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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고은, 〈그림자-숲〉: 이미지-몸짓의 이미지-세계에의 기입 혹은 비약
    REVIEW/Movie 2026. 3. 2. 20:41

    임고은, 〈그림자-숲〉[사진 제공=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상동).

    임고은의 〈그림자-숲〉은 전적으로 환유적인 차원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은 자막의 서사, 곧 나무-벌레-숲의 어떤 계열의 스펙트럼 안에서 주어지는 주요한 메타포들 사이의 ‘횡단’의 방식에서, 영상에 담기는 이미지‘의’ 기입, 이미지 ‘위’의 이미지라는 수행의 기술 방식에서, 그리고 전자를 추적하며 그에 결절되려는 또는 그와 상관되지 않으나 결부되는 후자의 이미지, 곧 상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출현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그러하다.

     

    전자의 차원이 사물의 시간과 영겁의 시간, 역사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후자의 차원은 역사의 흔적으로서 이미지를 가져오되, 그것을 헤집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드는 흔적으로서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기에는 주체의 ‘손’이 일부 포함되는데, 유희와 놀이의 차원에서 이 손은 의식으로서 주체를 생산하기보다 그 촉지적인 작용의 연결에 기초하여, 전체의 일부로 기능함에 근거하여, 숲 안의 나무, 나무 안의 벌레라는 기호들의 긴밀한 연결, 통합 작용과 조응한다.

     

    ‘멸종된 예언의 새를 위한 사과나무’의 60년 전, 나무로 만든 탁자에는 벌레가 슬어 있었고, 그것이 찻주전자의 열기로 깨어나고 숲을 만들게 되는 서사에는 분명 비약이 있다. 그것은 벌레-나무-숲의 계열을 전제하며, 그것이 인간의 역사를 초과하고 포함하는 거대한 자연의 시간으로서 흔적, 지표, 기억의 작용이 주는 놀라움이 일상의 한 사건으로 적용됨을 기술하는 차원에서 확장됨을 꾀한다. 그것은 생의 운동이며, 영겁의 시간 안의 비가시적 질서에 대한 특정 기호들의 추출이다. 따라서 이 서사의 비약은 내러티브의 조악함이나 성긂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도약으로서 자연에 대한 철학적 이념에 대응한다. 그 이념의 형식이자 도약이다.

     

    이 간단한 이야기 안에서 이미지-사운드 연합의 시계열이 만들어지는데, 탁자의 나이테가 고동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며, 거기서 대수 기하학의 곡선이라는 개념을 추출한다. 동시에 수조 안의 물에 잠기는 소리, 직접적 행위에 기반하는 접촉 지각의 소리로써 텅 빈 고동 안에서 벌레가 노는 진공적 공간과 그 행위에 대한 환유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더 정확히는 그것으로써 합리화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무의 환유로서 나이테, 나이테에서 고동의 비약에는 사운드의 근거가 지지되고, 이 사운드의 지지 아래 벌레-나무의 기호체가 벌레-진공-움직임으로 파생되어 간다. 거기에는 자연 안의 계열체라는 전제가 상정된다. 그리고 여기서 엄밀히 대수 기하학이 도착하는 지점은 결여되어 있는데, 이는 그 자연의 동일률의 법칙을 상정할 것이다

     

    사실상 비약이라고 지칭한 단어와 단어, 그리고 이미지와 이미지, 이미지와 단어 사이의 간격은 그 접촉과 횡단의 욕구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성긂의 차원은 이미지에 포함되는 신체와도 같이, 거대한 전체, 전제로의 어떤 무한한 여정(의 욕구와 열망)에서 기인하는, 그 여정이 담지하는 필연성의 흔적과 같은 것이다. 또는 그 무의식적 제스처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지의 조작은 자연으로의 침투, 잠입 작용의 일환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출현하는데, 첫 번째의 주요한 이미지, 곧 폭죽이 터져 만개하고 점멸하는 이미지는 1605년 영국 의회를 폭파시키고자 주모 했던 가이 포크스, 그 실패를 기념하며 런던 사람들이 피웠던 모닥불이 기념행사의 불꽃놀이로 변화한 역사적 시간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주요한 이미지, 파란빛이 투과된 올빼미의 형상은 인간이 동물과 영혼을 교류하던 신화적 시간의, 앞선 역사의 시간이 현재화되는 것과 같이, 멀지 않은 인간의 역사로 가정되는 그 시간 아래에서, 더 상징적인 하나의 동물로서 부상한다―‘올빼미는 인간과 영을 교류하는 특별한 상징적 존재이다!’. 그리고 불로 인해 숲의 (올빼미를 비롯한) 많은 이름(존재)를 집어삼켰음―이는 잿빛에 가까운 올빼미의 흔적으로서 이미지에 대응한다.―을 짧게 언술하며, 폭죽-역사의 시간과 올빼미-자연/신화의 시간 사이에서 공통의 메타포로서 불을 추출해 둘을 연합해 낸다.

     

    임고은의 〈그림자-숲〉에서 환유는 실재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놀이와 같다. “생각과 현실”, “움직임과 행동” 등등의 두 대비되는 관념 사이에서 “그림자 떨어지다”, 그림자는 그 둘을 (다른 것으로서) 잇는 동시에 그사이에, 그 둘이 겹쳐지며 남는 잔여의 자리에 떨어진다. 또는 그사이가 곧 그림자다. 떨어짐 곧 드리움은, 실재 위에 그것을 투영하는 그림자를 만든다. 숲은 심원한 내부를, 온갖 드리움들을, 그 그림자들을 간직한다. 또한 이 떨어짐은 둘의 사이를 말한다. 그림자에서 숲으로 이행하는 제목 안의 연결의 기호는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노정한다. 떨어짐 자체가 수평적이거나 수직적인 이행이다.

     

    이미지를 조작하는 이미지 ‘위’의 그림자,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부로서 음영은 나무에 기생하는 미시 생물의 은밀한 침투 작용이 일으키는 더디고 자의적인 임시적 수행의 과정에 조응한다. 작가의 몸짓이 다다르고자 하는 건 그 같은 실재를 향한 타 존재의 침투 작용, 기약 없고 미약한 움직임이다. 여기서 두 다른 이미지는 서로를 닮아 간다. 곧 작가는 세계 안에 이미지를 두고 그 이미지 위에 이미지로서 대상-신체를 얹음으로써 전자의 이미지는 실재의 사물이 된다. 그리고 거꾸로 그 위의 대상은 이미지를 따라 이미지로 잠식된다. 결국 이 겹쳐짐의 이미지-몸짓은 떨어짐의 (미)약한 연결로써 확장되는 숲의 증식된 세계에 대해, 환유적 차원의 접근으로써 그 알레고리를 이념화한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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