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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SPAF] 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 〈디 임플로이〉: 인간 존재의 심급을 가르기 혹은 가로지르기REVIEW/Theater 2026. 6. 11. 21:47

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 〈디 임플로이〉[사진 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이하 상동). 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의 〈디 임플로이〉는 무대 위 작은 큐브 공간을 영상으로 확장, 증폭하는 방식으로써 제목과 같이 고용된 직원들로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에 대한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미래의 우주선에 탑승한 존재들의 주로 변화되어 가는 심리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독립적인 조명 장치를 부착한 큐브 안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을 관객은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오가며 직접 들여다보거나, 그 주변과 안을 움직이는 카메라맨의 촬영에 따라, 큐브 바깥의 세 면에 위아래로 2개씩 설치된 각각 크고 작은 스크린들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영상을 객석에서 따라 가는 것 역시 가능하다.
약간의 미로처럼 되어 있는 큐브는 그 밖의 조명으로 인해 외부의 주의를 끄는 반면, 그 안의 것들은 프레임의 지지체들과 벽의 분리된 구조에 의해 전적으로 투명하지만은 않은데, 이로써 그것은 자체적인 시각장을 형성하면서, 관음증적 시선을 향하게 하는데, 이는 결국 이 지구 바깥이라는 폐쇄 공간 내의 실험 인자로서 존재들을 가늠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관망한다는 감각에 조응하며, 스크린을 통한 안으로의 접속은 실제적 환경에의 ‘정보’와의 간극을, 그 안의 미디엄 쇼트 혹은 클로즈업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과의 전적으로 바툰 ‘거’만큼의 친밀함으로 채움으로써, 거리는 상쇄되기보다 초과 봉합되는데, 곧 극장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거나 더 소유하게 된 관객은 이에 대한 대항적 차원에서 정신분열증적 강박을 소지하게 된다.
이러한 끝없는 이동과 들여다보기, 자기 자리에 대한 의심과 빈 공간에의 무한하고도 무심한 투여를 통해 관객은, 제자리를 보존하며 화면과 실재를 봉합해 내지 않는 이상, 무대에 필사적으로 시선을 들여다 보낸다, 카메라가 미치지 않는 무대의 이상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그 시선에는 사실 폴란드어에 대응하는 자막과 함께 안을 겹쳐 넣음이 수반된다. 결과적으로 스크리닝으로 뒤집힌 무대의 판본을 우리는 멀거나 가까운, 또는 더 정확히는 멀고도 가까운 작은 물리적 지표로써 겨우 되찾아오게 되는 셈이다. 그것을 (가능성의) 구멍 바깥의 (한계의) 벽의 실재로 연결하거나 그저 증대된 리얼리티를 위한 촬영적 소스쯤으로 수용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액자식 투과 장치로서 무대는 마치 우리가 그들인 것처럼 우리를 닫힌 공간과의 자기 대면으로 전도시키거나 그들이 순수하게 우주선 내의 어떤 곳에 격리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매개에 의해 충분히 볼 수 있게 된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건 물리적 환경이 지워진 그 안의 내밀한 표정과 목소리뿐이거나 거기에 더해진 작은 틈의 분절된 장면 조각이다. 여기서 카메라라는 몸은 고정된 시각점을 한층 더 유동적으로, 그러한 반응 자체로 변환하는데, 이는 그것이 전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게끔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메라맨은 관객을 대신해 유일하게 그 안에 어떤 제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사실 우리는 이들을 고용한 이들, 그들을 ‘실험실’에 가둔 그 바깥의 존재들에 대응하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대리 체험해주는, 또는 우리의 형이상학적 질문을 선취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의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곧 이들은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의 자막에서 인류의 예외적인 하나의 경험으로 승화되며 동시에 버려지거나 지워지는 운명을 맞는데, 이는 다소 모호하게 펼쳐진다. 곧이어 교차 편집에 의해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각을 개별 캐릭터 안에 새겨 넣으며, 이후 일종의 다음 시리즈의 장르 서사물이 이어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부분은 소설―이 공연은 덴마크의 작가, 올가 라브(Olga Rav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이라는 매체적 분기가 무대를 닫고 또 봉합하는 기능의 잔여라는 인상을 주는데, 이 텍스트 자체가 일종의 불순물로서 무대에 도입되지만 미약하고 결코 모든 것을 재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우리는 무대 위에 남아 있는 배우라는 존재들을 기각할 수 없는데, ‘이곳’이 전적으로 우리가 속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영상의 독립적인 몫이 또 다시 분기하는데, 그것은 처음 이 공간을 파고들 때의 카메라적 감각을 다르게 다시 반복하는 것에 다름없다. 