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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선, 〈박인선쇼〉: 자아를 단단히 하기
    REVIEW/Music 2026. 5. 22. 17:22

    박인선, 〈박인선쇼〉[사진 제공=국립극장](이하 상동).

    박인선의 〈박인선쇼〉는 강령탈춤의 형식을 차용하며 자기 서사의 확장을 꾀하는 가운데, 현대적 밴드의 연주를 덧입힌다. 박인선의 현재의 자기 발화적 관점은 ‘박인선’이라는 연행자의 정체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일종의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전면에 드리우게 된다. 박인선이라는 실제 인물이 ‘박인선’이 주인공인 드라마에 투과되면서 박인선의 예술적 역량과 재능을 넘어 극적 인물로서 ‘박인선’에 대한 문학적, 연극적 타당함을 검토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는 전반적으로 아쉽다.

     

    전통의 수용에 대한 태도에서, 페미니즘 차원에서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새롭게 그것을 변용하는 지점이 나름 고무적인 데 반해, 그것은 부차적이고 독립적인 하나의 범주로 닫히고, 전반적인 뉴에이지적 평안과 웰빙의 차원을 향한 갈망과 성사의 코드는 분명 다분히 낡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박인선’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발현되면서 닫힌다는 것은 의문을 안긴다. 곧 평안함을 얻는 것이 지상목표로 제시될 때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것이 소거되고 있고, 동시에 독단적으로 그 진실이 성취된다.

     

    “쇼”라는 명명과 같이, 연행이라는 것이 결국 눈앞의 관중을 향한, 현재의 도취와 쾌락, 나아가 쉼으로 종결되는 극단적 엔트로피적 과정의 일환으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전제하고 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가운데, 박인선은 드라마적 구조를 고안한다. 서사 구조를 지닌 강령탈춤을 연계하면서 단순히 연행의 현대화가 아닌 연행의 현재적 짜임을 유기적인 시간의 질서로 전면화하는 선택은 탁월하다―단순히 극의 흐름에서 관객에게 잠깐의 말을 거는 차원을 벗어난다. 콘서트 무대의 박인선이 화자와 주인공의 ‘박인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박인선‘의 드라마가 “박인선쇼”를 포박하고자 한다. 쇼와 극은 착종되고 어긋난다.

     

    박인선의 수행은 ‘박인선’이라는 시종일관 드라마 연극을 온전히 향하며 그것의 작위성을 드러낸다. 일관성 있는 톤과 어조는 ‘박인선’을 완성하며 닫힌다. 문제는 그 드라마가 부족하기보다 상투적이고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박인선은 하나의 드라마 안에 있고자 한다. 먼저 2023년의 누적된 활동과 피로, 번아웃의 분기, 그리고 대조되는 2024년이 소개된다. 무대에 섰을 때보다, 무대가 끝나고 강릉 주문진 바다에서 누워 여러 시간을 혼자 보냈던 기억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되찾는 것, 그리고 이 무대 자체가 관객에게 일종의 강릉 주문진에서 보냈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박인선은 자신의 드라마 안에 고성오광대의 주로 5, 6장의 부분의 연행을 삽입한다. 곧 전통은 형식을 이루는 양식이며 기능이자 도구이다. 반면, 전통에 내는 박인선의 솔기, 곧 의구심, 그리고 변형과 각색, 곧 박인선의 내적 분열의 양상과 창조적 전유의 차원이 그의 전통이라는 절대적인 원천 소스를 재사유하는 장면, 곧 빈약하고 수동적이며 말없이 모든 걸 그저 수긍하는 소무라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장면은, 그럼에도 페미니즘의 언어를 전면화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꺼뜨리고 전면적으로 극을 수용 가능한 것으로 평탄화하는 차원에 가깝다. 고성오광대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다루기에는 박인선이라는 드라마의 구조 아래, 콘서트에서의 음악적 흐름을 구성하는 데 그 단편들을 취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 전까지가 차용이라면 이번에는 인용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박인선’이라는 자아를 구획하고 보호하며 지속하기 위한 의도를 띤 것으로 보이는데, 보통 양반을 비판하는 저항적이고 풍자적인 인물인 말뚝이의 경우, 그 사회 문화적 차원의 반동적 인물로 표현되는 대신에 자유를 찾아 헤매는 탈사회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면, 특색 없고 개성 없고 무지한 셋째 양반의 경우, 그에게 가해진 부당한 인식을 제거하면 풍류 가인의 면모가 새롭게 부각될 것이라는 것 역시 고성오광대가 가진 맥락을 해체하고 지우는데, 이는 나아가 강릉 주문진의 체험, 곧 사회적 맥락이 거세된 진공의 평화를 누리는 한 개인의 충만한 시간으로 통합된다.

     

    콘서트의 차원에서 볼 때도 아쉬움은 생겨나는데, ‘박인선’이라는 하나의 중심인물의 현동화에 초점을 두다 보니 콘서트라는 맥락이 무대 장치의 입체적 배경처럼 계속 처리되는 것이다, 앙코르가 나올 때 비로소 멤버들 각자가 소개되는 것과 같이. 무엇보다 한 인물에 집중되다 보니 밴드 음악의 연주가 강조되거나 전면화되지 않는다. 대부분 연주적으로 단조로움을 띠고 있으며, 박인선의 보컬의 역량이 과시되고 연주와 길항하면서 증폭됨에도 대부분 연주는 보컬 아래 수면에 있다. 그 가운데, 예외적으로 태평소와 피리를 오가며 김조현은 드라마의 정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민관 편집장

     

    [2024 여우락 페스티벌]

    박인선, 박인선쇼

    2024년 7월 24일 (수) 19시 30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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