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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서 Cha Yeonså,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 훼손, 조율, 바깥으로서 애도REVIEW/Visual arts 2026. 3. 11. 19:44

차연서,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김진호 (SUSTAIN WORKS)[출처=https://energywhoisshe.com/Feed-me-stones.html](이하 상동). 차연서 작가의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는 형해화된 주체의 자리를 형상화한다. 터전 없거나 비어 있는 그 자리에는 죽음에 대한 의례 혹은 종교 의식적 차원을 성사할 여러 오브제와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가 있다.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기보다 비워진 자리에 하나의 몸이 되어 현전한다. 작가의 아버지인 화가 고 차동하의 〈축제〉(2006~2017) 시리즈에서 사용된 채색된 닥종이라는 재료―그의 유품이자 작품의 일부이자 그의 신체에 대한 환유이기도 한 오브제―를 종이 오리기로써 전용하는 이번 전시는 재료에 대한 몰입과 침투되는 자연의 소리, 종교의식에 의한 도취를 통한 ‘나’의 형해화 과정―공기로의 더딘 분포 또는 사라짐―을 통해 ‘나’의 아버지의 신체를 무대로 펼쳐놓는다. 전시는 주체의 형해화 과정과 대상의 부상적 과정이 겹쳐지는 전이 지대를 꿈꾼다.
“좁은 파장의 황색 빛만을 발광하는 저압 나트륨램프the low pressure sodium 1amp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단색monochrome의 풍경”은 어스름한 어둠 속 빛의 분포된 양상으로 드러난다. “일몰과 일출 사이의 검은 시간 사이”를 환유해 내려는 이 같은 조명의 설정값은 블랙박스와 화이트큐브 사이에서 전자에 다소 치중된 느낌을 주는데, 50분이라는 일정한 시간의 구획 아래 관(람)객이 위치하기도 하지만, 대상에 대한 집중을 정면과 빛에 의한 구분에 따른 명시적 위상을 통해 끌어내는 대신에, 어둠에 배어드는 방식을 사용하고, 바닥에 깔아놓은 또는 낮은 판 위에 얹어놓은 오브제들의 가로지름과 통과의 유동적 경로 아래 어슴푸레 고여 있거나 떠 있는 양상을 만듦으로써 대상과 ‘함께’ 거주하는 방식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낮은 좌대에 놓인 닥종이로 만든 작업들은 얇은 단면이며, 레이어와 레이어의 틈이며, 검고 어두운 흔적이자 무언가에 대한 추상적 형상화이다. 곧 오브제-이미지는 어스름함 자체이며 신체/사체를 뒤집는 손길이자 그 지표이다. 사라지는 형체이거나 사라져가는 형체의 일시적 부상이다―그러니 이곳을 극장, 곧 블랙박스로, 그 안의 사라지는 존재들의 양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전시장은 제목이 「귀류」(김언희, 『GG』, 2020.)라는 시에서 나오듯, 전체적인 공간으로의 텍스트의 흡착과 텍스트로의 흡착으로서 자리하는 작품들이 겹쳐지는 풍경이다. 가령 이 시의 연장선상에서 닥종이는 “휘날리”고 사운드는 “휘감기”게 된다. “○○ 같은 것은 여기에 없소“가 병렬되는 「없소」(김언희, 『요즘 우울하십니까?』, 2011.)가 존재의 부재라는 작가의 곤궁과 존재의 부재에 대한 전치로서 자리하는 전시로 연장된다면, 「황혼이 질 때면」(김언희, 『GG』, 2020.)의 “옴쪽 나를/삼키는/구멍”은 이 전시의 어스름함과 틈의 관계로 드러난다.
19점의 페이퍼컷 콜라주 작업들은 제작 연도인 2023년과 2024년에 해당하는 23과 24를 각각 맨 앞에 달고, 아마도 제작 순서를 표기하는 것으로 보이는 #+숫자를 표시하고, 이후 제목이 이어진다. 연도에 대한 강박적 구분 혹은 구분에 대한 강박은, 아버지의 환유로서 부분 신체로서 닥종이가 절대적이면서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할 가능하지 않으면서 단지 숫자로 셈해질 수 있을 뿐이다. 또는 작업의 연속선상의 행위가 전체에 다가서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도는 반동의 에너지로, 훼손의 행위 양식 아래 굴절된다. 닥종이를 다시 잘라내는 전유로부터 그것이 또한 셈해진다는 것, 그로써 새로운 신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축제’라는 하나의 관념으로부터 변형을, 파편을, 대상을 끌어낸다는 것과 같다. 또는 죽음을 재생시키기 위해 다시 죽인다. 아버지를 잘라내며 재기입한다.


