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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에 대한 주석: 예술을 내파하는 연약함이라는 새 개념REVIEW/Performance 2026. 3. 2. 20:44

국제협력 리서치 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포스터[사진 제공=(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모두예술극장 열린, 국제협력 리서치 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은 이틀에 걸려 열린 이른바 스펙터클한 기획의 산물이다.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관망하고 지켜보는 것으로써 구현되는 건 아니다. 유령 주체가 무엇을 느끼는지 비평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이유도 없다. 단지, 경계 안의 참여의 감각만이 ‘나’의 신체를 지지할 뿐이다. 객관적 거리를 잃어버렸거나 나와 상대방의 거리를 재고 탐색하고 궁구하기 위한 거리의 시차와 간격 속에서 임시적으로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객관적 거리는 주관적이며 유동적인 거리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이 워크숍은 공동을 구성한다는 의미의 “커머닝”이라는 이름 아래 이틀 동안 1, 2회차로 구성되었고, 첫째 날은 “40BPM 걷기”, 두 번째 날은 “투과하는 리듬”이라는 제목이었다.
첫째 날은 두 번의 걷기로 나뉜다. 이윤정 안무가의 상상적 공간 만들기 아래의 걷기, Q레이터의 단순하고 투박한 실재의 걷기가 그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전자가 걷기의 창의적 사색보다는 안무가의 능수능란한 말의 지침―포근하고 연륜 있는 DJ 같은 모습이었다.―에 대한 감탄을 일으켰다면, 후자는 걷기를 실재의 그것으로 두었다. 곧, 걷기라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정초하는 행위였다. 전자가 걷기에 대한 플러스를 통해 걷기에 대한 사색을 마비시켰다면, 후자는 걷기에 대한 마이너스를 통해 걷기가 무엇인지를 상기시켰다.
전자의 물방울의 세계를 그리는 한편, 그 안에 각자가 있고, 그렇게 서로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존중하며 걷는다는 발상은 접촉보다는 은신의 느낌, 특수효과의 상상적인 영역을 충족시켰다. 그런데 후자는 한 발을 약간 짧게/성급한 듯 딛고, 그럼으로써 기우뚱한 신체에 긴/더딘 다리를 끌고 오는 식의 걷기, 한 발을 내디디고 다른 한 발을 내딛는 단순한 패턴의 움직임을 조금 더 의존과 지지의 상호 관계로 바꾸는 걷기를, 하나의 모두의 리듬으로 바꾸는, 꽤 오랜 시간의 반복을 통해, 우리 모두에 대한 의지를 동반하며 우리 모두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했다. 커머닝이 성립했다.
어떤 이미지와 그에 도달하려는 몸은 안무의 기본적인 전제라면, 어떤 몸짓을 펼쳐낼 수밖에 없음의 조건을 만드는 건 퍼포먼스의 근본적인 이념 아닐까. 따라서 안무는 실패를 피하기 위한 반복이라면, 퍼포먼스는 수행의 일회적 현존만이 자신의 이념을 보증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단어, “연약함”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Q레이터의 일방적 걷기의 유도가 연약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폭력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일까. 일상의 시스템의 익숙함을 감각하고 그것을 탈피하는 것의 과제를 역으로 수행할 때 느끼는 불편함은, 일종의 현재에 대한 변증법적 차원에서 비판의 기술로 되먹임될 수 있지 않은가.
둘째 날은 뚜렷하게 각인되는 움직임은 덜어졌다. 첫 번째로 고권금의 리드는 몸 구석구석을 만지며 감각한다는 것이었는데, 마치 고권금도 스스로의 자기 탐색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은 시간 아래서, 사실 무언가를 뚜렷하게 수행한다는 느낌도 소실되어 버렸다. 첫날이 공공적이고 정치적인 스펙터클 아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연약함으로서 신체가 고유한 것으로 감각되었다면, 둘째 날은 고권금을 위시하여 연약함을 개체적인 것으로 지시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성의 차원을 봉쇄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후반은 토론 혹은 대담의 형식으로 진행되며 장애 담론에 대한 경험적 차원의 진술들과 대화가 이어졌다.
〈예술과 연약함〉은 연약함으로서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예술을 “과”란 접속사를 경유해 “연약함”이라는 단어와 병치시킴으로써 새롭게 예술의 개념을 발명하고, 예술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고자 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연약함이 비유가 아니라 실재일 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인간의 특징으로서 주효할 때, 예술은 근본적으로 재정초되거나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곧 모든 존재 조건에 가닿는 의지 아래 연약함을 돌보고 돌아보는 차원에서, 예술의 연약함의 면모들이 어떤 정치적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응전하는지의 차원에서 또한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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