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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론 작, 김재엽 연출, 〈베를리너〉: 이국성으로서 자유에 대한 이념REVIEW/Theater 2026. 6. 5. 21:36

이실론 작, 김재엽 연출, 〈베를리너〉ⓒ이강물[사진 제공=서울문화재단](이하 상동). 〈베를리너〉의 무대는 원형 광장을 상정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평화의 현재를 결말의 풍경으로 제시함에 따라 광장이라는 장소에는 초월적 이념으로서 메시지를 부여되며, 밤과 정전의 몇 순간을 제외한 시종일관 밝은 무대의 조도 설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그 광장을 완성하는 건 옆에 나오는 그래픽 이미지가 아닌, 마주하고 있는 관객이다. 이 광장을 관통하는 건 2층 높이의 난간으로 이는 연극의 해설자의 독립적인 위치와 예외적 영역에서 베를린을 횡단하는 사다리, “저쪽”으로 가기 위한 “이쪽”의 말미로 상정되며, 이 분리된 경계 영역에서의 여러 죽음의 장면을 불러옴으로써 파생되는 트라우마의 상징적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현실과의 간격 아래, 잠재하는 기억의 이미지는 시선을 방해하고 공간을 관통하고 있음으로 드러나는 바다.
이는 언덕 위의 버스커의 무대가 한 번 유예된 채 마침내 실현되는바, 그 언덕으로 제시됨에 따라 현재는 과거와 거리를 벌린다. 곧 그것은 과거의 안정화를 꾀한다. 버스커의 라이브 무대가 너무나 즉물적인 무엇으로 드러나는 건, 곧 과거의 재현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이의 과거를 각각 재생하는 것으로 진행되는 〈베를리너〉를 가로지르며 이 무대가 현재성에 철저하게 입각해 진행되는 건 100분의 시간이 가진 지루함을 환기시키는 일차적 재료임에서 나아가 베를린 광장의 현재를 가장 명확하게 그것이 증명하기 때문에 있다.
버스커가 과거에 사로잡힌 존재들, 현재의 태조와 우희의 기억을 의미화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에 비해 자신은 단지 현재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넌지시 말을 던지는 건 그 자체의 전사가 요청될 만큼 그가 주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보다는 〈베를리너〉가 부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 그 평등함과 절대적 가치 자체에 대한 긍정과 주장이 그 같이 투명한 인물 또는 인물의 투명함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테러의 반대, 테러의 잘못됨은 그것이 “아무”도 아닌, 그러나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연함의 결과는 다시 〈베를리너〉의 근본적인 모티프로서 잉그리드와 클라우스가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아이, 홀거를 잃게 되는 비극적 장면의 트라우마를 겹쳐 읽게 한다. 이후 그 트라우마로부터 우회하기, 곧 과거의 과거로 끊임없이 침잠함을 통해 사랑의 순수성과 순전함을 절대적인 이념으로, 주제의식으로 고취시킨다. 따라서 그것으로부터의 극복은 더 명확하게는 다시 현재의 인물들에게 주어지는데―잉그리드의 트라우마는 엄밀히 현재와 봉합되지 않은 채 사라진다.―, 우희와 태조 사이에서, “우연”한 결과가 나의 잘못이 아님을 인지함을 통해 그 트라우마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하나의 명제로 부상함이 그것이다.〈베를리너〉는 거대한 역사의 차원을 평범한 인물들의 존재 차원으로 환기시킴으로써, 그리고 평범한 모두의 소박한 행복으로 자유의 모습을 산출함으로써 역사를 우회하고 필연 진공화하는데, 이는 사랑의 동일성이라는 환상에 의거한다. 텅 빈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Baggage Claim)의 컨베이어벨트가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동일한 것의 차이를, 차이의 동일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잉그리드와 클라우스의 짝패로서 태조와 유리의 관계, 둘의 관계들의 동시성은 물리적으로도 잉여적이며(사실상 막을 활용하기 힘든 무대의 한계를 노출하는 건 연출적 구성의 아쉬움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시종일관 무대를 채우는데, 비극을 맴돌며 대체함을 통해 산출되는 이념은 바로 사랑의 순수함이 지닌 동일성이다.

