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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 작·연출, 〈이야기와 전설〉: 인간의 편견을 (재)경유하는 로봇REVIEW/Theater 2026. 5. 11. 20:30

조엘 폼므라 작, 연출의 〈이야기와 전설〉[사진 제공=LG아트센터](이하 상동). 조엘 폼므라 작, 연출의 〈이야기와 전설〉은 안드로이드―“AI 휴먼”―가 일상에 상용화된 시점에서, 로봇이 인간에게 건네주는 의미를 탐색한다, 주로 청소년 세대의 자의식과 연애와 사랑을 경유하며, 반-페미니즘의 기류를 감지하면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그것을 정위하면서. 이는 인물들의 개별 서사와 관계가 빚어내는 형상(이야기)보다는 인물들에 놓이는 예고되지 않은 더 큰 서사의 축(전설)이 어떻게 그 이야기를 조직해 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 시제의 ‘가정’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첫 장면의 양극단에 선 아이와 성인 여성 간의 대화에서는 쏟아지는 아이의 매우 거친 말들로부터 체화된 남녀 차별적 사고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차분하고 끈기 있고 현명한 대처에 의해, 일정 나잇대까지는 여성이 더 빨리 성숙해진다는 어떤 가설에 따라 수용 가능한 것으로 취해진다는 차원에서, 간신히 그것을 관객은 ‘견뎌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극 내부에서 엄밀히 교화되거나 수정되는 방향성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그것을 위한 내재적 동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와 전설〉은 페미니즘을 의제로 다루기보다 현상으로 비추는 경향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화 속에는 로봇에 대한 혐오가 여성에 대한 혐오와 함께 한 축을 형성하는데, 그것은 유사한 것이다. 로봇은 인간이 아니라서, 여성은 남성이 아니라서가 그 근원적 이유라는 점은 결국 유사 계열을 이루는데, 남성 지배적인 질서의 세상은 인간 중심적 사고의 세계로 연장되거나 그 반대로는 수렴한다. 곧 새로운 혐오의 축은 현실의 익숙한 것으로부터 연장되며 우리의 의식에 익숙한 것인 양 자리 잡게 된다.
한편으로 이 대화는 두 대립된 존재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대비시키는 것과 함께, 우연한 처음의 만남이라는 전제로부터 ‘현재’의 발화 자체에 초점을 둠으로써 그 관계의 불안정성과 변화의 수월성 안에서 갈등을 전면화하고 사건의 여지를 견인해 낸다. ‘처음’은 상호 교차적인 맥락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고, 이는 젠더의 이분법적 표층으로 수렴한다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작동 기제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또한 그렇게 의미를 결착하(려)는 조엘 폼므라의 관점을 향한다.

〈이야기와 전설〉은 결국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이 어떻게 만연하고 일상화되어 있는지, 따라서 그것이 자연스러우며 로봇에게도 고스란히 연장되는지, 곧 로봇에게 드러나는 태도가 인간이 가진 현재성을 보여주는지를 보여준다. 미래의 시점을 가정함에도 사회의 보수성, 낡은 태도들과 언어들이 극 전반을 지배하는 건 그런 연유이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또한 연극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거나 혹은 반영해야 하는 것일까. 재현의 방식은 일종의 태도와 의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이야기와 전설〉은 문제적이다.
앞선 대화의 과감한 현재성이 적나라한 현실의 투영으로 자리 잡을 때 거기에는 무대의 라이브니스와 명확한 시노그라피의 영역의 매개가 있다. 반면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사실주의적(으로 보)일 때 역시 그것이 사실을 재구성한다는 건 분명하다. 남자 아이는 여자가 로봇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닌 인간과의 교통을 온전한 차원에서 가능하게 하기 위한 AI 휴먼 개발의 기조는, 여자 로봇에게 욕정을 느꼈던 특별한 체험을 아이에게까지 안긴다.
반면, 그것이 범죄의 여부인지를 판별하기 전에(사실, 그것이 판별 불가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극을 관통하는 핵심 모티브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던 것은, 그리고 그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지금 눈앞에 놓인 여자 혹은 로봇이 그 외모가 아니라 대화에서도 인간의 언어와 구분 불가능하다는 점으로부터도 역시 그가 폭력적이라는 것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에 나오는 부작용이라기보다는 강간 문화를 비롯해 폭넓게 여성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용인하는 오래된/지난 남성 중심적 사고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와 전설〉은 오래된 현실을 미래의 시점에 투영한다. 또는 그 미래의 투과지를 통해 현실을 안착화시킨다. 아이들은 신화적 조작으로부터, 어른의 계보로부터 그렇게 된다고 가정된다. 곧 남자 아이들은 일종의 비밀 결사대로서 남성성을 훈육받는다. 어느 뒤 공간에서 모인 아이들은 일제히 가방을 한곳에 내려놓는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남성성’을 다시 발현시키려는 부모들의 의지를 미션으로 이어받은 교육관의 특별한 임무가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항 대립적 좌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하라는 과제로부터 소수의 길을 선택한 카미유는, 그 나머지 또래집단에게서 집단 언어폭력을 견뎌야 하는 과제를 받고, 울면서 남성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며 그 반대급부로 여성성의 한계나 취약성을 가진 불완전한 인물로 유형화된다. 여기서 어두운 조명과 무겁게 내리깔리는 음악은 남성성의 내면을 심연의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아마도 극에서 가장 긴 두 장면에서 공통적인 이 어스름한 공간은 가장 앞선 대화의 장면에서는 존재의 식별 불가능성을 형성하는 실재적인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선-인식 프로그래밍이 내재화되는 ‘어둠’의 분위기로서 그 성격을 달리한다. 거기에는 온전한 남성성보다는 남성에 부착되려는 노력과 유격이 자리함이 드러난다.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것은 주입되고 학습되는 것에 불과하다. 동시에 탈락의 불안감과 잔여의 무의식이 노정된다.

〈이야기와 전설〉에서 로봇은 여성화된 존재이다. 그것은 남성적 폭력을 온당하고도 침착하게 수용하는 첫 번째 여성의 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의 지능 테스트로서 단순한 질문 세례를 견뎌야 하고, 인간의 모든 발화를 수용하는 건 로봇이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고 윤택한 것으로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이 여성의 돌봄과 수용의 태도로 내면이 없는 설정된 기계적 프로그램에 따르는 대상으로 분리되는 과정은, 인간과 로봇의 명확한 구분에 근거하기보다는 그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으로부터 온다.
김민관 편집장
2024.11.7(목) – 10(일) LG SIGNATURE 홀 소요시간 1시간 50분 (휴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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