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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예지,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 듣기의 조건을 가설하기
    REVIEW/Music 2026. 3. 7. 13:50

    김예지,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김신중[사진 제공=김예지](이하 상동).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이하 《듣기를 위한 가이드》)는 동명의 『듣기를 위한 가이드』라는 사전에 제공된 가이드북과 이를 참조한 김예지의 가이드로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별도로 기획된 웹사이트에서의 소리 도면을 통해 사전에 선택하게 되는데, 이 16개의 자리는 미세한 소리 풍경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김예지가 관객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공간에 산포한 소리 중에 자신을 가장 가깝게 향하고 있는 소리를 따라 몸의 방향을 전환해 볼 것을 요청할 때 가장 명확하게 체현된다.

     

    눈을 떴을 때 네 명의 연주자, 비올라 다모레의 Olivier Marin, 저음제금의 동이, 해금의 김예지, 가야금의 조선아가 자리하는데, 이는 공간 전체로 퍼져 있고, 기다란 삼각형의 공간은 꼭짓점에서 좁은 폭의 면을 향하는 방향성을 따라 형상화된다. 이는 소리가 그 면의 지점에서 새로운 무게중심을 차지하는 방향과 같다. 가장 꼭짓점에 가까운 곳에 동이가 있고, 그 앞에 Marin이 있다. 면의 모서리 중하 끝부분에는 김예지가, 더 아래쪽에는 조선아가 있다. 이 후자의 그룹이 고정되어 있다면, 전자의 그룹은 아래쪽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며, 클라이맥스에서 넷이 하나의 원을 이뤄 연주를 완성한다.

     

    이 종으로 긴 공간은 사전의 소리 도면을 경유해, 그리고 현장에서 귀를 가로, 세로로 접는 것에서 시작해, 귀와 인접한 네 개의 혈 자리를 누르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그것이 역설적으로 잘 듣기 위한 마사지임에도, 결과적으로 귀를 특정 대상으로 주목하고 독립된 상으로 시각화하는데,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 아래, 귀라는 연주에 조응하는 신체 특정 기관에 대한 환유물로서 전유된다. 귀에 닿는 소리는 곧 하나의 커다란 귀-공간을 경유하여 그 공간이 축소된 각자의 귀-부분신체로 수렴한다. 이때 특정 부분의 귀에 해당할 관객 각자의 자리는 스스로가 미리 듣고 선택하는 것과 같이, 장소 특정적 차이를 소리에 대입한 결과로 강조된다. 곧 음악은 신체의 위치에 따라 고유한 값으로 재정의된다. 그리고 고유한 관객의 분포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의 특이성을 산출하는 것으로 의미화되는 동시에 이 신체로서 공간에 포함된 일정한 매질로 산출된다.

     

    《듣기를 위한 가이드》는 이 관객의 자리의 현상과 관객의 현상학적 경험을 연주에 전면 포함시키려는, 아니 포함될 수밖에 없는 기획의 차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물론 모든 소리가 연주의 일부라는 오래전 관념에 따라 이것은 새롭지 않지만, 듣기의 경험이 소리의 위칫값, 곧 그것을 듣는 관객의 물리적 위치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는 부분, 그리하여 무엇보다 음악이 아니라 그 소리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근본적으로 식별하고 인지하는 원초적 과정, 곧 눈 감기로부터 시작된 듣기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모드를 관객의 함께 연주의 차원에서 확장하는 가운데 나아간다는 점에서, 체계적이고 또 분명한 접근의 용례를 남긴다.

     

    관객이 이 현장에 있다는 것, 이 현장이 다양한 소리-물질과 위치의 변이에 따른 소리-신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안에 새롭게 획득되는 이동과 소리 냄의 관객의 자유를 통해, 소리로서 실험적 틀을 연주 내재적 차원으로 소급하는 대신에, 공간 전체의 적용으로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분포로 확장한다. 그것은 고정된 관객의 자리-정체성을 벗어나 미지의 귀-공간을 이동하는 욕망에 전제되는, 귀의 탐구적, 유희적 본성에 호소한다. 곧 귀를 재시각화하고, 귀를 그 공간 질서에 따라 유동적인 산물을 기입하는 장소로 체현한다.