과거가 재생되는 동시성의 사랑과 그 환상이 지지되는 근거는 광장이라는 평화로운 장소이다. 반면, 현재는 비장소로서 공항이며, 해설이 공항 직원으로 등장하는 것과 같이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해설이 불가능한, 곧 시간과의 거리를 벌릴 수 없는 장소가 된다. 현재는 나오지 않는 수하물, 해설과 우희, 태조를 제외한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해설의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이한 시공간으로서 패러독스는 과거에 붙잡힌 태조와 과거에 붙잡히게 되는 우희의 현재성을 진공으로 만들기 위한 근거가 된다.
우희로 인해 두 평행하는 과거는 하나의 실재가 되는데, 우희가 이를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의 기억이 동일하게/우연하게 현재에 주어질 때 감응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드는 장치로서 우희와 그 과거의 한 인물―태조―과의 현재의 관계가 필요해짐을 드러낸다. 이는 베를린이라는 이국적 타자성과의 거리를, 역사와 난민의 이질성이 그 자체의 맥락에 의해 강조되기보다 이방인으로서 거리를 갖는 이의 감각적 차원으로 옮겨짐을 전제하는데, 이 낯섦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장소가 바로 공항이 된다.
우희라는 존재의 가상성은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형성해 낸다. 사실 난민을 찍고 그 사진이 2차 신화의 언어를 입게 돼 난민의 지위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었다는 의도하지 않은 역사의 결과가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우희의 전사는 그다지 정교하게 세공되지 않을뿐더러 (태조가 자신의 원래 직업인 배우를 다시 할 수 없게 하는 게 그의 과거라면) 그의 현재와 밀접하게 상응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곧 그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 때 현재의 다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정확한 근거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잉여의 차원으로 보이는데, 이는 역사와 현재의 연관성을, 역사의 동일선상의 계보를 확충하기 위한 손질로 보이는 것이다.
〈베를리너〉는 “Ich bin ein Berliner”라는 해설의 말과 버스커의 노래 〈To be Berliner〉를 통해 베를리너라는 제목을 계속 각인시키는데, 표제적 각인의 자기 환원적 외침은 전자의 문장이 존 F. 케네디(1917~1963)가 1963년 서베를린에서 평화를 향한 연대로서 연설의 형상을 가져오는 것이면서 베를린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베를린이라는 버스커의 말을 통해 장소적인 근거를 우회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베를린으로 가기 위한 임시 경유지, 윌마 국제 공항에 정박된 우희라는 존재의 장소적 거처이다.
결국, 〈베를리너〉의 이국성은, 베를리너라는 기표는 하나의 상징적 기호이자 이념이자 주제 자체가 되는데, 그것은 광장의 평범함을 절대 긍정하는 앞선 결말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상응한다. 베를리너가 베를린 사람이 아닌 그것을 전유할 수 있는 특수한 비장소적, 장소 초월적 의미일 수 있음을 오히려 완성하는 버스커의 현재성을 통해, 인종적인 것의 특이성이 아닌, 인종을 뛰어넘는 자유와 우리의 이성에 대한 공표로서 “베를리너”는 스스로를 반복하고 또 환원된다. 곧 〈베를리너〉가 갖는 이국적 취미는 표피적이고 또 동시에 그곳에 닿지 않는, 그곳이 익숙하지 않는 우리의 시각을 체현하고 또 그것이 꿈꾸는 세계 시민의 자리에 우리를 합일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앞선 주제의 가시화다.
김민관 편집장- 2025.04.10 ~ 2025.04.20 평일 19:30 | 주말 15:00 (월 공연 없음)
-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 러닝타임 110분 (인터미션 없음)
출연
우희 | 권슬아
태조 | 최호영
잉그리드 | 박수진
클라우스 | 김세환
유리 | 박희정
버스커 | 이후징
해석 | 양동탁크레디트
작 이실론
각색·연출 김재엽
드라마투르그 김은성
조연출 윤석현
무대·소품 디자인 장호
조명디자인 장재영
조명 프로그래머 오퍼레이터 정채림
작곡·음악감독 이나경
음향디자인 빈동준
음향 오퍼레이터 오연주음향 RF엔지니어 윤승환
영상디자인 김성하
영상 오퍼레이터 정영민
의상디자인 이은경(EK)
분장디자인 이지연(MAKE228)
무대감독 강지훈
무대조감독 엄성현
홍보영상 삼인칭시점
사진 이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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