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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지 이케다/앙상블 모데른, 〈현악기를 위한 음악〉: 시각으로 쓰인 연주REVIEW/Music 2026. 5. 28. 13:34

료지 이케다/앙상블 모데른, 〈현악기를 위한 음악〉[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이하 상동). 료지 이케다/앙상블 모던, 〈현악기를 위한 음악〉은 연주자의 배치를 통한 음악적 연장을 시도한다. 기다란 악보 양 끝에서 읽어 들어가며 서로를 교차되는 지점을 만드는 ‘독립된’ 세 곡을 엮은 〈거울, 둘을 위한 하나〉(2020~2023)와 횡 축으로 일렬 배치하는, 중앙의 컨트라베이스를 기준으로 좌우로 가면서 작아지는 찰현악기들의 조합, 〈프리즘, 현악 9중주를 위한〉(2023)과 〈반사, 현악 9중주를 위한〉(2022/2023)이 그것이다. 전자가 악보의 연장으로서 이동이라는 이행적 배치를 구성한다면, 후자는 선형적 음의 배치로써 소리의 순환을 시각화한다. 언플러그드 음악으로부터 이 배치는 음원을 시각화/장소화하는 것을 수월하게 하는 것과도 같은데, 전개에는 언제나 배치, 곧 음들의 독립된 장소적 이행의 차원이 있다.
여기서 배치는 시각성을 띠는 안무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음악에 ‘배가’되는 부속적 차원인 동시에, 그 배치의 시각성을 음의 배치로 이전한다는 점에서 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동기를 충족하며, 바로 그 점에서 음악에 정합적이다. 곧 음악은 배치로 완성되지만, 또한 배치로부터 기원한다―배치는 모든 것이다. “거울, 둘을 위한 하나”라는 제목은 음악을 배치(로 인한 것으)로서 지시하는 메타 음악적 언설과 같은데, 이는 악장의 구분 대신에, 개별 곡들의 순서의 차원으로써 종합한다―로마 숫자가 ‘유기적으로’ 제목 뒤가 아니라, 앞에 붙는다. 그러니까 개별 실험들의 양상은 일종의 개념적 차원에서 하나로 ‘견인’되며, 그것은 음악을 시각적 단위(의 배치)로 재분별하는 것과 같다.
‘I. 바이올린 2대를 위한’, ‘II. 바이올린 2대를 위한’, ‘III. 비올라 2대를 위한’는 그 제목과 같이, 시각적 오브제에 대한 명시 외에 음악적 연상을 직접 부르는 요소는 제외된다―“현악기를 위한 음악”이라는 전체 제목 또는 음악회의 제목 자체가 그 시각적 오브제(에 대한 배치)를 중핵으로, 사물(thing)으로 둔다. 그에 따라 바이올린 연주자 2명, 그리고 또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 2명, 그리고 비올라 2명이 각각 나오고, 그것은 그 자체로 자족적이며, 세 곡 모두 완성의 차원에서 인사-박수의 이행적 단계를 만든다.
“거울, 둘을 위한 하나”라는 제목은 결코 “거울”에 대한 은유적, 상징적 의미를 갈음하지 않으며, 단지 앞선 한 쌍의 연주자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연주를 이행한다는 점에서의 즉자적, 즉물적 언설이다. 그리고 둘은 좌우가 반전된 하나의 악보, 곧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가면서 그 반전된 하나의 악보를 읽는 방식을 따름으로써 “둘을 위한 하나”는 예컨대 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악보라는 배치 자체를 ‘거울’로 최종 은유한 것이다, 서로를 마주 본다는 환유의 원리에 입각해서 말이다.
‘I. 바이올린 2대를 위한’은 ‘하나에서 분화된 둘’이라는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적시한다. 한 명의 연주자는 오직 한 음씩만 ‘누적’시키며 다음 연주자의 자리가 출현한다―이 음의 거의 없음의 시차는 장소적 시차로 인해 가상의 차원에서 시각화되며 겨우 분별된다(이는 꽤 모호하다. 사실은 ‘다른’ 두 악보의 연결로 인해 음의 ‘낙차’가 동시에 발생하는데, 그것은 거꾸로 장소적 차이를 음의 고유한 차이라는 지점에서 덮기도 한다.).
