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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단, 〈그의 어머니〉(에반 플레이시 작, 류주연 연출): 고립과 제한의 효과
    REVIEW/Theater 2026. 6. 7. 19:30

    국립극단, 〈그의 어머니〉(에반 플레이시 작, 류주연 연출)[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그의 어머니〉는 제목과 같이 ‘그’에 대한 소격 효과를 경유해 (그의) ‘어머니’에 대한 관찰적 시점을 창출해 낸다. 이는 집을 당위성의 장소로 산출함을 통해 증폭된다. 브렌다는 3명의 여성을 하룻밤에 강간한 자신의 첫째 아들 매튜는 가택연금 상태로 2층의 방에서 주로 머물며 실루엣 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는 동안,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자신의 집 앞에 진을 친 미디어들을 바깥에 둔 채 고군분투하며 현실을 타개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종종 문을 열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지만, 보이지 않는 시선은 사실 정면을 향한다. 

    〈그의 어머니〉는 대중의 시선, 관찰자의 시선을 경유해 대상화된 한 여성의 모습을 옴짝달싹못하게 감금한 채 지켜본다. 매튜의 범죄 행위는 분명한 것이고, 그 이유나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것 역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사건 전후의 소상한 경위,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추적과 탐구, 공공연한 현실에서의 낙인 효과로 인한 매튜의 또한 브렌다의 현재 심정 따위는 모두 닥친 현실의 무게 앞에서 사라졌다기보다 부차적인 것에 머문다. 따라서 브렌다의 곤궁은 매튜에게는 ‘나’의 어머니의 자리를 수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브렌다에게 매튜는 자신과 뗄 수 없는 법적 가족인 동시에 그가 여성에 가한 행위는 더럽고 불결한 남성 존재의 그것으로,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 인격과 자격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브렌다에게 역시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는 적어도 아들이 그럴 인물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이 사실을 부인하는 착란 상태에 빠져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사실에 대한 인정과 현실 인식이 매튜에게 드러날 때 그것은 감추어지지 않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이 있기 전 매튜의 여자 친구였던 제시카가 어느 날 방문하고 그날의 진실에 대한 강렬한 앎의 욕구와 함께 매튜를 만나려고 할 때, 브렌다는 매튜와 제시카 사이에서 둘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더 정확히는 매튜로부터 제시카를 보호한다. 매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역정을 내는 가운데 그의 어깨를 만지자 그는 그것을 더러운 것인 양 밀쳐낸다. 단말마같이 더럽다는 수식어도 덧붙여졌던 것 같다―거의 대부분의 말들은 강한 정서적 진동으로서 날숨의 효과이다(따라서 스치듯 타격한다). 

    이는 무엇보다 그가 다른 파생된 현실을 만들어서는 안 됨을 전제하는 차단임에도 무의식적, 무의지적 심상으로는 ‘비이성적’ 남성과 여성의 대등하지 않은 물리적 조건의 위험성과 불결한 사태에 대한 상상이 현실에서까지 유효하게 작동함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죄를 저지른 책임의 문제에 따른 찰라적 폭발은 그가 ‘드디어’, ‘예외적으로’ 만난 동년배의 여성을 앞에 둔 채 벌어진다. 

    사건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말해지지 않지만 적어도 브렌다의 상상 속에서도 인계된 바다. 그것은 아들의 행위이지만 용납할 수 없는 남성의 행위이기도 하다. 둘의 지위는 적어도 브렌다에게는 양립되며 모순되는 각각의 층위로 수용되어야 하며―후자는 상기되지 않은 채 수용되어야 하며―, 예외적으로 후자의 인식이 그에게 격발된 것 아닐까. 그러니까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은 순전한 여성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 절대적 사명을 지닌 것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사건과 거리를 두고, 사건의 가해자의 가족의 일상을 관찰한다. 가해자의 모습도 여기에 포함되며 바로 매튜는 묵묵히 일상의 단조로운 부분을 겪고 흘려보내는 모습이다. 브렌다로부터 무언가 추출되는 부분은 없다. 곧 그 둘 사이에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또 다른 집의 구성원, 그에게 친밀하게 접근하는 브렌다의 둘째 아들 제이슨으로 인해 감정을 산출한다. 후반, 매튜가 집을 떠나 감옥으로 향하기 전, 브렌다와 둘의 시간에서, 유대교 축제인 하누카의 하루를 기념하며, 닫힌 미래 너머로 소원을 비는 장면에서 그는 눈물을 흘린다. 

    직접적으로 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죄로 인한 가족과의 관계 양상에 대한 뚜렷한 인식으로부터 감정은 솟아난다. 아마도 응당 순전한 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반성과 죄의식은 아마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며, 후회 따위의 감정 역시 그의 처지를 어머니의 곁에서 반추하며 유예된 시간 질서와 그 바깥의 또 다른 시간들, 절망의 터널에 대한 미래 속의 일차적 요소일 것이다. 이는 끝내 그가 죄를 저지르고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기적이며 비인간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끝내 유예된다. 

    〈그의 어머니〉가 가해자의 심정을, 동시에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여지지 않는 건 그의 어머니의 현실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그의 어머니의 고유한 특질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사건은 명확하게 가해자의 잘못이고, 브렌다가 피해자 측의 어떤 흠결, 책임의 요소를 찾아내고자 하는 초반의 시간에, 그것은 법정에서의 유리한 전개를 위한 수사 차원의 효과를 위한 것으로, 거기에는 일정 정도 부인의 요소도 있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앞선 언급처럼, 근본적으로 더러움의 차원에서 아들을 보편의 인간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상정해 낸다, 무의식적으로나마. 

