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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월, 《허공에 뜬 그림자》: 허공을 산출하는 그림자 혹은 그림자를 기워 내는 허공REVIEW/Visual arts 2026. 5. 28. 13:33

박시월, 《허공에 뜬 그림자》ⓒ최철림[사진 제공=AlterSide](이하 상동). 박시월 작가의 개인전 《허공에 뜬 그림자》에서 유리 프레임이라는 지지체는 형상이 기입되는 장소이자 형상을 가두며 흐릿하게 배어 나오게 하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매체와 서사 혹은 알레고리, 곧 프레임이면서 이미지인, 프레임이거나 이미지인 작업의 양상은 접합의 양식으로부터, 이 프레임‘들’의 겹침으로부터 생산된다. 이로부터 “허공”과 “그림자”는 그 매체적 표출이거나 그 매체가 담고 있는 서사적 산출이 된다.
이 유리라는 성질로 인해 작품들은 일종의 조각이나 설치 작업의 일환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캔버스와 물감은 하나의 평면이 아닌, 접합되는 개별 매체로 분기되는 가운데 성립하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전시명과 같은 세 작품에서, 즉물적으로 ‘그림자’는 작품에 비친 조명으로 인해 맺힌 원형의 그림자를, ‘허공’은 겹쳐진 유리를, 유리와 유리의 사이를 지시한다면, 내용적으로, 곧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산 위에 뜬 구름과 같은 형태적 인지의 차원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매체와 도상적 재현의 층위에서 의미가 분기되는 건 박시월이 사용하는 유리의 속성에서 파생하는 바다.
유리는 파고들며 먹임 되는 캔버스와 달리 그 ‘위’의 자국으로 입힘 되는 얇은 두께의 공존의 양상을 만드는데, ‘허공’과 ‘그림자’는 바로 이러한 독립적인 매체들의 분기와 종합의 양상 아래, 유리와 연필의 공-현존 자체에 상응하는 개념들로 보인다. 유리를 투과하는 연필 그리고 연필을 뒤덮고 있는 유리는 상호 주체적이면서 서로에 포개지고 감싸진다. 이는 유리를 유리‘들’로 만드는 작가의 ‘확장’ 행위를 통해 구현되는데, 곧 유리와 유리를 겹침으로써 두 개의 ‘캔버스’는 서로를 난반사하면서 불투명해진다.
유리‘들’이 은폐되는 캔버스의 기능을 역전시키면서 부상하는 가운데 그 형체의 불투명성, 불명확함을 만든다. 여기서, 유리가 투명한 질감과 두께감을 모두 갖고 있는 허공의 형상이라면, 회화는 유리의 안에 뜬, 그것에 비친, 그것으로 반쯤 열린/닫힌 그림자의 형상이 된다―‘허공에 뜬 그림자’는 거꾸로 그림자를 띄운 허공의 존재 양상을 전제한다. 곧 전시 제목은 은유적 차원의 언어이기 이전에, 전시의 매체 지형과 방법론적 효과를 드러낸다.

〈그림자를 잡는 법〉[2024, Pencil on glass, 20×20cm(5개).]은 명확하게 박시월의 실험 양식과 스타일, 시도의 차원을 예시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는데, 가령 여기서 유리는 대체로 번짐과 부식―우연과 자의가 배합된 드로잉―을 위한 표층이면서 그 자체로 금이 간 조각적 대상으로, 동시에 그 균열 자체가 하나의 회화적 선분 전체일 수 있는지를 시험하면서 이 유리의 겹침을 제시한다.
이 겹침은 세 개의 〈허공에 뜬 그림자〉(2024, Pencil on glass, steel frame, 193.9×130.3cm.)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벽이 아닌, 별도의 설치 조각으로 인계됨으로써 앞과 뒤의 구분을 만드는 동시에, 그 뒤섞임을 통한 착시의 인지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추동한다. 속의 회화는 배경 효과가 되며, 바깥의 회화는 그것과 구분되면서 동시에 그것과 연계되지만, 그 속의 표층이 결코 안에 온전히 갇혀/닫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펼쳐짐’이다. 이와 동시에 뒷면에서 그것은 다시 역전된다.
‘그림자’로 뒤덮던 자국은 이미지가 되고, 형상은 일렁이는 자국들로 그 이미지를 에워싼다. ‘조각’은 앞과 뒤를 충족하며 동시에 다른 것으로 분화한다. 산이거나 눈 덮인 산이거나 한 이미지들은 그야말로 ‘허공’ 위의 자국의 다른 펼쳐짐들이다. 그것은 곧 그림자이다, ‘허공’과 함께하며 그 허공을 생산하는.
이 그림자는 재현적 양상이 아닌 재현이 가능해지는 시공으로서 지지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는 그 지지체로 인해 재현-이미지가 불투명한 것처럼 감각되며 드러난다. 그로써 재현-이미지는 일종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 된다,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곧 이미지를 잡아두고 변전하는 역량으로서의 허공 아래 붙잡힌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그림자와 허공은 유착 관계를 이룬다.
김민관 편집장《허공에 뜬 그림자》
박시월 개인전
2024. 12. 4 — 12. 23 13:00 ~ 19:00 (월, 화 휴무)
AlterSide 마포구 방울내로 59 3층
포스터ㅣ김지수
설치 제작ㅣ노한수
사진ㅣ최철림
주최, 주관ㅣ박시월
후원ㅣ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본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청년예술가도약지원을 통해 제작'REVIEW > Visual a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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