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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고 호드리게즈 Tiago Rodrigues, 〈바이 하트 By Heart〉: 합성되는 현재, 신체, 정치REVIEW/Theater 2026. 6. 7. 19:31

티아고 호드리게즈 Tiago Rodrigues, 〈바이 하트 By Heart〉[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상동). 티아고 호드리게즈(Tiago Rodrigues)의 〈바이 하트 By Heart〉는 제목처럼 외운다는 행위에 기반을 두며, 이를 현장의 관객 10명의 참여로 완성하는 과제로 변환한다. 이는 14행으로 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앞 4행을 모두가 제창하고, 뒤의 10행을 무대 좌에서 우로 한 행씩 맡아 외우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에는 몇 차례의 번역과 직접적인 신체의 변환 과정,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수여, 외운다는 것의 의미, 참여의 감각 등이 동반되는데, 고대 영어의 번역과 한글로의 재번역을 통해 원래의 언어는 의미적으로 그리고 또 형식적으로 둥글어지고 마모된 형상으로 자리 잡는다.
문화적, 시대적 기억의 탈각, 운율의 형식적 규칙 등이 사라지는 자리에 발화의 용이함이 남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의 모두의 문장으로 그것은 체현된다. 따라서 10명의 신체는 그 나머지 관객의 신체에 체현되는 문자의 신체로의 반입 과정을 증명한다. 호드리게즈가 아닌 우리를 대리하는 관객은 환한 무대를 객석으로부터 고스란히 연장하고, 다시 객석은 호드리게즈를 둘러싼다.
객석을 벗어나면, 곧 공연이 끝난 후에 주어지는 건 “먹을 수 없는 소네트”로 명명된 공연에서 기억된 시가 적힌 작은 종이이다. 즉, 비슷한 크기의 ‘먹을 수 있는 소네트’가 10명의 관객에게 최종 시 암송 직전에 주어졌고, 먹는 것 역시 과제가 되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대신 기억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신체의 두 다른 소화 양식을 전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10월 19일 참여한 관객 중 그 시를 먹지 않은 두 명만이 한 행의 시를 외우는 데 실패했는데, 이는 시의 물리적 지지체를 수중의 종이에서 자신으로 갈아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차원에서의 근본적인 실패를 재차 가시화한다.
시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가 시를 먹어치운다는 것의 의미와 등치한다는 사실에는 물론 먹는다는 것의 행위가 지닌 과잉 혹은 잉여의 차원에 대한 의미의 보완이 필요하다. 문자적 차원에서의 두 다른 기입의 양식은 강제성의 전략과 방식을 택하고 있고, 이는 수사학적 차원의 보충을 통해 납득 가능한 것으로 유도된다. 곧 공연이 갖는 일방적 수여의 폭력성과 그 작용이 구성하는 수동성을 발화가 아닌 발화를 삼키는 기억 행위를 통해 한층 더 강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은 〈바이 하트〉의 주요한 특질이자 고유성이며, 그것을 위해 의미 부여의 서사들이 중간 중간 도입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감미롭고 고요한 명상에 잠기며 / 지난 옛일을 추억해 본다 / 내가 찾던 많은 것은 어디로 갔나 / 귀한 시간 낭비한 비애를 애탄하노라 / 죽음의 밤에 숨은 소중한 친구여, / 메말랐던 두 눈은 눈물에 잠기네 / 오래 전 끝난 사랑을 다시 슬퍼하고, / 사라져버린 아픔을 탄식하노라 / 지난 날의 슬픔이 가슴을 후벼 파고 젖어들어 / 그 사연들 무거워지니 / 전에 치른 슬픔 하나 하나 헤아려 / 아니 한 듯 새로이 아파하네. / 친구여, 그대를 생각하면 / 상처는 아물고 슬픔은 끝나도다.”
조지 슈타이너를 경유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1937년의 일화는 〈바이 하트〉의 기억하기에 관한 기원이자 이 현장에 대한 재체현이다. 이야기하기는 언제나 현재형이고, 사실 기억하기를 가능하게 한다. 곧 이야기하기를 보증하는 건 일차적으로 기억이며, 그것이 구현됨에 따라 드러나는 건 그 이야기하기의 현재성, 다시 말해 현재 시점의 (상호) 신체성이다. 애초에 〈바이 하트〉에서 (제4의) 벽은 없었고, 극장보다 더 평범한 장소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강당 정도의 시설이면 가능한 공연이었다. 여기서 기억은 문화이며, 비민주주의적 통치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대항으로서 자리한다. 파스테르나크에 따른 기억은 “내면”이며 현실은 그것을 침범할 수 없다.
