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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혜원, 《순환하는 매듭, 완결은 없습니다.》: 형상들을 가설하기
    REVIEW/Visual arts 2026. 3. 10. 14:45

    정혜원, 《순환하는 매듭, 완결은 없습니다.》ⓒ정혜원[사진 제공=작가](이하 상동).

    정혜원 작가의 개인전, 《순환하는 매듭, 완결은 없습니다.》에서 문장으로서 제목은 일종의 당위이거나 선언의 성격 속에서, 이중적으로 해석되는데, 부재하는 것이 “순환하는 매듭”의 “완결”인 것인지, “순환하는 매듭”과 “완결”인 것인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 두 사이의 쉼표가 두 개의 구문을 만들고 잇고 있음이 그것인데, 곧 순환하는 매듭이기 때문에 완결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서사의 공작임을 지시하는 이 “완결”의 부정은 완결의 부재가 아닌, 완결의 속성을 고스란히 내포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이 “순환하는 매듭”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우선 〈순환/돌/매듭〉(2025. 가변 설치.)에서 직접 지칭되고 있다.

     

    전시장 중앙 기둥을 철망으로 둘러싸며 그 위에 새끼줄과 돌, 그리고 위에 얹혀 있는 여러 크기의 톱니바퀴들이 쌓여 있는 자전거의 카세트 스프라켓 등으로 이뤄진 이 작업은, 프레임으로서 철망 위로 중간중간 돌을 엮는 매듭이 전체를 가로지르며 순환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업은 매체의 차이로부터 오는 예외성을 갖고 있으나 오히려 그의 다른 회화나 작업의 원리로서 설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며, 그것이 그러한 원리를 담지하기 위해서만 아마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러한 원리로서 역으로 전이되는 이 작업은 캔버스라는 네모난 틀을 공간적으로 확장시킨 철망과 그것에 접속하며 분기되는 선분들로서 재정립되는데, 평면의 한계 내에서 그 확장을 꾀하며 캔버스라는 토대를 시험하는 캔버스 위의 캔버스, 곧 캔버스 위의 작은 평면들의 이행, 그리고 몇 점의 회화들에 주요한, 의미 없이 형상 위를 휘젓는 자유로운 선분들 또는 형상들을 잇는 최종의 조작으로서 그 형상을 지탱하는 형태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선분들은, 이 조각-설치-이미지의 토대를 회화(의 실험으)로써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은 얼굴-신체의 형상적 추출, 드로잉에서 연장된 회화적인 회화, 형상의 추상성, 입체에 대한 회화적 대응, 형식으로서 형상 등과 같이 몇 개의 군으로 구분 지어 나타나는데, 이는 제목이 서사의 내용이라기보다 서사 자체를 지시하는 바와 같이, 특정한, 일정한 내용으로 수렴하기보다 오히려 그 결과를 묘사하는 차원에서 후술로서 더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중 직접적으로 또 어렴풋하게 가장 많이 출현하는 ‘얼굴’은 추상성을 획득하며 사실성에 전혀 입각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무엇보다 내용을 지닌 형상으로는 근본적인 최소한의 단위로서 자리함으로써 회화의 토대를 구성해 내는 데 가깝다.

     


