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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메타포, 〈닫히지 않은〉: 영원회귀로써 애도되는 존재
    REVIEW/Theater 2026. 6. 10. 13:00

    극단 메타포, 〈닫히지 않은〉Ⓒ삼일로창고극장[사진 제공=극단 메타포](이하 상동).

    〈닫히지 않은〉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언급되지 않고 암시되는 것에 가깝다. 파란색 원형 아크릴 판 위의 미세 결정들이 무대 중앙에 바다를 기입하는 가운데, 안에 남은 ‘안’―윤상영―에게 ‘설’―박지영―이 다시 돌아와 대화가 이뤄지게 된다. 밀려오고 다시 밀려나는 바닷물의 은유로서 기억은 계속해서 재상기―바람 역시 중요한 기억의 매체로 수여된다.―되며 그 자연의 무한한 순환의 구조로서 시간은 영원한 것으로 열린다.   

     

    곧 〈닫히지 않은〉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이 다시 존재로 가로질러 오는, 곧 다시 열리는 어떤 환상적인 장면에 이르는데, 그것이 어떤 역사를 직접 현상하지 않은 채 그것을 어떤 잠재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가운데, 잃어버릴 수 없는 강력한 기억의 메타포와 원형적이고도 근원적인 시간성의 차원 모두를 바다라는 거대한~영원한 알레고리에 결착시킴으로써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설은 외부에서라기보다 외부 자체로서 등장하는데, 이는 소라껍데기의 환유로서 그것에 귀를 댔을 때 들리는 기이한 소리 효과가 바꾸는, 흡착하는 세계의 달라진 반경에 조응하는 것이다. 판 위의 결정들은 바다 위 모래 알갱이들로 처음 결정되는 건 “두껍아”로 시작하는 〈두껍아 두껍아〉 동요를 부르며 행하는 놀이, 어릴 적 아련한 기억을 ‘밀려오게’ 하는 그 놀이가 두 사람에게서 행해졌음을 암시하면서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향되지만, 직접 현상되지는 않는데, 이는 가령 거문고 연주에 의해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에 함께 “아직도 멀리 있네.”라며 상대를 확인하는 것에 의해 표현된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문을 열며 상대를 확인할 때, 언젠가는 그 상대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잠재적-무한한 시간성의 계열 아래 바로 〈닫히지 않은〉이 놓이는데, 그것은 전적인 애도 불가능성으로 인한 우울의 증세가 훨씬 더 길게 늘어나서 마치 어떤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전개될 수 있는 차원까지도 수용하게 됨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두(?) 사람의 기억 안에서, 소라껍데기의 틈은, 안이 설에게 그 소리의 존재를 물었을 때 설의 대답에서의 “파도 소리”가 아닌, 다시 안이 곧이어 “사람들 소리”라고 고쳐 말하듯, 소리가 현상하는 바가 어떤 문을 열었느냐―문을 여는 행위는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러나 그 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가 바뀔 수밖에 없음의 차원에서 예측 불가능하면서 동시에 비가역적인 것이다.―의 각기 다른 반향적 효과와도 같다는 지점에서, 소라껍데기, 곧 소리는 자체의 환유를 넘어 문의 은유로서 거듭난다.


    곧 ‘그 소리가 아니라 저 소리’임은 소라껍데기에서 공명하는 소리가 (여러) 세계의 동조됨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 연장선상에서, ‘문’의 열림은 어떤 차원들의 현상 자체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안이 수많은 문을 열어 왔으며, 또한 열어야 하며, 어느 순간 기억이 소리(를 경유한 기억으)로써 현재로 재결정되는 또는 밀려오는 순간이 올 것임을 의미한다―그렇다면 어느 날 소라껍데기에서 ‘설’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그것이 왜 소리인가에 대해서는 앞선 ‘바다’를 무대에서 물화하는 방식이 소리라는 점에서 거꾸로 추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슬픔을 유예하고도 지연하는 유희적 반복의 일종의 문고리 놀이는 또는 소라껍데기에 귀를 수없이 갖다 대는 놀이는, ‘반절의 확률’―설이 도래하거나 도래하지 않는―을 믿(어야 하)는 남은 존재의 슬픈 숙명에 소구되는데, 기억-존재가 완전하게 현재로 연결되는 그 ‘채널링’의 순간이 곧 소라껍데기의 소리 현상과 같은 것이다―그리고 이 지점에서 독특하게도 거문고를 주요하게 다루는 음악 집단 거문고자리―김은선, 최예지―가 무대에 직접 투여되어 평행선상의 시간을 여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곳은 기억이 아닙니다. 그곳에 남은 마음의 자리”라는 말과 같이, 〈닫히지 않은〉은 어떤 안과 설 사이에 무정형의 인격적 존재―장요훈―를 중간 중간 투여해 계속 서술자의 위치를 부여하는데, 이는 다소 설명적이며, 기억에 침잠된 안과 기억 너머에서 현상되는 설의 모호한 경계와 중첩의 ‘사이’에 모호하게 있다. 이는 기억의 모호함들을 과거로 두는 일정한 간극의 삽입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그 스스로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 신비한 존재로 자리하며, 그 둘이 기억에, 환상에 물들어 있음의 상태를 역으로/상대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중앙의 환상적 공간에 자리할 때 그는 안과 설의 과거의 원형적 기억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며, 가령 이런 지점에서 그는 그 두 사람의 주변을 돌며 그 이야기를 옮겨야 하는 현존재를 윤리적 차원으로 매개하는 어떤 의도된 본연의 역할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곧 그는 과거를 직접 매개하기보다 과거라는 시간을 매개―지시―하며, 과거의 한 그림자로서 과거를 (또) 다른 식으로 분화시킨다. 

    “나는 살아남은 게 아냐! 계속해서 버려지는 거야.”라는 안의 말에 대한 설의 응답, “그 두려움이라도 보내지 그랬어.”라는 말은 안을 포용함으로써 안의 과거를 “두려움”의 상태로 치환한다. 기실 안은 계속해서 돌아올 수 없는 설로부터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한 무용함을, 절대적 의존 대상의 부재를 (또는 기각을) 그로부터의 자신의 기각으로 바꾸면서 겨우 살아남아 왔는데, 안의 여기서의 기다림은 설이 “물때 맞춰서 돌아올까 봐” 어떤 일상의 당위가 되었던 것이다. 

    곧 설의 대답은 그러한 안의 자기 부정성이 외부의 희미한 대상을 역설적으로 존립시키는 그 지점을 재현상함으로써, 곧 자기의 없음이 실은 단지 비가시화되었던바 뚜렷한 실존의 연장선상으로 정의함으로써, 곧 반전시킴으로써, 설이 안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편에는 진짜 설의 안에 대한 응시가 있었을까. 
    〈닫히지 않은〉은 감각적~문학적 ‘메타포’의 사용을 통해 애도를 경유한 영원한 역사, 곧 일종의 신화적 차원의 시간을 결정하며, 군인들의 총에 의한 죽음을 언급하지만, 명확하게 연결하지는 않는 가운데, 애도의 대상을 보편적 차원에서 연인의 특정한 일상의 기억 속 상대로서 체현해 낸다. 

     

    김민관 편집장 

     

    2026.5.22.(금)19:45 

    2026.5.23.(토)15:45

    삼일로창고극장

     

    작/연출 최규화 

    출연 박지영 윤상영 장요훈
    음악 거문고자리(김은선 최예지) 

    기획 성희주

    기술 이용배
    조명 송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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