     

    연주는 눈을 감았을 때, 그리고 눈을 떴을 때의 간극을 줄이는 방향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나중에 관객이 눈을 뜨고 이동의 권한과 함께 연주의 범주에 포함되며 비로소 그것이 기인된 사물들의 흔적을 식별함으로써 완성되는 부분이다. 그것은 악기가 아니라 사물을, 또는 공간으로서 사물을 켜고 찢고 때리고 하는 행위로서 일어난 것이고, 사실 그 행위 자체가 연주임을, 소리임을 인지시키는 차원에서 그것은 이미 그 역할을 충실하게 완수한 뒤였다. 이후의 연주가 사실상 악기를, 조금 더 복잡하고 예민하고 특정한 사물임을, 그리고 그것을 행위로써 실천하는 것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곧 하나의 연주임을 우리가 알고 수용하는 것 역시 그 같은 소리 실천의 연장으로서 연주가 자리함을 의미한다.

     

    편재된 악기들은 조응하지만, 그것은 결코 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 조응은 곁을 인지함에 가깝고, 그 소리의 질료가 공간의 분포를 구성하며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제약하는지를 인지하고 그 틈을 노리고 또 그것과 겹치면서 자신의 영향력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 가깝다. 그것은 결국 소리가 소리-공간임을, 공간에의 특정 분포임을 확인시킨다. 그에 따라 자리-정체성이 그 체현된 감각들의 경로를, 지도를 이룬다. 한편으로 그 소리 분포의 정신 산만함의 경계에서 연주자들은 기민하고도 변화무쌍한 행위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며, 악보가 없는, 끝이 없는, 익숙한 형상이 없는, 순간의 공진화를 향해 나아간다.

     

    특히 저음제금을 ‘운용’하는 동이의 경우, 곧 폭이 좁은 삼각형에서 가장 위 점이 가장 아랫면을 향해 가는 운동성의 경로 안에서, 제일 상단에 위치함으로써 그 이동의 경로가 제일 긴데, 소리의 (비)질서를 구조화하는 차원에서 가장 먼 시선을, 가장 조심스러운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셋은 거의 악기에 충실하게 어떤 다른 연주에 몰입한다면, 그는 그 가장 크고 무거운 악기-육신을 이동시키면서 그 공간의 끝, 소리의 경계 지점을 상응시키는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다.

     

    곧 소리의 경계는 공간의 끝이기도 하지만, 소리의 지층은 그 공간의 수직축의 운동성이라는 또 다른 공간의 폭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무겁고 낮고 또한 상대적으로 뭉툭한 소리로서 공간의 아랫단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낙차를 형성하며, 예외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편으로 그와 같은 차이가 곧 둔탁함의 감각이 감각의 둔탁함으로 전이될 수 있음으로부터 동시에 거리를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세 악기는 그와 비교해 어떤 쨍함과 날카로움, 예민함의 층위를 갖고, 이는 그 안에서의 차별화에 대한 고찰, 숙제를 남긴다.

     

    마지막 이 넷이 원환을 만들 때, 그 원환에서 이탈해 김예지와 그를 뒤따른 Marin이 삼각형의 아랫면에 해당하는 문들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바깥 풍경을 마주하게 한다. 가장 안으로 수렴하는 소리의 내부적 심상으로부터 장소로 기입되는 소리들의 내부 풍경으로의 이전, 이어 장소에 편재한 소리들의 집합으로부터, 마지막의 장소 바깥을 함입하는 이 연주 자체의 시각화는, 소리의 내외부적인 침투에서 나아가 소리 너머로의 확장과 소리의 전경화, 그리고 일상의 어떤 소리들을 연주로 끌어들이는 공간의 경계 넘기로서 음악을 확장하며 동시에 형해화한다. 곧 음악의 소급적 효과로서 시작과 음악의 이탈적 차원으로서 종결 사이의 일련의 과정은, 소리의 질적 차이를 판별하는 것보다는 소리가 어떻게 인지되고 배치되며 새롭게 이해될 수 있는지의 차원에서 ‘듣기를 위한 가이드’를 구축한다.

     

    김민관 편집장

     

    [크레디트]

    기획 연출 연주 | 김예지
    퍼포머 | 동이 / 조선아 / 올리비에 마랭  
    프로듀서 | 장현진  
    공간 디자인 | 김민지  
    조명 디자인 | 서가영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 아케이드 서울  
    기록 |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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