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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기획,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여성-신체, 생태-길, 구멍-응시의 연결망REVIEW/Visual arts 2026. 3. 7. 14:39

김남수 기획,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이세원(이하 상동).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이하 《물의 왕》)는 김지하의 『수왕사』라는 책을 모티브로 한다. 전시는 책을 이미지로 연장하려 하며, 이를 통해 책의 비의적 속성을 더 ‘적극적인’ 독해의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음을 전제하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책은 절대적인 아이디어이며 전시는 그것에 다가서는 매(개)체로 자리한다. 또는 전시를 통해 책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 일종의 전도된 순간을 기약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시는 여러 이미지가 난립하며 전시장 벽면 대부분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서판 읽기로서 도상과 기호의 분자적 지평은 형식과 스타일의 차이로 구분, 수렴되지 않는다.
『수왕사』는 동학의 새로운 여성 접주 이수인의 사상을 조명한다. 이수인을 통해 새로운 동학의 물꼬가 트이고 있었음을 역설한다. 이는 지난 시대의 세계의 급격한 변화상과 에코 페미니즘과의 접점을 구성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역사는 마치 격렬한 몸짓으로 미래를 선취하고 있다. 김지하의 발화를 절대적으로 경유하는 놀라운 역사는, 곧 김지하라는 탁월하거나 결정적으로 독특한 저자가 구성하는 역사라는 서사는, 미발화된 잠재태로서의 역사의 자리를 역동적인 세계에 관한 서사로 편입시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는 하나의 생성되는 아카이브의 일환으로 질서화되며, 그러한 프로세스에서 이수인이라는 역사는 잠재되고 유예되며 실현되는 것으로 주창된다. 그에 의하면, ‘이수인 독트린’은 미래를 향한 드물고도 강력한, 비가시적인 지지체를 확보하고 있다.
역사가 생생한 픽션과 자리를 바꾸는 지점에, 그 역사의 형상을 지탱하는 건 픽션에 대한 믿음일 것이고, 픽션에 대한 감흥은 그 역사와의 동기화를 시현할 것이다. 《물의 왕》은 바로 이러한 믿음과 감흥의 차원을 예술로써 주조하고자 하는 전시라 하겠다. 이는 이세계의 차원을 전제하고, 생명의 숭고함과 신비로움과 경외심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전시는 페미니즘의 견지를 젠더 수행성이 아닌 (여성)성의 특이성을 주창하며 (나아가 신비 체험과 무속적 세계를 긍정하는 한편) 여성의 상징 질서 내 약자의 위치를 전도함을 (긍정함을) 전제한다.

가령 폐경을 맞은 여성들이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광경을 가감 없이 찍은 홍이현숙 작가의 〈장수탕 탕 탕 - 버렸던 장면들〉(2023, 단채널 비디오, 가변 크기, 재편집, 3분 41초.)의 경우와 성전환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갖기 위해 자궁을 가진 남성으로 임신한 몸을 그린 이순종 작가의 이순종 〈E-man〉(2005, 벽지에 먹, 아크릴, 170×100cm.)은 전혀 다른 정동을 표출함에도 여성의 신체가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임을, 예외적인 것으로서보다 독특한 것임을 드러낸다.
〈장수탕 탕 탕 - 버렸던 장면들〉은 〈장수탕 탕 탕〉(2012)의 푸티지 영상을 재편집한 버전으로, “버렸던”이라는 명명은 소위 되돌아오는 신체를 구성한다면, 〈E-man〉은 실제 있었던 전사를 바탕으로 하는데, 토마스 비티라는 성전환 수술 후 남자가 되어 아이를 임신, 출산한 사례가 그것이다. 바로 그가 아직 자궁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의 아내가 자궁절제술을 받아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남자’로서 대신 임신한 것이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기능화되는데, 사진 속 가슴을 잘라낸 남자의 몸은 분명 부푼 배로 아이를 품고 있다. 작가는 이를 기초로, 얼굴과 가슴 한쪽에, 또 뱃속에 꽃들을 심어놓았는데, 특히 꽃-얼굴은 그가 남성으로 판별됨을 유예한다.

