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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살기 좋은 ○○〉: 우리라는 자화상REVIEW/Theater 2026. 5. 11. 20:17

박현지 연출, 〈살기 좋은 ○○〉[사진 제공=극단 그린피그]. 〈살기 좋은 ○○〉은 중반 이후, 미래의 주거상을 AI를 매개해서 현재화해서 보여주는데, 이는 현재의 심리가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에 대한 두 배우의 자기 서사를 연장한 실제적 욕망의 세부가 그 전까지 발화된다면, 이는 욕망과 현실의 지나친 격차로부터 기술 이전을 통한 또 다른 현재의 버전이 미래를 가장하여 제시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서 집은 공적 공간의 폴리스가 아닌, 사적 생활단위의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에 상응하며, 순수한 의미에서 정치적 영역의 바깥을 가리킨다.
오이코스는 ‘경제’의 어원이기도 한데, 따라서 부상할 것은, 환기되어야 할 것은 정치적 영역이다. 미시사는 교환되며 사회적 접점을 찾아 확장되어야 한다. 개인에 대한 초점과 관심은 전반부에서처럼 사적 영역의 욕망을 전시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분석되어야 한다. 이는 데우스엑스마키나우스의 일환이자 보이스 오버로 등장하는 관객 너머의 박현지의 목소리에 의거해 본격적으로 열린다. 그의 쉴 새 없는 첨예한 질문들이 경제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욕망에서 윤리의 차원으로 현재를 이끈다. 그것은 관객의 질문이기도 하고, 관객의 윤리를 가장한 것이기도 하다.
도심 제조업 중심지였던 을지로 4가 재개발은 서울이라는 욕망의 집합체 너머의 그림자로서 대표적 상징으로 호출되며, 상인들과의 인터뷰는 참담하거나 애석할 따름인 반면, 서울시의 민원에 대한 답변은 정책적 결정에 따른 것임을 고지하면서 절차적 법의 경과로 환원시킬 뿐이다. 여기서 그곳이 아파트 청약이 될 경우, 한 배우는 그곳에서 살기를 선택할 것임을 이야기한다. 물질과 자본은 명백한 것이기에 그것의 물리적 현존은 실재의 물리적 부재를 공고하게 딛고 일어날 것이기에 ‘그림자’는 그곳의 존재적 기억에만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단지 드높은 미래를 쟁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안다. 그럼에도 다른 앎의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종의 페티시즘적 부인이 배우를 아니 우리 자신을 증상적으로 보여준다. 곧 〈살기 좋은 ○○〉은 개인을 특정화하기보다 증상화하고 동시대의 사회적 정신 분석의 한 경로를 도출해 낸다. 급격한 개입은 적절했는가? 방어적 환상이 실재와 가상의 서사를 거치면서 연장되는 과정에서 변경은 필요했다는 게 답이다. 서울시를 블록화해 표기한 지도를 바닥에 두고, 두 배우의 일상을 핑퐁으로 대등하게 보여주는 전반의 방식은 서사의 개인화와 심미화이지만, 그것은 증상 분석을 위한 형식적 절차였던 셈이다.
을지로4가라는 실재, SF적 형식을 띤 상상적 (분명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외에 〈살기 좋은 ○○〉은 박현지의 부모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데이터를 가져온다. 부모님이 한평생 거주했던 구의동 한양아파트에 대한 일화적 기억은 다큐멘터리 영상의 삽입이면서 마지막 박현지의 개입을 정당화한다. 그의 연구 과정 안에 젊은 남녀 두 사람의 또 다른 표본을 (그것이 중심이 아니라) 시간적 격차로서 끼워놓은 셈이다. 이는 아파트 공화국으로서 한국에 대한 미시사적 분석의 경로를 일부 제시하며, 너른 시간을 성립시킨다. 다양성의 견지에서 을지로4가의 이야기가 성립한다면.
기본적으로 〈살기 좋은 ○○〉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예견된 미래의 시점, 나와 시간적/공간적 타자, 보통의 사람의 서사를 복합적이고 파편들의 종합 차원에서 전개하며 역설적 표현으로서 “살기 좋은 ○○”에 대한 진단을 한다. 우리의 욕망과 결부된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한편, 그것이 비판의 차원이 아니라 부정의 차원임을 드러내어 무기력한 우리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 연극은 우울하며 나아가 그 우울함을 적잖이 희극적으로 연출해 낸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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