곧 모든 한 명의 연주자는 독립된 연주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약분된 반쪽의 존재자로 자리한다. 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시차를 발생시키는데, 이는 완벽한 (혼자서보다 더 완벽한 차원에서 달성되는) 한 음과 다음 음의 연결을 위해서는 현을 긋는 동작이 앞선 연주자의 끝 ‘음’(보다 선행하여 자리함으로써 그 음)과 맞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II. 바이올린 2대를 위한’은 완벽한 분리―하나의 완벽한 약분―가 아닌, 협주의 형식을 띠며, 낙차를 가진 (그럼에도) 구분 불가능한 음가의 연속으로서 ‘하나의’ 주선율(의 약분)은, 주선율의 위치가 전환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곧 하나의 안에 있던 음이 바깥으로 반전된다. ‘III. 비올라 2대를 위한’은 둘이 서로를 향해 이동하다 교차하고 마침내 다른 끝점에서, 서로의 위치가 바뀐 채 끝나는 이전의 경로를 더 복잡하게 변주하는데, 중간에서 교차되고 1/3 지점 정도 더 갔을 때 다시 뒤로 이동함으로써 최종 위치는 제자리가 된다―따라서 악보의 1/3 정도는 연주하지 않게 된다.
〈프리즘, 현악 9중주를 위한〉(2023)은 중앙의 컨트라베이스를 기점으로, 좌우로 점점 작아지는 찰현악기의 배치를 이루는데―바이올린[작디시 미스트리(Jagdish Mistry)]⑨-바이올린[레이첼 코블랴코프(Rachel Koblyakov)]⑧-비올라[빅토르 구아이타 이구알(Victor Guaita Igual)]⑦-첼로[에바 뵈커(Eva Böcker)]⑥-컨트라베이스[폴 캐넌(Paul Cannon)]⑤-첼로[애니 제이콥스-퍼킨스(Annie Jacobs-Perkins)]④-비올라[카사카와 메구미(Megumi Kasakawa)]③-바이올린[요르고스 파나기오티디스(Giorgos Panagiotidis)]②-바이올린[베로니카 팔레예바(Veronika Paleeva)]①―, 시각적 중앙의 컨트라베이스가 음악의 중심을 잡는다.
아주 짧은 첫 번째 (결정적이라 하기 힘든) 분기는 2번 바이올린의 요동하는 음정, 곧 바이올린 목 쪽의 줄을 빠르게 운지하는 선율의 불안정함에서 기인하는데, 예외적으로 빠르게 적용되는 이 연주는 마치 전자음과 같은 단속적 음률이 갖는 기이함을 선사한다―일렬 배치는 이러한 시각적 차이를 분명하게 표지한다. 이를 제한다면, 대부분 기저음이 되는 컨트라베이스의 운용에 따라 전체의 분위기가 전환되는데, 이는 일종의 축의 변경으로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프리즘, 현악 9중주를 위한〉은 컨트라베이스가 저음부에서 조금씩 상승해 나가면서 다른 음들의 상승과 거의 합치되는 순간이 결말을 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분기는 1번 바이올린의 단독의 긴 지속으로서 반향인데, 이는 서사적 이입, 그리고 장면의 차원을 기입한다. 세 번째 분기는 한 음씩 연주를 잇는 것으로, 곡의 기본적인 연주로 진입한다. 그리고 이 차이는 악기의 차이를 명시하면서 동시에 음악의 낙차를 줄여나가는 흐름을 논리적으로 만들어낸다. 컨트라베이스는 다른 것들을 흡착한다. 반면 다른 것들은 컨트라베이스를 이탈한다. 그럼에도 잡아당겨지고 있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반향된다.