이는 그 전사를 따로 전해 듣지 않고서는 결과적으로 마치 늙은 여자가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하고 뱃가죽이 처진 전형적 서사의 판본으로 기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장수탕의 여자들의 신체를 일견 닮는다. 이순종은 여성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뒤섞는다―그 둘이 닮아 있음을 주창한다. 남성적인 것으로서 성기가 배 쪽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성기의 위치를 벗어나서 배의 경계선에 흐릿한 형체로 부착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거기 끝에는 검은 선이 분명하게 분기되어 성기의 구멍을 구성함으로써, 남성의 표지를 기입한다. 동그란 것과 직선의 차원은 뚜렷한 분별의 양상을 구성한다.
이 얼굴의 환상적 전유로부터 반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건 이 검은 선분이다. 그것은 남성을 주창하고 식별케 한다. 남자의 정체성은 여성적 신체의 전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증명한다. 다만 그것은 무언가 왜곡되어 있고, 흐릿하며, 부착 정도로부터 탈착도 가능할 것 같다. 그것은 여성 성기―자궁의 연장선상에서―의 기능화를 전도한다. 그렇다면 왼쪽 상단의 “꽃이 되어 하늘과 땅을…”이라고 작은 하얀 문장이 줄인 동사는 무엇일까. 그것은 잇는다일까. 신체 곳곳에 편재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각각에 대한 식별이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님 자연으로 환원되는 신체, 존재의 양상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폐경을 맞은 여성들과 임신을 한 남성의 몸은 이미지화되지 않은, 재편된 실재의 부분들로 꿰매어진다.

정기현의 〈9개의 등걸〉(2023, 나무뿌리, 이끼, 수조, 비닐하우스, 물순환장치, 175×130×245cm.)은 1층 전시장 중앙에 자리하며, 나무뿌리를 둔 수조의 물이 순환되는 설치 작업으로, 이순종의 꽃과 정정호의 돌이라는 자연적 생명력과 연접한다. 두 작업은 위아래로 마주하며 걸렸는데, 이순종의 〈좌우(佐佑)〉(2005, 벽지에 먹, 아크릴, 30×140cm.)는 여성 젖가슴 한 쌍이 전면에 드리워져 있는 형상으로, 이는 〈E-man〉의 가슴이 복구된 모습이다. 거기에는 신체를 기준으로 글자 좌와 우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방향의 의미를 담은 익숙한 기표 차원에 ‘사람 인’ 자를 더한/‘새긴’ 돕다라는 뜻의 한자다. 그것은 방향의 의미를 담지한 채 돕다의 근본적 배경으로서 사람의 의미를 배가한다, 신체에 체현됨으로써 말이다.
이를 뒤집으면 산의 형상인데―젖가슴으로 비유되는 산의 환유로서 자리하는데―, 이를 상하 반전 한다면, 젖가슴―기획자 김남수는 이를 마고할미의 그것으로 본다.―과 배경의 맞물림은 젖가슴과 또 다른 산의 맞닿음으로 볼 수 있다―김남수는 이를 “산을 조형”한다고 본다. 그 전에 젖가슴은 대자연을 상정하고 함입하는 역동적 생성의 장이다. 그 힘에 조응하는 건 그 아래에 위치한 정정호의 〈돌과 기억〉(202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84×126cm.)으로, 돌은 신체 형상으로 체현된다. 풍만하고도 번지르르한 광택은 〈좌우〉 아래에서 신체의 은유를 획득한다. 그것은 자의적이면서 독특한 덩어리들의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조영진의 〈이수인의 초상〉(2023, 캔버스에 유채, 183×227cm.)도 그 맥락에서 덩어리들의 궤적으로서 인물을 그리기보다 인물에 우연한 듯 필연적으로 가까워지는데, 상단 중앙부의 얼굴은 입체주의의 연장이면서, 덩어리 기호와 미세 분절의 기호들을 한데 끼워 넣어 ‘맞추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서 얼굴은 떠오르고 동시에 잠긴다―신체는 얼굴들의 연결망이다.
또 다른 얼굴은 충동을 빼앗긴 인물들의 무력함으로 나타난다. 이희명의 〈붉은 섬〉(2015~2017, 캔버스에 과슈, 아크릴, 117×91cm(8), 234×364cm(전체).)은 전시 안에서도 꽤 도드라지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어떤 환상을 경유한다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이 작업에서 얼굴은 어두운 눈 화장과 수그린 자세 전반으로 인해 수심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이 얼굴들은 화면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붉은 야자수들이 이곳을 그들에 대한 감옥으로 만든다는 점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곧 붉은 하반신과 하얀 상반신의 존재는 이 붉게 타오르는 섬으로부터 예외적으로 얼굴에 꺼진 재의 기호를 쓰며 전적으로 무력해진다. 그러니까 그 앞의 나무들은 이들을 가로막는 환상이 아니라, 이들의 분리된 충동이다. 비인간 존재는 인간의 자리를 빼앗고 대신한다.

