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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 작, 심재찬 연출, 〈만선〉: 시대의 한계와 변경에서 이야기하다REVIEW/Theater 2026. 6. 5. 21:36

천승세 작, 심재찬 연출, 〈만선〉[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만선〉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어부 곰치와 그의 가족, 구포댁, 도삼, 슬슬이의 삶을 중심으로 다루는데, 이는 지극히
도 비극적인 양상으로 흘러간다. 그 비극의 원인은 무엇보다 선주 임제순의 급작스러운/무리한/얄궂은 빚 독촉의 시점, 곧 부서 떼가 가득 밀려오는 시점에 배를 묶으며 요구하는 빚으로 인해 곰치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시점에 무리하게 배를 겨우 띄우게 되고, 당장 상환일을 앞둔 상황에서 엄청난 만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이는 결국 곰치의 고집스러운/굳건한/독단적 의지, 그리고 그에 선행하는 맹목적인 열정 때문인 것으로 환원되는 듯 보인다.
먼저, 자기 소유의 배가 없는 곰치는 선주 임제순에게 빚으로 묶여 있으며 동시에 배의 이용권 역시 묶여 있다. 따라서 둘의 일방적 관계에서, 임제순은 탐욕과 강제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며, ‘하필’ 만선 시기에 맞춰 배를 묶고 빚 독촉을 함으로써 곰치에게 만선에 대한 희망을 만선을 하지 못함의 갈증과 비탄으로 전치시키고 그 결과 곰치의 모험을 유도해 낸다.
전 재산을 건 이 도박은 어쩌면 곰치라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함이 아니라 너무나도 잘 이해한 임제순의 교활한 수작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곧 만선을 목전에 앞둔 뱃사람에게 배를 빌려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수거될 돈을 그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정적 시기에 오히려 배와 빚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한 번에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도박을 그 역시도 걸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물론 그 도박은 순전히 곰치의 몫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그럼에도 그것이 교활한 것인지 철저하게 의도된 것인지가 곰치에 이르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곧 결말에 이르면 비극의 원인은 순전히 만선의 유혹에 사로잡혀 위험천만한 환경을 뚫고 들어간 곰치의 한결같은/굳건한 의지 때문이다. 계약은 그에게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근원적인 차원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비극의 원인은 자연은 인간의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곰치의 무모한 결정은 그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절제를 대신한 맹목과 만용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다시 곰치에게 최종의 책임은 향한다.

결과적으로 곰치가 바다를 향해 눈 멀어 있다면, 임제순 역시 돈을 향해 눈이 멀어 있다. 이는 극단의 지점에서 엇갈리며 손잡는 계약이 바로 위험천만한 항해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극단의 전형 사이에서 곰치라는 지독한 자기 확신과 욕동에 사로잡힌 인물을 바라보는 평범한 인물들이 자리한다. 곰치의 가족과 이웃들이 그것이다. 둘은 소통의 극단, 소통될 수 없는 절대적 극점을 차지하고 동시에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결정적으로 자기 아들 도삼과 같이 태운 연철의 목숨을 잃게 만든 그 하루의 비극적 전개의 원인이 곰치의 눈먼 고집과 독단적 결정으로 환원되는 건 이후 곰치의 일시적인 트라우마가 같이 탑승한 두 존재를 망각하고 만선이 된 결정적 순간이 기각되는 순간으로만 상기된다는 점에서이다. 곰치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으며, 그 순간은 실패의 인지가 아니라 실패를 이해하지 못함, 나아가 용납할 수 없음의 차원에서 돌아온다. 따라서 그의 현실 인식은 하나 남은 갓난아이 자식을 다시 배에 태워 영원한 어부의 숙명을 실천할 수 있게 됨을 기다리는 것이 된다.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포댁은 경찰이 시신 이양 작업을 지금은 험한 기상 탓에 바로 진행할 수 없다는 통보가 아닌 도삼이 죽었다는 곰치의 돌연한 현실 인식의 표현이 들이닥쳤을 때야 비로소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10살만 되면 자신의 아들이 그물을 손질할 수 있게 된다는, 이미 어부가 될 충분한 자격이 되었음을 내비치는 말을 통해 다시 현실로 나아갈 욕망의 태세 전환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그 말에, 구포댁은 바다라는 덫, 자신이 이중으로 제어할 수 없는 너머의 세계로의 이행을 수행한다.
