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상은,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 발레라는 문지방으로 들어서기REVIEW/Dance 2026. 1. 31. 21:22

윤상은 안무,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오프레임(이하 상동).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이하 〈메타발레〉)는 발레 자체를 비트는 시도인데, 이는 곧 발레를 부정하고 거기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의 심급을, 발레에 대한 관점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잠재적이며 수행적이지만, 그 표현의 일체는 ‘모호하게’ 가시화된다. 곧 표면은 비틀려 있다. 뒤로 갈수록 〈메타발레〉는 하나의 공연의 형태를 완성해 가게 되는데, 이때 그 공연 역시 그것이 공연으로 완수되는 것인지 공연이라는 형식에 우연하게 근접한 것인지, 더 정확히는 무용수가 (또 하나의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인지 무용수라는 하나의 역할이 공연으로 연장되는 것인지 전적인 혼동 아래 놓인다.
무용수마다의 여러 레이어가 중첩된 형태로 주어지며, 그 일부를 이어 받아 다른 무용수의 개입이 일어나는 구조 일반의 차원에서, 각각의 춤이 파편으로서 삽입되어 단지 종합될 뿐이라는 흐름 아래, 〈메타발레〉의 마지막이 가리키는 건 그것이 또 다른 것의 개입 혹은 침투를 허락하지 않는 매끄러운 하나의 장이 ‘비로소’ 펼쳐진다는 것인데, 곧 네 명의 무용수가 결코 어떤 주도권도 완전히 가져가지 못하는, 그들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펼쳐내는 발화의 장소 일부를 획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처음부터 내재적으로 분열―그 음악이 두 개의 절합이듯―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무용수의 차례로부터 그것이 탈환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는 다음 사람의 자리를 미리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메타발레〉의 안무는 곧 무용수를 주체화하는 동시에 탈주체화하는 방식이다. 정확히는 분열의 조건을 통해 무용수를 곤궁으로 모는 것이다. 곧 ‘구겨진 아티튜드’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용수의 세계가, 우리가 보는 세계가 비틀리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즉흥’이라는 방식은 주체의 자율성을 주지만, 세계의 불완전한, 변동적인 토대로 인한 취약함으로부터까지 전적인 자유를 주는 건 아니다. 네 명의 행위자는 자율성을 띠며 동시에 독립적인데, 이는 어떤 역할들의 총체로서 극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음을 또한 의미하며, 대화는 후반부의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는 장치로서 쓰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공연의 방향을 조정하지는 못한다.

처음 넷은 자신의 ‘즉흥’ 이후, 아마도 그에 대해 종이에 메모하고, 그 종이를 구겨 버리는데,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수행-폐기의 구조는, 움직임에는 음악이 꺼지고 메모 행위에만 음악이 켜진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음악과 움직임의 관계 역시 비틀려 있다. 이는 그것이 결코 공연이 아니며 즉흥이라는 점을 명시하는데, 공연이 아닌 무엇을 하고 있다라는 건 그 사람의 고유한 권한으로, 시간으로, 자율성으로 오로지 소급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메모 역시 결코 움직임의 어떤 표현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 역시 아닌데, 오로지 그 상기의 차원에서만, 내재적인 차원에서 공연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네 개의 파편적 무대가 하나의 공간을 순서대로 분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겹쳐지는 레이어이자 사라지는 실루엣이라면, 그리고 거기에는 각자의 관성과 포즈가 기입된다면, 후반 이들은 대화로써 둘 혹은 셋의 쌍을 이루면서 닫힌 시간에서 벗어나 현재성의 시간을 비로소 만드는데, 이로써 처음의 정지의 기술이 체현하는 특정 공간의 제한된 크기는 혹은 하나의 틀 공간에서 극대화된 포즈로써 포획되는 제약된 신체는, 배가된 긴장과 우스꽝스러운 균열 혹은 긴장으로서 우스꽝스러움의 시험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마침내 관계로써 열린 공간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발레에의 고독한 개별 주체의 시험과 관계에서의 사적 대화가 대비된 공간을 상정하면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의 모티브는 텅 빈 내용과 충만한 형식을 이루는데, 이러한 잡담의 구조, 특별한 의미 없는 인사의 성격을 띤 말로부터 시작된, 개별 주체의 사적인 삶과 이야기로의 자연스러운 연장은 발레의 내용을 힘겹게 부정, 소거한 결과에 따라, 매우 명료하게 그 내용을 대체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마지막 자신의 아버지가 보러 오라고 한 공연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 공연을 보게 된 일화와 그럴 필요가 있었나라는 반문으로 이 사소한 일화에 대한 의미를 재조정하며 (어쩌면 비틀며) 소급되는 김소혜의 독무대에서 완성된다.
곧 앞선 텅 빈 내용의 (연습) 포즈들과 그 이야기의 분절이 맞물리며, 비로소 몸을 시험하고 비틀며 끝없는 변화의 형식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던 동시에 발레적인 무엇으로 고정되지 않던 음악이 그를 보조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 음악은 매우 기묘하게 적용되는데, 그것은 배경음악이 아니고―배경음악에 대한 재현적 차원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음악이 그것을 보조한다는 점에서 또한 따라간다는 점에서 음악은 주변부의 차원으로 밀려난다. 그러니까 획득되는 건 발레 움직임의 고전의 재현적 틀에 복속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의 진정한 형식화며, 이는 겨우 현대무용으로서 발레의 복권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이는 그 개인이 자신의 삶을 경유해 완수되는 것으로써, 또한 다른 개체들, 곧 발레의 분자적 차원에서의 다양성―아무런 극적 연관이 없는 무작위적 개체들의 나열―이 전제된 이후에 마치 ‘우연하게’ 그가 특정되며 일종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마치 무미건조하게 펼쳐지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주체의 행위가 물론 음악의 동반과 함께 극적 상연의 효과를 입고 드라마적 고양을 진정으로 완성할 때와 흡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의 움직임은 정확히 앞선 연습 동작들의 복기이자 사후적 완성으로, 음악의 온오프에 따른 대위법적 산출에는 일정한 시차가 따르는 셈이다.

