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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닉 블룸 2026] (1) HAIHM, RICARDO GIOVINETTO, ROBERT HENKE: 오디오에서 비주얼로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6. 2. 19:27

    [소닉 블룸 2026] HAIHM ⓒ2026 BLOOM[사진 제공=소닉 블룸 2026](이하 상동).

    소닉 블룸은 전자음악 혹은 실험음악의 일환이면서 무엇보다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의 특질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그것은 오디오와 마찬가지로 비주얼의 압도적인 지점이 그것과 함께 공명함을 의미하며, 어쩌면 싱크레즈적 현상에 따라, 오디오가 비주얼과 동기화되는 지점에서 함께 감각됨을, 곧 전복됨을 뜻할 수 있다. 

    물론, 이는 VJing과의 유사성도 짙은데, 반면,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에서는 무엇보다 이미지가 사운드와 직접적으로 공명하는 지점에서 출현한다는 점에서, 따라서 이미지는 사운드‘만큼이나’ 진지한 실험의 근거가 되며, 합목적적인 경로로 소급된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이미지는 배경이나 장식과는 다르다, 물론 VJing을 그렇게 정의 짓는 건 아니며, 오디오와 비주얼을 동시 구현한다는 것이 표면적 특징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여러 다른 형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와 달리 그 둘의 상관관계를 고찰하는 것의 결괏값으로 주어지는 게 오디오-비주얼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23일, 첫째 날의 세 메인 예술가의 경우, 비주얼의 차원이 매우 강렬한 동시에 강력했는데, 공간 전체의 입체적인 사운드와 커다란 정면 스크린의 현란한 이미지들과의 부합은 일종의 숭고미를 현상하며, 이때 소닉 블룸은 일종의 동시대적 의례 장소에 가까워지는 바 있다. 그것은 매혹됨으로부터 경의를 표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그것은 비슷한, 또는 더 거대한 규모의 콘서트나 연주회 등과 비교해볼 수 있는데, 콘서트가 그 가수에 대한 숭배나 물신적 토대가 기반이 된다면, 그리고 연주회 역시 청취의 진지함에 기초를 둔다면, 소닉블룸은 그 ‘매개 ‘된 것들에 대한 찬탄이자 진지한 청취와 몰입 모두에 바탕을 둔다. 

    HAIHM: 생기론적 사물의 운동성

    HAIHM은 지속성을 담보로 은근하고도 끈기 있는, 점진적이고도 단단한 하나의 흐름으로써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데, 일정한 주조음의 심연적 깊이와 찰랑거리는 사물성의 소리가 주는 표층성의 두 질감을 뒤섞음으로써 그러한다. 상대적으로 시각적 차원이 강조되지는 않는데, 그것은 어쩌면 사운드의 비가시성 자체, 그리고 특정화되거나 파편화되지 않는 공간 자체의 반향적 차원으로서 사운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에메랄드 그린색 조명과 동조되거나 빨간색 레이저가 아래로 직사되거나 HAIHM이 위치한 테이블 밑의 패널들이 붉게 깜빡이는 것 정도 일부가 사운드와 동조화된다.

    장중한 사운드가 한 번 공간을 훑고 가고 순간 어두워진 후 프로펠러가 바람에 마찰되는 강력한 소리가 표층을 잠식하고, 기저음은 흐릿해진다. 그리고 물방울-건반, 그리고 빨간 레이저와 부합되는 삐삐삐 신호음 구간에 이어, 기차와 같은 대형 장치의 작동이 시작되는데, 이때 레이저 이미지는 진동하면서 입체적인 파장에 대응하는 실재의 증거가 되며, 기차는 가까워지면서 그 ‘육박’의 감각으로써 재현성과 환상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그러니까 그 사운드의 차원은 단순히 양적 강도와 강화가 아니라 그것과의 거리가 너무 바투다라는 것에서 생겨나며, 따라서 물리적이기보다 심리적 차원에서 증폭된다.

    그런데 또 다른 주요한 사물성의 소리는 그 앞에서 울리는 휘리릭 하는 일종의 ‘경적’과 같은 단속적인 소리인데, 이는 거리와 상관없이 가장 ‘앞’에서 일정하게 튀어나오는데, 가장 급속한 변화는 이 동력 장치가 꺼지는 것과 같다. 곧 HAIHM의 연주는 순식간에 종료되며, 그것은 장치가 내재적 기관의 빠른 종식, 곧 기관 내 경로의 이행적 차원이 보여주는바, 선명한 지연됨으로서, 덜컹거림으로서 고립적으로 발생한다. 

     

    RICARDO GIOVINETTO: 이미지 주조 기계의 역량

    [소닉 블룸 2026] RICARDO GIOVINETTOⓒ2026 BLOOM[사진 제공=소닉 블룸 2026](이하 상동).

