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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선, 이은경, 〈생존감각 - 여와의 방〉: 존재를 함입하기, 그리고 변화하기
    REVIEW/Visual arts 2026. 3. 7. 14:36

    유선, 이은경의 〈생존감각 - 여와의 방〉(이하 〈생존감각〉)은 조금 특수한 맥락을 바탕으로 마련된 전시인데, 기획자 정윤진의 글에서 산모와 태아의 관계 양상에 대한 비유로 드러나고 있는 ‘생존감각’이라는 제목이 엄밀히 두 작가의 작업 모두에서 소재나 모티브의 차원에서 주요한 근거로 작용하며 내재적 차원으로 표현되는 공통의 부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작업의 외재적 근거, 곧 이 둘의 친연성이라는 관계에 근거하는 데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사실은 조응하며 전자 역시 절반의 진실을 갖는데, 곧 이 둘이 모녀 관계이며, 이은경은 어느 정도 이 모녀의 관계와 기억을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몇몇 작업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모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가 성립하려면, 분명 그것은 서로 다른 작품들 안에서 타협점 혹은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느냐의 질문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생존감각〉의 특이성은 작가들의 자전적 맥락이 갖는 ‘하나의’ 경로를 제도적 차원으로 소환해, 곧 “2인전”으로 분화시키는 가운데, 모녀의 공간이라는 외재적 근거를 전시의 형식으로 치환한다는 것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그 둘로 소급되며, 각각의 존재에 빚진 형국이 되는데, 유선의 작업이 유선 작가 자신에게로 순전히 귀속된다면, 이은경은 그것을 내재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두 번째 방에만 놓인 유선의 봉제 인형 작업들이 말 그대로 튀어나와 있다면, 이은경은 자신의 그림 안에 그 인형을 한쪽 귀퉁이에 ‘박아 넣으며’ 그것과의 공존을 형식적으로 취하고자 하는데, 이는 곧 입체에 대한 평면의 대응으로, 그것은 결과적으로 모더니즘적 과제, 곧 입체라는 평면으로의 불가능한 매체의 수렴이 아니라, 일종의 주술적 의식, 그 ‘바깥’에 놓이는 이 둘의 만남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기능적 차원에서의 재현으로 나타난다. 덩그러니 놓인, 증식되며 포화되는 유선의 인형들을 받아들이는 회화는 동시에 불순물처럼 회화를 가로지르는/가로막는 그 인형들이 가진 응시로서 대상에 대해 또 다른 응시로써 공간에의 안정화를 꾀한다.

     

    이 두 시선은 갈라지는데, 그리고 그 둘은 완전히 다른데, 이은경의 회화에서 거의 모든 자화상의 형상이 철저한 정면성을 띠고 있는 지점, 곧 그 자신이 거울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것처럼, 그의 눈은 정확히 관객이 보는 시점과 맞아떨어지게 된다. 이는 엄밀히 우리를 응시하는 대신, 우리를 통과한다. 여기에는 어떤 강박이 있는데, 그것은 대상으로서 ‘나’가 외부의 응시의 주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곧 어떤 타자성의 얼굴은 우리가 정확히 우리의 얼굴로서 그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주어지는, 주어질 수 있는 것인데, 그러니까 그것은 이은경의 얼굴이 우리 자신의 얼굴로 대체되는 과정과 같다.

     

    이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이은경의 얼굴로 오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것은 타자의 얼굴을 주요한 모티브나 개념의 출발로 삼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거꾸로 뒤집는 것이 된다. 이은경의 자화상은 오히려 자아가 개입하지 않는 강력한 타자로의 함입인 것이다. 곧 타자를 자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타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된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그 시선으로부터 비켜나면서 성립하는 응시, 그 바깥에서 전제되는 또 다른 응시의 지점이 내부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타자가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나의 응시를 체현한다. 이것은 일종의 토템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인형이 포함되는 지점에서 그 균형은 실질적으로 깨어짐에도 자신을 본다는 원칙이 유지됨으로써 인형은 일종의 과잉으로 전시장이라는 현실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회화를 침입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두 개의 이미지 사이에는 분명한 틈이 생겨나는데, 이은경의 윤리는 그것을 단지 만질 수 없는, 제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둔다는 점에서, 곧 그 틈을 건드리지 않고 수용함으로써, 마치 자신을 사물의 지위로 격하시킨다는 점에서, 일차원적이고 강력하여 틈이 없는 하나의 도덕 법칙을 수호한다. 그것이 나를 비켜나도 나는 나의 응시를 수호한다라는 것이다. 곧 자신을 변경시키지 않으면서 사물의 무단한 침입을 허용한 결과, 나는 마치 사물로서 깎여나가고 응시의 초점 역시 산만해진다.