그러니까 이 두 번의 분기는 모두 결말에 대한 어떤 매듭이 되지 못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영속하는 듯한 현재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은, 텍스트라는 불순물에 대응하는, 곧 그것의 뒤집힌 판본으로서, 이 공간에 잔해로서, 텍스트를 소거한 이미지의 흩어지는 몫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이 그 육체까지 소거된다는 건 그리고 이 공간이 현재로부터, 세계로부터 벗어나 그 자체로 독립적인, 현재와 연동되지 않는 인류사적 박물관으로 남겨지게 된다는 건, 사실상 소설이 남긴 영원한 여운이라는 문학이라는 매체의 클리셰적 효과인 셈인데, 이것이 제작진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무대 위의 육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곧 ‘두 번째‘ 불순물은 이 몸에 대한 환영적 대응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문학의 추상적 서술을 배우에 대한 이미지로 재영토화한다. 그래서 이는 문학과 다른 또 다른 몸을 얻는데, 아마도 이를 통해, 곧 환영적 몸의 가시화를 경유해, 우리는 폐기된 운명에 대한 복권을, 우리 자신의 대입을 산출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인가. 회의하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존재들, 곧 성찰의 자세와 심리적 간극, 본원적 물음들을 가진 존재일 때 인간이라면, 그들에게 부여된 경계를 끊임없이 반문하는 휴머노이드야말로 진정한 최후의 인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휴머노이드에게 사랑을 느끼고 동등함을 체감하는 인간에게 그들이 타자성의 한 일면이라면, 그들의 자격과 그들에 대한 규정은 부차적이다. 그러니까 이 고용됨의 법적 관계, 통치자의 기술, 감시적 판옵티콘의 형상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고용됨이란 오히려 이 타자와의 관계, 만남, 적응,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분리된 잔여를 절대적으로 찾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디 임플로이〉는 원작 자체가 일종의 인물들의 진술 구조 안에 잠겨 있고, 따라서 개별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으로 수행되는데, 이 의식의 자의적이고 모호한 특성을 미로 같은 구조의 충분하지 않은 인물과의 거리 안에서 초과되는 이미지의 차원에서 봉합하고자 한다. 그리고 관객은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메우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텍스트를 더 잘 종합하는 건 아닌데, 그것은 무대 내에서 선택되고 재분절되며 더욱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한 의식과 존재에 대한 의식은 각각 무언가 감지되는, 살아 있는 듯한 사물, 그리고 업데이트되면 사라져 버릴, 동력을 끄면 지속, 보존되지 않는 기억의 차원에서 의심된다, 또는 시험된다. 전자로부터 감정이, 의식이, 관점이 발생한다는 지점은, 물 자체로서 사물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주관적 의식을 끌어내는 칸트적 테제와 공명한다면, 후자로부터 기억의 유동적이고도 불안정한 측면이 사랑의 관계에 있어 오히려 필연적인 것으로 부상한다.
인간으로서 나는 휴머노이드에게 내일도 너에게 오늘과 같은 모습일 거야라는 말은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의 공고함을 표면적으로 증명하는 것 외에도 네가 나를 하나의 기억으로 내장해 주었으면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이는 거꾸로 우리의 기억이 불안정해져서 사랑의 단서를 잃어버리게 될 것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의 투영이다. 〈디 임플로이〉는 가치의 심급을 정초하는 존재들을 폐기하는 것으로써 어쩌면 우리에게 앞당긴 죽음을 선고하고, 우리에게 그들의 질문들을 절실한 것으로 각인시키려 한다.
김민관 편집장
10.24.Fri. 7:30pm10.25.Sat. 3pm10.26.Sun. 3pm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 시간150분
제작진
연출 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
작가 올가 라븐
덴마크어 번역 보구스와바 소한스카
대본 각색, 드라마투르기 요안나 베드나르칙
무대 디자인 파비앵 레데
비디오 야쿱 레흐
조명 바르토시 날라젝
의상 스벤야 가센
음악 루보미르 그젤락
동작 컨설팅 롭 바시에비치
조연출 아담 즈둔칙
콘셉트 진행
시몬 아담착
카메라 오퍼레이터
이보 야브원스키, 글로리아 그뤼니히
조명 오퍼레이터 얀 자용치코프스키
음향 오퍼레이터 다미안 크루셰프스키, 카츠페르 스워빅
비디오 오퍼레이터 아드리앙 코냑, 아담 쿠즈노비치 / 파베우 바나슈칙
프로덕션 매니저 모니카 발린스카
무대 감독 주잔나 프루신스카
조연 프로듀서 알렉산드라 우르반
모델 및 소품 카타지나 리트카
세트 제작 피오트르 슈치기엘스키
의상 제작 알렉산드라 안드리호비치
국제 배급 안나 레바노비치
출연진
도미니카 비에르낫, 다니엘 도보시, 마야 판키에비치, 소니아 로슈축, 미론 스마가와(비디오), 파베우 스마가와, 롭 바시에비치, 마우고자타 하예프스카-크시슈토픽(게스트, 오디오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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