    RICARDO GIOVINETTO의 공연은 르네상스 회화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하는데, 이때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주조되는 것으로 주어지며, 그 과정 아래 결정된 입방체 거미줄과 같은 그래픽 공간 내의 파편과 얼룩의 차원으로 반전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이미지이다. 공연은 처음 두 개의 수직선이 서로를 향해 마주하다 합쳐지며 일종의 기억상실 효과의 순간을 발생시키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좌우에서 분사되는 신경망 같은 회로의 결정 역량은 선분들만을 가지고 일종의 2차원 평면 위의 입체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입자처럼 깨어지면서 다각형의 선분들이 생성되는데, 이제 그것들은 그 자체적인 생성, 곧 내재적인 차원에서 스스로 형성된다. 이 선분들은 결정을 만드는 대신, 뭉개지면서 일종의 점액질과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데, 여기에는 단속음이 찰랑거리면서 동시에 ‘접촉’되는 사운드의 그 이미지가 부여된다. 금색 무늬들이 거기에 부분 박히는데, 다시 암전되고, 재형성되는 화면은 앞선 것들의 ‘압축-요약’적 반복이다. 그것은 빠른 회상적 복기이자 복습이다.

    중앙점으로부터 좌우 그리고 위아래로 색-공간으로서 그림들을 주조하게 되는데, 앞선 금색 파편이 그 징후인 셈이다. 그림은 앞서 말한 듯 테두리 내에 채워지는 일종의 ‘퍼즐’ 같은 것이며, 그리고 깜빡이는데, 이는 수많은 이미지가 결코 아니다. 색의 기초적 얼룩과 그림의 인지적 얼룩의 ‘빠른 교차’이며, 그 이미지들 모두를 짧게 투여함으로써 이미지의 팔락임을, 그리고 팔락이는 소리 자체로써 이를 구현한다. 그것들은 한 번에 기체처럼 내려앉으며 분쇄된다. 일종의 먼지들의 역사로서 환상성은 실재로써 갈음, 또는 수렴된다. 

    이어 좌측의 해와 우측의 초승달이 표현되는데, 빛 입자들은 내부적으로 점점 커진다. 그리고 각각의 좌우 양옆으로 두 개의 형상이 더 생겨나는데, 이는 어둠에 감싸여 있으며, 그 ‘어둠의 껍질’을 벗겨냈을 때 온전한 양상이 드러날 것처럼 자연 상상된다. 이는 바깥 윤곽에 따라 결정화되고, 3차원이 2차원 평면에 결부된다. 이때 사운드 역시 정체되는데, 그 미세한 점들의 잣기는 내재적인 분기이며, 그 안에서 소곤거리면서 잘고도 미세한 움직임들의 결정적 몸짓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부의 매우 잔 약진‘들’이다. 

    찰싹, 달그락거리는 점액질의 묘사가 거기에 또한 부여된다. 회화는 이어 모자이크의 일부로서 드러나며, 삼각형들의 연결 안에서 일부를 점유한다. 직선들의 결정은 2차원을 나타내고, 색면 공간은 따라서 이미지적 환영일 뿐이다. 윤곽을 클로즈업함에 따라 그것은 내부에의 공간감을 형성하고, 3차원에 가까워지며, 이때 얼굴들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이어 양옆 옆모습의 얼굴이 나란한 선들로 이어진 하나의 형상들이 출현하는데, 이는 생성 중의 구조가 아닌, 그것이 정착되어 고착된 결과물로서, 하나의 전형성을 띤 이미지와 같다. 

    무엇보다 짧지만 강력한 건, 단속적으로 짧게 끊기는 영사 장치로서 투사, 곧 데칼코마니적 좌우 대칭 이미지들 위주의 이미지 단면이 사라락 넘어가는 부분들이다. 이때 주사선은 명징한 단위로서 날카로운 생리적 차원의 감각을 일으키는 사운드와 동조화로서 연장되고, 이윽고 나타난 원형의 선분은 빵빵 터지면서 표적이자 난사 장치, 또는 스피커의 은유로서 입체적으로 변주되며 사운드와 동조된다. 
    이는 나무 밑동과 같이 질감이 부여된 이미지로 바뀌고, 멈춘 이후, 암전이 따르고, “아~” 단말마 신음의 다양한 양상이 하나씩 출현하기에 이른다. 이때 물리적 타격과 함께 태양의 이미지가 출현하고―둥근 원의 재현적 연장이다.―, 합창 소리가 덧붙여진다. 빨간 광물 단면으로 이미지는 바뀌고 그것은 적잖이 성스러운데, 그 안에 배가되는 삼각형 결정들이 생겨난다. 그것은 계속 소곤거리면서 자라나고 경계를 초월한다. 

    ROBERT HENKE: 실재에의 충동

    [소닉 블룸 2026] ROBERT HENKEⓒ2026 BLOOM[사진 제공=소닉 블룸 2026](이하 상동).