    몇 개의 얼굴 시리즈, 〈구겨진 얼굴1〉(2025. Mixed media on panel, 130.3×162.2cm.), 〈구겨진 얼굴2〉(2025. Mixed media on panel, 130.3×162.2cm.), 〈흩날리는 얼굴〉(2025. Mixed media on panel, 130.3×162.2cm.)의 경우, 검은 굵은 신체의 윤곽 아래, 가늘게 쌓아 올린 눈코입의 윤곽은 신체와 얼굴의 대비 아래 마스크로서 얼굴의 특성을 강조한다. 〈어긋난 얼굴들〉(2025. Charcole and Contre on panel, 117.5×95cm.)의 경우, 얼굴은 하나의 형식으로 특정되는데, 눈코입의 윤곽과 얼굴의 윤곽만 남긴 간략화된 마스크들만의 중첩된, 곧 윤곽이 또 다른 윤곽으로 연장되며 그 둥근 선분들의 집산체로서 또는 도형 놀이의 결과로서 마스크들이 추출되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 ‘구겨진 얼굴’ 두 작업은 얼굴-신체의 과잉적 집산으로 배경을 거의 대담한 검은 토대의 무뚝뚝한 신체가 반복적으로 더해지며 차지하는 가운데, 형상으로 기능하는 얼굴의 차이들은 그 안에서 희미하게 인지되는 정도에 그치게 되는데, 이는 정확히 그 관계들을 형식적으로만 탐색하며, 얼굴-신체의 선형성, 곧 위와 아래의 구분, 그리고 얼굴이고 또 신체인 최소한의 인지 정도만을 포함함으로써 캔버스를 대하는 기본적인 시각 체제만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회화의 목적은 형상으로써만 곧 형상 안의 형상을 나타냄으로써 그 배경을 대체하기 위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이 얼굴들은 네모난 캔버스를 온전히 채우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구겨진 얼굴2〉에서는 이질적으로 중앙 하부에 자리한 캔버스 위에 더한 종이 위의 비교적 매끈한 인간 신체 형상 위를 빨간 선분으로 꿰매고 가둔 부분이 이 일정한 하나의 형상-막에 대한 응전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작가는 캔버스를 비켜 나는 여러 형상을 다른 회화에서도 끼워 맞추는데, 곧 배치, 조각하는데, 이 그림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작은 방호막이 기능하지 않게 된 캔버스를 대신에 거꾸로 솟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금니 풀기〉(2025. Gouache on Panel, 147×113cm.)의 경우, 전시에서 예외적인 그림인데, 이는 다른 그림들이 대체로 뚜렷한 형상이 중심적 모티브로 자리하는 가운데, 그것이 확장해 가는 경로로서 그림이 성립하며 따라서 그 강력한 형상으로 관람객을 소급시킨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서 회화의 수행적 차원이 강조되는 것과는 달리, 텅 빈 형상을 조금씩 채워 가는 식으로 역전―결코 그 형상이 다 채워지지 않는다.―시켜 전체를 형상과 배경의 조율과 대칭으로 바라보고, 그 구도의 안정성 아래 부분적 선분들의 균형과 대비를 ‘조망’할 수 있게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단단한 것을 해체하는 제목의 그 과정은 더 구체적으로는 그림 전반을 차지하는 원기둥의 윤곽이 어금니를 기본적으로 가설하는 가운데, 그것을 ‘푸는’ 조작의 행위가 화면 전반에 섞여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확대된 어금니 풍경은 일종의 자연경관으로 재조정되는데, 윗면에는 두 개의 산이 겹쳐지는 윤곽이 어금니 윗면의 굴곡과 홈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아래로는 회색 스크래치의 개울이 검은 충치의 부분을, 빨간 산과 그 아래 갈색 산이 잇몸의 접경을, 그 외에 전체 부피를 오가는 여러 선으로 표현된 길들이 입속 이빨과 엮이는 여러 사물과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얼굴을 어금니가 대체함으로써 안으로 모인 검은 눈의 응시가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얼굴에 대한 인식 기제가 마찬가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회화적 추상성의 차원이 평평하게 재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곧 〈어금니 풀기〉는 〈담금질 하기〉(2025. Mixed media on panel, 163×112cm.)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후자가 상단 중앙부에 얼굴의 형상이 자리함으로써 마치 그 옆쪽으로 굵게 검은 선이 생겨나고 그렇게 전체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나머지 것들은 주요한 형상에 고착되는 효과―그 형상을 분별하는 데, 그리고 그 형상에 집중하는 데―를 낸다. 그 아래에도 여러 회화적 실험으로서 “O”와 “X”의 반복, 손의 여러 다른 양식들을 겹쳐 놓는 방식, 그렇게 눈가를 제외하고 2차원적 표면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정혜원은 드로잉적 구상으로부터 시작해 2차원 평면 ‘위’의 놀이를 향유하거나 형상을 일정한 드로잉의 반복으로 뭉쳐 나가며 응결지음으로써 그 ‘안’으로의 깊이와 존재감을 부여한다. 이때 그 ‘위‘의 놀이로서 다른 매질들이 그림에 들어올 수 있는 단서를 획득하며, 가령 비닐 위에 테이프를 붙여 회화적 구도를 형성하는 것―〈Scar〉(2025.)―으로써 매우 간략화된 회화를 설치로써 인계한다거나 표면 위에 무언가를 ‘부착‘한다는 것으로써 회화의 개념을 되돌려주는 설치를 구성한다―〈순환/돌/매듭〉. 결과적으로, 작가는 회화의 매체적 실험을 그 자체로 즐긴다기보다는 회화의 개념을 그린다가 아니라 부착한다, 설치한다, 조각한다 등의 여러 동사로써 정의하며, 회화의 다른 가능성을 추출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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