내면이 문화적 기억의 저장 장치이고 신체가 그 출력 장치라면,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합성은 문화적 집단의 시위의 장면이며, 그것은 하나의 언어 공동체로서의 문학을 전제로 한다. 이는 문자적 의미에서, 그 문학의 내용이 정치적인 실질로서 합성되는 자리이며, 그 유일한 기억하기의 행위는 A라는 신체로부터 B라는 신체로 C라는 내용 그대로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신체로의 이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곧, 기억하기라는 이식을 통해 시차적인 새로운 공동체와 대항 역사의 자리를 끊임없이 재구성할 수 있다.
그 여지를 시험해 보는 것, 문학의 기억하기가 지닌 정치성과 문학적 집단의 공동체성이 지닌 정치, 기억의 정치가 구성하는 미래의 역사적 지형을 상상하는 것을 위해 호드리게즈는 모의 실험을 도모하고, 그것이 충분히 성공 가능할 것임에도, 어떤 떨림들이 주어지는데, 이는 혹시 모를 실패의 예측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신체가 제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부분이다. 결국, 시의 낭독은 순차적인 것이며, 이는 각각의 시에 대응하는 신체의 고유성을 경유한다는 점에서, 호드리게즈의 익숙함을 벗어난, 매번 새로운 지점들로 확장되며 하나의 작품으로서 합성된다.

역사의 장면, 이전의 문학을 이곳에 다시 불러온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의 시를 어렵게 한 구문씩 외워 가며 공동으로 하나의 형식을 굳이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위태로운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깥이 아닌 극장에서 여유롭게 성취한다는 건 정치적 의미를 담지하는 것일까. 〈바이 하트〉는 역사적 장면의 의미에 머물기보다는 그 장면을 수행하며 완성한다, 그 역사를 성취했던 매체의 방식을 동원함으로써. 이는 하나의 의사소통의 과정(으로서 연극을 재정의하는 행위)이다. 그 역사적 의미가 아닌 진술되지 않았던, 그 역사에 참여하는 신체들의 몸을 경유‘하기 위해’.
연극은 일종의 놀이이며 행위이며 의미를 현재에 복권시키는 현장이다. 역사를 호출하고 환기하며 돌아보며 유효함을 확인하지만, 그것이 현재에 닿는 첨예한 정치의 자리까지를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이는 연극이 시간을 흡입하지만 언제나 시차를 통해서만 그러하다는 매체의 특질에 의한다. 곧 연극은 문학이라는 조건으로부터 오며 그 문학적 전제를 새롭게 쓰는 것이다.―, 단지 어떤 수행의 과정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유효함을 확인하면서, 언어의 차이와 번역의 시공 아래 연극이 성사될 수 있음을 드러내면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역사는 저 먼 곳의, 저 너머의 진리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현재’ 이야기되며 다시 상기되는 그 순간에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공동의 진리가 이륙되는 그 지점이 어쩌면 연극의 능동태적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역사적 장면들은 일종의 현재를 위한 매개의 순간들이며, 또한 이 작품의 주제어의 하나인 기억하기의 한 연결이며, 극장을 환유하는 신체로의 전이로서 상호 기억의 토대이자 그 이야기들이다.
김민관 편집장
2024.10.18 ~ 2024.10.20 시간 금 19:30 | 토,일 14:00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제작진]
작·연출·출연 티아고 호드리게즈
영어번역 티아고 호드리게즈, 조아나 프라자오(감수)
발췌·인용 윌리엄 셰익스피어, 레이 브래드버리, 조지 스타이너, 요세프 브로드스키
무대디자인·의상·소품 마그다 비자로
총괄 앙드레 파토
음향 페드로 코스타
제작기획 아비뇽 페스티벌
Mundo Perfeito의 오리지널 창작물을 기반으로 함
공동제작 시간의 공간(O Espaço do Tempo), 마리아 마토스 시립극장(Maria Matos Teatro Municipal)
후원 카몽이스 포르투갈 문화센터(파리) 후원
제작지원 포르투갈 정부- DGArtes
오리지널 창작물 제작 총괄 마그다 비자로, 리타 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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