캡션의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왼쪽 상단에 놓인 〈24 #9 목욕진언 Mantra for Bathing〉(2024. 75×105cm.)이나 〈24 #10 화의재진언 Mantra for Clothing〉(2024. 75×105cm.)이 좌우 대칭에 가까운 상징적 도상으로서의 형상이라면, 그 옆의 상단 중앙부에 자리한 〈23 #6 젖은 목탄 Charcoal, 2023. 77×105cm〉이나 〈23 #5 붉은 저수지 Reservoir, 2023. 89×108cm〉는 실재 풍경에 대한 이미지, 곧 풍경화로서 큼직큼직한 면들의 배치로 나타난다면, 오른쪽 중앙에 자리한 〈24 #3 포모피 손톱 Nails, 2024. 75×105cm〉이나 〈24#1 표모피 장갑 Gloves, 2024. 75×105cm〉, 〈24#2 표모피 양말 Socks, 2024. 89×108cm〉은 구체적 도상에 대한 분해이다. 〈24 #8 아이들과 어른들 (없소) Childs and Grown-ups (‘Without’)〉(2024. 75×105cm.)이나 〈23 #7 벌레들의 수계식 (‘헐, 헐, 헐’) Precepts (‘heol, heol, heol’)〉(2023. 75×105cm)은 벌레 도상들로 김언희 시인의 시들을 번역한 것이다.
곧 콜라주는 각각 도상, 풍경, 사물, 문자 등을 ‘재현’하고자 하며, 그 모든 것들은 이동과 사이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내려다보는 접촉의 시선을 통해 배경 레이어와 흔적 레이어의 얇은 틈의 간격으로 그리고 가라앉은 레이어와 떠오른 레이어로, 곧 수직 방향의 틈으로 환원된다. 그 환원 가운데 초점화되는 이미지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성격이 다른 무채색의 이미지들은 그것이 품고 있는 이미지에 도달하는 행위라는 매개의 특질을 함께 부상시키는데, 그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기보다 이데아적인 존재에 대응하는 연약하고 가느다란 이미지로서 그 간극만큼 행위의 진실성을 채워 넣는다. 이미지는 더듬고 헤집어질 것을 요청한다. 그것들은 일종의 잿가루가 이룬 순간의 형상화와도 같다.
이 모든 분화는 하나의 조명 아래 가라앉고 재사물화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마스터링된 음향/음악의 전개 속에서 만져진다. 징 소리가 은근하게 뻗쳐 나오다 동환 스님의 소리/구음 의례가 행해지고, 밤중에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거기에 깔린다. 중반이 넘어간 이후에 푸른 빛 컬러그레이드된 어둠 속 영상이 투하되고, 이때 연못에 수중 마이크를 넣어 녹음하는 가운데 이를 듣는 음향 기사(이솔엽)의 모습이 나오고, 카메라가 360도가량 회전해 헐벗은 여성 신체의 동상 하단부에 착지해 흔들리며 중상단부를 비추기 시작하는데, 다시 도약하여 마지막으로 직육면체 석조물 위에 개구리를 비추며 영상이 닫힌다.

아버지가 있던 그곳의 주변을 촬영하고 연못의 심부를 초점화하는 것 같이 확장함으로써 내부가 아닌 그 외부로써 재정렬, 재경계화되는데, 이때 그것은 개구리울음과 같이 자연의 익숙한 반복되지 않은 반복의 형상이며, 그 기원으로 소급해 간다. 이때 음향 기사의 헤드폰으로만 들리는, 잠겨 있는 음향은 유예되는데, 그것은 마치 영혼과의 교신을 비의의 코드로써 봉쇄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리고 나타난 몸은 아버지의 몸과 다른 여성의 몸이다. 그러니까 이 들리지 않는 신체의 목소리를 교신하고 있었다는 결론일까. 아버지가 전이된, 변환된 신체(“살”이자 “뼈”) 말이다.
이 영상이 하나의 톤으로 조정된 전시장 안에서 특정한 시각 이미지로서보다는 어둠의 빛, 일종의 안광 같은 스며 나옴에 가까웠다는 걸 환기하면, 그 자체를 생명의 환유―“살”―로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환 스님의 목소리가 죽은 이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아버지의 목소리―동환 스님의 목소리는 다분히 중성적이며 성차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모든 존재이기도 하다.―를 대신하는 것임을 상기해 본다면, 그것은 자연으로 정착해 마침내 온갖 생명의 평안을 빌어 주는 목소리―“뼈”를 타고 “살”이 진동하여 만드는―로서 재점화되는, 선취된 연못 속의 소리 아닐까. 이 도착의 과정은 애도가 만들어 낸 환각이기도 하겠지만, 애도가 만드는 변용의 실재적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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