    ROBERT HENKE의 공연에서는 빨간 선분들의 글자들이 대표적인 깜빡이는 이미지들로 자리하는데, 이는 처음 4개의 정사각형이 결합된 하나의 정사각형 안에서 그 테두리 일부를 가지고 만든 단어들의 급속도의 변전과 같다. 기저음과 함께 노이즈가 덧붙고, 화면 전체를 채우는 기다란 수직선들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스스로 반짝인다. 

    작은 수직선에서 이윽고 변용한 글자들은 모두 그것 ‘위’에 있고, 따라서 그 수직선들은 글자들과의 연관성이 없다. 곧 서로는 다른 레이어로서 놓인다. 전자가 화면에 수평적으로 맺히는 환영적 이미지라면, 선분들은 그 위아래에서 직접 쏘이며 스크린을 훑고 가는 스크린에 전사되며 부착되는 일종의 단면들이다. 이어 십가가형으로 직사각형 패널 두 개가 화면을 중앙부를 기점으로 가르는데, 이는 RICARDO GIOVINETTO의 실사판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방사 기계는 이미지가 아니라 외부의 실재 레이저 프로젝션이다. 

    그리고 중앙으로부터 중심점을 공유한 대칭되는 작은 원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스피커 우퍼의 적절한 비유가 된다. 그리고 좌우로 화살표가 지나가기 시작하는데, 이는 신체 전반을 활용하는 전자 게임 DDR의 스크린에 상응한다. 그리고 ‘문제적인’ 이미지, 위상기하학적 동형체로서 자유자재로 변용되는 상태에 있는 입체 그물망 같은 것이 출현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글거리고 한편으로는 아른거린다. 거기에는 특별히 부속되는 소리가 없는데, 사실 소리가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 

    곧 그것은 어떤 실재의 부산물이자 대응물처럼 보이는데―생명의 중핵으로서 기표이다.―, 일종의 정신분석적 차원의 타대상으로서 결코 죽지 않으며 무엇으로 소급되거나 기원을 알 수 없는 차원에서 신비한 무엇이다. 그것은 독자적인 생명력의 대상이며,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것이 진짜 공포 혹은 위협이 될 때는 그것이 화면 위를 넘쳐흐르려 하거나 하여 그 내부의 소용돌이적 여파에 잠식될 것 같은 느낌을 줄 때로, 그것은 결코 구멍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선분일 뿐이지만, 그 경계의 유연한 고착성으로 인해, 그 안은 완전한 봉쇄의 영역으로 닫힐 것만 같은 것이다. 

    이제 네모난 프레임들이 하나의 중심점을 공유하여 나란하게 대칭적인 동시에 비례하여 펼쳐지고, 그것은 중앙의 뚜렷한 네모난 프레임들을 중심으로 순간 늘렸다 줄어들어 ‘제자리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곧 2차원 단면의 여러 이미지들이 가상의 외재적 Z축의 경로 아래서 마치 풍무적 수축과 이완을 하는 움직임에 따라 입체적인 환상성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결코 어떤 3차원의 면적을 만들지 않는다. 

    딱 한 번 예외적으로 그 바깥쪽 프레임들 사이에 질감의 효과가 더해짐으로써 3차원적인 공간감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제하면 무엇보다 2차원의 비례-대칭의 이미지들이 다만 환영성의 운동을 가져가고 있음의 인지적 기제로서 모든 이미지는 작동한다. 다시 동전이 기울어져 도는 이미지들이 가로, 세로로 4*4의 배치로 구성된 일정한 형상이 나란히 세 개 만들어지고, 이는 모두 ‘위’의 가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가는 두 가지 패턴의 경우의 수를 따르고 있다. 

    실제 그것이 동전인 것처럼 소리는 쨍그랑거리는데, 그 대열이 흐트러져 산개할 때 그 소리 역시 커진다. 이는 물방울로 ‘변용 ‘되는데, 떨어지는 게 아니라 번졌다 줄었다 하는 것이다. 상하 좌우로 그 제각각의 위치 값에 맞게 적용되는 화살표 기호들이 마름모 안에 출현하면서부터 음악은 의뭉스러워지는데, 이때 시계 알람과 같은 소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것은 그 안에 이글거리는 실재를 품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는데, 다시 등고선처럼 배가된 그물망 같은 이미지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원형 우퍼형 방울들과 글자들의 대립, 전자는 깨어지며 생성된다는 점에서 과잉된 기표라면, 후자는 기의를 담고 있는 형상 자체로서 견고하다는, 곧 유지된다는 점에서 과잉된 기표가 된다. 전자가 텅 비는 것이라면, 후자는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텅 비어 있음의 형상, 곧 구멍, 검은 바탕 위의 원형의 선분은 다시 출현하는데, 그 안에는 분명 2차원의 단면을 넘어서는 공백, 불길함, 공포 따위가 있으며, 이는 공간 뒤에서부터 대기가 밀려오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응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의 빅뱅에 대한 진리를 은유하는 것일 수 있는데, 곧 본질적으로 그것은 점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6.5.23(SAT) - 5.24(SUN)
    YES24 WANDERLOCH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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