이는 자신의 하나 남은 아이를 홀로 배에 태워 뭍으로 보낸다는 것인데, 아이는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자리하는 그의 충동은 곰치에게 자기 내재적인 균열과 반성을 촉구하기 위한 일격의 차원에서 자리한다. 어쩔 수 없이 바다가 아닌 구포의 손에 의해 자신의 자식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의 희미한 입구에 도박을 걸며, 차라리 그 죽음을 선취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곰치의 손이 닿지 않는 극단의 차원, 바다의 끝에 곰치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을 던지겠다는 무모한 행위를 이행하는 것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들이 되는 것은, 나아가 자신이 그 배에 직접 탑승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이 사실을 곰치의 진실에 대한 그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언설의 반대급부로 그 비현실적 진실을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실패를 통해 생명의 가치를 증명하며 곰치의 세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충동은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자기 확신의 신념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절대적 타자의 영역으로 인계하는 것, 자신의 목숨을 건 도약―이미 그의 목숨은 저 망망대해의 바다로 환원된 것이나 다름없다.―이나 다름없는 행위로 연장된다. 이는 진정한 구포의 바깥―그것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었다!―을 향해, 구포의 바깥 없는 세계를 바깥으로 재명명하는 행위가 된다.
이 이해하기 어렵고 믿을 수 없는 구포댁의 행위에 의해 〈만선〉은 걸작의 위엄을 간직한다. 곰치의 ‘그래도’ 깨우치지 않음에 대해 내재적 곤궁을 초래하는 것은 완전한 파멸에 대한 약속이며, 그로부터 현재의 시간에 과거의 끝없는 흔적을 붙잡고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의 가부장 세계가 파면을 맞는 건 이성과 합리의 세계를 예외적으로 전도시킬 때만이, 강박적 판타지의 세계를 신경증적 애도의 차원으로 전치시킬 때만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건 곰치의 세계(를 변화시키기)가 〈만선〉의 주제이며, 〈만선〉이 가진 절대적 차원의 남성 중심적 사회 시스템의 시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을 여성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전도시키는 차원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곰치의 세계가 빌린 작은 배일지라도 선장으로 사회에 참여하며 마을의 낮 동안의 가시적 세계를 구성한다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축은 슬슬이에게 속한다. 구포댁이 곰치의 세계 안에서 수동적으로 세계를 저당 잡혀 있음의 차원에서 또 다른 광기의 축으로써만 이를 돌파해 내려 한다면, 슬슬이는 비가시적 세계에서 자신만의 마음과 발화가 가능한데,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연철과의 은밀한 밤의 만남 동안 그러하다. 이는 구포댁도, 곰치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로, 오빠 도삼의 죽음 너머 연철의 죽음에 대한 심한 충격을 받는 건 오직 슬슬이며, 구포댁이 세계를 잃은 것과 같은 차원으로 상실감과 충격이 겹쳐지는 것이다. 이 이중의 차원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은 명시적이고 비가시적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 충격의 순간 위에 고스란히 평소 그를 노리던 범쇠의 성폭력이 포개지는데, 이는 정신이 없는 슬슬이의 엉덩이께에 올려진 범쇠의 손이라는 매우 더럽고 충격적인 차원으로 표현된다. 곧 각성 없는 신체에서 각성한 신체로, 의식 없는 살에서 민감해진 피부로 뒤바뀌는 과정에서, 범쇠의 무분별한 폭력이 슬슬이의 충격 받은 의식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관객은 모두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곧 관객은 대응할 수 없는 차원에서 폭력을 목격하고, 감각하는 차원에서 뒤늦게 그 충격을 전달받는다. 슬슬이의 이성을 잃은 이후, 범쇠의 죽음은 구포댁의 상황에 상응한다. 곧 여성이 행동할 수 있는 건 남성의 만용과 독선 혹은 폭력과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는 것.
아마도 잘못된 남성들의 범주에서, 임제순에 대한 징벌은 고작 안 좋은 기후 상황에서 욕심을 부려 곰치에게 배를 내어 주어 만선은커녕 배를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연이어 구포댁에게 빌려준 배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정도인데, 배 두 척 잃은 것이 그를 절대로 파국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 약한 차원이다. 그가 제대로 징벌 받지 않는 건, 아니 징벌할 수 없는 건 바다라는 세계를 직접 마주하지 않고, 그것을 매개하는 이들을 자본으로 엮고 있는 또 다른 주체가 보여주는 세계의 질적 변화의 양상, 대응할 수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힘을 〈만선〉의 시대가 목도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임제순은 그들의 너머에 있고, 또한 바다의 너머에 있다.
김민관 편집장2025.03.06 ~ 2025.03.30
평일 19시 30분|토·일 15시 (화 공연없음)
※ 접근성 회차: 3.22.(토)-3.24.(월)
/ 한국수어통역, 음성해설, 한글자막해설, 사전대본열람, 무대 모형 터치투어, 이동지원명동예술극장
작 천승세
연출 심재찬
윤색 윤미현
출연 김재건 김종칠 박상종 김명수 정경순 조주경 김경숙 정나진 황규환 문성복 강윤민지 성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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