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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변방연극제] 프로젝트불똥 X 플랫폼C, 〈현지 가이드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 타자성의 거리를 배가하여 다시 쓰기REVIEW/Performance 2026. 5. 18. 19:57

2024 서울변방연극제 포스터. 프로젝트불똥 X 플랫폼C의〈현지 가이드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이하 〈동아시아 맞춤 투어〉)는 동시대의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하거나 부정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운동의 현장을 향한 연대적인 에너지로 전환하고자 한다. 여기서 “투어”는 프로젝션을 통한 영상과 그 앞의 두 MC의 소개 멘트로써 이뤄지며, 실질적인 관객의 이동은 대부분 프로젝션의 위치가 달라짐에 따른 방향과 거리, 간격을 재조정하는 정도에 그친다―이는 결말에는 세운홀 바깥으로 이동하며 앞선 운동 에너지로 변환된다. 정확히 현재 우리가 자리한 이 점유, 전유된 장소와 영상 재현의 근거가 시차와 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차이의 지점에서 발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투어는 장소의 체험이 아닌 장소의 이미지를 시청하는 것이다.
스크린 앞의 두 매개자는 정보 전달의 역할에 충실하고, 이 정보는 다분히 피상적인 차원에 그치는데, 한편으로 그 정보는 1/n의 지역으로 할당되어 있는 짧은 분량의 소개 위주의 멘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를 극적인 흐름으로 변환하지 않은 그야말로 정보 차원으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는 서사가 가진 비극성이나 타자성의 일면을 각각 감정이입을 통한 해소나 재현할 수 있음의 차원으로 가져가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전제하면서 나아가 그 지난한 현실들이 모두 진실의 층위에 속하며 관점과 해석의 층위를 뒤섞기 전에, 그 정보의 단면으로서 제시됨이 일차적인 과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현지 가이드”가 현지인일 거라는 생각은 물론 미끄러질 수 있는 추론이지만, 더 중요한 건 현지 가이드의 일반적인 역할이 대부분 현지를 모르는 이를 위해 자리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인 정보로서의 동아시아의 비극적-비판적 현실 제시는 그들의 입장에서의 발화라기보다 그들을 매개하는 우리의 투명한 입장을 향하며, 낯선 사실들의 ‘나열’은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부조리한 사회의 형상을 구성한다. 이는 동시대의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의 단면과 직접적인 연계를 이루지 않는데, 단지 우리의 입장에서 환기될 뿐이다. 이 공연의 맹점인 절대적 타자성의 형상화는 우리의 현실을 빠뜨릴 수 없다
〈동아시아 맞춤 투어〉는 ‘현지’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다. “맞춤”은 현지를 잘 모르는,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에게 ‘적합한’ 상품으로서, 그 상품이 갖는 다양한 비극적-비판적 현실들을 ‘하나의’ 계열로 잇는 시도이다. 동아시아라는 지도는 비극의 이름으로 연대하며 투쟁의 전선으로 다시 쓰는 이름이 된다. 민족주의적 정신은 그와 상충하면서 차치의 대상으로 물러난다. 이는 불안정한 공간, 혼란스러움의 공간, 어둠의 공간, 나아가 부재하는 공간으로서 이곳을 점유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 상응한다.
타자성의 형상은 우리의 형상과 어떻게 조율되거나 접촉될 수 있는지를 과거의 이야기 속 존재이거나 현재의 비가시화된 장면의 기록에서, 각각 비좁은 틈의 무대에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등장할 수 없음이 목소리로 대신 증언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현재에 맞춰져 있다. 현재는 당면해야 하는 것이자 임박해 있는 것으로, 이는 지역의 거리를 지우고, 시간적 맥락을 요약해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결국 자본주의로 인해 연결되어 있는 반면, 자본주의가 주는 표층의 이미지와 현실의 실상은 심대한 차이를 보인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매끈하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묶고 있음으로부터 깨어나기 위해, 가령 아이폰은 해체되어야 하는데, 애플 제품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실은 제3 세계의 값싼 노동력의 활용하는, 곧 중국과 베트남, 인도의 폭스콘 하청공장에서 실제 조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폭스콘이 하청 기업으로서 ‘낮은 생산단가와 신속한 납품, 그와 동시에 높은 품질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받음으로써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끔찍한 증거로서 노동자의 투신과 연쇄 자살 사건으로 이어지는 사태에 대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인으로서, 미숙한 관객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 수 있을까.
오히려 〈동아시아 맞춤 투어〉는 그러한 관객의 현존을 불안(정)하게 구성하는 것 이외의 전략을 구성하지는 않는데, 곧 주어지는 과제는 의식적 차원의 이미지로서 자국을 남기는 반면, 언어적 차원으로 명시되거나 서사적 차원에서 완성되지는 않는다―그것의 결정적 매체는 실은 관객에게 사전에 나눠준 타블로이드판 신문으로, 가령 앞선 아이폰에 대한 현실은 “아이폰 조립하는 농민공들은 왜 연쇄 자살했는가”라는 타이틀로 첫 번째 페이지의 대문을 장식하는데, 그처럼 이 신문은 현실들의 모음이지만, 무엇보다 정보 전달의 성격을 향하며, 그 정보들의 공통성을 제외하면, 전형성의 형식 자체로 스스로를 국한한다.
임시적인 무대의 조직은 그 자체로 투쟁과 연대의 운동 현장의 연장선상을 가리키면서, 그에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한 관객의 가변적이고 불투명한 정체성을 일종의 불순물처럼 가시화한다―그 역의 차원에서도 이 무대는 결코 결정적이지 않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환유의 차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핵심적이다. 관객이 그나마 가시화될 수 있는 건 이 공간의 그림자로서, 그림자로서 공간 자체를 떠날 때뿐이다.
그리고 한받이 이끄는 노래패의 일원으로 속하며 뱅글뱅글 광장을 돌며 노래를 완성할 때 암울한 현장은 유희의 운동 전선 속에서 서로를 식별하며 자신의 행위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공장 바깥의 삶의 축복을 그들의 몸을 빌려 체현하는 것일까. 아님 우리가 그것을 성찰하고 감내할 수 없음에 대한 거리를 매만져주는 음악의 작은 위로의 손길일까. 그 손길들이 이어져 어떤 연대로서 무언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미래로 던지는 기약 없음의 또 다른 입구를 가설하는 것일까.
김민관 편집장
2024. 9. 1. (일) 16:30 / 9. 2. (월) 19:30 세운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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