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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군더슨 작, 김민정 윤색·연출, 〈사일런트 스카이〉: 우주라는 질서의 숭고함에 대한 서사, 그리고 남는 미완의 부유물들REVIEW/Theater 2026. 6. 4. 22:01

로렌 군더슨 작, 김민정 윤색·연출, 〈사일런트 스카이〉[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사일런트 스카이〉는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안은진 배우)이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할 기회를 잡게 되면서부터 별의 좌표를 기록하고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화에 집중하며 눈부신 과학적 성취를 이루게 되는 그의 일대기를 펼쳐 내는 작품이다. 여기에 전제된 제약 조건은 레빗이 보청기를 껴야 하는 약한 청력의 신체를 가지고 있음이 아닌, 여성이라는 것으로, 20세기 초의 역사적 배경은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만 주요하게 드러난다. 남성 중심적 사고, 여성 차별적 시선의 사회적인 조건이 레빗의 삶을 지배한다. 그에 비한다면, 의상, 편지라는 커뮤니케이션 체계, 과학의 연구 방식과 과학의 패러다임 등과 같은 오늘날과 다른 시대적 사실의 차이는 표피적이고 부차적인 차원이다.
〈사일런트 스카이〉는 대형굴절망원경으로 직접 별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주로 건판을 통해 이미 현상된 사진 건판을 통해 우주를 관찰하게 된 레빗의 주요 업무로부터 그가 광활한 우주의 영역으로 인식을 확장하며 진리의 차원을 갈구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내면세계를 경유해서 우주라는 신비한, 가늠하기 힘든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의 내면은 우주를 향해 열려 있고, 프로젝션 되는 우주 영상으로 덮이는 무대를 배경으로 한 레빗의 모습은 우주는 마치 레빗의 신체를 함입하며, 그의 호기심과 지적 열망이 거기에 투사된다.
프로젝션은 〈사일런트 스카이〉의 가상현실, 하늘과 별, 우주를 구현하는 주요한 매체로 도입되며, 마지막에 이르러 레빗의 삶이 그가 아닌 그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입이 각 등장인물의 각기 다른 위치 선정과 동반되면서 레빗의 사회학적 우주를 물리적 좌표망으로 구성함으로써 레빗의 죽음을 더 넓은 ‘우주’의 차원에서 환유적으로 은근하게 조망하게 할 때 우주의 입체적인 차원은 샤막을 경유해 실제의 부피를 현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레빗은 건강이 악화되고 시간을 건너뛰어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나오면서부터는 그가 더 이상 연구실―이는 마치 연구의 의미를 띠지 않는 일반적인 사무실처럼 보이는데, 업무의 성격을 떠나, 이는 남성이 맡긴 부차적인 업무를 여성이 처리하는 프로세스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에서 업무를, 과학적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음으로 드러나는데, 그때부터 레빗은 자신이 발견한 연구가 연구실을 떠나, 바깥에서 이후 다른 이들이 어떤 연구의 성취를 이뤄냈는지를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레빗의 연구 성과는 애초에 판단과 종합의 고차원적 영역이 상정되는 남성들의 영역으로부터 밀려나면서 별들을 건판을 통해 확인하는 단순 업무에 집중, 그리고 몰입하게 됨을 통해 구성된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일부 변광성들이 특이한 패턴을 이루며 밝을수록 변광 주기가 길고, 나아가 그것이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정립함으로써 별의 실제 밝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창안함으로써 겉보기 밝기와의 조를 통해, 별과 지구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인식의 도약을 이루게 된다.
레빗의 연구에 대한 집중과 매진은 우주와 곧장, 어떤 틈 없이 직진하는 것처럼 표현된다. 우주의 드넓음과 연구의 순수함―티끌 없음―은 알레고리적인 상응 관계를 이루고, 그에 따르면 진리는 사물을 사심 없이 관찰하는 것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 여기서 레빗의 청각 장애는 더 탁월한, 올곧은 시선의 방향성에 장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하는 기제일 수 있는데, 극은 장애의 사실을 처음 피터 쇼와의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에서 드러내고 바로 회수한다.
레빗이 등장인물이 아니라, 그의 내적 발화가 완전히/온전히 극을 장악하게 된 시점으로부터는 그의 내면이 무언가를 잘 듣거나 안 들리는 그의 신체적 상황을 대체하게 된다. 그의 신체적 장애는 극의 이후로 연장되는 접착의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서사의 동력이나 가치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원작을 뛰어넘어 분명 동시대의 차원에서 특별한 의제와 화두로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의 의제는 그 제목이 그의 신체적 특징과 연구에 대한 몰입과 우주에 대한 숭고함의 상징성을 하나로 결합하는 데 반해 그의 신체적 특징을 서사로 세공하지 못한 것의 단점과 같이, 극을 감싸고 있지만, 비판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영웅 서사 혹은 위인전의 코드 안에서 안온한 순간으로의 통합 안에서 모든 것을 용해시키게 된다.
이는 우주의 광활함, 인간의 세계와 시간에 비해 영원함의 가치를 띠는 우주의 신비로 개인의 치열하고도 구체적인 서사의 특이성을 상쇄하고 환원한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개별 서사들, 의제들은 부상하면서 그 안에서 부유물처럼 떠돌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역사의 재현적 결과로서 자연화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서사의 전략이자 방식이라는 점을 은폐한다.
레빗의 개인적 층위를 톺아보기 위해 다시 레빗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레빗은 연구에 매진하는 데 있어 서사적 차원에서 두 가지 압력을 받는데, 이는 가족의 안위, 그리고 남자와의 사랑이다. 그의 시야는 거의 우주를, 실제로 그의 두 손으로 잡히는 크기의 건판을 향해 머무는데, 이 두 요소는 그의 시야에 외부의 심리적 압력으로서 혼탁함을 낳는다.
