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나열과 대비라는 전시의 시각적 단면REVIEW/Visual arts 2026. 6. 7. 19:30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전시 전경ⓒ고정균[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이하 상동). 《구정아-오도라마 시티》는 작가의 이름과 제목의 혼합된 형식은 베니스비엔날레의 전시명과 작가의 간단한 식별 절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표기 방식을 연장해 온 것일 수 있다. 전시를 재현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시차적으로 펼쳐놓는 행위는 전시의 이전 맥락을 보존하는 한편, 그 전시를 물리적으로 해제하는 방식으로, 곧 더 친절한 언어의 서브 텍스트의 나열과 그 텍스트로부터 추출한 향들의 분포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아마도 비엔날레의 국가 박람회라는 형식 속에, 서구의 동시대적인 공통된 주제 대신에, 세계 속 다른 한국은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기호를 체현함으로써 각인시키는 방식은 한국(인)이라는 원재료의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추출 방식과 비시각적인 산출의 실험으로 이행되었다.
작가는 한국인의 대등한 나열의 차원 아래 저자성을 각자에게 양도하고,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단어 쌍들을 추출하고, 거기서 향을 추출하는 과정을 다시 조향사들에게 양도함으로써 무색무취한 매개의 자리를 가져간다. 텍스트에서 향으로의 전환―“600여 편의 향기 메모리와 17가지 향”―에서 작가의 몫은 구상에 있다. 이것이 비엔날에의 전시장에서는 압축적인 향으로 뿜어져 나왔다면,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산포되어 공간을 거니는 방식으로 해제되었다.
전자의 생산 양식에서 향의 컨테이너와 그 표현 양상이 어린아이나 승려의 무중력적 공간에서의 익살스러운 존재의 형상화와 분출로 드러났던 건 그 존재의 심미성 대신에 비좁은 공간에 대한 대응의 차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더 확실해지는 듯하다. 곧 존재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공간 내의 한계적 위상, 그 공간의 장력을 받고 있는 태아의 차원으로 전이된 것 아닐까.
그것은 머리를 수그림으로써 전체 신체의 형상으로 포착되고 주체의 자리를 비점유하는 것으로, 또 일종의 생성되는 과정 안에서의 가상적인 형상으로 보인다―곧 그것은 조각이라기보다 시뮬레이션이다. 여기서 조각은 자신의 자리를 비시각적인, 조금은 시각적인 향의 도출을 위해 다소 괴기스럽게 양보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나타내지만, 그로써 조각으로서 불안정한, 입체적이지만 감각의 차원에서 충분하지는 않은 조각 자체의 완성은 유예되는 것이다.
“향을 뜻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drama)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가 도착하는 건 “시티”, 곧 도시이다. 한국을 도시로 대응시키는 가운데, 향의 드라마, 서사는 그 안의 다양한 주체들로 초점화된다. 한국에서 느꼈던 특별한 향/냄새에 대한 기억을 담은 구술 형식의 이야기들은 국어와 영어로 각각 기입되어 있고―번역의 차원이라기보다 한국‘인’이 아닌 한국‘에서’라는 가정에 따른다.―, 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등이 아래 함께 기재된다. 각자의 경험은 그 정도의 차원에서 그 향이 불러다 주는 기억으로부터 현전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프루스트의 마들렌‘의 기호와 같이 문학적 성취가 획득되는 것이다.
이것들이 미궁은 아니지만, 각각의 모나드로서 선형적이거나 연결되는 경로를 형성하지 않으며 배치된다는 점은 설치의 거의 유일한 방법론으로서 중요한 차원을 띠는데, 향에 취한 기억의 문학적 텍스트로부터 주의를 잃는, 그러한 고립과 체험의 반복으로서 전시장을 구성하고자 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그 처음과 마지막의 부분에 배치된 스크리닝은 이 전시의 취지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차원에서 이 전시를 이전의 전시의 인용으로서 처리하고 구성한다.
이 배치됨, ‘각각의’ 현전하는 경험은 그것을 총합하는 등가적 방식의 생산, 곧 나열의 차원에서 매개의 몫을 떠올리게 한다. 이 나열의 방식은 2층 전시실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는데, 빽빽함이 확연하게 감축된 공간, 시각적 장애물, 글자들이 사라진 공간에는 향을 보존하는 천장 위로부터 내려온 나무 오브제들이 군데군데 놓인 형국이 그것이다.
각각의 글이 결국 비슷한 차원으로 귀결되는 부분, 유형학적 분류의 판단 아래 각각의 차원을 분별하기 어렵게 되는 것과 같이, 17가지의 향으로부터, 하나하나의 판단을 예리하게 성취해 내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따라서 전시는 매체의 변환과 함께 재료의 변용을 함께 보여준다. 그러한 역량으로부터 개별 서사의 몫이 어떤 흐름이나 거대한 서사의 일단으로 조직되는 것 역시 그 2차 생산의 과정에 따른다.
이는 다시 말해 1층의 전시장에서 개별 서사는 하나의 서사적 생산 양식 안에서 닫히게 됨을 의미하며, 매체의 변환에서 그 양태는 정확히 축약되고 압축된 인용의 흐릿한 형상―텍스트의 축약과 변환의 양식―으로 자리하며 그 향의 감각을 대신하는 가운데, 실제 그 경험들이 성취하는 개인적인 도시의 공간을 환유해 내지는 못함을 또한 의미한다. 경험은 실제 매우 빈곤한 방식으로 주어지게 된다―그러니까 향은 총체적인 경험의 차원에서, 결코 독립적인 매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또한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
그 경험은 앞선 무대에서처럼 우리를 한 명의 문학적 저자로 구성해 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문학적 경험에서 저자들은 그 향이 주는 전체적인 경험에 대한 철저한 수동적 입장에 놓였었으며, 그 경험의 이차 생산 역시 수동적인 입장에서 현전되는 것이었다면, 우리의 경험은 식별과 감별의 기능적인 차원으로 환원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는 비시각적 매체에 대한 불충분한 우리의 감각이 공간의 소멸과 공간의 전체적 조망의 시각적 대비로 환원되는 전시의 구성―가장 커다란 전시 설치의 전제―이 주는 경험과 모종의 관계 아래 있다.
김민관 편집장제목 :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구정아-오도라마 시티》
참여작가 : 구정아
예술감독 :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
기간 : 24.12.20.-25.3.23.
운영시간 : 화-토요일, 11시-19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당일 휴관)
장소 : 아르코미술관 제 1,2전시실
관람료 : 무료
공식후원 : 현대자동차
파트너 : 논픽션, 루마 재단, 디네슨
콜라보레이터 : 러쉬코리아
스폰서 : 일진문화재단, 블룸버그, 니콜레타 피오루치 재단, 아그네스 비, 바자 아트, 아트 허브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채널
서포터 : 알바라한 브루다이스, 필라 코리아스, 핑크써머 갤러리, 피케이엠 갤러리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REVIEW > Visual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요·황예간, 《눈치채길 기다리며》: 감각하거나 해석을 통한 작품의 존재방식을 읽어내기 (0) 2026.06.02 박시월, 《허공에 뜬 그림자》: 허공을 산출하는 그림자 혹은 그림자를 기워 내는 허공 (1) 2026.05.28 박찬경, 〈늦게 온 보살〉에 대한 주석: 이미 온 미래를 부인하며 마주하는 법 (0) 2026.05.20 [2025 SPAF] 얀 마르텐스, 〈도그 데이즈, 오버 2.0〉: 몸이라는 착각 혹은 의무 (0) 2026.05.18 권시우, 《비프리 B-FREE》: 비평가에의 풀이 (0)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