지현아의 〈COATLICUE STATES〉(2023, 벨벳에 자수, 스틸 파이프, 270×150cm.)는 고대 멕시코 아즈텍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코아틀리쿠에를 형상화한다. 이는 이마 위와 벨벳 자수의 몸통을 지지하는 스틸 파이프의 양쪽 끄트머리에 붙은 깃털 같은 장식들과 맞물려 허수아비처럼 심심한 얼굴과 신체 양상을 띠는데, 이를 전도하는 건 그 아래의 신체 전반으로, 중앙의 수직으로 세운 음문 모양의 구멍이 입의 기계로서 자리하며 하나의 거대한 얼굴을 조각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이 여신의 땅으로서 경계의 표지이며, 붉은색 벨벳 원단의 옷을 예외적으로 핏빛 여성 신체만의 구멍으로 갈음한다. 곧 그것만이 독립적으로 진정한 3차원의 신체적 표지이자 신비한 입구의 서사를 구성한다.

고현정의 〈Mourning Dove〉(2023, 장지에 과슈, 아크릴, 150×143cm.)는 신화적 여성 신체들의 분포를 환상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서, 〈붉은 섬〉의 다른 판본처럼 보이는데, 다만 쾌활하고 밝은 버전으로 말이다. 나비-인간은 좌우의 진영으로 나뉘어 활과 창, 칼 등을 들고 하늘을 날며 상대를 향하고 있고, 중앙에는 이미 서로의 신체를 맞잡고 다투는 한 쌍이 자리하는데, 이는 전쟁의 사실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곧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고, 그 아래 토끼와 비둘기의 크기와 비교해 이들은 나비의 미소한 존재들이다―최선의 〈나비〉(2022, 캔버스에 잉크, 204×140cm.)가 공교롭게 환기되는데, 〈나비〉는 그것들의 형상만으로 이뤄진 독립된 세계를 구성한다.
대신 잘 가시화되지 않는, 뒤늦게 발견되는 비둘기가 제목으로 부상하는데, 이는 한복판의 이미지와 무색한 작명이다. 이 여성 나비족 간의 전쟁을 은유하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신화적인 것과 그 서사, 존재의 기원 모두가 이 사실적인 신체로서 비둘기의 상상이라 한다면 과도한 것일까―토끼는 그와 달리 배경과 뒤섞여 투명하게 나타나거나 반대로 사라지는 것처럼 현시된다(일종의 회화적 유희이다).

《물의 왕》은 문자 도상의 차원에서 읽히는 전시인데, 그것은 책이라는 기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인데, 모든 것을 책처럼 읽어내는 관점이 곧 하나의 책을 선택한 것이다―작품들은 뚜렷한 파티션으로 나뉘지 않고 다닥다닥 벽에 ‘붙어’ 있다, 마치 종이처럼. 이는 날개의 〈이.마음.고이.노님 안심묘연.安心妙衍〉(2023, 캔버스에 아크릴, 260×194cm(2).)과 같이, 전적으로 문자 이미지로 전면에 드리우기도 하는데,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날개의 작업―〈물검.수왕〉(2023, 한지에 먹, 72×45cm.)―은 일종의 전시를 관통하고 지키며 전시의 메시지가 널리 전파되는 걸 축원하는 주문으로서 읽히는 것에서 시작해, 이어지는 입구에 걸린 권군 〈소머리 나팔관〉(2023, 레진에 석분토, 120×120×17cm.)으로 이어진다.이 하얀색 소머리-나팔관―나팔관과 소머리의 환유적 닮음을 통해 나팔관을 소머리로 표현하는, 소머리에서 나팔관이 체현되는 소머리 도상―역시 하나의 문자 도상이라 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입체적 형상으로 더듬어 가기보다 크게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며, 소머리에서 나팔관을 발견하는 이미지적 독해,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작업이다.
반면, 그것은 매체적으로는 순수 도상으로 전이되기 전의 하얀색 석분토의 질감, 그리고 주형된 바 그대로의 차원으로 전해진다. 이는 백남준이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1963)에서 전시장 입구에 건 소머리의 실재적인 충격과 그 전이보다는 입구의 경계 표지로서 갤러리라는 건물에 조응된 장식적 기호의 차원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동선을 방해하거나 명확하게 분별되지 않는다. 이름의 의미를 차치하고 보면, 사실 아래로 좁아지는 기울기를 갖지 않은 이 직사각형의 형상은 여성의 상반신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소의 뿔은 양옆으로 든 팔로, 전시장을 받치고 있는 여신의 도상으로 읽힌다―결과적으로 나팔관으로 상정 가능한 소머리로써 여신의 신체를 갈음한 조각이다.

