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영돈, 〈굳어진 우리의 느슨한 몸들〉: 공동의, 개체의 몸들REVIEW/Performance 2026. 4. 10. 21:22

Q-PERFORMANCE # 21 포스터. 천영돈 안무가의 〈굳어진 우리의 느슨한 몸들〉은 안무가가 온라인에서 모집한 20명의 퍼포머가 출현하며, 이 ‘공동(체)’의 형식은 그들 내재적으로는 중심이 비어 있다는 점에서 공동(空洞)의 몸들이기도 하다. 이때 “우리”로 현상되는 공동의 몸들은 이전의 관념을 끌고 오면서 변용되는, 이중의 관념과 그 사이의 변용 절차―“굳어진”~“느슨한”―를 가정한다. 이 상반되는 관념의 대비는 흥미로운데, 그들은 등장부터 거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지 않은 채 연결되어 있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공간 입구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고 발코니에서 한 명씩 뒤돈 채 출현하는 이들은, 역광 아래 ‘새어 나오는’ 가운데 모두 손을 잡고 있고, 고개는 상대 쪽으로 은근하게 돌아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를 본다기보다 감지하는 것, 옆을 느끼고 그 손의 감각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에 가까워 보이는데, 그렇게 하나의 연결된 형상으로 ‘굳어지며’ 상대에게로 이완되어 있다, 곧 ‘느슨해진다’. 어둠 가운데 새어 나오는 빛은 이후 각자의 휴대폰의 불빛과 함께 공간 전체로 느슨하게 퍼지면서 반복되는데, 그때 각자는 휴대폰의 글을 읽거나 어떤 독백을 한다.
관객은 이들을 본다기보다 그들에게 기울어져야 하는데, 산포되는 존재와 목소리는 특정 존재를 초점화하지 않고, 어떤 우글거리는 움직임 자체, 분별할 수 없음, 공간 전체가 일정 정도 증폭되어 있음의 상황으로 만든다. 그들의 말들은 아마도 각자의 개인적 이야기나 생각 등이 자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어떤 하나의 서사를 벼려내기보다 각자의 몸들이 저마다의 몸들로 발현되는 지점―그러니까 서사는 존재에 해당하며, 존재의 발현 자체가 서사의 추출과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함께 느슨해지며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의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빛과 빛 사이에는 언어와 움직임, 몇 개의 수행 과제가 있다. 등장 이후, 여전히 뒤 돈 채, 무대 좌측에서 한데 모여 4열로 도열한 이들은, 몸을 좌우로 부드럽게 젓는다. 이 긴 지속의 시간 아래, 대열을 이탈해, 한 명의 존재가 누이고 또 다른 한 명의 존재가 눕는다. 그리고 처음의 대칭 이미지, 여전히 뒤돈 채 발코니 문 쪽 커튼에 붙어, 다시 반대 방향으로 퍼지는데, 이때도 고개는 상대에게 기울여 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소리가 계속해서 단속적으로 들려오고, 몸들의 반응을 불러오는데, 그 목소리는 신체 부위들로 이뤄진, 죄다 하나의 명사이다.
이 명사는 해당 부위의 공명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거기에 대한 의식적 집중을 유도하기도, 아니면 그 신체를 스쳐 지나가는 지시의 효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 명의 내레이션 이후 서로를 마주한 둘씩의 대화로, 그리고 굴신과 휨의 동작으로 전면화되는데, 그것은 전체적으로 어둠의 베일로 자리하던 이들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생경하게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긴 봉과 같은 전동 블라인드가 내려가면서 끝이 나는데, 이는 빛의 새어듦과 공간 전체를 만지는 감각을 변주하며 각인하는 절차와 같다.
〈굳어진 우리의 느슨한 몸들〉은 무용수가 아닌 일반 관객~시민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안무의 이념은 공동의 세계를 구축하되 그 안에 개별적 수행자들로 온전히 자리하기에 가깝다. 이때 그 세계 자체가 무언가를 표상하는 것보다 어떻게 그것을 표상해 나갈 것인가의 차원이 중요해진다. 어둠 속 휴대폰을 든 개체들, 텍스트를 읊는 존재들, 어둠-빛의 공간 측면에서 얼마 전 있었던 황수현의 〈세계〉를 환기시키는데, 어떤 지점에서 더 ‘퍼포먼스’에 가깝기도 하다.
곧 존재들은 일정한 규칙을 공유받고 수여하되 개체~공동의 차원에서 진동하는데, 그 공동의 형상이 검출되는 지점에서, 세계는 만져지는 것이 되며, 그 탈은폐된 세계 안에서 ‘우리’의 세계는 비유되거나 그것과 함께 사유되는 것이다. “굳어진”과 “느슨한”의 대립쌍은 빛과 어둠의 대비와 같이 상반되지만 겹쳐지고 이행되는 과정 아래 있다. 또한 목소리와 움직임은 전적으로 대비되기보다 공간의 산포와 공간에의 감각이라는 각각의 차원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곧 어떤 것을 두드러지게 하기보다 흐트리며 이완된 여러/다른 신체들을, 두 관념 사이의 횡단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관객과) 무대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힘든 하나의 공간 아래에서 그것을 이용해 선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의 밀접성이 가진 힘 아닐까.
김민관 편집장
'REVIEW > Perform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컨컨, 〈곡예사 훈련〉: 서커스라는 적자 혹은 고아로서 서사 (0) 2026.04.10 곽소진, 〈파라〉: 지상과 지하의 관계에 대한 불가능성의 염원 (0) 2026.04.10 0set프로젝트,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_안산〉에 대한 메모: 우리는 세월호 이후로부터 무엇을 만나는가 (0) 2026.03.10 박수영, 〈Performance Test〉: 인간에의 테스트 (0) 2026.03.07 김보용, 〈수의 감각〉: 돈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재)사고를 위한 의례 혹은 놀이 (0)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