     

    이 회화 내의 과잉, 일차원적 적용을 통해 발현되는 이 초과성은 사실상 어머니를 타자로 직면하게 된 작가 자신의 곤궁과 흔들림 등에 대한 상태를 드러내지 않는 차원에서 ‘성립’하는데, 여기서 이 두 존재의 이질적인 공존은 사후적으로 꿰매질 봉합 자체를 미리 선취하는 차원에서 단순하게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타자를 자신과 맞세움 자체가 견고한 차원에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단순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대등한 뒤섞임, 더 정확히는 뒤섞임 없는 대등함은 그의 삶 한 축에 들어선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불가피한 수용, 더 정확히는 수용에 대한 불가피함을 드러낸다.

     

    그 결과, 자신의 실존은 어머니의 실존에 대한 반응이나 대응의 차원으로 뒤섞여들지 않는 차원에서 곤궁하기까지는 하지 않거나 흔들리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무력해 보인다. 〈얼굴들〉(4/5)에서처럼 자신의 영역은, 자신은 그로 인해 감산되며, 곧 자신을 엄격하게 두‘려’는 차원에서, 그래서 그 무력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나는 적어도 무력해진다. 그리하여 나에 대한 응시는 거짓된 것, 곧 흔들리고 있는 것, 타자를 향하면서 타자를 비켜나려는 필사적 차원의 시도 아래에서의 거짓 의연함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흔들림이자 곤궁이다.

     

    〈너와 나 그리고 나〉라는 전시 중 가장 큰 대형 회화는 이 실존적 차원에 대한 정신분석적 기원으로서 한 판본이다. 키 큰 여자의 눈 자체가 정면성의 기준이라면, 좌측에 그가 품에 둔 여자아이는 정면을 향하고 있음에서 응시된다. 곧 우리의 시선에서 미끄러진다. 반면, 오른쪽 아이는 뒤돌아서서 그 아이의 응시에 선행된 응시를 하고 있는데, 따라서 친연 관계는 단지 그 둘이 모녀라는 하나의 증명이라는 혐의 아래 있다. 그런데 유일한 성인 여자는 작가여야 하므로, 그리고 응시의 주체는 그 앞의 인형, 그것이 대리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므로, 그 바깥의 어린아이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된다. 이는 현재 뒤바뀐 어머니와 나의 돌봄 관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정동을 표현하는 존재, 곧 응시가 드러나지 않는 그 아이의 신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는 심리라는 보이지 않는 상태를 보이는 두 신체에서 추출하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응시의 신체로 물리적으로 대응시킨 결과다. 따라서 그림의 전반은 하나의 증거이고, 나머지가 그것을 입체화한다. 이 기원의 신화를 벗어나 더 실제적인 증거로서 검출되는 두 작업은 〈6월, 현저동〉과 〈3월, 현저동〉으로, 물리적인 시간과 장소를 담고 있다. 전자의 병상에 놓인 앙상한 팔목과 그 앞 탁상거울 앞에 비친 작가의 얼굴, 그리고 후자에서 중앙부의 얼굴은 유일하게 작가가 아닌 얼굴로, 어머니를 상정한다면, 그것을 뱅 둘러서 희미하게만 겹쳐지는, 곧 두 층위가 여전히 분리되는 커다란 팔은 작가의 그것으로, 이 두 그림 모두 모녀 관계를 증명한다.

     

    “생존감각”은 어머니를 생존의 차원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감각을 상정한다. 그것은 당사자가 아닌, 그것을 옆에서 체험하는 관찰자의 몫에서 산출된다. 이때 작가는 전적으로 응시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목도하는 존재, 스스로의 변화를 가늠해야 하는 존재,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이격됨에 대응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그것은 주체의 변화를 나타내는데, 그것은 나를 현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나를 작품에 위치시키는 것이 된다. 나는 거듭 반복되며, 캔버스와 실재하는 나를 가로지르며, 나의 그림자이거나 ‘나’를 진정 응시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생존감각 - 여와의 방〉에서 작가-나는 진정 변화해 가는 듯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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