〈프리즘, 현악 9중주를 위한〉이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로 대칭되는 순환의 양태를 띠는 가운데, 중앙은 수직 축으로써만 판별되는, 일종의 수평축의 질서 아래에서 수직적 고양을 점증적으로 느끼는 차원에서 시각적이었다면, 〈반사, 현악 9중주를 위한〉(2022/2023)은 연주 기법의 차이로써 장소적 표지를 분별하되 이는 예외적으로만 적용된다. 곧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주선율의 상승과 그 안에 일정하게 잔존하는 뚜렷한 물질감의 대별로써 곡이 쓰이는 가운데, ‘반사’는 내외부의 심리적 공간에서 주요한 것으로 나타난다, ‘프리즘’이 하나의 일정한 물리적 지지대에 근거해서 명확하게 나타났다면.
〈반사, 현악 9중주를 위한〉에는 두 대의 비올라의 두 번쯤 왕복으로 튕기는 기법이 소리의 안쪽에 계속 단속적으로 출현하는데, 이러한 활을 켜는 전체 내의 잔여, 예외로서 이 흔적은 주선율의 자리를 계속해서 혼동케 하고 불안하게 하며 전복한다―하나의 안정된 선율에서 작은 ‘틈’이 반복적으로 새어나온다. 스피카토는 동시에 상대적인 차원에서 장소적 기표의 자리로 연주를 환원시킨다. 그러니까 어떤 희망적 힘의 고양으로서 선율은 이 틈을 다시 메우는 것으로써 실재적 근거를 확보한다. 그것이 완전히 충만해졌을 즈음, ‘흔적’은 다시 돌아온다. 반면, 전체 선율은 하나의 컨트라베이스가 주도하고, 첼로가 이를 지지한다. 이는 다시 2번 바이올린의 주도로 바뀌며 반전된다.
료지 이케다와 앙상블 모데른의 협업은 (아마도 질서 정연한 또는 어떤 질서를 가진) 시각적 정보의 차원을 청각으로 번역할 때 어떤 조화로움이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비감각적, 사변적 실험의 차원을 상기시킨다. 소리는 조화로운 오케스트라를 위한 차원보다는 소리가 뚜렷한 장소값, 좌표의 차원으로 배치되어 지시될 수 있도록 쓰인다. 그것은 시각적 정렬이면서 음악적 차원을 기계적이고 단순하게 환원 짓는 차원에서, 또는 그렇게 적용하는 차원에서 발생하는 기이함 또는 이상함은 시각과 연관 지어 살필 수 있는 근거로 소급시킨다는 점에서 한계가 아니라 고유성을 획득한다.
의미는 즉물적이고 실재적 차원에서 제시되고 또한 지시된다. 제목에는 어떤 은유의 개입 가능성도 소거한다. 그것은 악기-연주에 대한 재귀적인 차원으로 돌아오며, 거기에는 그것을 ‘위한다’라는 비가시성의 작가의 자리가 있다. 특정한 부분이 되는 것,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것, 어떤 감정을 싣지 않는 것, 단지 수행하는 것 등의 차원에서 앙상블 모데른이 아마도 위치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역설적으로 그 제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곧 그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료지 이케다의 작업은 어떤 소리-악보-구조의 전형성을 허물기 위한 차원에서의 ‘음악적’ 실험의 목적을 띠지 않는다, 또는 그것과 출발이 다르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시청각의 변환 과정의 실험 범주에 더 친연해 보이는데, 따라서 〈현악기를 위한 음악〉의 소리는 무언가 지저분하고 튀며 거슬리거나 하는 곧 비정형성에 오는 불쾌함의 정서 대신에, 오히려 질서와 분별의 차원에서 선명하고 뚜렷한 기호들을 제시한다.
김민관 편집장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료지 이케다 / 앙상블 모데른 ‹현악기를 위한 음악›음악 / 50분- 일시: 4.1.(수) 19:00, 4.2.(목) 16:00-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B1, 다원공간연주곡 리스트료지 이케다 〈거울, 둘을 위한 하나〉 (2020–23)I. 바이올린 2대를 위한II. 바이올린 2대를 위한III. 비올라 2대를 위한연주 시간: 12분료지 이케다 〈프리즘, 현악 9중주를 위한〉 (2023)연주 시간: 17분료지 이케다 〈반사, 현악 9중주를 위한〉 (2022/23)연주 시간: 14분'REVIEW >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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