최중낙의 〈해월〉(2023, 천에 아크릴, 160×170cm.)에서 해월을 둘러싼 아우라, 곧 광배와도 같은 동그란 배경은 노란색 원에 맞춰 구부러지고 구불구불 들어찬 빨간색 글씨로 된 일종의 원형 부적 아닐까. 또한 ‘해월’을 바다와 달로, 해와 달로 풀어 기호들을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이는 자연의 유비로 확장된다.곧 배경의 바다를 두고 해월의 얼굴은 제3의 눈인 해와 눈 안의 해와 달, 이마와 눈 사이 뚜렷한 이마 주름을 산 형상의 초록 선분이 장식하고, 그리고 이마와 이어진 코 밑의 덥수룩한 수염은 그림에 쓰인 모든 색―노랑, 빨강, 초록, 파랑―이 자석이 자신보다 많은 쇳가루를 빨아들이듯 하얀색 코를 향해 흡착되고 있다. 이 콧수염은 유일하게 입체적이고 과잉되어 있으며, 분리된 대상이 절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기호들의 배치 방식으로서 얼굴의 형성 방식에서 예외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예외성이 얼굴을 신체적인 것으로, 3차원적인 것으로 되돌리려 한다.
《물의 왕》을 권군-조영진-홍이현숙-이순종-지현아-이희명-고현정 등의 작업을 이어 가며, 여성 신체의 축으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동학의 새로움이 여성의 근본적 차원으로부터 발현, 발화됨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동학의 직접적 이념과 그 설명의 체계적 차원보다는 신체적인 것들을 낭만적으로 읽어나가는 차원에서 말이다. 〈9개의 등걸〉 역시 관상용 나무라기보다 ‘물’의 중심적 이미지를 상정하면서 그 자체로는 신체적인 무엇을 현시하는 듯 보인다―정정호의 〈마고의 먼지〉(2021,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180cm.)는 오른쪽 사선으로 상승하며 또는 왼쪽 사선으로 하강하며 입체성을 환상적으로 수여하는, 마치 돌이 물 같은 검은 대지 위에 떠 있는 듯한, 이와 조응되는 사진 이미지이다.

이를 경유해 전시를 여성적인 것과 생태적인 것이 맞물린 에코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정정호의 돌 사진들을 겹쳐 놓음으로써 말이다. 마지막으로, 김남수는 전시를 지형과 풍수의 현상학으로 독해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부제의 강이 만나 한 길을 이루는 “두물머리”와 같이 물리적이고 신체적으로 길을 내는 이미지적 상상력으로 전시가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여성 신체의 구멍을 특이점으로 재의미화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COATLICUE STATES〉에서 코아틀리쿠에의 어떤 ‘상태’, 그 경계의 실재적 벌림-다묾의 운동성의 구멍에서 결정적인 것 같다.
이는 나아가 〈E-man〉의 기이한 위치의 배꼽, 또는 배꼽을 대신한 예외의 구멍―남성 성기의 표지로서 외부로 나가는 구멍의 반대되는 자리로서 주어진 구멍―으로, 〈이수인의 초상〉에서 크고 작은 세 얼굴의 한쪽 눈들로, 〈해월〉의 해-눈, 달-눈으로, 〈Mourning Dove〉의 나비족의 날개에 그려진 위장 눈 무늬로, 〈붉은 섬〉의 검은 선글라스 같은 눈으로, 〈돌과 기억〉의 돌의 양각의 무늬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구멍들은 충동의 직접적 산물이다. 하나의 구멍으로서 동시에 구멍을 들여다보는 눈으로서 그 응시의 차원에서 말이다.
김민관 편집장
[전시 개요]
전시명: 물의 왕 :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전시기간 : 2023. 11. 3. ~ 2023. 11. 28.
전시장소: 자하미술관
전시장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기획 | 김남수
진행 | 황미나
디자인 | 이효정
기록 | 이세원
도움 | 김미령, 박유한
협력 | 자하미술관, 인문학교육연구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REVIEW > Visual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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