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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형제, 〈풍경〉에 대한 주석: 4·16 세월호 참사를 경유하여...REVIEW/Visual arts 2026. 5. 15. 13:33

무진형제, 〈풍경〉[출처=https://lux.org.uk/event/london-korean-film-festival-2020-moojin-brothers/.]. 경기도미술관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2024.04.12~ 07.14)는 4·16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작가의 여러 방식, 또 주제의 확장성과 연계성의 테마를 생각해보게 한다. 곧 세월호를 재현하거나 지시, 정의하려는 것 대신에 작가의 태도가 어떻게 세월호 참사를 상기하고 연장시키는지에 대해 판단하는 몫이 관람객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각 작품이 세월호 참사와 모두 상응하고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각 작품의 고유한 미학적 영역들을 ‘태도들’의 관점과 함께 전시의 주제적 차원에 따른 이차적 접근에 의해 획득되는 사유의 영역, 곧 큐레이팅에 따른 전유와 연결의 영역을 동시에 진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중 무진형제의 〈풍경〉(2016)은 무진형제 특유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형식과 진동하는 신화적 서사와 덜컹거리는 비인간들의 존재 양식, 문학적 알레고리를 담은 자막의 투여가 여전하면서도, 세월호 참사를 혈연적 차원의 유비 관계로써 재서사화한다는 점에서, 형식적 참여와 수행의 차원과 다른 내재적 시도의 공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경〉에 등장하는 미르메콜레온은 사자의 머리와 개미의 몸을 지닌 괴물로, 무언가를 삼키지도 소화시키지도 못하는 삶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존재다.
신화의 기시감, 그리고 변형된 신화의 창조를 보여주는 영상에서, 전언적이고 추상적인 자막 언어는 미지의 시공 속의 어둠과 검붉은 이미지들을 꾀고 지배하는 선행 언어임을 드러낸다. 곧 신비하면서도 투박한 이미지 질서의 전개가 지닌 헐거움은 이미지의 바깥에서 신화적 세계관에서, 또는 신화관을 추출하는 언어의 확장성에 상응한다. 곧 둘은 상쇄되고 부합된다. 결과적으로 언어의 추상성은 그 언어가 비로소 이미지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명확하게 지칭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표층의 세계로 여전히 남아 있음으로 연장된다―반면, 프롤로그에서 이미지는 언어를 새기는 표면으로서 또는 언어가 새겨지는 이미지로서 자리하는 표층으로 자리한다는 점에서 언어에 상응한다.
이름이 없는 이, “괴물”과 소각장에서 실험을 하는 방호복을 입은 자, 이 두 존재의 ‘이미지’와 “아버지”와 “아이”의 ‘이름’은 상응하는가, 또는 어떻게 관계될 수 있는가. 언어와 이미지가 각자의 질서로 지속되며 각각 또 다른 이미지의 가상을 기대하게 하고 다른 언어의 기입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곧 둘의 자율성이 추구된다는 점에서 앞선 질문의 답을 즉각적으로 구할 수는 없다. 나아가 2014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이 작업은 어떻게 사건을 반영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다시 말해야 할까. 이는 이 전시 읽기의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것과 연관된 부분이 명백하게 삽입되어 있다.
가령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화면을 덮는 자막 언어의 ‘삽입’적 차원은 세월호 당시 방송의 주요한 하나의 지령이었음은 명확한데, 중후반에 자리한 이 언어가 흐릿한 작품의 언어를 현실의 키로 다잡을 수 있는 하나의 힌트일 수 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버지는 바람의 존재가 되고 아이들은 바람이 되어서야 뒤늦게 그것을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서사의 축약은, 괴물과 소각장 실험의 중간 과정 앞뒤로 자리한다. 책임과 의무를 지닌 존재로 전제된 아버지와 역사를 망각한 아이의 급격한 세대적 단절에서, 예컨대 주체는 아버지이며, 아이에게는 그 망각에 대한 어떤 혐의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세월호 참사와 겹쳐 놓으면, 과거의 잔재로서 죽음 직전의 그 나이로 자리한 아이들을 향하며 이를 미래로 연장시키려는 우리의 결핍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전사를 지닌 앞선 세대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세대로 굴절돼 나타난다. 시간순서는 뒤집혀 있고, 이는 과거의 결핍을 미래로 위치시켜야 하는 우리의 숙명과 영원한 과거로 끊임없이 도래할 아이의 이미지에 따른 것이다. 연장하면, 통상 어머니와 아이라는 직접 낳고 보살피며 자연스런 애착의 관계로 형성되는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라는 책임과 규율의 관계성이 부각되는 두 존재로 설정되는 것 역시, 그 책임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가시화한다.
김민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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