구체 음악이나 스티브 라이히와 같은 미니멀리즘 음악을 상기시키는 음악은 재현적 서사를 가져가지 않으며, 거기에 혼합되는 멜로디를 지닌 음악은 일종의 매시업과 같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기 위한 두 개의 음악적 뒤섞음으로도 보이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하나의 무대에 대한 두 명의 존재가 실은 가상적으로 종합되고 있음을 의미하면서도, 이 뒤섞음이 결국 하나로 소급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므로, 특정한 형식‘들’이 아닌, 효과 차원의 형식으로 또한 그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로 변환된다는 점에서 내재적이지 않은 매시업이 되는 셈이다.
〈메타발레〉는 윤상은의 최근작 중에서 가장 구조적인 작품이며, 구조적으로 치밀하고도 동시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메타발레: 코펠리아를 위한 선언〉(2024)가 발레를 자유롭게 전유할 수 있는 권리를 다양한 여성 참가자들에게 쥐여주며 발레의 비가시화된 주체를 가시화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일종의 나도 발레를 할 수 있다는 식의 마니페스토로서 기능했다면, 〈메타발레〉는 코펠리아들의 선언을 멈추고 그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메타발레: 코펠리아를 위한 선언〉의 각각의 존재가 차이로서 긍정되는 가운데 각각의 몸이 지닌 고유성이 수행성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과정에서, 발레의 서사와 형식, 테크닉 모두는 거꾸로 그 존재의 차원으로 소급될 수밖에 없었다면, 따라서 그것은 서사가 아니라 일종의 무수한 사건들의 이미지였다면, 다르게 말해, 장면들은 병치의 기술, 컷들의 병합으로서 환원되었다면, 〈메타발레〉는 각각의 고유성에서 출발하되 그것이 서사를 획득하는 차원에서 사후적으로 구조가 성립하며, 그 안에서 역할의 경계가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메타발레〉에서 처음 각자의 연습 시간은 실천된 무대에 의해 재의미화되며, 음악의 가산 작용으로 인한 분열증적인 몸들은 관계의 연결을 통해 음악적인 것으로서 말과 함께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오는데, 발레 연습-과잉된 발레-미끄러짐의 발레-일상에서의 발레에 대한 말-일상을 서사화하는 발레의 무대라는 일련의 시퀀스는, 발레에 대한 심리적 경계막 같은 부분을 내재적으로 산출하며 그 바깥의 보기에서 역시 어떤 심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를 개체적 (무)의식의 차원으로 재기입해보면, 기억(무대 이전의 시간)-악몽(무대라는 꿈)-악몽의 현실화(무대에서의 실패)-현실(무대 바깥의 시간)-현실의 드라마화(무대의 실현)의 흐름으로 기억과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다음은 이를 도표화한 결과다.
〈메타발레〉는 곧 발레와 발레가 아닌 것의 (그 전의 작품에서 동원된) 기호학적 검출 과정을 꿈과 현실, 일상과 무대의 이분적 경계로서 확장해 간다. 이는 서사의 표층에 자리한 존재의 일의성을 존재의 내재적인 분기로 연장하며 서사의 심층적 코드를 구성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가산 작용의 음악은 일종의 컨템퍼러리 발레의 한때로 소급되며 발레의 다른 지층을 역사적 계보 차원에서 추산하는 작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메타발레〉는 발레에 대한 동시대적 주석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레의 형식을 발레라는 서사의 내용으로 전환해 낸다는 점에서 메타적이다.

 김민관 편집장


장면 연습 과잉 실수 일상 무대 무의식 기억 악몽 부정 현실 드라마 무대 무대 이전 무대라는 꿈 무대에서 실패 무대의 바깥 무대의 실현 정서 평온 분열 탈승화 해방 승화 'REVIEW > D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윤정,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비기능적인, 비의도적인 움직임 (1) 2026.01.31 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 ‘둘’이라는 실험적 요소 혹은 관계의 확장 (1) 2026.01.31 조진호, 〈전야제: 겨 터를 열다〉(2025): 리서치를 위한 대화, 혹은 대화를 위한 리서치 (1) 2026.01.27 《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7) 리뷰 (1) 2026.01.19 《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6) 리뷰 (0) 202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