품을 옮기거나 순수하게 무대를 변형시키기도 하지만, ‘라이더’로서 뛰어다니는 행위 자체를 시현하기도 한다. 무대 뒤쪽에 놓인 3단 구조물은 그런 행위의 가속에 유용하게 쓰인다―가설의 구조에서 연장된 역동적 놀이의 시간은 극단 비밀기지의 전 작업 〈사라의 행성〉(2022)에서도 유사하게 발현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세훈 역 최호영, 사장 역 강세웅, 밀리 엄마 역 이은정, 밀리 역 조혜안, 호영 아빠 역 최태용.

    〈라이더〉의 갈등들은 해결의 국면을 보이지 않는다. 딸의 신고를 알든 모르든 법의 경계를 적용받게 될 엄마, 가게가 망하고 라이더로 하강한 호영의 아빠, 선을 보지만 새로운 사랑으로 시작하지는 않는 담임의 경우 모두 비극적인 현재의 상황에 있다. 그럼에도 이는 거대한 변경이라기보다 소소한 침강 정도로 보인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직업에 대한 구체성도 크게 지시되지 않지만, 세훈을 가리키는 ‘라이더’라는 정체성의 함의, 곧 현재를 향해 가속하는 행위의 반복은 더 나아지는 게 아님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일시: 2023년 1월 12일~19일 평일 19시 30분 / 주말 15시 (약 120분) *18일, 19일 회차 음성해설과 한글 자막 제공 / 접근성(배리어프리) 공연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주최/주관: 극단 비밀기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SGI서울보증, Artistree

    관람연령: 만 12세 관람 가능
    문의: 극단 비밀기지 bimilgigi@naver.com

    〈주요 참여진〉
    작가: 고정민 
    연출: 신진호
    배우: 강세웅, 김준광, 이은정, 이재혁, 조혜안, 최태용, 최호영, 하지은

    〈스태프〉
    드라마터그: 신윤아
    음악감독: 공한식
    무대디자인: Shine_od
    조명 디자인: 곽태준
    무대감독: 이뮥수
    무대조감독: 이수연
    그래픽 디자인: 유디니크
    굿즈 디자인: 김정윤
    분장: 장경숙
    소품/진행: 황예선
    의상 디자인: 김미나
    조명 오퍼레이터: 염진혁
    공연 사진: 박태양
    공연 기록영상: 플레이슈터
    홍보 사진/영상: 박준규
    무대제작: 와스테이지
    음성해설 대본·낭독: 서수연
    자막해설 제작·오퍼레이션: 구태훈
    접근성 콘텐츠 제작·운영: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조연출/접근성매니저: 방윤선
    PD: 김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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