    위로 차원에서의 긍정과 교육적 차원에서의 자기 책임―이는 사실 거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판과 나무람, 분노의 감정 따위를 뭉뚱그려도 어느 것 하나로도 초점화되지 않는, 이 같은 부인과 경계의 행위는 그 특정 범죄에 대한 상상과 대응의 차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어쩌면 사건과 비교적 가까웠을 때의 모습, 또는 그날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 믿을 수 없음의 감정은 그것과 (가해자의 가족이 지닌 무의식적 방어 기제로 인해) 격리되고 (무수한 사회의 시선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차단된 진실에 대한 궁구는 그 바깥의 인물로부터 부상한다는 것은 다시금 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보다 그 방어막의 견고함을 드러내는 데 그친다. 

    매튜의 침묵과 고독함은 교도소를 눈앞에 둔, 눈이 내리는 겨울 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장면으로, 그의 순전한 인격으로 승화된다. 곧 그의 죄를 변명하거나 유예하거나 설명하는 대신 〈그의 어머니〉는 시간의 질서 속에서 담담하게 반영할 뿐이다. 발화하는 대신, 그려낼 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관찰자의 시선만을 거기에 위치시킬 뿐이다. 거기에 무언가 숭고함과 처연함이 있다면, 이제 또 다른/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시점에서, 무력해지고 겨우 버티고 참고 있(었음을 그제야 드러내)는 매튜의 모습은 (그에 대한 그의 어머니의 비판과 부정의 시선을 거치고 난 이후에, 그의 어머니의 시선을 현재 경유하지 않고서) 순전하게 인간적 연민을 자아낸다고도 할 것이다. 
    나아가 그 장면은 시작인 동시에 끝이기도 한데, 가택연금의 상태는 사실 그들의 의지와 예상과 상관없이 의사-교도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뒷모습이 매튜를 또한 담담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이라면, 거기에는 매튜의 합리화가 아닌, 매튜를 둘러싼 법에 대한 합목적성이 자리한다. 

    곧 인간 실격의 행위,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진정한 응분의 대가는 그 존재의 영원한 부정이 아니라, 법이 주는 강제 격리에 따른 인내와 침묵의 시간 아래 (그 스스로에게는) 처벌과 함께 보상의 성격으로 전이되는 것이며―처벌은 보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죄를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죄를 받아들이고 그 이후로부터 새로운 삶의 자리가 생겨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결코 〈그의 어머니〉가 주요한 테마로 삼는 건 아니지만, 이 하나의 장면은 분명 이곳이 법의 처벌을 인계하는 결정적 장소였으며, 격리가 우세한 그 처벌의 형식은 어떤 절단된 시간 자체의 유사한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그 끝의 장면은 매튜의 집 바깥으로의 예정된 삶 앞에 놓인 자의 현실적 모습이면서 이후의 장면, 예정된 삶의 끝의 장면을 선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몇 가지 제한의 요소를 통해 인물들의 일차적인 차원에서 즉발적인 대응을 초래하며 그에 대한 관객의 감각적 반응을 초래한다. 이는 심한 몰입감을 불러오는 한편, 해석과 사고의 차원을 유예한다. 그리고 이를 리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편으로 폐쇄와 고립의 현실로부터 인물들은 자유롭지 못하며, 다른 한편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그 사건은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해당 가족 질서 안에서 수면 위에 오르지 못한다. 따라서 진실이나 사건의 재현에 대한 초점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마이크를 붙잡고 있으며, 가해자의 침묵은 일정 부분 그가 짊어지는 현실의 무게를 상정하지만, 사실 긴박하고 막중한 현실에 대한 그의 어머니의 대처 아래 마치 그의 온전한 선택인 것처럼 은폐되는 부분이다. 

    결국 어떤 심리나 마음의 작용은 암시되거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부분이 된다. 등장인물들이 그 사건과 현실로부터 닫혀 있듯 등장인물은 그와 접면하는 관객에게 닫혀 있다. 그리고 이는 매튜가 집을 나가게 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의 도약이 선행되고 또 따른다. 이 도약 아래, 사건은 내재적이고 직접적인 것에서 외부적이고 2차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애잔하고 슬픈 감정 등이 복합적인 차원으로 밀려오며 말없이 공유되는 순간을 도출한다. 이 시간의 두 번의 도약을 통한 시간의 제한은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의 형식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그로써 감정은 응축된 매질로 무겁게 스며든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서 비로소 매튜로 초점을 이탈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김민관 편집장 

    2025.04.02 ~ 2025.04.19 평일 19시 30분 / 토·일 15시 (월 공연 없음) ※ 접근성 회차: 4.11.(금)-4.13.(일) 무대모형 터치투어, 음성해설, 이동지원 서비스, 한국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만드는 사람들

    작 에반 플레이시ㅣ번역 이인수ㅣ연출 류주연

    무대소품 이희순ㅣ조명 박성희ㅣ의상 최원
    분장 이동민ㅣ음악 RAINBOW99ㅣ음향 이고은
    영상 장주희ㅣ움직임 조하영ㅣ조연출 김경빈ㅣ제작진행 김지윤

    브렌다 카포위츠 役_김선영
    제이슨 카포위츠 役_최자운
    매튜 카포위츠 役_최호재
    로버트 로젠버그 役_홍선우
    제시카 役_이다혜
    스티븐 役_김용준
    테스 役_김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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