그것은 그가 의도할 수 없는 것이며, 전자의 차원은 결코 방기할 수 없는 도덕적인 가치와 결부된다면, 그리하여 결국 레빗의 연구실 바깥으로의 이행과 집에서의 연구의 강도를 이전처럼 이어가게 되며, 그의 삶의 지형을 본질적으로 차이로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면, 후자의 차원은 그의 또 다른 삶에 대한 선택지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공고하게 자신의 연구 수행의 자리를 고수하는 레빗에 따라, 그의 상대편에서의 결정의 몫으로 전이된다.
첫 만남에서, 레빗을 연모하게 된 피터 쇼(정환 배우)는 남성 중심적 연구실 문화의 중간자적 지위를 자처한다. 이는 레빗의 입장에서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데 반해, 피터 쇼는 온전히 레빗을 통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발생하는 잔여적 측면을 알 수 없는 차원의 신비로움과 그에 대한 호기심의 차원에서 수용하게 된다, 여기서 레빗의 청각 장애 역시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사일런트 스카이〉에서 피터는 레빗과 가장 유기적인 상호 관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의 인생에 있어 주요한 선택이자 결정이 레빗과 상응하며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은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반면, 그는 끝끝내 서사의 중심인물로 자리하지 않는다. 피터 쇼는 초반,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나가서 유수의 학자들을 만나는 기회에 레빗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하지만, 레빗은 연구에 대한 매진의 의지와 집안 사정과 겹쳐 그것을 승낙하지 못하고, 피터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출장을 떠나게 된다.

피터에게 꿈과 같은, 달콤한 미래의 기약의 그 기회가 좌절됨의 순간은 사랑이 온전히 확장될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의 가능성과 함께 존재하는 미결정적인 순간이다. 피터의 사랑은 초반 순수하며, 끈질기지만 결코 적극적인 차원에서 이행되지 못한다. 결국 레빗에게 선택권이 달려 있으며, 레빗이 피터를 선택할 때 그것의 예기치 못함의 성격은 레빗이 아닌, 피터의 입장을 전이해서 관객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사랑은 어디까지나 피터의 입장에서 머문다.
피터가 레빗의 삶의 주요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은 레빗과의 사랑이 결과적으로 불발됨에 멈춘 하나의 귀결이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사후적인 해석일 뿐이고, 본질적으로는 〈사일런트 스카이〉 자체가 레빗의 자기 안온한 세계의 유지와 달성을 향한 서사로 초점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터가 레빗의 장애물로 결정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을 통해, 첫인상의 남성 중심적 세계의 인물의 측면에서 어쩌면 부정적 심급의 인물로 연결되어 레빗에게 최종 인상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피터는 〈사일런트 스카이〉를 떠도는 일종의 부유물과도 같다. 서사는 사실에 입각해서 그것을 뚫고 그를 건져내지 못한다. 레빗의 탁월한 성취는 이미 예정된바, 한편으로는 가족과 이성 관계에 있어서의 그러한 압력은 그의 연구 결과에 방해물로 작용하는 서사적 요소이기도 하다. 가족의 소중함은 도덕적으로 극단적인 부정의 차원을 취하지 않는 가운데 (레빗만의) 가치로 승격되지는 않는다. 남자와의 사랑은 도덕적인 당장의 압력과도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영원히 유예된다.
피터는 페미니즘의 의제와 사랑의 동력 사이에 자리하는데, 처음에 망원경을 보고 직접 우주를 관찰하고자 시작했던 레빗의 꿈을 좌절하는 첫 번째 순간을 직접 매개하는 인물―그는 또한 레빗이 학위가 없다고 ‘연구’를 할 수 없는 존재로의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에서, 마지막으로는 피터가 사회로 확장된 자신의 세계를 바라보고자 할 때, 그에게 당도한 편지들을 보관만 하고 있던 인물로 나아간다. 그 사이에는 우물쭈물하고도 내성적이며 선명하지 않은 태도를 가진 인물로 레빗에게 자리하고, 그것은 그 마지막 행위의 드러남으로 인해 공고해진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결과적으로, 그리고 그의 행위 차원에서 왜 그토록 초라한 것이 될 수밖에 없던 것일까. 그것은 또한 비판의 요소가 되거나 하지 않고 부차적인 것으로 잔여 처리가 되고 마는 것일까. 〈사일런트 스카이〉는 과거의 시점을 과거의 영광적인 역사의 차원으로 갈음하고 마는 패착을 보인다. 동시대의 의제에서 레빗을 승격시킬 수는 없었을까. 역시 피터의 해악과 피터의 사랑 사이에서 어떤 통합과 변화의 흐름을 제2의 서사로 결정지을 수는 없었을까에 대한 의문은 그러한 질문에 통합되는 바다.
김민관 편집장2024.11.29 ~ 2024.12.28 시간 평일 19시 30분|토·일·공휴일 15시 (화 공연없음)
명동예술극장
만드는 사람들
작 로렌 군더슨
윤색·연출 김민정
번역 신혜빈
무대 김종석
조명 최보윤
의상 유미양
영상 이수경
분장 김소희
소품 김혜지
음악 박현민
음향 신동원
조연출 한아정
컴퍼니 매니저 오성경
출연
헨리에타 레빗 役_안은진
마거릿 레빗 役_홍서영
피터 쇼 役_정환
애니 캐넌 役_조승연
윌러미나 플레밍 役_박지아'REVIEW > Thea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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