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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
    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유경오[사진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상동). (사진 좌측) 노스체 역의 최희진 배우.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사진 좌측부터) 희 역의 김민주 배우, 현 역의 윤정로 배우.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 동시에 생존을 위한 모색이 자율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장소이다. 노스체는 멧돼지를 막는 벽을 쌓는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써 이곳에 간극을 막는 상징적인 존재자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노스체에게는 이곳의 위험이 자체 경보 장치로 육화되며 오히려 인간이 아닌, 폐허에 부착된 세계 내 생태적 위협의 비가시성을 전면화한다. 
    희와 현과 옥의 악화된 신체 부위는 이를 증언하지만, 그것은 위험에 물들어 있음, 그것에 익숙해져 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데 가깝다. 이는 19세기 유럽, 탄광에서 유독 가스를 감지하는 카나리아와 흡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노스체는 인간보다 더 알고 있고 더 민감하며 그들을 위한 위험을 감지하고 막기 위한 목적에 순전히 복무한다는 점에서‘만’ 숭고한 타자성을 가진다, 물론 그가 인간을 철저하게 닮아 있다는 전제 아래. 그가 위험을 감지하는 방식이 그의 몸 총체가 뒤흔들리는 사태로 드러난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과연 방사능으로 인해 몸의 기능을 상실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오히려 환경의 특수성을 전제한 채 인간의 곁에 머문다는 원래의 목적성―작품의 배경으로, “재난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노스체가 압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울려퍼지는 세상이다.―을 생각한다면 자연스레 그 반대의 확률을 생각하는 것이 물론 더 낫다. 따라서 그의 총체적 몸의 흔들림은 그의 연약한 존재의 차원을 가시화한다. 

    라틴어로 ‘알아라’를 뜻하는 ‘Nosce’를 참조하면, 노스체라는 존재는 인간 자신에 대한 교훈적 의미를 상기시킨다. 노스체가 아는 것은 인간이 모르고 있음을 전제하며, 노스체가 아는 것은 그가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함으로써 아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안다는 것은 물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안다는 것 역시 포함한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따라서 그의 앎은 사실 인간의 무지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앎이 곧 인간의 비-앎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곧 그 자신의 역할을 메타 인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의 희생은 철저히 자기 이익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자체로 순수하다. 
    〈노스체〉가 상정하는 현실은 재난을 재현하고 설명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또는 재개발에서 유예되는 공간의 메타포에 가깝다. 곧 일종의 다크투어리즘의 일환으로 이곳은 외부 사람들에게 방문되며, 일상과 다른 어떤 곳으로서 지정되어 탐험과 개발에 대한 욕망을 추동한다. 미래의 파국이거나 과거의 실제 경험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기보다 현재의 모습을 추론하게 한다. 극을 추동하는 존재 간의 갈등 양상은 외부 존재로 인한 것인데, 이곳에서 살아가던 이들과 외부에서 이곳을 찾아온 사람 또는 존재 사이에서 촉발되는 경계선상의 갈등, 주로 연과 현 사이에서 발견되는 갈등은, 다분히 회고적이며 현재 유효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사진 좌측부터) 희 역의 김민주 배우, 필 역의 선명균 배우, 노스체 역의 최희진 배우, 연 역의 박윤정 배우, 옥 역의 김은희 배우, 현 역의 윤정로 배우.

    연은 원전 폭발과 함께 남편이 죽고 주홍글씨를 입은 채 뱃속의 현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떠났다고 하는데―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는 차원일 것이다.―, 그가 현에게 갖는 감정은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한 소명인지 현에 대한 애틋함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 둘 다 해당하지 않는 듯 보인다. 반대로 현이 연에게 갖는 감정은 원한 감정이나 좌절된 애착의 형태와도 연관되지 않는 듯하다. 결국 갈등이 전면화되지만 둘의 내면에서 분명해지는 건 없다―오히려 그 둘 다 서로의 존재가 더 이상 ‘어느 순간부터’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같은 갈등은 분명해질 수 없음, 그 감정의 양상이 모호함을 알려줄 뿐이다. 모자 관계라는 통상의 이념형으로 소명되는 혈육의 관계는 균열과 굴절의 양상 속에 미끄러질 뿐이다. 

    〈노스체〉는 결국 남은 자와 떠나는 자라는 메타포를 점유한다. 연은 현을 이곳에 놔두고 떠났다 돌아왔으며 다시 떠난다. 후반으로 가며 기침을 하며 극단적으로 몸의 고통을 표현하던 희는 오히려 이곳에 남는데, 사실 그러한 선택 역시 우연으로 보인다. 결국 이곳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건 이곳에 남아 있던 것의 합목적성이 아닌 우연성을 말해줄 뿐이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재난이 있음에도 이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었던 불가피함에 적응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럼에도 이들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음을 알고, 따라서 그것이 주는 자유로움과 자율성의 질서 역시 알고, 그것이 전도되는 것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거기에는 재난의 가시성을 보여주는 노스체의 영향 역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단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살필 수 없이 묘연한 행방을 맞는다. 그와 함께 이곳을 여행차 들른 무리의 한 사람이었던 필은 떠나느냐 남느냐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증발’된다. 이곳은 부재의 공간이 된다. 
    마지막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남은 노스체는 “재난”과 “사람”이 겹쳐진 이곳의 공통분모가 사라지자 재난이 없는 곳으로 또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을 따라 가지 않고 재난이 있었던 이곳에 남는다. 노스체는 관성의 자리를 택함으로써 본래의 프로그래밍의 언어, 곧 향상성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이는 자의적이고 따라서 자율적인 선택의 몫으로도 보이는데, 그가 이곳에 온 것이 임무에의 복속일 것이라면, 이러한 사태에 대한 규약이 없을 때 그는 어떻게 ‘부재’의 자리를 점할 수 있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옥이 말한 “무화과가 열릴 수 있는 정도”의 장소는 어떻게 반향되는가. 이는 생태 측정 지표로서의 노스체의 신체와 같이 자연이 가진 생명력이 영속하는 가운데 위치하는 그것에 의존하는 ‘그 아래의’ 존재를 전제한다. 결국, 〈노스체〉는 인류세 이후 인간의 생태 존중의 사상을 하나의 메시지로 던지고자 한 것일까. 그보다 몫이 없는 자, 상징 질서로부터 벗어난 자, 벌거벗은 자가 지닌 삶의 철학이 폐허의 세계 이후 자연이라는 존재항과의 관계로 단순화 그리고 확장되는 미래의 인류가 지닐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공연 개요]
    공연명: 〈노스체(NOSCE)〉 2022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연극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일시: 2023년 02월 03일 (금) ~ 2023년 02월 12일 (일) 화,목, 금 8시 / 수 4시, 8시 / 토 3시, 7시 / 일 3시
    관람연령: 8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프로젝트집단 세사람
    후원: SGI서울보증, ARTISTREE

    〈만드는 사람들〉
    출연: 김은희, 선명균, 박윤정, 최희진, 윤정로, 김민주
    작가: 황정은
    연출: 윤성호
    무대감독: 박진아
    무대디자인: 박상봉
    분장 및 소품디자인: 장경숙
    조명디자인: 노명준
    사운드디자인: 유옥선
    의상디자인: 김미나
    자막디자인: 이효진
    조명오퍼레이터: 이혜지
    음향오퍼레이터: 오재성
    자막오퍼레이터: 임민정
    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홍보물 사진: 강희주
    조연출: 안윤조
    기획홍보: 안희성
    프로듀서: 김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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